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요나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징계

 

1. 요나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욘 1:1-2)

1절 "여호와의 말씀"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였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계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정적이다. 이 말씀을 들어 살고 이 말씀을 아니 들어 죽는다. 이 말씀을 들어 복을 받고 아니 들어 화를 받는다(신 28:1).

신명기 28장을 보라. 네가 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너에게 명하는 말씀을 지켜 행하면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리라. 네가 여호와 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네 몸의 소생 네 토지 소산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고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고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리라 하셨고(1-5절), 만일 이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면 반대로 15절 이하의 모든 저주가 이르리라.

또한 이 말씀은 시금석이다. 모래 위의 집인지 반석 위의 집인지, 삯꾼 목자인지 선한 목자인지, 알곡인지 쭉정이인지, 풀과 짚으로 지은 집인지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집인지 판결나는 것이다.

요나는 훌륭한 하나님의 선지자인 줄 알았더니 여호와 말씀이 임할 때에 낙제를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 많은 니느웨를 구원하시는 것보다도 당신의 종 요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셨기 때문에 요나서의 사실이 일어났던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복종을 하려면 자기에게서 온전히 죽고 단순히 하나님께 의뢰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오늘날 이 강산을 다 불태우고 피바다를 이루고 수만의 청년이 쓰러지고 이 세계의 풍랑이 끊일 줄 모르는 것은 요나와 같은 나 한 사람을 바로 잡으시려는 주님의 섭리인 줄로 아는 자가 복 있는 자이다.

"아밋대의 아들 요나"는 요나를 가리켜서 한 비유라고 하며 또한 요나를 사실 인물이 아니라는 사람이 있지만 분명히 열왕기하 24장 25절에 가드헤벨 사람 아밋대의 아들 요나라고 성경이 증명하였으며, 누가복음 11장 29-30절의 이 시대는 악하니 요나의 이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증명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서도 의심 없는 역사적 인물인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아밋대란 뜻은 "진실", 요나는 "비둘기"란 뜻이다. 진실한 아밋대의 아들 비둘기 같은 요나! 이름은 좋으나 유명 무실이며 빛 좋은 개살구와 같다. 그는 이같이 유순하고 정결한 이름을 가졌으나 그 속은 편벽하고 불순종과 고집과 분노와 질투 같은 것으로 충만하다.

오늘날도 유명 무실의 교역자와 신자들, 겉에는 양의 옷을 입고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은 위선자가 많은 것이다(마 7:15).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와 같은 유명 무실의 한국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은 얼마나 애타하시겠는가! 네게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었도다(계 3:1).

2절 "너는 일어나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하신다. 아브라함에게 너는 일어나 이 땅을 두루 밟아라. 이 땅을 네게 주리라(창 13:17). 여호수아야, 일어나라(수 1:2). 다니엘에게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단 10:11) 하셨으며 또 빌립에게도(행 8:26), 사울에게도(행 9:6), 베드로에게도(행 12:7), 하여간 신구약의 모든 성도에게 항상 일어나라고 권면하셨다. 잠자는 자여,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비취시리라(엡 5:14)하셨다. 나의 짝이여, 일어나 나오라(아 2:10)는, 신랑 되시는 예수가 당신의 신부 되는 교회 성도들을 부르시는 말씀이 아닌가?

"큰 성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

니느웨는 기원 전 2233년에 당시의 능력자 니므롯이 세운 성이요(창 10:11) 앗수르의 수도이니, 앗수르는 히브리 민족의 적국이요, 유대를 괴롭히는 원수의 나라이다. 그러나 편협한 유대인의 사상을 떠나서 한 사람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원수에게 가서 전도를 하라고 하신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라. 하나님이 햇빛을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나리우시느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4-46).

그러나 인간은 너무나 모자라서 너무 편협하여 주님의 성지를 반역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소명은 진실로 내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한다(요 12:24).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

얼마나 죄악의 도성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현 세계에도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고 하나님은 그 불의를 기억하신다고 하였다(계 18:5). 옳다. 우리 인간의 선악 시비 대소사가 다 하나님 앞에 상달됨을 기억하시라.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시 90:8), 그래서 그것으로 현세와 내세에서 다 심판을 받느니라(딤전 5:24).

죄가 즉시 드러나는 것도 있고 뒤를 따라오는 죄도 있고, 선행도 현세에 드러나서 보상받는 것도 있고 이후에 한번은 다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밝히 드러나리라.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함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 되었다고 하였다(행 10:4). 사람이야 알아주든지 몰라주든지 무슨 상관이 있으랴.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신다(창 17:1).

2. 요나의 불순종(욘 1:3)

3절 "그러나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

불순종하였다. 요나의 정체는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자기도 몰랐다. 내가 나를 잘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보아야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기 전에는 다 성인이요 의인이더니, 주의 말씀에 접촉될 때에 그 죄를 핑계할 수 없게 된 것이다(요 15:22). 사람이 순종하는 일은 축복의 근원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이다.

제사드리는 것보다 순종하는 것이 낫고 수양의 기름보다 말씀듣는 것이 나으리라(삼상 15:22)고 하셨다. 다시스는 유대 서쪽 지중해 연안이며 니느웨는 유대 동방이니 하나님의 명령과는 정반대 방면이라. 이는 타락한 인류의 근성이다(롬 8:7). 모든 사람은 천국을 등지고 지옥으로 향하여 간다. 다시스로 도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포심 때문이다. 무지하고 포악한 곳에 가서 전도하다가 핍박과 수욕당할 것이 무서워서 그리했을 것이다.

비겁한 자는 언제나 성지(聖志)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아니할 말을 하게 되고, 갈 곳을 못 가고 못 갈 데를 가게 되고 할 일을 못하고 못할 일을 하게 된다. 왜정 시대와 인공시대에 실패한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죄송하기 짝이 없고 부끄럽기 끝이 없다. 그래서 극히 강하고 담대하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얼마나 주께서 신신 부탁하셨는가! 마태복음 10장 28-31절을 보라. 두려워하지 말라.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 말라.

우리의 만단 사정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니 두려워 말라. 왜정 시대 북만주에서 토벌대들이 어느 농촌 교회를 둘러싸고 예배드리는 30여 명의 신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내보내면서 예수님 사진에 침을 뱉으라고 하였다.

총부리를 겨누고 위협하는 바람에 장로도 나아가면서 침을 퉤하고 뱉았다. 영수도, 집사도, 늙은이, 젊은이 다 차례차례 성화에 침을 뱉았다. 마지막 한 청년이 나아가면서 예수님 사진에 침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을 수건으로 닦고 사진을 부둥켜안고 한참 울더니 가슴을 헤치면서 "나를 죽여주시오. 나는 이런 일은 못 하겠소. 물론 이 사진이 참사진은 아닐 것이오. 그러나 예수 이름을 걸고 당신들이 내 신앙을 시험하는 데는 못하겠소"하고 담대히 외쳤다.

그때에 토벌대장은 그 청년의 손을 잡고 "야, 네가 진짜 예수쟁이로구나"하고 골라 세우고 다른 사람들을 끌고 가서 조사해 보고 별일 없으니 모두 석방하면서 "에이, 자식들. 예수 믿으려거든 좀 똑똑히 믿어라. 누가 예수 믿는다면서 예수 사진에 침을 뱉는다더냐. 나는 예수를 아니 믿어도 그러지는 않겠다"고 하니 침을 뱉고 살겠다던 모든 사람들은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을 보고 웃지 말자. 사람은 강해 보여도 약하다. 베드로는 죽어도 같이 죽고 옥에도 같이 갇힌다고 호언장담하더니 불과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지 않았던가?

갈멜산상에서 불과 비를 내린 권능의 사자 엘리야도 그 후에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무서워서 호렙산 동굴에서 낙망과 실망의 태도를 보인 것이다.

둘째, 유대인의 편견 때문이다. 서론에 기록한 바와 같이, 유대인은 언제나 하나님이 유대인의 하나님이요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과는 음식을 같이 먹지 않고 좌석도 같이 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들에게 전도를 할 수 있겠는가라는 이유이다.

베드로도 피장이 시몬의 집에서 기도할 때에, 하늘에서 한 그릇이 내려오는데 그 형상이 큰 보자기 같고 사각을 매어 땅에 드리우니 그 안에 각종 네 발 짐승과 버러지와 공중의 새들이 담겨 있는데 소리가 있어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한다. 베드로는 여러 번 거역을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이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이었다.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구별하여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약 율법의 선입주견(先入主見)으로 신약의 복음을 거부하였다. 이때 마침 로마 사람 고넬료 백부장의 청원을 듣고 인종 무차별의 복음을 깨달아 유대인의 선입주견을 버리고 따라가서 그 가정을 구원하심을 체험한 것이다.

셋째, 적개심 때문이다. 이것은 복수심이다. 전자에 말씀한 것같이 앗수르는 유대 원수라 편협한 사상으로 원수의 멸망을 은근히 바랐는데, 만일 자기의 전도를 받아 회개하여 니느웨가 축복을 받게 됨은 양심으로 허락할 수 없다는 자이다.

원수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율법의 선지, 이것은 실로 유치한 사상이다. 오늘날도 죄를 미워하고 불의를 싫어하는 정의적 입장에서 종종 독사 같은 마음을 가지고, 요놈 잘되나 보자 하고 원수의 멸망을 바라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자이다. 독사의 종류들아, 누가 너희를 가리켜 장래의 노하심을 피하라 하더냐.

넷째, 자기 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사는 자는 아버지 뜻대로 마옵시고 내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것이다. 살아도 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 위하여 죽어야 한다. 주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이기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지 않으면 아니 된다.

"여호와의 낯을 피함"

이것은 죄인의 상태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수풀 속에 숨었었다(창 3:8). 또한 거라사 사람들이 예수 떠나기를 간청하였다(막 5:17).

죄는 사랑의 줄을 끊는다. 두 형제를 둔 어떤 어머니가 있었다. 시장에 갔다 오면 아이들은 뛰어나와 시장 바구니를 들추어 어머니가 사온 실과도 꺼내 먹고 과자도 먹으면서 좋아하더니 오늘은 웬일인지 시장에 갔다 오니 아이 둘이 다 없어졌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니 뒤뜰 안 굴뚝 모퉁이에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너희들, 왜 여기에 와 있느냐"하니 "어머니, 큰일 났어요. 놀다가 요강을 깨뜨렸어요"했다. 요강을 깨뜨린 죄가 모자의 사랑의 줄을 끊은 것이다.

불순종의 죄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줄을 끊음으로써 그리운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불행과 저주는 하나님을 피하는 데서 생기나니 부친의 슬하에서 떠난 탕자를 보라. 또한 만찬석상의 가룟 유다를 보라(요 13:30).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하나님을 떠나 도망하려는 자 때문에 예비한 하나님이 허락하신 마귀의 섭리이다. 범죄자에게 범죄할 기회가 오는 것이다. 마귀의 유혹과 시험은 그 사람의 약점을 다 알아 가지고 오는 것이다.

배고플 때에 돌로 떡 만들 것을 가져오고, 삼손에게는 들릴라를, 다윗에게는 밧세바를, 가룟 유다에게는 금전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요나에게도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가지고 왔던 것이다.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알아보고 배에 오를 것이다(엡 5:17). 하나님은 분명히 니느웨라고 말씀하시는데 악마는 다시스라고 속삭인다. 하나님을 반역함에는 항상 희생을 요구한다.

"선가를 주고"

마귀의 배를 타려면 선가를 내야 한다. 아담은 그 배를 타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으며, 삼손도 그 배를 탔으므로 눈 두개를 뽑혔고, 다윗은 그 배를 타고 자녀들에게 무한한 고통을 당하였고, 사울은 그 배타고 자살하였고, 가룟 유다는 그 배를 타고 목매어 죽었다.

필자는 그 배를 타고 골막염 삼 년에 다리를 자르라는 것을 겨우 사정하여 논밭을 팔아먹고 몽혼 수술 두번에 고기 근이나 바쳤다. 죄의 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영생이니라(롬 6:23).

3. 하나님의 징계(욘 1:4-17)

4절 "폭풍이 대작"

이 폭풍은 징계의 폭풍이다. 요나는 불순종의 배를 타고 순풍에 돛달아 시세를 만난 듯이 잘도 달아난다. 그러나 안심하지 말라. 태풍은 바다 위에 내린다. 하나님을 피하는 자는 제 아무리 좋은 배를 타고 좋은 기회에 도망하여도 큰 풍파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개인의 마음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세계에 죄가 있으면 반드시 재난의 풍파가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다.

질병의 풍파, 물질 손해의 폭풍, 양심의 고통,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반드시 폭풍이 닥쳐오는 것이다. 한 사람 요나의 불순종으로 온 바다가 흉흉하게 됨과 같이 아담 한 사람의 죄로 기원 전 6000년대 이 세상은 흉흉하게 되었다.

만주에 있을 때 어느 집사가 나에게 "하나님은 정말 계신가요?"하였다. "집사님, 그것이 무슨 말씀이오"하니 "저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아요. 왜냐하면 xx장로, xx집사는 조선에 있을 때는 그렇게 잘 믿는 것 같더니 만주에 들어와서는 술장사도 하고 아편장사를 해서 밭 사고 논 사고 첩 두고 아들 딸 잘 낳아서 기르니,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그런 사람을 그대로 두겠어요"한다.

그래서 내가 "여보, 집사님 잔칫집 돼지를 보았소"하니 "잔칫집 돼지가 어떤가요?" "잔칫날이 가까워 오면 어떻게 합니까?" "더 잘 먹이지요" "고와서 잘 먹이던가요?"하니 "마지막에는 잡아먹지요"한다. "그렇습니다. 죄 짓고 불의한 일하고 잘된다고 부러워하지 마시오. 그것을 부러워하려면 차라리 잔칫집 돼지를 부러워하시오"하였다. "아이고, 목사님 너무 하십니다"하더니 불과 수개월 후에 불의를 행하던 그 집사 집에 큰 풍파가 일어나 마누라가 긴 병으로 죽고 재산은 차압을 당하고 그 집사는 경찰에 검속되어 유치장 신세, 가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발람은 돈에 눈이 어두워 어그러진 길로 가다가 여호와의 사자의 칼날을 보지 못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고 책망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마랄.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기뻐 받는 아들을 채찍질하시느니라.

눈이 밝아서 징계의 칼날을, 징계의 바람을, 징계의 채찍을 잘 보아야 한다. 오늘날 이 강산의 대폭풍은 선조들의 범죄와 우리들의 죄악, 즉 하나님을 불순종함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개인으로도 그렇고, 가정으로도 그렇고, 교회로도 그러한 것이다. 국가와 민족 또한 온 세계에 천변지이(天邊地異), 기근, 질병이 아니면 사상전이나 무력전 등의 풍파가 있는 것은 다 여기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5절 "각각 자기 신을 부르고"

임사호천(臨死呼天)이다. 이 말씀에서 모든 일생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통적 종교심을 볼 것이다. 종교심은 사람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본능적 의식이다. 바다에서 풍랑 만난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신을 부름에 이 요구를 누가 능히 막으며 누가 능히 제어할 수 있느뇨, 하나님의 존재를 양심이 증명하는 것이다(벧전 3:21).

사람이 평안 무사할 때는 하나님께 대한 의식이 몽롱하지만 급한 일을 만나면 무신론자도 유신론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욕망이 있으면 대상이 있는 것이다. 즉 식욕이 있으면 식물이 있고 색욕이 있으면 이성이 있고 폐가 있으면 공기가 있는 증거요 눈이 있으면 광선이 있고 귀가 있으면 소리가 있는 것같이, 구금의 만인 하나님을 찾는 욕망과 야심이 있는 것을 볼 때 찾는 대상인 참 하나님의 실재가 분명한 것이다.

옛날 평양 모란봉 영명사의 중이 대동강의 살얼음을 건너며 연방 나무 아미타불을 찾으며 가슴을 조리고 가다가 와싹하고 살얼음이 꺼지니 "아이고, 하나님"하고 부르짖었다는 것이다.

"물건을 바다에 던지라"

유물주의자들은 물질 제일주의로 살려고 하지만 일조에 풍랑 만난 배는 물질로써 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물질보다는 생명이 귀하므로 금은 보화 값진 모든 물건을 아낌없이 바다에 던졌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뇨! 6·25, 1·4 후퇴 때에 보니 무던히들 살려고 애쓰더이다.

고대 광실 높은 집도, 문전 옥답도 다 내버리고 금은 보화, 모든 기명(器皿)도, 능라 주단 모든 의복도 헌 짚신 짝같이 내버리고 목숨 하나만 살리겠다고 애쓰는 광경과 피난 생활을 구경도 하고 나도 체험할 때에 그렇게 살려고 하지만, 몇 날 못살게 되는 육신의 생명만 위하지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는 적은 돈 한푼을 버리지 않으니! 참 생명을 귀히 여기는 자 얼마나 되는가?

"배를 가볍게 하라"

마음이 빈 자, 가볍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였다(마 5:3). 고무풍선이 속이 비어서 하늘로 둥실 둥실 올라가는 것과 같이 우리 심령의 배를 가볍게 할지니라. 우리 신앙 행로에 방해되는 것을 다 덜어 버려야 한다. 밑천을 공으로 잡아라. 나는 공이다.

"요나는 배 밑창에 내려가"

내려가는 것은 타락자의 상태이다. 욥바로 내려가고 배 밑창으로 내려간다.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모든 싸움 이기고 근심 걱정 벗은 후 올라가 올라가 하는데 이 타락자는 내려가 내려가, 배 밑창으로 지옥으로 내려간다.

큰 믿음에서 작은 믿음으로, 넓은 사랑에서 좁은 사랑으로, 산 소망에서 절망으로 내려만 가누나. 기쁨에서 슬픔으로, 승리에서 실패로 내려가는 자여! 여리고로 내려가는 사람은 불한당을 만나 죽게 되고, 부활의 주님을 믿지 못한 두 제자는 실망과 공포로 인해 엠마오로 내려가다가 눈이 밝아지며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될 때 새로운 용기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이다(눅 24:31).

"누워 깊이 잠든지라"

잠에는 두 가지가 있나니, 은총의 잠과 마귀의 잠이다. 은총의 잠은 사랑하는 자에게 주신다(시 127:2)하였다.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의와 평강과 기쁨이니, 성신 받은 심령이 참 평화로서 종일토록 주를 위하여 수고하고 자리에 누울 때에, 모든 만사를 주님께 위임하고 깊은 잠이 들 때에 실로 그 잠은 달고도 단 것이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하늘과 진리의 꿈을 꾸며 묵시를 얻고 영광을 보는 것이다. 은초의 잠을 자는 자 행복자이다. 우리 주님은 갈릴리 바다의 풍랑 중에 제자들은 다 죽는다고 떠들며 공포와 불안 중에 있을 때 배 고물을 베개 삼으시고 깊이 잠드셨던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떠들고 요란할지라도 예수의 평강을 얻어 은총의 잠을 잘 지어다. 내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주는 평안은 이 세상이 주는 평안이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내 평안, 예수의 독특한 평안이다. 십자가에 죽기 전날 밤에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다(요 14:27).

그러나 반면에 마귀의 잠이 있다. 성경에 잠자다가 실패한 자가 부지기수이다. 노아는 홍수 뒤끝에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고 자다가 아들들한테 망신당하였고, 롯이 잠을 자다가 딸에게 범죄하고, 사울왕은 잠자다가 물병과 창을 빼앗기고, 다윗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 범죄하고, 삼손은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잠을 자다가 두 눈이 뽑히고 감옥에서 맷돌을 돌렸으며,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낮잠을 자다가 배를 찔려 죽고, 시스라는 야엘의 장막에서 잠을 자다가 귓구멍에 말뚝 박혀 죽었으며, 솔로몬 임금 때에 한 여자는 자다가 제 아이를 깔아 죽이고 다른 여자는 잠을 자다가 자기 아이를 도적맞고 재판을 하였으며, 유두고는 삼층 다락에서 잠자다가 떨어져서 목이 부러질 뻔하였고, 베드로는 잠자다가 말고의 귀를 베고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하였으며,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였고, 요나는 배 밑창에서 잠을 자다가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천로역정을 보면 기독도가 가는 길에 길가에서 잠쟁이 세 사람을 만났으니 이름은 우몽(愚蒙), 해타(懈惰), 자시(自恃)였다.

이때는 자다가 깰 때라(롬 13:11). 깨어 기도하여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마 26:41)고 주님께서는 얼마나 간곡히 부탁하셨는가? 많은 신자들이 잠자는 동안에 사탄의 씨를 받게 된다(마 13:25). 주의할지어다. 잠자는 자여,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빛을 비취시리라(엡 5:14).

6절 "선장이 나아가 잠자는 자여 어찜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여라"

하나님의 종 선지자가 기도하지 아니하고 잠만 자다가 믿지도 않는 선장에게 기도하라는 권면을 받은 것이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말 양심이 마비되어 잠자는 사람보다 차라리 믿지 않는 사람이 도리어 나을 때가 있는 것이다.

왜정시대에 오정포(午正砲) 소리 날 때면 묵도하라고 누구에게든지 강요할 때에 나도 생각하였다. 조선 교회가 너무도 기도하지 아니하고 잠만 자는 고로 믿지도 않는 왜인 선장들이 와서 떠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어떤 여자 집사는 꽤 신앙이 좋은 줄 알았더니, 자기 아이가 갑자기 병들었을 때에 너무나 황급하여 믿지도 않는 남편을 볶으며 의사를 부르라고 떠들며 설쳤다. 그 남편은 아내에게 "야! 이것아, 왜 이다지도 덤비느냐? 너 여지껏 무엇을 믿었느냐? 너희 하나님께 기도나 좀 하려무나"할 때에 그 여자 집사는 깜짝 놀라 아이를 부둥켜안고 간절히 회개하며 기도할 때에 그 아이는 신유의 이적을 체험하였다는 것이다.

잠자는 여자 집사보다는 차라리 믿지 않는 남편이 도리어 나은 것 같다. 잠자는 자여, 일어나서 너희 하나님께 기도하라.

7절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미치더라"

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든지 제비를 뽑는 풍속으로 인간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으로 믿었다. 특히 유대인은 사울왕을 선거할 때도 그러하였고(삼상 10:21) 아간도 제비를 뽑아 그 죄가 드러났으며(수 7:18-21) 맛디아도 제비 뽑아 사도로 택하여졌던 것이다(행 1:26).

죄는 지은 대로 가고 물은 제 곬으로 가고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 것은 천리의 원칙이다. 숨은 것이 드러나지 않음이 없고 골방에서 말한 것이 지붕에서 퍼지느니라(마 10:27). 주께서 우리의 허물을 자기 앞에 펴놓으시고 우리의 은밀한 죄악을 주의 얼굴빛 가운데 펴놓으셨느니라(시 90:8).

황해도 봉산에 있었던 오래 전의 일이라 한다. 오동짓달에 길을 가던 행객이 길에서 동사하였다. 그 동리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가까운 주재소에 가서 보고하였더니 순경이 수첩에다가 다 적었다.

"송장이 몇 살이나 되어 보이던가?" "약 40세쯤 되겠습니다" "키가 크든가 적든가?" "자그마합니다" "머리는 빡빡 깎았든가 하이칼라든가?" "빡빡 깎았습니다" "무슨 저고리던가?" "검정 저고리입니다" 이런 것들을 전부 수첩에 적어 놓고 "여보, 내가 오늘은 바빠서 못 가겠고 내일 공의(公醫)를 데리고 갈터이니 송장을 좀 가져다 두시오 그리고 밤을 새우려면 수고가 많겠으니 술이나 국수를 십원 어치만 갖다 먹으면서 지키시오 그것은 관청에서 물어줄 터이니"라고 했다. 송장을 가져다 두는 것은 재미없으나 먹는 것만큼은 좋아서 몇 사람이 송장을 메어다 윗목에 두고 홑이불을 씌워 논 후에 술도 먹고 국수도 먹으면서 노름하면서 떠드는 판이었다.

그때에 얼어죽었던 송장이 몸이 녹으니까 부스스 깨어났다. 정신이 들어 자세히 들어다 보니 아랫목에서 술들을 먹으면서 "야, 걱정 말고 먹어라. 내일은 순경이 와서 술값을 다 물어준다고 하지 않았나"하면서들 떠들었다.

"아, 이 일을 어찌하나. 나를 살려 준 것은 고마운 일이나 순사가 오면 취조를 할 터이고 돈을 나더러 물어주라고 할 터이니 참말 걱정이구나. 차라리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것 큰일이로구나" 생각다 못하여 술을 먹고 다들 잠든 후에 송장은 문을 가만히 열고 달아났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밤중에 소변을 보러 일어나 보니 송장이 없어졌다. "야, 큰일났구나. 송장이 달아났다"고 외치니 "뭐? 송장이 달아나다니"하고 모두 일어나 보니 사실이었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하고 연구한 결과 한 청년이 말할 때 "저 건너편 동리에 그저께 죽은 송장이 있지 않은가. 어제 갖다 파묻었으니 대신 파다 놓는 것이 어떠한가?"하고 제의하니 그것 참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하고 그 밤중에 남의 무덤을 파헤치고 송장을 파다가 대신 갖다 놓았다.

이튿날 순사가 공의를 데리고 와서 "송장 어디 있소?" "여기 있습니다"하고 다른 송장을 보여 주었다. 순사가 수첩을 꺼내서 보니 전부 틀렸다.

전번 송장은 키가 작은데 이 송장은 키가 6척이었다. 전번 송장은 머리를 빡빡 깎았는데 이 송장은 하이칼라였다. 또 전번 송장은 검정 저고리라는데 이 송장은 흰 저고리로구나 이것 어떻게 조사한 것인가? 의심이 생겼다.

해부하라 하니, 공의가 진찰을 한 후 머리에 이상이 있다고 톱으로 머리를 켜니 중간에서 쇳소리가 달그랑달그랑 났다. 머리를 쪼개어 보니 이게 웬일인가, 귓구멍에 커다란 쇠못이 박혀 있지 않은가!

못을 꺼내면서 "이게 웬 못이냐"하니 그들은 "우리는 모릅니다"한다. "이 자식들, 너희들이 사람을 죽였구나"하고 후려갈기니 "아이고, 나으리, 바로 말하겠습니다"하고 "정말 엊저녁에 송장 하나를 얻기는 얻었습니다" "얻어서 어찌했단 말이냐?" "우리가 술 먹고 자는 바람에 송장이 깨어서 달아났습니다"하였다.

"그럼 이 송장은 웬 송장이냐?" 대답하기를 "할 수 없어서 건너편 아무개네 송장을 대신 갖다 놓았습니다" "그러면 이 송장 임자가 있느냐?" "예,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집으로 가자"하고 그 사람들을 앞세우고 건너편 동리에 가니 오막살이집에 한 이십 세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흰 댕기를 드리고 눈이 붓도록 "아이고 아이고"했다.

"야! 요년아, 네 남편이 어찌되었느냐?" "삼 일전에 죽었어요" "왜 죽었느냐?" "뇌출혈로 갑자기 죽었어요" "야 이년아! 똑바로 말해라" "똑바로 말했어요. 생벼락 맞으려고 거짓말을 하겠어요" "이년 가자"하고 앞세워 데리고 가서 그 송장을 보이면서 "이것은 누구의 남편이냐? 그리고 이 쇠못은 웬 것이냐?" 그때야 그 여자는 "아이고, 용서해 주세요"하며 벌벌 떨었다.

"바로 말하면 용서해 줄 터이다"하니 이 여자가 고백을 했다. 시집을 가서 본남편과 정이 없어서 다른 간부를 두고 비밀로 지내오다가 아무래도 본남편이 걸리어 없이하자고 간부와 공모를 한 후 남편에게 술을 먹이고 잠자는 사이에 귓구멍에 못을 박아 죽였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는가? 누가 그의 눈을 속일 수 있으랴. 내가 어디로 가면 주의 앞에서 피하리이까?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며 아셨나이다(시 139:1). 죄인에게 제비는 미치느니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느니라.

8절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나 고하라"

모든 재난의 원인은 죄악이다. 죄는 우리의 육체를 망치고, 영혼을 망치고, 가정을 망치고, 국가를 망치는 것이다. 재화(災禍)에서 구원을 받으려는 것보다 재난의 원인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

반성하여 죄를 철저하게 고백하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죄를 고하면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의 모든 옳지 않은 것을 깨끗이 씻어 버리느니라(요일 1:9). 죄를 고하여야 겸손한 자가 되고, 용감한 자가 되며, 평안히 오는 것이다. 요나는 자기 형편을 고백하지 않으면 아니 될 단계에 이르렀다.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뇨?"

죄를 회개할 때에 "모든 죄, 모든 죄"하고 뭉뚱그려 고하지 말고 조목조목 들어 철두철미하게 추궁을 하여 고백해야 한다. 제단의 제물을 통으로 바치지 않고 각을 떠서 바치는 것이다.

껍질을 벗기고, 머리를 자르고, 각을 뜨고, 내장을 들어내고 벌려 놓는다.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서 바칠 때에 불꽃이 나와 쪼갠 고기 사이로 통과한 것을 본 것이다(창 15:11).

9절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여호와를 경외하노라"

이방의 교도들 앞에서 여호와를 증거 하였다. 이 배는 전도관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기회를 이용해서 자신의 일을 성취하시는 것이다. 바울을 가둔 빌립보 감옥은 도리어 옥사장을 구원하는 처소가 되었고, 로마행 도중의 지중해 난선도 역시 바울로 하여금 전도하도록 기회를 주신 것이다.

요나는 이제 자던 잠을 깨서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하며 기억하게 되었다. 이는 참지혜의 시작이요 회개의 동기이다. 참된 회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기의 불행을 생각함이나 사람의 위협에 의해서 하는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거기는 외식이 있고 비루함이 섞여 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회개는 가증한 것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 부흥사는 은혜 받은 사람은 울어야 한다는데 아무리 울려고 해도 눈물이 나지 않아서 부흥사 보기가 미안하므로 눈을 비비고 눈에 침을 발라 우는 체했던 것이 생각난다.

절대적 입장에 서지 않고 상대적 입장에 선 것이다. 사람이 인증한다 해서 기쁠 것 없고 사람이 오해한다고 하여 근심할 것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또한 이 두려움은 종의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효자 효녀가 자기들의 잘못으로 어버이 마음을 상하게 함을 경외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 더욱 귀한 것이다.

10절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요나가 진정으로 주를 두려워할 때 일반 선인들도 주께 대한 두려움을 가졌다. 이것이 참부흥이다. 참으로 우리 교회에서도 한 사람의 진정 주를 경외하는 사람이 일어나면 다른 사람에게도 미치는 것이다. 빛은 편만성이 있고 불은 도화선의 파급 연소가 되는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소수 청년 학생 부흥 운동이 영국과 미국에 파급되었고, 1907년 영계(靈溪) 길선주 목사님의 대부흥은 한국 전반에 미친 것이다.

11절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요나를 재난의 원인으로 발견했으나 처치하지 않을 때에 바다는 점점 더 흉용해진 것이다. 우리가 죄를 발견하기는 하였으나 철두철미하게 회개하여 처치하지 않으면 심령이 불안하여 파도는 더욱 심할 것이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하랴! 원하는 선은 행치 못하고 원치 않는 죄를 행하게 되어 더욱 심한 고통의 부르짖음을 어찌하랴! 그런고로 회개할 점을 발견하였거든 지체하지 말고 즉석에서 회개하라.

12절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아노라"

요나를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사랑하심은 이 한 절에 있다. 요나를 연단 시킴은 이 말씀을 듣고자 하심이었다. 둘째 아담 되시는 예수의 정신이다. 남을 살리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포기했다.

책임감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이다. 과연 소인은 책임을 회피하나 위대한 사람은 책임을 강하게 지는 것이다. 첫 아담은 제 죄도 남에게 전가시켰으나 둘째 아담 되시는 우리 주님은 순백의 주님이 순흑이 되사 겟세마네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모든 책임을 짊어지시고 기도하셨으며, 가야바의 뜰에서 변명 한마디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이 풍랑을 만난 것은 내 까닭이라(요 18:4-5).

그러나 모든 인간들은 다 남의 까닭이라고 핑계를 한다. 가정에서는 시어미 까닭, 마누라 까닭, 영감 까닭, 교회에서는 목사 까닭, 장로 까닭, 밤낮 남의 까닭을 말한다. 국가에서는 정부 까닭, 백성 까닭 하고 책임을 회피한다.

어느 교회에서 한 부인이 예배당에 와서 너무 졸기만 하니 목사는 강단에서 발을 탕탕 구르며 "여보 자매! 웬 잠을 그리 자시오. 그것 참 종자 조럼(졸자 노릇)을 하겠구만!"하였다. 다음에 예배당에 올적에 부인은 졸다가 목사보고 눈을 흘기면서 "흥, 내 눈에다 고춧가루를 치라고 하지 말고 목사님 설교에다 고춧가루를 치시오"하였다 한다.

목사는 신자가 존다고 야단이고 신자는 목사 설교가 싱겁다고 야단이니 한심한 노릇이 아닌가?

어느 교회 목사가 설교를 잘하지 못하고 내려가니, 어떤 노인이 목사의 손을 잡고 훌쩍훌쩍 울었다. "왜 우십니까?"하니 "목사님이 오늘 설교를 잘못한 것은 내 탓이외다"하니, 목사는 "천만에 무슨 말씀이십니까?" 노인은 "아니오. 언제나 토요일 밤에는 목사님 설교 위해서 기도를 해드렸는데 어젯밤 손님이 와서 기도를 못해 드렸더니 오늘 목사님 설교는 죽을 쑤었습니다"하였다 한다.

각각 이 말씀 "이 풍랑을 만난 것은 내 까닭이다"라고 하면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는 화평과 희락의 꽃이 만발하고 사랑의 열매가 무궁 무진하련만, 자기 명예나 지위나 체면을 보전하려고 책임을 회피하는 가증한 무리들이여! 주의 심판이 두렵도다.

13절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나 능히 못함은 바다가 점점 더 흉용하더라"

이 사람들은 풍랑의 원인을 알고도 인정으로 요나 문제를 해결치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는 인정이 소용없는 것이다. 공과 사를 분별하지 못하고 성지를 몰라서 종종 실수하는 일이 많다. 보라! 인정에 끌려 아담도 실패하고, 아브라함도 그러하였고, 사울왕도 인정으로 실패하였다.

아론은 인정에 끌려 금송아지를 만들었으며 삼손은 들릴라의 인정에 끌려 능력을 잃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나니 정과 욕심까지 그렇게 하였느니라(갈 5:24).

인정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얼마나 큰 타격을 주는가! 베드로는 인정으로 주를 간하다가 사탄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았다.

사랑, 사랑 하다가 죄까지 사랑하지 말고 죄를 미워하다가 사람까지 미워하는 실수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떤 군인이 와서 "살인은 죄라는데, 전쟁의 살인은 어찌할 것입니까?"물었다. 공과 사를 분별해서 전쟁의 지도자의 책임을 너는 관계치 말고 정의적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군대로 마귀를 멸하라. 침략전은 죄악이나 정당 방위는 주께서 아신다.

성경은 전쟁의 역사이다. 오늘날의 적마든지 청마든지 불의의 군대는 다 멸절시키는 것이 성지이므로 원자탄과 수소탄의 세례를 맛볼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멸절을 당하여도 거룩한 자손은 이 땅에 그루터기가 되리라(사 6:13)하였다. 기도하면서 잘 싸우라.

14절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임사 호천이라더니 이방 미신자들도 다 여회와께로 돌아온다. 여호와의 뜻을 알게 되었다. 과연 이 풍랑은 요나를 바로 만드시는 동시에 이교도에게 참 하나님을 알게 하여 개종시키는 기회가 되었도다.

15절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우리 기독교는 수양이나 도덕의 종교가 아니요, 생명의 종교 실천의 종교이다. 몇 십년 수양을 하여서 죄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회개하여, 즉 요나와 같이 죄만 뽑아 버리면 즉시 안정과 평화가 오는 것이다.

회개하여 바른 대로 돌아와 너의 죄사함을 받으라. 평안한 날이 오리라(행 3:19).

16절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제물을 드리고 서원"

이방의 이교도들이 개종을 하였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요나의 불순종을 가지고라도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성취하시는 것이다. 마귀란 놈이 아무리 역사하여도 결국은 하나님의 일을 해 놓고야 말고, 인간들의 범죄와 실수라도 주님은 거기서도 또한 큰일을 하시는 것이다.

누가 그 오묘 막측한 섭리를 알리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 판단하시는 것은 가히 측량치 못하며 종적도 가히 찾지 못하겠도다. 주의 맘을 알 자가 누구며 함께 의논할 자가 누구뇨(롬 11:33-34).

17절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

예비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다(렘 29:11). 요나서에는 박 넝쿨을 예비하시고(4:6), 버러지 하나를 예비하시고(4:7), 동풍을 예비하시고(4:8), 물고기를 예비하셨다.

태모(胎母)가 순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아기를 낳는다. 하나님도 천지 만물을 육일 동안에 다 준비를 해 놓고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부흥회 가기 전에 어떤 교회는 영육간에 만반의 준비를 하여 많은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준비 없는 교회는 참으로 강사를 죽이는 것이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 감사하고 모든 일을 준비하는 화신이 되어지는 것이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삼 일 삼 야를 지내더라"

불순종한 요나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사람에게 버림받고, 물속에 들어가 징계의 물고기 뱃속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나, 국가의 죄 값은 사망이요 모든 재난을 초래하는 것이다. 혹은 불의 재난으로 혹은 질병으로 무한한 고통을 겪는 것이다. 방탕한 자식이 부친을 떠난 결과는 어찌되었는가?

내 아들아,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며 책망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대개 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시고 또한 기뻐 받는 아들을 채찍질하시느니라. 무릇 징계는 당할 때에 즐거운 것이 아니요 싫은 듯하난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느니라(히 12:5-6,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