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요나의 불평과 하나님의 사랑의 교훈



1. 탕자형과 같은 요나(욘 4:1-2)

1절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탕자의 회개를 기뻐하지 않는 그 형과 같다. 니느웨가 전도를 받아 회개한다고 기뻐하지 않았다. 성결치 못한 증거이다.

나도 그런 사람을 보았다. 자기가 전도하여 교회에 나와 속히 깨달아 회개하고 열심히 믿어 교회의 귀염을 받고 당회의 신임을 얻어 먼저 집사가 되었으나 전도한 사람은 아직 아무런 직분을 받지 못했으니 "그거 괜한 사람 전도해서 나보다 앞선다"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다. 마음이 바르지 못한 전도자이다.

첫째, 그 전도가 사랑의 전도가 되지 못하고 의무적이었다. 율법적이었다.

둘째, 자기 중심적이었다. 회개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거두어질 때 슬퍼한 것이다. 원수들의 멸망을 선고한 것이 그대로 안 되면 자기의 면목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자기는 거짓말쟁이가 된 것이라고 했다.

2절 "여호와께 기도"

시기와 분노를 하면서도 기도는 한다. 대단히 좋은 일이다. 잘못하는 것 많고 실수하는 것 많아도 기도하는 사람은 회개의 가능성이 있고 주님이 기뻐하시며 마귀는 싫어한다.

"내가 고국에 있을 때 어찌 이 일을 말씀하지 않았나이까"

이것은 범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는 것이다.

아담이 범죄한 후 하나님께 들켰을 때 숲 속에 숨어서 당신이 지으신 아내가 먹으라고 해서 먹었다고 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고, 아내에게 전가시킨 죄의 혈통이었다. 소인은 자기 책임을 회피하나 위인일수록 책임을 강하게 가진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였다"

이제는 회개한 것을 다시 물리자는 것이다. 물고기 뱃속에서 죽게 된 때는 무조건 항복, 무조건 책임지고 회개하였으나 다시 살아나니 또다시 죄도 살아난다. 회개를 물리지 말라.

부흥 집회 때에 불 가운데서 모든 죄를 무조건 통회했으나 집회 후에는 또다시 그때 회개가 감정이라는 둥 상대방의 태도를 보아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심정과 태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참으로 성결치 못한 자의 심정이 아닌가?

그러나 요나는 놀랄 만한 확고 부동의 신조가 있었다. "주는 은혜롭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크게 자비를 발하여 재앙 주시기를 돌이키는 자로소이다". 이는 복음 신앙의 원동력이요, 사랑 실천의 원천이며, 소망의 빛나는 닻줄이다. 요나는 잘못하는 것 많아도 이 신조를 붙잡고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신 아버지를 믿을 때에 누구나 담대히 그의 보좌 앞에 나아가 호소할 수 있는 것이다. 할렐루야!

2. 요나의 불평(욘 4:3-4)

3절 "여호와여 이제 구하오니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내가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좋습니다"

또 이제는 죽여 달라는 것이다. 물고기 뱃속에서 죽어갈 대는 살려 달라더니 살려 놓으면 죽여 달라고 한다. 사람은 꼭 노루새끼 같다 한다. 노루가 앞다리는 짧고 뒷다리는 길어서 올라갈 때는 잘 가지만 내려갈 때는 꼼짝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려갈 때는 "할아버지, 할아버지"하다가도 올라갈 때는 "내 아들 놈, 내 아들 놈"한다고 한다. 사람들도 급하면 "아이고 하나님, 하나님"하다가도 조금 평안해지면 "하나님이 다 뭐야"하는 식이다. 어려울 때 일을 생각해서라도 항상 감사의 생활을 하지 않고 불평 불만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닌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는 무조건 항복하고 애원을 하며 살려 주시면서 감사하는 제사를 드리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나 이제 와서는 며칠이 못 되어서 불만 불평하니 가증된 것은 인간이로다.

어떤 할머니가 병중에서 고통스러워할 때에 한 번만 살려 주시면 남은 여생은 주의 뜻대로 괴로우나 즐거우나 항상 찬송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겠노라고 간구하더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후 며칠은 참으로 감사하고 기뻐하더니 또 다시 며칠 후에 보니 불평 불만으로 집안을 볶는다.

"아주머니, 왜 또 그러시오"하니 "이이고 목사님, 차라리 그때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공연히 살아 가지고 이 고통을 당합니다"하면서 그때 죽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 아닌가. 죽어 가면 살려 달라고 하고 살려 놓으면 죽여 달라니 그 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여기서 하나님의 가슴을 태우고 모든 불행을 불러들이는 것이다.

항상 축복을 원하는가? 받은 은혜를 항상 유지하기를 원하는가? 항상 감사를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 개구리가 되어 올챙잇적 생각을 못하면 안될 것이다.

4절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인자하신 주의 음성이다. 반성해 보라는 것이다. 흥분과 감정에 사로잡히지 말고 냉정히 자기를 반성해 보라는 것이다. 과거 불순종의 죄악을 생각해 보고 죄악으로 받은 형벌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때의 회개와 기도, 맹세, 겸손, 결심을 회고하라는 것이다.

3. 요나의 방관적 태도(욘 4:5)

5절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자기를 위하여 장막을 만들고"

성읍이 어떻게 되는가 보고자 전도하다가 중지하고 자기를 위한 생활을 하였다. 수수 방관적 태도이다. 불결의 사람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 중심적이다. 자기 뜻에 불합하다고 사명을 내버리고 니느웨를 불고(不顧)하고 자기를 위하여 영적 사업을 버리고 육적 사업으로 전환한 것이다.

오늘날 교직자와 성도들 중에도 자기 마음에 불합하다하여 사명을 헌신짝같이 버리고 세속에 나가는 자, 또는 교회 모든 직분을 다 사면(辭免)하고 뒷전에서 수수 방관적 태도를 취하는 자가 적지 않은 것이다. 자기가 방관하는 일이 잘되면 오히려 시기하고 은근히 잘 안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4. 박 넝쿨의 교훈(욘 4:6-8)

6절 "여호와 하나님이 박 넝쿨을 예비하사 요나의 머리에 그늘이 지게 하여 괴로움을 면케 하시더라"

하나님의 사랑이 또한 여기에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요나의 영혼만을 생각하지 않으시고 육체도 생각하셨다.

엘리야가 먹을 것이 없을 때에 까마귀를 보내어 떡을 물어 오게 하시고, 주님을 따르던 오천 명이 배고플 때에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이적을 베풀어 배부르게 하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게 하시던 하나님은 오늘날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 그런고로 무엇을 먹고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다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희 쓸 것인 줄을 아시느니라(마 6:30-32).

나는 종종 형무소에 가서 죄수들을 모아 놓고 전도를 하게 된다. 군산 형무소 죄수들을 보니 몸도 튼튼하고 옷도 춥지 않게 잘입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소장에게 묻기를 "이 죄수들의 밥을 얼마나 주어서 이렇게 튼튼합니까"하니 "오 홉 밥을 줍니다. 그러나 밖에 나가서 일을 하면 육 홉 밥을 먹입니다"한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아하! 공연히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할 뻔했구나. 이 다음에 만일 먹을 것이 없으면 식구들을 데리고 여기로 들어오는 것이 상책이겠다"고 생각하였다.

살인한 강도나 흉악범 죄수들도 감방에서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을 아니하는데 왜 하나님의 자녀들을 먹여 살리시지 않을 것인가? 작게 믿는 자여! 생각하라.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더라"

1절에는 전도하고 니느웨가 회개한다고 심히 슬퍼하더니 박 넝쿨로 인해서 심히 기뻐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어리석은 인간들의 대표이다. 사람은 참으로 기뻐할 것을 기뻐하지 못하고 기뻐하지 않을 것을 기뻐하는 거꾸로 된 세상이 아닌가. 어디 그 기쁨이 얼마나 가는가 보라.

7절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에 박 넝쿨을 씹게 하시니 시들어 마르더라"

벌레가 먹은 박 넝쿨! 즉 세상 만사는 모두 벌레 먹은 박 넝쿨인 것이다. 솔로몬의 부귀 영화도, 바벨론의 웅장한 경치도 벌레 먹은 박 넝쿨이니 홍안 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고 영웅호걸 열사들아, 뽐내지 말라. 서시(西施)라도 한 번 가면 그만이요 진시황의 만리장성도 벌레 먹은 박 넝쿨이 아닌가?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도 대통령에 네 번씩이나 당선되기는 하였으나 벌레 먹어 장사지내고 독일의 히틀러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중국의 왕정위(汪精衛)도, 일본의 천황 폐하 만세를 부르던 명치(明治), 대정(大正)도 죽고 소화(昭和)도 다 벌레 먹어서 죽었다.

꿈결 같은 이 세상에 산다면 늘 살까. 일생의 향락이 좋다 해도 바람잡이뿐, 벌레 먹은 박 넝쿨이 아닌가? 공산당 스탈린은 어찌되었는가?

8절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시어 해가 요나 머리에 쬐매 요나가 죽기를 구하더라"

박 넝쿨이 죽었다고 자기도 죽겠다고 한다. 어떤 부인은 자기 남편이 죽었다고 며칠 동안 먹지 않고 따라 죽겠다고 한다. 또 어떤 어머니는 귀한 독자가 죽었다고 식음을 전폐하고 "이놈아, 나도 데려가거라"하고 너무 울다가 상명지통(喪明之通)으로 눈이 멀었다고 한다.

또는 남편의 사랑을 첩에게 빼앗기고 자살하는 여인이 있고, 사업에 실패하고 절망에 빠져 비관 끝에 자살하는 자가 있는가하면, 연애하다 실연하고 음독 자살하는 청년 남녀가 허다한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고금 세계의 천만 사정이 꿈과 같이 지낸다.

이들은 다 벌레 먹은 박 넝쿨에 속아 이러한 일을 감행하는 가엾은 자들이다.

5. 하나님의 사랑(욘 4:9-11)

9절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거듭거듭 불순한 심정을 보실 때 주님의 가슴은 얼마나 아프실까? 인간의 하는 행동을 보아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나 자비와 긍휼히 많으신 자애 깊으신 아버지는 참고 참으시어 끝까지 크신 사랑을 베푸시나 인간들은 그 사랑을 무시하고 배반한다.

"내가 성내기를 죽기까지 하는 것이 합당하니이다"

완악한 심정이 반항하기 시작하면 더욱 한이 없는 것이다. 사울과 압살롬도 그러하였고 가룟 유다도 그러하였다.

자주 책망을 받아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멸망함을 면치 못하리라. 내가 사랑함으로 저희는 도리어 나의 대적이 되는구나.

10-11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수고도 아니하고 배양도 아니하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하는 이 박 넝쿨을 애석히 여기거든 하물며 내가 어찌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애석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 중에 십이만 명이 있으니 능히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자요 또한 육축이 많으니라"

박 넝쿨의 교훈은 참으로 실물 교훈이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알리고, 허무한 인생관을 보여 주시고, 잔인하고 무지한 인간성을 폭로한다.

자기가 심지도 않고 기르지도 않은 박 넝쿨 하나를 애석히 여기면서 큰 성읍 니느웨의 멸망을 원하고, 자기 머리에 내리쬐는 열로 인해서 오는 더위의 고통은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수많은 인간에게 멸망과 고통 주기를 바라고, 자기의 면목만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은 불결한 전도자를 책망하시는 실물 교훈이다.

어린아이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만물의 호생지덕(好生之德)을 원하시는 하나님을 알려 주신다.

하나님은 사랑일세 죄악에 타락된

우리까지 사랑하니 참사랑 아닌가

이와 같이 넓고 깊은 하나님 사랑에

아직 감복 않은 자야 사람이라 할까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자는 언제나 자기 중심에서 깨끗함을 받아서 하나님 마음에 일치 공명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취급하시었다. 하나님은 끝까지 인내로 그의 반항을 승리로 이끄셨다. 요나는 마지막에 잠잠히 항복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