23. 6·25와 나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11).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둔 은혜가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의 구원이 되시며, 방패가 되시며, 영광이 되시는도다.

나의 신앙 생활 50년 전도생활 34년에, 주를 사랑하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에게는 만사 합동하여 유익함을 체험한 사실이 부지기수이지만 특별히 6·25때에 체험한 주님의 은총의 사실을 대략 간증하려고 합니다.

너를 떠낸 바위와 파낸 웅덩이를 돌아 보라(사 51:1)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본시 10년간 목회하고 38세에 부흥 사명을 받아 22년간 국내와 국외에 불철주야로 순회 전도를 계속하여 왔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각처 성도들의 기도의 복병들이 나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은덕임을 알고 감사할 뿐입니다.

잊지 못할 6·25를 서울 충정로 장로교회 집회 중에 맞이하여 6월 26일에 그 집회를 마치고 6월 27일에 마지막 차로 목포로 내려갔습니다(그때 가족이 목포에 있는 관계상). 서울은 인민군에게 점령되었으나 목포는 몇 주일간 연기되었지요. 나는 잠시라도 쉴 수가 없어서 무안군 압해도 섬으로 들어가서 여전히 부흥회를 계속하고 7월 20일에 돌아오니 목포에 있는 목사님들과 신도들이 대개 부산으로 피난을 가고 인민군은 정읍까지 점령을 하였답니다.

나는 본시 어려운 일당한 대로 족한 은혜 주심을 과거에 많이 체험하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또한 크신 은혜 주실 것을 확실히 믿고 금식 기도를 시작하였지요. 때에 마침 부산에서 어느 형제가 배를 가지고 일러 나를 구원하러 와서 속히 떠나자고 애원을 하였으나 불응하였습니다.

왜? 고난을 당하는 가족들과 성도들을 내어버리고 나 혼자 가는 것이 인정상 허락지 않고 하나님께 불충한 사명자 같아서 고집을 부리고 인민군들이 다시 돌아가게 해 주시고 피난 간 목사들 부끄럽게 해주시라고 교만한 기도를 하였답니다.

그러나 7월 24일에 결국 인민군은 목포까지 들어오고야 말았습니다. 때에 목포에서 약 10킬로미터 되는 임성교회 김종선 전도사가 와서 자기 교회로 가자고 애원함으로 조용한 곳에 가서 기도하고 또한 농촌 교우들에게 복음 전도하려는 목적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을 전하는 중에 8월 2일 밤 수요일 기도회를 마치고 나니 보안서원들이 찾아와서 끌려갔습니다. 무슨 모략인고 하니, 며칠 전 유엔비행기 열두 대가 목포에 와서 쌀창고를 폭격하였는데, 어느 예수 믿는 여학생이 비행기 오라고 신호를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학생을 잡아 취조를 하였더니 그 주동자가 이성봉 목사라고 불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목사들은 피난 갔는데 너는 왜 가지 않고 이 구석에 와서 그런 일만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대답하기를 "여보, 나는 예수 믿고 전도하는 사람이지 그런 일은 안 하는 사람이오" 하니 "이놈아! 너희가 예수를 믿었느냐 이승만을 믿었지. 목사놈들 다 때려 죽여라. 이 나라를 좀먹는 목사 놈들이라"고 하면서 달려듭니다(아닌게 아니라 그 때 목사들이 정치운동에 가담하여 신 불신간에 부덕이 많았지요).

나를 잡아끌고 뒷산 밑으로 가서 범의 장다리 같은 젊은 사람 10여 명이 굵은 몽둥이를 가지고 막 후려갈깁니다.

나는 이제야 순교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스데반의 돌무더기를 연상하면서 너희들이 나를 죽일지라도 나는 천국 가니, 아무쪼록 너희들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소리 친 후 "아버지여! 저희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줍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진정으로 그들이 불쌍하여 견디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은 아무리 때려도 조금도 아프지를 않아서 기도만 하니, 이 놈의 새끼가 얼마나 뚱뚱한지 아픈 줄을 모른다고 하면서 골박(이마빼기)을 치니 골박에 떨어지는 몽둥이에 코가 터집니다. 뜨끈뜨끈한 선지피가 쏟아집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물과 피를 쏟아 주셨는데 코피라도 쏟게됨을 감사합니다 하고 그만 기절하여 쓰러지니 치안서장이 소리를 질러, "그 자식을 아주 죽이지 말라. 좀 더 고생을 시켜 죽이는 것이 좋다. 끌어다가 유치장에 집어넣어라"고 하였습니다. 찬물을 머리에 끼얹어 정신을 회복시켜 불과 3평 이내의 감방에 사십여 명을 수용한 곳에 들여보내니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오줌통 놓인 자리가 조금 비어 있어서 그곳에 엎드려 신음을 하니 매맞은 자리에 이제 본격적으로 고통이 옵니다. 그래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옥중에 갇혔을 때 찬송과 기도로 옥문이 열린 것이 생각나서, 에라 찬송이나 한 번 불러보자 하고 허사가를 한 번 멋지게 불렀답니다.

처음에는 아주 듣기가 좋은 모양인지 조용하더니 "홍안 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고, 영웅 호걸 열사들아 뽐내지 말라, 유수같은 세월은 널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묘는 널 기다린다"고 하니 그만 보안서원들이 "저 자식 죽은 줄 알았더니 또 다시 살아났다"고 소리를 벼락같이 질렀습니다.

바울은 찬송과 기도로 옥문을 열었는데 나는 옥문은 열리지 않고 욕만 얻어 먹었답니다.

그러나 삼일 만에는 빨치산(산부 대)들 삼십여 명이 담총을 하고, 각처에서 소위 저들이 반역자로 지목하는 사람들을 한없이 총살하고는, 이곳에 와서 죽일 사람이 없느냐고 하니 보안서장이 말하기를 "목포에서 쌀창고 폭격 주동자를 잡아 왔는데, 그 자식이 목사요, 죽여도 때려도 기도와 찬송만 하고 있으니 저 놈을 어찌하면 좋으냐"고 합니다.

"아, 그거 왜 여지껏 두었는가? 속히 처치해 버리지" 하더니 "목사 새끼 나오너라" 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제는 정말 죽으러 나가는 판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시면 머리털 하나라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믿은 나는 담대히 피투성이 옷을 움켜 잡고 나가면서 공손히 인사를 하였지요.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쫓는다고, 사상으로 그들의 불쌍한 영혼을 바라보았지요. 빨치산 대장이 묻기를 "목사 노릇 몇 해나 해먹었는가?" "예, 한 25년 했습니다." "아이구, 무던히 착취해 먹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뚱뚱보가 되었구나" 한다.

나는 "아니오, 착취해 먹어서 그런게 아니오. 나는 아이때 별명이 깔따귀요. 여러 가지 병투성이였소. 그러나 예수를 믿고 하나님 은혜로 신유의 능력을 얻어 25년간 의약을 모르고 이렇게 건강하게 지금까지 지내온 것입니다." 하니 "예수는 무엇 하러 믿는 것이오?" "예수요? 예수는 자아를 혁명하는 것이오. 당신은 사회 혁명하느라고 수고하지만 예수는 자아를 먼저 혁명하는 것이오. 물줄기가 길게 흘러가려면 물 근원을 파야 하고, 나무가 좋은 나무가 되려면 그 뿌리를 잘 가꾸어야 하는 것이오. 이 나라 우리 민족이 참으로 축복을 받으려면 우나 좌나 정치적으로보다도 먼저 이 민족의 양심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였다. 대장은 "그래 양심을 얼마나 바로잡았소?" 나는 대답하기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마음은 바로 잡힌 것이 확실하오" 하였다.

"그래 예수쟁이들은 밤낮 천당천당 하며 현실을 부인하고 천당만 가겠다고 하니, 천당을 가보았소?" 하기에 "보구 말구요." "어디서 보았소?" 나는 "천당 본점은 못 보았어도 천당지점은 보았지요. 본점 없는 지점이야 어디 있소? 은행 지점을 보면 으레 은행 본점이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경찰서 지서를 보면 으레 경찰서 본서가 있는 것을 알 것 아니오? 나는 아직 육안으로 천당 본점은 못 보았어도 천당 지점은 내 마음에 성취된 것이오. 하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오. 성신을 힘입은 의와 평강과 기쁨이랍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렇게 악형을 하고 죽인데도 내 마음은 지극히 평화스럽소" 하였다.

보안서원들과 빨치산들이 살기가 등등하여 잡아먹을 것 같더니 웃음보를 터뜨리며 "아하, 천당지점! 이거 처음 듣는 말이로구나. 예수쟁이들 말 잘한다더니 참 잘하는구나" 하더니 빨치산 대장이 "목사님, 이 전쟁을 어떻게 봅니까?" 한다.

"이 전쟁요? 과거에 이스라엘과 유대가 범죄할 때에 앗수르와 바벨론의 방망이로 징계하였고, 우리 조선 이조 오백 년이 범죄할 때에 일본 방망이로 삼십 육 년간 얻어 맞았소. 이제 하나님의 축복으로 피 한방울 흘림 없이 그 무서운 일제의 사슬에서 행방을 주었어요. 그러나 이 민족이 감사할 줄을 모르고 더욱 죄악을 범하니 이제는 공산 방망이로 이 민족을 내려치는 것이오. 그러나 인민정치가 이 나라에 와서 또다시 애매한 사람들을 악형하고 예수교회를 핍박하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에 망한다고 하면 좋겠지만 그 소리는 못하였지요. 왜? 조금 더 살펴보려고요.

아니, 오늘 여러분에게 이 말 좀 하고 죽고 싶어서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빨치산 대장이 예수를 믿던 사람이래요. 광주 의과대학생인데 나를 알았던지 꼭 목사님이라고 하면서 동정을 많이 하고 싸고 돌더군요. 다른 자들은 이 자식, 저 자식 망하게 구는데 이 사람은 "목사님, 어디 악형당하셨습니까?" 한다. 나는 "보구료. 온갖 악형만 당한 것" 하니 "어디 봅시다." 하고 벌거벗겨 보니 악형당한 지 삼 일에 온 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성한 곳이 없이 먹장같이 되었습니다. 대장은 깜짝 놀라며 보안서원들을 책망합니다.

"여보, 이거 뭐요? 우리 인민 정치에는 이런 법 없소. 죽일 사람은 즉살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가두어 두고 감화를 시키든지 하는거요. 당신들 까닭에 우리 인민 정치가 오해를 받는 거요. 동무들, 우리가 오해하였소. 이 목사님은 참말로 예수만 아는 목사님이지 다른 것은 모르는 목사님이오. 왜 우리 인민 정치에도 종교는 자유라고 하지 않았소. 예수야 좋은 양반이지요. 예수의 탈을 쓰고 다른 짓들을 하니까 그렇지요. 동무들, 사과합시다" 하더니 보안서원들을 데리고 와서 백 배로 사과를 합니다.

유가족들의 흥분으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사변이 나는 즉시로 이전이나 그때의 사상이 좀 의심나는 사람들을 예비 검속하였다가 경찰과 국군들이 후퇴하면서 전부 묶어서 목에 돌을 달아 배에 싣고가 물에 장사하여 버렸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참으로 애매하게 죽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지요. 세월이 뒤집혀지니 유가족들의 복수심이란 무차별의 학살로, 목사와 신자들이 많이 당하게 되었답니다. 그날 밤에 내가 아는 장로교의 목사도, 연동교회(목포) 최명길 목사와 형무소의 김재선 목사와 강진의 배목사 등 여러분이 학살되었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순교의 반열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던지 보안서원들이 사과를 하고 나하고 김치한 전도사를 석방시키면서 나가서 전도를 잘하라고 합니다. 사실 그날 밤에 19명을 총살하고 갔답니다. 죽이러 왔다고 살리고 가더군요.

있는 것 같아도 없는 것은 사람이요, 없는 것 같으나 실재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있는 것 같아도 없는 인간의 헛 종소리에 속아서 없는 것 같으나 실재자이신 하나님의 실탄이 날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는 가엾은 인간들이 이 땅 위에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지요.

그래서 구사일생으로 나와서 바로 보안서 뒷집 최마리아씨댁 행랑방에서 두어 달 동안 많은 신세를 졌답니다. 목회하던 목사 같으면 흩어진 신자들이라도 자기 교역자의 최저한도 생활을 보장할 것인데 돌아다니던 목사가 집회를 못하게 되니 끈 떨어진 뒤웅박 모양으로 누구 하나 바랄 곳 없어 우선 생활의 위협을 당하게 되었지요.

그래도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어 떡을 물어오게 하신 하나님께서 시간시간 식량이 떨어지고 돈이 떨어질 때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그때그때 생활보장을 받게 하실 때,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고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주님의 권고를 체념한 것입니다.

또한 제일 안타까운 것은 주일이면 예배당을 그들에게 빼앗겼으므로 신자들이 나의 숙소인 보안서 뒷집으로 무서운 줄도 모르고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집도 좁고 또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모이면 보안서원들의 눈총이 맹렬한 고로 3, 4차의 분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비밀로 보는 예배, 자유 없는 중에서도 신도들의 열성은 더욱 간절하여 그대 드리는 예배와 기도는 참으로 주님이 기뻐 받으실 향기의 제물이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시국이 속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 금식 기도가 절식 기도로 변했습니다.

몸이 건강하여 인민 정치에 협조해 달라고 할 것이고 뚱뚱보라 하여 더 많이 맞았으니 좀 마른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주야로 병상에 누워서 병자 행세를 하여 위문 오는 사람에게 전도하고 목마르고 굶주린 양떼들을 권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물 마실 때에는 성부 성자 성신을 묵호하면서 세 모금을 마시고 하루에 한 공기 밥으로 연명을 하니, 차라리 단식할 때보다 조금 먹기 시작하다 수저를 놓으니 뱃속에서 조금만 더 들이라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또한 내 동포들이 얼마나 고생하는 것과 특별히 동역자들의 사정을 생각할 때 잠을 잘 수가 없고 먹을 수 없어 자연 금식과 절식이 되었습니다.

우리 딸이 "아버지, 이제는 완전히 공산당이 승리하고 대한 민국은 망하였어요?" 하며 한숨을 쉽니다. 나는 "얘, 걱정 말아라. 공산당은 승리하는 것 같으나 거기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없느니라. 스탈린이, 모택동이, 김일성이가 기도할 줄 모른단다. 공산당에서 기도하는 놈 보고 죽으려고 해도 한 놈도 없단다. 우리 대한 민국에는 못된 것도 많지. 그래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느니라.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아무 것도 염려 말고 기도하라"고 부탁하고 "조금만 더 기다려라" 하는 노래를 지었지요.

1. 만국에 사모하는 자 반드시 강림하시어

천지를 진동하시고 네 소원 성취하리라

2. 기도의 응답 없다고 그렇게 낙심하지 말아라

만사에 때가 있나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3. 세상의 물결 흉흉코 죄악의 파도 일어도

주님을 앙망하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라

4. 흑암의 권세 팽창코 악마의 시험 많으나

하나님 은혜 힘입어 조금만 더 기다려라

5. 심신이 피곤하여서 실패를 거듭하여도

성신의 권능 받아서 조금만 더 기다려라

(후렴) 신실한 약속 붙잡고

조금만 더 기다려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

점점 더 시국이 절박해 가니 아무래도 위험의 예감으로 이곳을 피할 생각이 나서 밤중에 리어카를 타고 목포로 들어갔지요.

오랫동안 비워 두었던 집, 숨기 좋은 골방에 들어가 결사적으로 기도하였더니 80일 한정한 것이 78일 만에 해방이 되니, 그때 즐거움은 당한 자 외에는 알 수가 없지요.

그러나 그들이 후퇴하면서 많은 사람을 납치하고 살상하는 비참한 살풍경인데, 만일 피난 갔던 곳에 그냥 있었더라면 영락없이 납치되거나 살해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밤에 피하여 목포로 온 것은 바울 선생이 다메섹에서 광주리 타고 성을 넘어서 피난간 것과 방불하지요.

하여간 많은 동지들이 숙청을 당하고, 순교하고, 납치되어 갔는데 나를 아직 남겨 두신 것은 아직 순교할 자격은 없고 또 숙청하기는 아깝고 그래서 후방으로 훈련시키시는 것인 줄 알고, 남은 여생을 좀더 신령하고 좀더 완전한 사랑으로 좀더 충성으로 주신 사명에 불타서 부끄러움 없이 죽기를 원합니다.

산 그리스도, 산 예수를 내 중심에 모시고 살든지 죽든지 내 중심에 모시고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확장되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일로 매진하는 중입니다.

임마누엘 은총이 여러분 위에 항상 같이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