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하나님의 사람의 삼대 특징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욘 1:12)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돌렸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욘 2:3)

요나는 하나님의 택한 종 선지자이다. 요나란 뜻은 "비둘기"이며 그의 아버지 이름은 "아밋대"(진실)이고 가드헤벨 사람이다(왕하 14:25).

진실한 아밋대의 아들 비둘기 같은 요나! 이름은 좋으나 유명무실, 빛 좋은 개살구이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구원하시고자 하심도 간절하였지만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도 종종 자기 중심주의로 명실 불합하는 당신의 택한 종 요나를 구원하시고자 하심이 더욱 간절하여 요나서의 사실이 나타난 것이다.

오늘날도 너에게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도다 함과 같이 신학박사라는 이름은 있으나, 부흥사라는 이름은 있으나, 목사라는, 장로라는, 집사라는, 신자라는 이름들을 가지고 있으나 뮤명무실의 교역자와 신자들이 태반이다.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등지고 다시스로 갈 때에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 요나를 연단시킴과 같이, 오늘날 이 강산 이 세계에 일어나는 풍랑은 요나와 같은 나 한 사람을 구원하여 바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아는 사람은 복있는 자이다.

요나의 불순종으로 타고 가던 배가 풍랑에 부딪힐 때에 온 배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큰 고통을 주게 되었다. 아담 한 사람의 죄로 이 세상은 어찌 되었는가? 아무래도 우리 배 안에 죄 있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라고 하여 제비를 봅았더니 요나가 뽑혔다.

물은 제 곬으로 가고 죄는 지은 대로 간다더니 사실이다. "요나야! 무슨 죄를 지었느냐. 어떻게 하여야 이 바다가 안정하겠느냐?" 고 할 때에 요나는 "나를 취하여 바다에 던지라. 너희가 이 풍랑을 만난 것은 나의 연고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인 요나의 특징이 본서에 세 가지가 있다.

1. 내 까닭이라는 신앙

나를 취하여 바다에 던지라. 너희가 풍랑을 만난 것은 나의 까닭이다. 하나님이 요나를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훈련시키심은 이 한마디 "내 까닭"이라고 한 데 있는 것이다. 곧 예수의 정신이며 책임감의 말이다.

첫 아담은 제 죄도 남에게 전가시켰다. "너 왜 선악실과를 먹었느냐?" 하실 때에 "당신이 지어 주신 아내가 먹으라고 하여서 먹었다"고 하였다. 황송하게도 그 죄를 하나님께 전가시키고 아내에게 전가시켰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다 내 까닭이라고 하사 순백의 주님이 순흙이 되사 동양 사람의 죄, 서양 사람의 죄, 옛날 사람의 죄, 현대 사람의 죄, 만민의 죄를 다 걸머지고 변명 한마디 안 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소인일수록 책임을 회피하나 위대한 인물은 책임을 강하게 지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밤낮 남의 까닭이라고 한다. 이것은 영감 까닭, 이것은 마누라 까닭, 시어미 까닭, 며느리 까닭, 자식 까닭, 부모 까닭, 교회서는 목사 까닭, 장로 까닭, 민주당 까닭, 자유당 까닭, 밤낮 남의 까닭, 남의 까닭하며 원망과 불평으로 분쟁과 파쟁을 일삼고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다.

어떤 목사는 설교하는 데에 부인 신자가 졸고 앉았는 것을 보고 발로 강단을 구르며 "여보, 자매! 웬 잠을 그리 자오? 그것 참 종자 조럼(졸자 노릇) 하겠구만. 이 다음에 교회 올 때에는 고춧가루를 가지고 와서 졸음 올 때에 눈에다 치시오" 하니 그 부인은 한참 졸다가 깨어 목사에게 눈을 흘기며 "흥, 내 눈에다 고춧가루를 치라고 하지 말고 목사님의 설교에다 고춧가루를 치시오. 설교가 싱거워서 좁니다."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는 것이다. 그 교회는 볼장 다 봤지요. 목사는 신자가 존다고 야단이고 신자는 목사가 설교를 잘못한다고 야단이니 이 일을 어찌할꼬!

어느 교회의 늙은 집사님은 목사님이 설교를 잘못하고 강단에서 내려오니 목사님의 손을 잡고 훌쩍훌쩍 울었단다. 목사님이 "집사님 왜 우십니까?" 하고 물으니 "목사님이 오늘 설교를 잘 못하신 것은 내 까닭입니다. 내가 목사님의 주일 설교를 위해서 토요일 밤에는 항상 기도를 하였는데 지난 밤에는 손님이 와서 기도를 못했더니 목사님 설교 죽 쑤었습니다." 하고 울더란다.

그 교회는 참 아름답고 사랑이 끓는 교회이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이 사회에서 피차 내 까닭이란 책임을 지고 서로 이해 깊은 사랑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화평의 꽃이 만발하고 희락의 열매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자신의 축복이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 풍랑을 만난 것은 내 까닭이다.

2. 그 때에 기도한 요나

요나서 2장 1절을 보시가. 그 때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어느 때인가? 하나님 앞에 버림받고 사람에게 버림받아 물 속에 들어가 고기 뱃속에서 기도하였다. 무어, 이런 때 기도하여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그러나 요나는 이런 때에 기도하였다.

어디서? 물고기 뱃속에서다. 기도의 장소는 예배당이나 성당만이 아니요 어디든지 우리의 기도 장소인 것이다. 나다나엘은 무화과 나무 아래서 기도하였고 바울은 옥중에서, 베드로는 지붕에서, 자주 장사는 빌립보 강변에서, 우리 주님은 산에서, 광야에서 기도하셨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하나님이다.

아무리 꼬치 아름다워도 향기 없으면 봉접(蜂蝶)이 오지 않는다. 모양은 없어도 향기가 충만한 사람에게는 봉접 같으신 주님이 찾아가 축복하시는 것이다.

6·25 때 공산당들에게 검속되어 많은 악형을 당하고 나와서 식구들과 같이 남의 행랑방에서 많은 고생을 할 때에 우리 어린 딸이 "아버지! 이제는 인민공화국이 되었습니까? 대한 민국은 망했습니까? 이거야 어떻게 살겠어요?" 라고 말했다.

"오! 내 딸아 걱정 말아라. 공산당은 지금 승리하는 것 같지만 거기는 기도하는 자가 없단다. 스탈린은 기도할 줄 모른다. 모택동도 김일성도 기도할 줄 모른단다. 공산당은 기도하는 놈 보구 죽을래두 한놈도 없단다. 그래두 우리 대한민국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많단다. 우리 대통령도 기도하시구, 군인 가운데도 못된 사람도 많지만 기도하는 사람이 있단다."라고 했다.

기도의 응답 없다고 그렇게 낙심 말아라, 만사에 때가 있나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 하고 노래를 지어 불렀다. 과연 미구(未久)에 하나님은 남한만이라도 바로잡아 주시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자. 깨어 기도하라.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무기이다. 정신 차리고 기도하자. 쉬지 말고 기도하자.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고 주님은 부탁하셨다.

이 세상 험하고 내 비록 약하나 늘 기도 힘쓰면 큰 권능 얻겠네.

3. 절대적 입장에 선 요나

요나의 특징은 2장 3절을 보라. "주께서 나를 깊은 바다에 던지셨다."고 하였다. 상대적 입장에 서지 않고 절대적 입장에 선 것이다. 범사가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고후 5:18). 쓴 것이나 단 것이나 괴로움이나 즐거움이나 성공이나 실패나 행복이나 불행이나 엎드러지는 것이나 일어나는 것이나 다 하나님께로 오는 것을 믿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특징이 있는 것이다.

욥은 있던 재산을 다 박탈당하고 자식 십 남매가 단번에 참몰당하고 몸에 창질이 나서도 하나님이 주셨다가 하나님이 가져가셨으니 가히 찬미하리라고 "나의 평생 가는 길을 주님께서 아시니 날르 연단하신 후에 순금같이 되리라 하나님이 주시었고 하나님이 빼앗네 적신으로 나왔으니 적신으로 가리라" 하면서 노래만 불렀다.(욥 1:21)

또한 다윗은 자기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도망할 때에 시므이의 저주와 조롱을 받았다. 그것을 보고 아비새 장군이 칼을 들어 시므이의 목을 자르려 하므로 다윗은 "아비새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것 시므이가 나를 저주하는 줄 아느냐 하나님께서 시므이더러 나를 저주하라고 하시었단다"(삼하 16:10)하고 그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실 때에 가룟 유다를 앞세우고 악당들이 달려들자 베드로가 칼을 뽑아 말고의 목을 치니 목은 갈라지지 않고 귀만 떨어졌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여 가라사대 "베드로야 칼을 집에 꽂으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 아버지가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 하시고 떨어진 귀를 붙여 주셨다(요 18:11)

요셉을 보라. 형님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 가로 또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들어 갔으나 범사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믿은 요셉은 조금도 형님을 미워하거나 주인의 마누라를 원망치 않고 감옥에서 충성되이 일하고 떡도감, 술도감, 정치가들과 교제하여 일약 총리대신이 되었으나 교만하지 않았다. 그 땅에 칠년 흉년이 들어 양식을 사러 온 형님들은 20년만에 만나는 동생에게서 지은 죄가 탄로되어 큰 두려움에 잠겼으나 요셉은 "형님들이 나를 팔아 이 곳에 이르게 함으로 근심하고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우리 가족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앞서 보내셨나이다......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5, 8)고 위로하여 주었다. 얼마나 위대한가?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것이다.

그러나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를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도 항상 사람을 원망하고 주위 환경을 비판하고 불평과 불만, 낙망과 고통으로 하나님이 없는 자 같은 무신론자의 생활을 보내는 가엾은 인간들이 부지기수인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달콤한 은혜도 있고 쌉쌀한 은혜도 있는 것이다. 단 것만 너무 먹으면 이가 썩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단 것과 쓴 것을 화제를 해서 대접하는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자의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기뻐할 것이다.

결말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든지 이 특징을 가져야 한다. "내 까닭"이란 책임감으로 항상 반성하여 자기를 교정하고, 어디서나 어느 때나 무슨 일을 당하든지 기도의 호흡기가 건전하고, 범사가 하나님께로 오는 신앙으로 상대적 입장에 서지 말고 절대적 입장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 살든지 죽든지 이 몸에서 주를 영화롭게 하고,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효자 효녀의 성품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하시기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