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요나의 전도와 니느웨의 회개



1. 여호와의 재차 사명(욘 3:1-2)

2장은 기도의 장이요, 3장은 전도의 장이다. 기도와 전도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것이다. 성도의 생활에서는 활과 화살의 생활이다. 내가 유다는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살을 삼으리라(슥 9:13).

활은 구부러지는 기도의 모양이요, 화살은 나아가 활동하는 전도의 상태이다. 활을 잘 조절하여 구부려서 화살을 당겨 놓으면 힘차게 나아가 대적의 심장을 뚫을 것이나 구부러짐이 없이 나아가 전도만 하노라면 아주 무력하여 도리어 역효과가 날 것이다. 또한 나아가지는 않고 자꾸 구부러지는 신비자가 되면 활등이 부러져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기도 없이 전도만 해도 안될 것이요, 전도 없이 기도만 해도 탈선의 걸음을 걸을 것이다. "섭취와 발양" 즉 활의 기도로 잘 섭취하고 화살의 전도로 잘 발양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사이다. 기도와 말씀 전하기에만 힘쓰겠다고 사도들은 선언하신 것이다(행 6:4).

1-2절 "여호와의 말씀이 재차 임하사"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 기진 맥진하여 쓰러진 요나에게 집에 가서 휴양을 명하지 않고 다시 전도하라고 명하신다. 주께서 계획하신 일은 어디까지나 그대로 성취하시는 것이다(고후 1:18).

물고기 뱃속 신학교를 졸업한 요나에게 첫 번 시험에는 낙제하였으나 재시험을 치르게 하신 것은 또한 여호와의 지극한 사랑이시다.

베드로가 죽어도 주와 같이 죽고 옥에 갇혀도 같이 갇히겠다고 하더니 불과 몇 시간 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되 마지막엔 저주까지 하였으나 주님은 가야바의 뜰에서 눈물 어린 눈동자로 베드로를 바라보셨고 베드로는 시선이 예수의 그 시선과 마주칠 때에 나아가 대성 통곡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 장사지내니 베드로는 생계의 곤란함인가, 3년 전에 내버렸던 그물을 다시 씻어 가지고 3년 전에 떠났던 갈릴리 바다에 다른 제자들까지 데리고 나아갔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썼으나 한 마리도 못 잡아 영육이 극도로 피곤한 아침에 주님께서 언덕에 불을 피워 언 몸뚱이를 녹여 주시고 배고픈 저들에게 떡과 생선을 주어 만족하게 하였다. 그리고 주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를 사랑하느냐?"하시며 세 번이나 물어 내 양을 먹이라고 재차 사명을 주셨다.

엘리야 선지는 갈멜산에서 용감하게 바알의 선지자들과 싸워 승리하였으나 이세벨의 간악한 체포령에 도망하여 호렙산 동굴에서 떨고 있었다. 사람은 강해 보이면서도 약한 것이다. 주님이 함께 하실 때 강하고 자기 혼자 있을 때는 약해진다. 공포와 불안, 낙망에서 죽기를 간구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재현의 사명도 지극한 사랑이 아닌가? 이와 같이 넓고 깊은 하나님의 사랑에 아직 감복하지 않은 자는 어찌 사람이라 할 것인가?

우리 한국 교계가 왜정 시대 실패하였으나 다시 해방되어 재차 사명을 감사하거니와 다시 인공 시대에 걸음걸음 실패하였으나 또 해방을 주셨으니 이 시대 우리 교계에 내리시는 주님의 무한한 사명을 깨닫지 못할 것인가?

2. 요나의 전도(욘 3:3-4)

3절 "요나가 일어나"

전번에는 불순종의 길이나 이제는 순종의 길이다. 물고기 뱃속 신학교는 요나로 순종의 학과를 배우게 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순종의 학과를 배우면 참으로 행복하다.

많은 사람은 연단을 받아서 자기를 정화시킬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지혜로운 자는 깨달으리로다(단 12:10). 인간들은 잠시 자기 뜻대로 자식을 징계할 때가 있으나 오직 하나님은 우리를 유익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려고 징계하시는 것이다.

4절 "요나가 성읍에 들어가 하룻길을 다니며 외치더라"

요나는 노방 전도자가 되었다. 오늘날 많은 지도자가 예배당에서나 강당에서는 사자후를 하지만 노방에서는 벙어리 생활이다.

최봉석 목사님은 평양 거리를 다니며 예수 믿고 천당가자고 소리쳤다가 순경에게 제지를 받았다. 최목사님이 순경에게 "자동차가 빵빵거리는 것은 왜 가만히 두시오"하니 "그것은 사람 치이지 말라는 것 아니오" "여보, 나는 당신들의 영혼이 치이지 말라고 하는 것이오"하였다고 한다.

부산의 이어순 여전도사는 깡통을 두드리며 부산 역전에 나가서 노방 전도로 많은 사람을 감화시켜 영광과 욕됨을 받았다. 요사이는 부부 전도사가 북을 둘러메고 매일 나가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부산 시내 각 교회에서 응원대들이 번갈아가며 나가 일치 협력하는 것이다.

생명에는 움직임이 있고 누워먹는 팔자는 무랑병이 드는 것이다.

요나는 확신의 전도자였으며 솔직한 전도자였다. 그는 주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였던 것이다. 전도자는 진실하여야 한다. 나는 내 말을 서로 도적질하는 자의 원수가 되고 나는 거짓 꿈을 예언하는 자의 대적이 되었노라 하셨다(렘 23:30-32).

요나는 체험의 전도자이다. 물고기 뱃속에서 삼 일간 고통 중에 몸부림을 치며 물고기 내장을 거머쥐고 결사적인 기도로 싸울 때에 아마 그의 몸뚱이는 전부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이다.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나가 전도할 때에 자기의 간증은 실물전도라고 그들에게 실제로 보여 주었을 것이다.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난 체험의 사람, 하나님의 위엄과 인자의 체험 또는 기도 응답의 체험의 전도는 권능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느니라(고전 4:20)

3. 니느웨의 부흥(욘 3:5-9)

5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고 굵은 베옷을 입더라"

요나의 능력있는 전도는 마침내 모든 백성의 심령을 찔려 참된 회개의 불이 일어났던 것이다. 배드로의 설교에 삼천 명이 회개하여 "선생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하는 상태와 방불한 역사이었다.

"하나님을 믿고"

요나를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었다. 저희는 데살로니가 선자와 같이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

금시과 굵은 베옷은 참회개의 표시인 것이다. 참된 신앙은 금식과 베옷으로 항상 인도하는 것이다. 부스러진 심령으로 부르짖음에 참 부흥은 일어나는 것이다.

6절 "왕이 보좌에서 일어난 조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상하 일체의 회개이다. 백성이 먼저 회개할 때에 아래서 일어나는 불길은 위에까지 미쳤다. 참된 불길은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는 전도할 때에 큰 고기만 잡으려 하지 말고 또 비천한 자를 구별하지 말고 진정으로 전해야 한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는 어리석은 말은 하지 말 것이다. 주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병든 자와 외로운 자의 친구가 되신 것이다.

또한 왕과 고관 대작이 겸손히 회개하였다. 참 부흥은 위에서 회개하여야 한다. 어떤 교회에서는 신자들은 은혜를 받는데 목사, 장로가 받지 않으니 참된 부흥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루는 뜨겁고 열흘은 냉랭해진다.

7절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것도 먹이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8절 "사람과 짐승이 다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를 부르짖으며"

철두철미한 회개의 표시인 것이다.

창조함을 받은 만물이 헛된 것에게 굴복하고 썩어짐에 종 된 것을 만물이 탄식한다고 하였다. 인간들의 죄는 만물에게까지 미쳤도다.

대구 고아원(애양원)에서 고아원 재단 자금을 위하여 고아원의 전직원과 어린아이들, 심지어는 육축까지 다 금식하고 기도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육칠 세 되는 어린 고아들도 다 금식하여 꼼짝 아니하고 눈물로 하나님께 호소하는데 돼지, 강아지들은 소리를 지르며 먹을 것을 달라고 야단법석을 하였다고 한다.

사람과 짐승의 구별이 거기에 있더라는 것이다. 금식 기도한 결과로 얻기 힘든 수백만 원이나 얻어서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다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이제라도 전심으로 금식하며 울고 애통하고 돌이켜 나에게 돌아오라(욜 2:12)하셨다.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라"

회개는 참회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술과 담배를 하는 불의한 습관에 빠진 자는 끊어 버려야 할 것이며, 첩을 둔 자는 첩을 내보내고 첩노릇 하던 자는 거기서 떠나고, 노름을 하던 자도 거기서 떠날 것이며, 우상을 섬기던 자는 우상을 내던지고, 거짓말하던 자는 거짓말을 버리고, 음란하던 자도 그곳에서 떠나라(엡 4:25-32참조).

삼손은 거기서 떠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종내 패가 망신한 것이다.

회개하라. 회개는 하나님의 뜻이요, 회개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천국 가는 문이며 성신받는 조건이다.

4. 하나님의 긍휼(욘 3:10)

10절 "하나님이 그 행위를 감찰하시매 악한 길을 떠난 줄 아시고 뜻을 돌이키사 저희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감찰하신다"는 것은 공의로우신 눈으로, 불꽃 같은 눈으로, 자비로우신 눈으로 선악의 시비를 가리신다는 것이다. 대소사 만단 사정을 감찰하신다. 어디서나 어느 때나 우리의 행위와 심사, 감정까지 다 감찰하시는 것을 깨달을 때에 의인은 위로가 있고 악인은 두려울 것이다. 여호와여, 나를 감찰하시고 나를 아셨나이다(시 139:1).

"뜻을 돌이키셨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악한 부모라도 그 자식을 징계하다가 너무 애원을 하면 채찍을 거두는 것같이 누구든지 진정으로 회개할 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를 앙망할 것이다.

죄 지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지옥가는 것을 보여 주신다. 우리 나라 민족도 위로부터 아래까지, 아래부터 위까지 재를 무릅쓰는 참회개의 역사가 언제나 일어날 것인가?

전도의 중요성을 기억하라. 전도는 참으로 가장 귀한 직분이다(약 5:20). 한 사람의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고 자신의 귀한 사명을 말씀하였으며(눅 19:10), 이것이 또한 주님의 지상 명령인 것이다(막 16:15). 전도는 주님이 같이 하시는 직분이며(마 28:20) 또한 성신받은 증거요(행 1:8), 영원히 빛나는 직분이요(단 12:3), 하늘에 그 이름이 있다고 하였다(눅 10:20).

많은 사람을 가르쳐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리라. 전도를 하는 것은 나 자신이 축복을 받는 비결이다.

선다 싱(Sundar singh)이 추운 겨울에 친구와 같이 가다가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를 업고 가자고 하니 그 친구는 우리도 추워 죽겠는데 그 사람을 어떻게 업고 가겠느냐고 거절하고 혼자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다 싱은 그 사람을 업고 땀을 흘리며 갈 때 그 사람도 깨어나고 자기도 추위를 잊어버렸다. 가다가 또 한 죽은 사람을 보니 아가 혼자 달아났던 자기의 친구였다.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힘써 전도하자.

눈을 들어 산을 보라. 만산 초목 우거졌구나. 곳곳마다 가시덤불, 굴러 있는 해골떼, 맹수 밥이 되는 영혼, 목마르고 굶주린 양떼를 주의 종아, 어찌할꼬!

1장에서는 은혜로 말미암아 뱃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2장에서는 기도로 말미암아 요나가 구원을 받고,

3장은 회개로 말미암아 니느웨가 구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