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요나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



1. 기도의 규범(욘 2:1-3)

본장은 전부 요나의 기도를 기록하였다. 요나의 기도는 실로 우리가 깊이 맛보아야 할 모범적인 기도이다. 요나는 기도하였다. 이것이 또한 그의 특징이다. 하나님은 기도의 사람을 사랑하신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식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였다(마 22:32).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호흡을 보고 알 것이다. 우리 영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믿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기도의 호흡을 보고 아는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기도의 사람이다.

모세가 기도하였고, 엘리야가 기도하였고, 다니엘도 기도하였으며, 모르드개, 에스더가 기도하였고, 구약의 선지들과 신약의 사도들과 역사 이래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인물들은 다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꽃이 아름다워도 향기가 없는 꽃에는 봉접(蜂蝶)이 오지 않지만 꽃이 모양은 없어도 향기가 있는 꽃에는 봉접이 날아드는 것이다.

아무리 인물이 잘나고 재주가 좋고 지식이 많아도 기도의 향기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이요, 아무리 못난이 바보 같을지라도 기도의 향기가 충만한 사람과는 봉접같은 주님이 교제하기를 좋아하시는 것이다.

성도들아, 항상 깨어 쉬지 말고 기도하라. 주님 부탁하셨으니 쉬지 말고 기도하라. 네 몸은 하나님 성전이니 강도의 굴혈을 삼지 말라. 종신토록 힘 쓸 일은 쉬지 말고 기도하는 일이다. 그러나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기도의 법을 몰라서 잘못되는 수가 많다.

너희들이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이요,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약 4:2-3).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주기도문은 우리들의 기도의 규범인 동시에 오래 의 요나의 기도는 우리들의 시범이다.

1절 "그때에 요나"

기도의 시간이다.

그때란 어느 때인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사람에게 버림을 받아 물 속에 들어가 고기 뱃속에 있을 때에 기도하였다.

이런 때에 기도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하고 낙심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요나가 이러한 때에 기도한 것을 보면 우리는 기도하지 못할 때가 없을 것이다. 기도의 시간은 무시로 할 것이다.

2절 "물고기 뱃속"

기도의 장소이다. 물고기 뱃속이다. 교회당이나 예배 처소만 기도할 곳이 아니라 어디서든지 기도하라. 베드로는 지붕에서 기도하고, 주님은 광야에서, 바울은 옥중에서, 자주 장사는 강변에서,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요한은 밧모섬에서, 엘리야는 호렙산 동굴에서 기도를 한 것이다. 내 아버지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하여 하나님의 사람은 어디서나 어느 때나 기도하는 것이다. 은혜받는 것도 기도의 제단이요, 은혜를 유지하는 것도 그 제단이며, 은혜를 회복하는 것도 기도의 제단이다.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

기도의 대상이다. 우리의 기도는 나무 아미타불이 아니요, 일본의 아마데라쓰 오미가미(天照大神)가 아니다. 유교에서 부르는 막연한 성천 옥황 상제가 아니며, 미신 사교에서 부르는 일월 성신 수금지화목토천해의 잡신이 아니다.

인도에는 이억만 신이 있고 일본에는 팔백만 신이 있다 한다. 자연신교에서 부르는 자연신이 아니요, 만유신교에서 부르는 범신론이 아니다. 여호와는 계약의 신, 약속을 충실히 지키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인격적 하나님을 가리키심이다.

나의 신관은 요나서 4장 2절에 "주는 은혜롭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크게 자비를 발하사 재앙 주시기를 뉘우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나는 바른 신앙은 가졌으나 생활이 따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신앙으로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또한 이 기도는 간절한 심정이 보인다. 기도에는 간절성이 필요하다. 얻으면 얻고 말면 말고 이런 태도는 안 되는 것이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태도이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 대하 16:9).

3절 "주께서 나를 깊은 데 던졌다고"

요나의 특징은, 이 풍랑을 만난 것이 내 까닭이란 책임적인 회개와 그때에 요나의 기도하는 태도와 주께서 나를 깊은 바다에 던졌다고 하는 상대적 입장에 서지 않고 절대적 입장에 서는 신앙이다.

범사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신앙! 쓴 것이나, 단 것이나, 괴로운 것이나, 희노애락이 다 하나님을 상대로 하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성도들은 이것이 분명하였다. 행복이 올 때에 주께 감사하고, 불행이 올 때는 반성하여 교정하고, 또한 잘 참고 승리하였다. 욥을 보라. 있던 재산을 다 박탈당하고 십 남매가 단번에 참몰당하고 몸에 창질이 나서도 "하나님이 주셨다가 하나님이 가져갔으니 가히 찬미하리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윗은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반란을 당해 도망할 때에 시므이가 자신을 저주하고 조롱하는 것을 보고 아비새 장군이 칼을 들어 시므이의 목을 자르려 함을 보고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시므이가 나를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시므이로 하여금 저주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우리 주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실 때에 가룟 유다를 앞세우고 악당들이 달려들자 베드로가 칼을 뽑아 달려들어 말고의 목을 치니 목은 잘라지지 않고 귀만 떨어졌는데 그때 책망하여 가라사대 "베드로야, 칼을 집에 꽂으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 아버지의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하셨다.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시면 머리털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신하셨다.

범사가 하나님께로 났나니(고후 5:18). 이 기도는 말씀에 충만한 기도였다. 전부가 시편에 있는 말씀이다(2절은 시 102:2, 3절은 시 42:7, 4절은 시 69편, 6절은 시 103:4, 7절은 시 143:7, 8절은 시 31:6, 9절은 시 50:14).

참 기도는 주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에 서서 기도해야 한다.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어 내 이름으로 원하는 대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이루게 하리라(요 15:7). 신실하지 못한 부모라도 자기 자녀에게 약속한 말은 그대로 이루어 주려고 한다.

맹자가 나이 어렸을 때였다. 동리에서 돼지 잡는 소리를 듣고 그 어머니에게 "저 돼지는 왜 잡느냐"고 물을 때에, 그 어머니는 무심히 농담으로 "돼지고기를 네게 먹이려고 잡는단다"하고는 그만 "아차 실수했구나"하면서, 농담이 참말이 되게 하기 위해 즉시 가서 고기를 사다가 먹였다고 한다.

이 말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하물며 우리 주님은 얼마나 신실하신가? 그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라. 그 말씀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행 2:37), 중생케 하고(벧전 1:23), 믿음을 주실 뿐 아니라(롬 10:8-10), 기도의 응답을 받는 요건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요 6:63).

2. 소망의 기도(욘 2:4-5)

4-5절 "내가 주의 눈앞에서 쫓겨났사오니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

소망의 기도이다. 깊은 바다 사면이 물에 둘러싸인 생명! 절망의 구덩이에 들어갔으나 다시 열왕기상 8장의 솔로몬의 기도를 기억하고 소망에 넘치는 것이다.

만일 한 사람이라도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거든 그 사람이 어떠한 기도를 하든지 주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사 소원을 이루게 하소서(33-34절)하는 말씀이었다.

소망은 하나님이 주시고 절망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 땅 끝에 거하는 백성들아, 너는 나를 앙망하고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니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22). 오직 나는 여호와를 앙망하고 나를 구원하는 하나님을 바라노니 하나님이 나의 말을 들으시리라(미 7:7)고 미가 선지자도 부르짖었으며, 그때는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고, 감람나무가 기름을 내지 못하며, 밭이 식물을 내지 못하고, 양무리가 우리에서 멸절을 당하고, 외양간에 육축이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즐거워하고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니 내 발을 사슴의 발같이 하사 나로 하여금 높은 언덕에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고 하박국 선지는 말씀하였다.

낙망하지 말라. 실망하지 말라. 캄캄한 밤이 지나면 광명한 아침이 오는 것이며, 엄동 설한이 지나면 양춘 가절이 오나니, 고통이나 시험이 올 때에 주께 버림받는다 의심하지 말고 오직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어 독수리같이 올라가느니라.

3. 신망의 기도(욘 2:6-7)

6-7절 "내 생명을 건져 멸망에서 벗어나게 하셨나이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들어가 주의 성전에 이르렀나이다. 벌써 얻은 줄 아는 신앙의 기도이다. 철두 철미하게 소망이 없는 중에 만국 조상이 될 것을 바라는 아브라함의 신앙(롬 4:18)과 "저가 나를 죽일지라도 나는 저를 의지하겠노라"고 한 욥의 신앙과 같다.

곰과 같이 부르짖고 비둘기같이 슬픈 소리로 하여도 우리의 기도가 믿음이 없으면 허공을 치는 것이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이미 얻은 줄로 믿으라고 하였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다 물결이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것과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지니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니라(약 1:6-8).

기도의 용장 조지 뮬러(George M?ller)는 고아를 1,500명이나 기르면서 누구에게도 구걸한 일이 없다 한다.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은 주님께 간구하여 얻었다는 것이다. 하루는 아이들 점심 줄 것이 없다고 총무가 원장인 뮬러에게 말하니 뮬러는 "지금 몇시나 되었소?" "열한 시입니다" "조금 더 기다리시오"하고 기도실에 들어가 주님께 점심거리 보내 달라고 간구하였다. 열 한시 반에 또 와서 "어떻게 합니까? 아직 아무것도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니 "좀더 가서 12시까지 기다리라"고 하고는 또 기도만 했다.

총무는 초조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12시가 되자 어디서인지 빵 수레가 덜컹덜컹하며 들어왔다. 그때에 이게 웬일인가 하고 물으니 그 근처에 돌연 화재가 나서 빵집이 위급할 때에 고아원으로 빵을 실어 가라고 하여 빵 사태가 난 것이었다.

그때 조지 뮬러는 총무를 불러서 오늘부터 고아원에 나오지 말라고 하였다. 당신 같은 불신앙인 사람과는 일을 같이 할 수 없다고 하며 면직시켰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하여간 예로부터 지금까지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은 다 신앙의 기도를 한 사람이었다. 주여, 우리의 믿음을 도와주소서. 네 믿는대로 되리라. 믿는 자는 주의 영광을 보리라.

4. 감사와 결심의 기도(욘 2:8-9)

8절 "무릇 헛된 신을 섬기는 자"

미신 사교에 빠진 사람은 다 배은 망덕한 것이다. 김서방의 아들이 김서방을 아버지라고 해야 할 터인데 홍서방을 자기 아버지라고 하면 김서방의 마음이 어떠할까?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가엾은 인간들은 거의 이러한 죄에 빠지는 것이다. 미신자는 물론이려니와 요나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면서도 실제로는 무신론자와 같이 혼미한 가운데서 악마의 유혹에 빠져 거짓된 걸음을 걸어 이런 불행을 초래한 것을 회개하는 태도인 듯하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속이고 성신을 속이는 것은 곧 자기를 속이고 마귀를 기쁘게 하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9절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 드리고"

주께서도 나사로의 무덤 문밖에서 내 기도를 들어주심을 감사한다고 하셨다. 기도는 감사의 전제이다. 구하지 않아도 얻을 것이로되 구하여 얻게 하시는 것은 감사의 사람이 되게 하심이다.

환난은 인간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기도는 환난을 인간에게서 떠나게 하여 감사하는 마음과 생활이 되게 한다. 감사는 신앙의 한 단계로서 신앙이 올라갈 때는 감사가 올라가고 감사가 내려갈 때는 신앙이 내려가는 증거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너는 하나님을 기뻐하라. 네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시 37:4).

"나의 서원을 갚겠사오니"

환난 중에 기도할 때에 자기의 부족을 회개하고 또한 앞으로 주의 뜻대로 할 것을 굳게 결심하여야 할 것이다. 완전한 헌신의 기도이다. 부활의 소망과 기도의 확신과 완전한 헌신은 귀한 것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이는 율법주의나 인본주의가 아니라 순복음이다. 구원이 인간의 수양이나 도덕이나 노력으로 됨이 아니요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는 신본 신앙이다.

여호와는 살아 계신지라 나의 반석을 찬송하고 나를 구원하시는 반석 하나님을 마땅히 높일지어다(삼하 22:47). 여호와는 절대 안전 지대며, 나를 구원하시는 뿔(시 18:2)이며, 절대 능력이시니 악한 마귀가 어루만지지도 못할 것이다.

너희는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으리니(사 12:3), 구원의 생수가 강같이 흘러 자신이 만족할 뿐 아니라 가족과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흘러 넘치는 생수의 구원이로다.

5. 응답받는 기도(욘 2:10)

10절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시더라"

응답받는 기도이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시 50:15)라는 말씀대로이다. 모든 자연계의 만물은 다 여호와의 명대로 동하고 정하건만 인생만은 자유 의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다가 재난을 만나는 것이다.

다른 각도로 생각할 때, 그때 물고기는 바다에 돌아다니면서 무엇을 좀 얻어먹으려고 할 때에 어떤 것이 물 속으로 떨어져 들어온다. 성큼 집어삼키니 아주 별미라, 꼬리를 흔들며 즐거워하더니 조금 있다가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내장을 거머쥐고 회개하고 기도하면서 몸부림을 하니 고기 뱃속이 편할 수 없는지라, 먹지 못할 것을 먹은 고기는 삼 일 삼 야를 복통을 하면서 삭혀 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백약이 무효라. 삼 일 만에 고기는 바닷가에 나와서 토하니 요나는 그만 바닷가 모래밭에 나동그라진 것이다.

한참 있다가 정신을 차리니 새 세계에 나온 것이다. 큰 물고기는 그렇게 아프던 복통이 곧 그치고 시원하고 평안하여 꼬리를 흔들며 "에라, 이제는 다시 그런 것은 먹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는 듯이 바다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도 우리가 먹지 못할 것 또는 가지지 못할 것, 즉 죄를 가진 마음속은 평안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침이다(사 57:21). 죄는 입을 벌려 토할 때에 참 평화가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래에 기록한 응답받는 기도의 일곱 가지를 기억하라.

1.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기도할 것(사 59:2).

2. 사람과 나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기도할 것(마 5:23-24).

3. 기도의 목적이 순결할 것(약 4:3).

4. 예수의 이름으로 할 것(요 14:13-14).

5. 간절한 전심으로 할 것(대하 16:9).

6. 믿음으로 할 것(약 1:6).

7. 하나님을 기뻐할 것(시 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