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서로 사랑하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7-11)

사랑에는 대개 네 가지 종류가 있다 한다.

첫째는 "스톨게" - 동족 인연으로 인한 잠재적 사랑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고 어머니가 딸을 사랑하는 혈통적 사랑이다. 그것은 다른 동물들도 다 할 수 있는 본능적인 사랑이다.

둘째는 "에로스" - 정욕적 사랑이다. 남녀간에 좋아하는 육체적 사랑이다. 이것도 어느 동물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동물, 곤충들로 모두 암컷, 수컷이 서로 좋아하는 것은 자연적 본능이다.

셋째는 "필리아" - 우정적 사랑이다. 동성간에 서로 성질이 맞고 사상이 통합되어 교제함에서 오는 우정의 사랑이다. 겨울날 눈 위에서 개들도 물고 치고 뒹굴고 하면서 재미있게 놀고 좋아한다. 그러나 이상의 것은 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동물적 사랑이다.

"아가페" - 천래(天來)의 사랑이다. 이는 원수라도 축복하고 핍박자라도 사랑하는, 인간을 초월한 천래의 사랑이다. 이것은 참사랑이고 참으로 고상한 사랑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사랑을 체험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이다. 스데반은 그 사랑을 실천하였고 우리 한국의 손양원 목사도 그 사랑을 크게 실천하였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였는가

1. 요한일서 3장 1절을 보시라

볼지어다 이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느뇨.

어떤 임금님이 마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다가 새까만 거지 아이가 다리 밑에서 발가벗고 찬밥덩이를 먹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임금님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친히 다리 아래로 내려가서 그 거지 아이를 부둥켜안고 키스를 하고 데리고 올라와서 마차에 태워 궁궐로 와서 목욕을 시키고 새옷을 갈아 입히고 자기 아들을 삼았다면 그 거지 아이에게 있어서 이것은 어떠한 사랑이겠는가?

그 거지 아이보다 더욱 불쌍한 마귀의 포로가 되어 지옥의 영원한 멸망을 받을 자식을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친히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내려오시어 구원하사 더러운 죄를 다 씻어 주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그 사랑을 측량할 수 없다는 말이다.

2. 에베소서 3장 18절을 보시라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은 것을 깨달아 하나님의 각양 충만하신 것을 너희에게 충만케 하옵소서.

첫째, "넓은 사랑" - 동양 사람이나 서양사람이나 인종의 구별이 없이 빈부 귀천 남녀 노유를 차별없이 누구든지 사랑하고 포용하는 너그러운 사랑이다.

얕은 바다에는 이 섬 저 섬 등이 여기 저기 삐죽삐죽 나와 있으나 깊은 바다에 들어가면 모두 물 속에 잠기고 만경창파(萬頃蒼波) 푸른 물이 충만하여 한없이 넓은 것처럼 주님의 사랑은 넓고도 깊어서 나 같은 죄인 괴수도 포옹해 주시니 그 사랑 받은 내 가슴도 넓어져 나도 누구든지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다.

둘째, "길고 긴 사랑" - 사람의 사랑은 짧고 짧아서 오래 못 간다. 그래서 자주 변하여 삵괭이 눈 변하듯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다.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하시더라(요 13:1).

셋째, "높은 사랑" - 주의 보좌에 앉는 고상한 사람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나의 보좌에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김을 얻고 아버지의 보좌에 같이 앉은 것같이 하시는 높이 끌어올리는 사랑이시다(계 3:21).

넷째, "깊은 사랑" - 하나님의 독생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말구유에 탄생하시고, 제자의 발 아래까지 내려가 발을 씻어 주시고, 십자가에 죽어서 무덤에까지 내려가시고 무덤에까지 내려가시고 깊이 음부에까지 가셔서 반포하시고 그 가운데 있는 잃어버린 자녀들을 찾아내셨으니 이것이 깊은 사랑이 아닌가?

다섯째, "절대 사랑" -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셨다. 아들이 둘이나 되면 하나씩 가져서 상대적 사랑이 되겠지만 독생자를 주셨으니 절대가 되고 말았다. 그 독생자가 오시어서 이 세상에서 얼마나 고생하셨는가? 인정도 없고 사랑도 없는 악한 부모일지라도 자기 자식이 어디 가면 평안히 잘 있는데도 늘 자식에 대한 걱정이 가시지 않을 것이다.

아들을 군대에 내보낸 부모는 항상 마음이 아들 아들하고, 시집 간 딸이 시집가서 잘 살아도 부모의 마음은 늘 딸 딸 할 것이다.

우리 주님 세상에 오사 탄생이후 최후까지 십자가를 지시고 녹아지고 쓰러져 피 한 방울 남기시지 않고 쏟아 주시면서 자기를 죽인 사람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하시며 운명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 과연 절대 사랑이시다. 참으로 희생적인 사랑이시다.

여섯째, "무궁한 사랑" - 예레미야 31장 3절을 보시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노라.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오래 참고 기다리는 사랑이시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행한 여자에게 장가들라고 하심은, 음행하는 여자와 같은 이스라엘이 몇 번이나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척하고, 완악하고, 강퍅한 죄악을 범할 때 그것을 허물치 않으시고 무궁무진한 사랑으로 그 이스라엘을 사랑하심을 호세아를 통하여 보여주신 것이다.

일곱째, "잊어버리지 않는 사랑" - 이사야 49장 15절을 보시라.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나는 만주에서 목단강 집회할 때에 찍은 내 사진을 여지껏 보관하여 성경갈피에 끼워 두고 나를 위해 20년간이나 기도해 주신 아주머니를 어떤 교회에서 만났다. 어떻게 감사한지...... 내가 오늘날 이렇게 힘을 얻어 돌아다니는 것은 저런 신도들이 많은 때문이리라 하고 감사하였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가 나를 위하여 그렇게 기도하여도 그보다 더욱 나를 생각하시는 분은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이시다. 나의 어머니는 나를 위해 하루에 네 번씩 기도하셨다. 하지만 부모보다 더욱 잊지 않고 생각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젖먹이는 어미가 그 자식을 잊어버릴지언정 나는 너를 잊지 않으리라 하셨다.

주님은 어느 때나 어디서나 항상 나를 잊지 않고 보호하신다.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기억하시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불가운데서도 생각하시고 모세를 호렙산 가시덤불에서 기억하셨다. 요셉을 애굽에서 생각하시고 모르드개를 하만의 손에서 잊지 않고 도우셨다.

하나님은 사랑일세

죄악에 타락한

우리까지 사랑하니

참사랑 아닌가?

2. 우리가 서로 사랑할 이유

1.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서로 사랑함이 마땅하도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아니면 남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을수록 더욱 나도 많이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이유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요일 4:8)

2. 주 예수님도 사랑이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 하라. 주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가룟 유다의 나쁜 행동을 알고도 사랑하셨다.

모르고 사랑하기는 쉬워도 그 거짓되고 간사한 것을 알고도 사랑한다는 것은 극히 힘든 것이다. 사람은 처음에 알지 못하고 사귀어 사랑하다가 지내 놓고 보면 그의 잘못을 알게 되어 내버리게 되는 수가 많은데, 우리 주님의 가룟 유다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인간을 초월한 사랑이시다.

우리 원수까지라도, 그가 나쁜 줄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자. 주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원수를 위하여 죽는 순간까지도 아버지여 저들이 알지 못하여 그러하오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축복하셨다. 나는 저희를 사랑하나 저는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를 힘 쓸 뿐이로다(시편 109:4)

3. 사랑은 성신받은 증거이다

사랑은 성신의 열매 중 제일 첫 열매이다(갈 5:22).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참된 사랑이다. 어떤 사람은 성신 받았다고 떨고 무엇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방언하고 병을 고치고 묵시를 보고 예언하고 몸에 이상한 작용으로 증거를 찾는다.

물론 성신을 받으면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이상을 본다고 하였으니, 참 성신으로 기사와 이적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전적으로 부인하면 그것은 인본주의자들이요 신신학 고등비평자들이다.

성경적으로 사는 신자와 성령으로 초자연의 영광을 나타내는 신구약에 있는 성도들과 역사이래 참된 신령한 신도들은 그것을 체념하고 전하였다.

우리는 가끔 그것이 성신의 역사인지 악마의 역사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마귀도 천사모양으로 사람을 미혹하게 하고 하늘에서 불까지 떨어뜨리는 이적으로 모든 사람을 미혹하게 한다 하였다(살후 2:9-10 ; 계 13:13)

그런고로 사람에게 미혹을 받지 말고 성신인지 사단인지 시험하여야 한다. 그것은 맺은 열매로 분간하는 것이다. 참 성신은 그의 내부 변화를 시키는 것이다. 밝은 빛 아래에서 각각 자기의 더러운 진상을 잘 깨달아 회개하여 주님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는 경험을 얻으면 참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4.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 것이다. 우리 선조의 범죄로 우리가 마귀의 화상이 되었으나 다시 중생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마 5:45).

5. 사랑하는 자는 주님의 제자가 된다

주님께 모든 진리를 배웠어도 사랑을 배우지 못한 자는 그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고 주님께 배운 모든 교훈을 다 실천하였어도 사랑의 실천자가 되지 못하였으면 참 제자가 되지 못한다.

사랑함으로 하나님과 혼연일체가 되는 비밀을 알게 되고 사랑함으로 죽음에서 나와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요일 3:14).

사랑하는 자는 두려움이 없고 이것이 기독교인의 특성이다(요일 4:18). 사랑을 행하는 자는 빛 가운데 행하는고로 항상 담대하고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다(요일 2:9-10).

3. 사랑의 성질

1. "사랑은 오래 참는다." 인내는 신앙의 보호자요 화평의 유지자이며 겸손의 선생이요 사랑의 육성자라고 어떤 선생은 말씀하였다. 과연 인내로써 사랑은 무럭무럭 잘 자라는 것이다.

2. "사랑은 온유하다." 고기같이 부드럽고 솜과 같이 연하여 모든 사람에게 덕을 끼친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할 것이요.

3. "사랑은 투기하지 않는다." 질투는 참 사랑의 반역자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파하는 자는 사랑을 모르는 까닭이다.

4. "사랑은 자랑하지도 않는다." 밤낮 제자랑만 하는 자는 남에게 호감을 주지 못한다. 어떤 때는 주님의 은혜를 간증하는 것이 제 자랑처럼 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랑으로 남에게 유익을 주고 깨달음을 준다면 관계치 않지만 제 자랑으로 남에게 악감을 주면 사랑의 결함이 되는 것이다.

5. "사랑은 교만하지 않는다." 교만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며 또한 사람들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고 자신에게 해독을 가져온다. 사랑은 남의 장점을 찾아 존경하고 허물을 덮어 준다.

6.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 예의 없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정이 깊은 부부는 싸움을 곧잘 한다. 무례한 행동으로 상대방의 분노를 일으키는 까닭이다. 남녀유별(男女有別)과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잘 지켜야 한다.

7.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치 않는다." 사랑은 남을 위하여 큰 것을 구하고 자기를 위하여 작은 것을 구하는 것이다. 자기를 위하여 최소한도로 살고 남을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는 최대한도로 살려는 것이다.

8. "사랑은 성을 내지 않는다." 불끈불끈 성을 잘 내는 자는 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성을 잘 내면 혈기를 부리고 혈기를 부리면 분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9. "사랑은 남의 악한 것을 기억치 않는다." 복수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너그럽게 용서하는 사죄의 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주님 앞에 사죄함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는 내가 남의 죄를 얼마나 용서하느냐 묵살하여 주느냐가 표적이 되는 것이다.

10. "불의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불의와 죄를 사랑하면 안된다. 어떤 마음 좋은 여자는 시애비를 아홉을 두었다고 한다. 다 좋게 하려는 때문인 모양이다. 그것은 참사랑이 아니다. 죄를 미워하는 것이 참사랑이다.

11."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다." 진리는 예수다. 하늘에 누가 있으며 땅에 누가 있으리요. 나의 좋은 것은 주님밖에 없도다. 예수님 내 주께서 내 중심에 오셔서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것이다.

12. "사랑은 범사에 믿어 주며 범사에 바라면서 범사에 견디도다" 사랑은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참는 것이다. 소망은 하나님이 주시고 실망은 마귀가 준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면서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 보자.

결론적으로 사랑은 자기 건설이요 미움은 자기 파괴이다.

우리는 사랑을 받지 못하여 불행한 자가 아니요 남을 사랑하지 못하여 불행한 자임을 아는 자가 행복자이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없다. 사랑의 근원이시요 사랑의 본체시요 사랑의 자본주가 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서 사랑의 생수가 내 가슴에 강같이 흐르고 주님의 가슴에 붙는 사랑의 불꽃이 내 가슴에 타서 이 불이 가정을 태우고 이 민족을 대우고 38°이북에까지, 중공에까지, 소련 위성국가에까지 타오르는 불의 방화범자, 사랑의 원자탄이 되어지기를 바라나이다.

이 풍진 세상 만났으니

우리의 할 일 무엇인가

믿음과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참된 사랑이라

형제여 서로 사랑하자

우리는 서로 사랑하자

사랑의 주님 계명지켜

서로 힘써서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