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좁은 문에서 미궁까지


1. 인자의 영접(마 11;28; 요 6:37)

기독도가 문을 재삼 두드리니 인자(仁慈)란 사람이 마중 나왔다.

"그대는 누구며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구하는가?" 했다.

"나는 가련한 죄인으로 장망성을 떠나 천성 가려는 사람인데, 이문을 지나야 그리로 가게 된다 하므로 왔사오니 잘 지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면 만날 것이요, 두드리면 열어 주신다(마 7:7).

인자는 매우 좋은 일이라고 하며 문을 열고 속히 들어오라고 손잡아 끌어들였다.

"왜 이처럼 급히 재촉하시나이까?"

"여보, 저기 보지 못하시오. 이 근방에 강도 굴이 있는데 '마귀왕 사탄'이 여러 부하들을 거느리고 이 문에 들어오는 사람을 화살로 쏘아 죽이기 때문이오" 했다.

참말 이 문에 들어가려면 용단(勇斷) 있게 들어가야지 우물쭈물하다가는 "차차 마귀"의 화살에 찔리는 것이다. 하늘나라에는 용단성, 결단성이 필요한 것을 보여 줌이다.

옳다. 어떤 날 마귀 회의를 하는데, 회장 마귀가 가로되 "여러분이 어떻게 하여야 인생들을 망하게 하겠소?" 한 마귀가 일어나면서 "나에게 좋은 방법이 있소. 무엇인고 하니 사람들에게 무신론을 가르쳐 주면 잘되겠소." 다른 마귀가 "아니오, 그 말에는 반대요. 아무리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쳐도 사람들이 평안할 때에는 무신론이요, 어려움 당하면 임사호천(臨死呼天)으로 하나님을 찾으니 소용없소." 다른 마귀가 또 "아니오, 그 방법도 틀렸소. 그러기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가 십자가에 죽지 않았소? 아무리 하나님이 무섭다 해도 그의 십자가를 부여잡고 그의 공로를 힘입어 들어가니 그것은 소용없소."

다른 마귀가 "회장! 나의 제일 좋은 방법을 들어보시오. 하나님도 계시다, 또 십자가의 사랑도 있다, 그래도 너 아직 남은 때가 많으니 지금부터 덤비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차차 믿어라, 차차 회개하라, 이렇게 내일로 미루고 내달로 미루게 하다가 지옥에 툭 차 넣어 버리고 말자"고 하니, 그것 참 좋은 방법이라고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진실로 "차차 마귀"가 고약하다. "오른 눈이 범죄하면 그 눈을 빼어 버리고 오른 손이 범죄하면 그 손을 끊어 버리라"는 것은 용단 있게 결단성 있게 회개하라는 말씀이다. 기회는 올 때에 잡아야지 갈때는 잡지 못하는 것이다.

2. 효시의 일곱 가지 교훈(요 16:13)

기독도는 인자와 여러 가지 문답을 하고 인자의 안내를 받아 효시(嚆矢)의 집에 들어가서 일곱 가지 진리의 교훈을 받았다(요 16:13).

효시는 한 손에 등불을 켜 들고 기독도의 손목을 잡고 진리의 궁전으로 들어가서 일곱 가지 구경을 시켰다. 효시는 진리의 영으로 충만한 지도자이다.

1. 참 전도자

첫째 방에 들어가서 엄숙한 전도자의 화상을 보여 주었다. 세상일은 등에 두고 손에는 가장 좋은 책 한 권을 들고, 그 눈은 하늘을 향하였고 입술에는 진리의 율법이 써 있고 머리에는 황금의 면류관을 쓰고 많은 사람들을 쉬지 않고 가르치고 있었다.

이는 참 전도자의 상태를 보여 줌이다. 세상이 그를 향하여 못박고 그는 세상을 향하여 못박혔다. 그의 소망은 하늘에만 있어 위에 있는 것만 생각했다. 손에 든 책은 물론 성경으로 그 손에서 떠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도를 전하기를 쉬지 않았다.

부지런히 열심히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을 만나야만 그대의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것이다. 오늘의 전도자는 세상을 등지는 대신에 세상과 짝하는 음행하는 여인 같다.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 두더지처럼 땅만 내려다보고, 손에 성경 대신에 소설 잡지가 떠나지 않고, 입을 열어 진리를 말하는 대신에 무익하고 허탄한 말이나 없는지 반성하자.

2. 율법의 사명과 복음의 은총

또 한 방에 들어가니 대청에 먼지가 가득한데 한 사나이가 빗자루로 쓸고 있으니 쓸면 쓸수록 먼지는 더욱 일어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 때 한 소녀를 불러 물을 뿌리게 한즉 먼지가 다 가라앉고 정결해졌다.

이는 율법의 사명과 복음의 은총을 보여 줌이다. 대청에 먼지가 가득한 것은 항상 풍진 세파에 잠긴 우리 마음의 죄로 더럽힌 심령을 가리킴이요, 모세의 율법으로는 쓸면쓸수록 죄가 다시 일어나나니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사명은 있으나 깨끗케 할 힘은 없다. 소녀가 물을 가지고 물을 뿌리는 것은 은혜를 가리킨 것으로서 예수의 피와 말씀으로만 우리를 정결케 하심을 알려 주는 것이다.

율법과 은혜의 대조를 보라.

첫째,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오고 은혜는 예수로 말미암아 왔느니라(요 1:17)

둘째, 율법은 죄 값은 사망이라 하고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은 영생이라 하였다(롬 6:23).

셋째, 율법은 범죄한 영혼은 반드시 죽으리라 하고(겔 18:4) 은혜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영생하리라 하였다(요 3:16).

넷째, 율법은 네 맘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고(신 6:5) 은혜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그 독생자를 주사 화목제가 되셨느니라 하였다(요일 4:10).

다섯째, 율법은 네가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은혜는 네가 빚진 것을 탕감하리라 하였다(마 18:27).

여섯째, 율법의 선언은 정죄와 죽음이요(갈 3:10) 은혜의 반포는 칭의와 생명이다(롬 8:12).

일곱째, 율법은 새 심정과 새 정신을 가지라 하고 은혜는 내가 너희에게 새 심정을 주리라 하였다(겔 36:26).

여덟째, 율법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람이 무엇을 할까 함이요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 함이다(갈 3:13).

아홉째, 율법은 하나님의 무서움을 보여 명령에 순종하게 하고 은혜는 하나님의 긍휼로 사람을 권면한다(롬 12:1).

열째, 율법은 사람에게 거룩함을 요구하고 은혜는 사람에게 정결을 주신다(살전 5:23-24).

열한째, 율법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요 은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아오시는 것이다(눅 19:10).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이다.

열두째, 율법은 사람이 무엇을 해서 구원을 받으려는 것이고(창 3:7, 무화과나뭇잎 치마), 은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해주시는 것이다(창 3:21, 가죽옷).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3. 급욕과 인내

또 셋째 방에 들어가서 두 아이 급욕(急慾)과 인내(忍耐)를 보았다. 어떤 이가 재물 보따리를 주니 급욕은 혼자 다 가지고 매우 기뻐하나 미구에 다 없어지고 인내는 마지막까지 불평 불만없이 지내다가 더 좋은 상을 받았다. 참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마 24:13).

이는 천성 가는 성도는 급욕이가 되지 말고 인내가 되라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이라. 일시 눈앞의 정욕으로 영원한 장래 기업을 잃지 말라는 것이다(고후 4:16-17).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기업을 팔아먹은 것처럼 되지 말라. 잠간 향락에 무정한 부자는 영원히 지옥 형벌을 받고, 모든 고난을 견디면서 의를 지킨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서 영원한 천국 복락을 누리지 않았는가?

4. 마귀의 냉수와 성령의 기름

또 한 곳에 이르니 담 안에 불이 났는데 어떤 사람이 물통의 냉수를 끼얹어 불을 껐다. 그러나 불은 거의 꺼지다가는 또다시 일어났다. 웬일인가 하고 돌아가 보니 담 밖에서 기름을 붓는 사람이 있었다. 이 불은 신앙의 불, 은혜의 불이다.

악마는 이를 미워하여 각양의 시험 냉수를 끼얹었다. 그러나 배후에서 부어 주시는 성령의 기름은 오늘까지 우리 믿음을 보전시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요, 마귀의 냉수와 보혜사의 역사를알려 주심이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오직 감사할 뿐이다.

5. 선한 싸움

또 한 즐거운 곳에 이르러 굉장한 궁전을 보았다. 거기 들어가는 사람들은 문 앞에서 성명을 기록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한편으로 무장한 폭도들이 방해를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 놈들이 무서워서 뒤로 물러가는데 어떤 다른 무장한 사람 하나가 나타나서 결사적으로 그 놈들과 싸워 이기고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궁전 안에 노랫소리가 있어 "오라 오라 들어오라 영원한 영광은 네 것이로다" 하였다.

이는 우리가 하니넘 나라에 들어가려면 선한 싸움을 힘써 싸워 영생을 취하라(딤전 6:12)고 가르치는 것이다.

너희가 죄를 대적하되 피 흘리기까지는 힘쓰지 아니하였느니라(히 12:4). 마귀로 더불어 싸우고, 죄로 더불어 싸우고, 자기로 더불어 싸우구 세상으로 더불어 싸우는 생활이다. 잘 싸워라, 용사여. 복 있는 자 그 누군고 우리 임금 오실 때에 개선 장병이로다. 능히 서서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라(엡 6:11).

6. 배교자의 말로

다른 방에 들어가니 캄캄한 감방 안에 앉아서 고랑을 차고 신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물으니 "나도 전에는 주의 제자로서 덕행 있다는 말 듣고 천성 가던 사람인데 점점 게으르고 사욕을 좇아 거룩한 도리를 거역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큰 죄악에 걸려 아주 타락하여 소망없는 자 되었노라"고 자백했다.

이는 배교자의 말로를 보임이다(히 6:4-6).

평양 모란봉에는 20년간 목사 노릇 하다가 타락하여 사주책 보는 점쟁이가 되어 마귀 전도자 노룻 하는 자가 있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 3:12).

7. 대심판의 꿈

마지막으로 한 침실에 들어가서, 한 사람이 자다 깨어 벌벌 떨고 땀을 흘리며 공포 중에 있는 것을 보았다.

이유를 물으니 "이제 꿈을 꾸었는데, 하늘이 캄캄하고 천둥 번개가 무섭게 치고 검은 구름이 일고 나팔 소리가 나고 화염이 충천하고 하늘에서 소리 있어 불러 이르되, 죽은 사람 다 일어나 심판 받으라 하니, 많은 사람을 갈라 악인은 지옥에 잡아넣고 선한 사람은 천국에 보내는 광경을 보고 무서워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장차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대심판이 있어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지리라. 면양과 산양을 갈라놓는 날이 있을 것이다. 선과 악이 혼동되고 의와 불의가 지금 당장에 보응이 없다고 안심하거나 낙심 말라. 태양이 구름에 가리웠다고 태양이 없어진 것인가?

효시의 일곱 가지 교훈은 기독교 구원의 요령이다. 참전도자를 만나 살 길을 찾고, 율법으로 죄를 깨닫고 복음의 구속을 받은 자는 참고 기다려 여러 가지 시험이 오지만 성령의 보호가 계속 되니 염려할 것 없고, 악마와 세상과 죄로 힘써 싸워 그리스도의 정병 될 것과 타락자를 거울 삼아 근신과 존절로 마지막에 알곡과 면양이 되어 영원한 복락을 누릴 교훈인 것이다. 신구약의 진수를 잘 가르쳤다. 그러나 아직 등에 있는 짐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도 신자들 중에는 아직 죄를 철두 철미하게 회개한 경험도 없이 구속의 안심도 없이 그저 수양적으로 도덕적으로 교회에 출입하고 지식적으로 성경을 상고하는 자가 적지 않은 것이다. 체험적인 신앙이 귀하다.

기독도는 받은 은혜를 감사하면서 효시와 작별하고 노래를 불렀다.

일곱 가지 기이한 일 여기 와서 보았구나

이 내 몸을 인도하여 좁은 길로 인도하네

여러 가지 보배의 말 분명하게 가르치네

시시 때때 생각하니 명심 불망하리 로다.

3. 십자가의 은총(갈 2:20 ; 골 1:20)

동경하던 십자가가 구원의 담 모퉁이 갈보리 언덕에 서 있고 그 아래는 무덤이 있었다(골 1:20).

기독도의 무거운 짐은 십자가 밑에 이르자 뚝 떨어져 굴러 무덤으로 들어가고 다시 보이지 아니했다. 기독도는 너무 시원하고 깨끗하고 기쁘고 즐거워서 "우리 주께서 괴롬받으심으로 나에게 쾌락을 주시고, 우리 주께서 죽으심 으로 나에게 생명을 주셨도다"고 불렀다.

감사의 눈물이 절로 흘렀다. 그때에 천사 세 분이 나타나 첫째 분은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를 사하였다" 하시고, 둘째 분은 남루한 옷을 벗기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혀 주시고, 셋째 분은 이마에 인을 쳐 주시고 구원의 증표를 주셨다.

천사 세 분은 삼위 하나님의 대표이다. 성부로 죄를 사하시고, 성자로 우리의 의가 되시고, 성신으로 인을 쳐 주심으로 너는 내 것이라고 하는 증표(사 43:1)를 주었다. 잘났어도 내 것이요 못났어도 내 것이다.

내 것은 애착심이 있고 내 것은 잘 간수하고 내 것은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은 나의 것이니 위대한 교환이 아닌가? 이렇게 귀중한 체험이 있는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것이 되고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 되느니라"(고전 1:18).

우리 죄를 소멸하시는 권능, 하나님과 화목시키는 권능,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목을 주시는 권능, 우리 생활에 성결을 주시는 권능, 마귀를 박멸시키는 권능이시다. 할렐루야!

큰 구원의 담 모퉁이 십자가에 나아가서

오랫동안 지고 다닌 중한 죄짐 풀리었네

너는 내 것이라 하는 세 천사의 증표받아

내 마음의 이 세상도 천국같이 감각되네.

4. 잠쟁이 세 사람(롬 l3:11 ; 엡 5:14)

기독도가 앞으로 행하여 언덕 아래 내려갈 때 길 곁에 잠쟁이 세 사람이 누워 잠을 잤다. 그 이름은 우몽(愚蒙), 해타(懈惰), 자시(自恃)라 했다(엡 5:14).

기독도는 깨워 주려고 "우몽아, 웬 잠을 이렇게 자느냐? 위험하구나" 하니 "위험하기는 무엇이 위험해. 염려 말라" 하였다.

"해타야, 일어나거라."

"아이고! 조금만 더 자고‥‥‥‥"했다.

"자시야, 일어나거라" 하니 "야, 이놈아! 너는 네 걱정이나 하지 남의 걱정은 왜 하니" 하고 그냥 잠을 잤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러한 잠꾸러기가 있는 것이다.

1. 우몽 - 너무 몰라서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감각이 둔하여 깨닫지 못하고 밤낮 잠을 자는 신자가 있다.

2. 해타-게으름쟁이. 안일에 취하여 잠을 잔다. 게으른 자는 손을 그릇에 넣고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문이 돌쩌귀를 따라 돌아가는 것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르느니라(잠 26:14-15).

3. 자시-자만해서 잠잔다. 되지 못하고 된 체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고, 없고도 있는 체 체증이 들어 잠잔다. 밤낮 들어야 그 소리지 하면서 잔다.

성경에는 잠자다가 실패한 사람이 많다.

노아는 벌거벗고 잠자다가 아들들한테 망신당하고, 롯은 잠자다가 자기 딸에게 범죄하고, 사울은 잠자다가 물병과 창을 다윗에게 다 빼앗기고, 다윗은 늦게 잠자다가 우리아의 아내에게 범죄하고, 삼손은 들릴라의 무릎 베고 자다가 눈 뽑히고 연자맷돌 돌리고, 요나는 배 밑창에 들어가 잠자다가 고기 뱃속에 들어가고, 시스라는 야엘의 장막에서 잠자다가 귓구멍에 말뚝 박혀 죽고, 이스보셋은 낮잠 자다가 배가 찔려 죽고, 솔로몬 때 미련한 여자는 아이 깔아 뭉개 죽이고 다른 여자는 제 아이 도적맞고 솔로몬한테 재판받았다.

유두고는 3충 다락에서 잠자다가 떨어져 죽을 뻔했고, 베드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자다가 말고의 귀를 베고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다.

깨어 기도하여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깨어라. 이때는 자다가 깰 때라(롬 13:ll).

이 잠쟁이들같이 길가에 누워 저도 아니 가고 남도 못가게 하는, 천국문 가로막고 방해하는 자가 교회 안에 많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계 3:2).

기독도가 이 잠쟁이들을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내버리고 갔더니 천로역정 하권에 보면 강도를 만나 큰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회개할 기회를 잃으면 후회 막급이다. 볼지어다.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벌거벗고 다니지 말고 자기 옷을 지켜 부끄럼을 보이지 않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5. 위선과 시의(마 23장 ; 요 10:1)

기독도 가는 길에 담을 껑충 넘어오는 두 사람이 있었다. 웬 사람인가 하고 물으니 "우리는 허영촌(虛榮村)에 사는 위선(僞善)과 시의(恃義)인데 시온산으로 가노라" 했다.

기독도가 "여보, 천성 가려면 법대로 문으로 와야지 담을 넘어오면 절도요 강도라고 성경에 말씀하지 않았는가" 했다(요 10:1).

"흥 !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우리 동네에서는 좁은 문이 어디라고요. 당신들은 '돌아갈 귀' 하면 우리는 '질러갈 귀' 한다"고 위선이와 시의는 천국에를 일약 천국 하려 한다.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껑충쟁이들이다.

신자들 중에는 잠꾸러기도 걱정이지만 껑충쟁이도 걱정이다. 늙은 노인들은 대개 항상 잠자고 깔고 뭉개지만 젊은이들은 대개 교회 안에 들어온 지 며칠도 안 되어 벌써 제가 다 한다고 껑충거리고 뽐내니 걱정이다.

교회 말썽꾸러기는 위선이와 시의다. 교회에서 그 사람의 정도도 보지 않고, 은혜의 경험도 보지 않고, 좀 열심 있어 보이고 돈푼이나 있고 지식 있고 똑똑해 보인다고 그대로 설익은 것을 교회 성직을 다 맡겨 직분을 주면 종래 실패하는 자가 십상팔구(十常八九)는 되는 것이다.

위선과 시의를 삼가라. 두 사람은 기독도더러 "당신이 문으로 들어온 것이나 우리가 담 넘어 들어온 것이나 다른 것이 무엇이오? 자세히 보니 그 옷이 다르구려"라고 했다.

"옷만인 줄 아시오? 이런 증표 있나, 증표 있어? 그리고 내 이마에 인친 증거는 보지 못하시오 십자가 밑에서 얻은 증표가 있어야 하오"

두 사람은 "그 증표는 없지만 그대로 간다"고 고집을 부리며 따라오니 다 천성 가는 것 같다. "나는 성도 많은 저 천국을 가는 길일세 할렐루야 할렐루야" 노래도 같이 불렀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위선과 시의를 분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아는 것이니 조만간 판결 날 것이다.

6. 간난산(마 14:24 ; 살전 3:3)

일행은 같이 찬송하며 나아가다가 험준하고 위험한 산에 다다르니 이름은 간난산(艱難山)이다. 몸 아끼어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쉬운 길 찾던 껑충쟁이들이 어찌 이런 산을 넘으리오 좀 쉬운 길을 찾아 산허리를 돌아보니 한 길은 위험한 길이요 한 길은 패망의 길이다.

두 사람은 다 곁길로 나아가 실족하여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기독도는 "내 아무리 어렵지만 곁길로 갈 사람인가? " 하고 좁고 험한 정도로 천신만고(千辛萬苦) 넘어갔다.

간난산 노래 들어보라.

간난산아 높다마는 어려운 줄 모르겠네

이리 가세 저리 가세 생명 길이 여기로다

왼편 길로 가는 이야 멸망함을 면할소냐

천신 만고한 연후에 무진 복락 누리리라.

기독도는 무릎을 꿇고 기어 올라갔다.

너희 가운데 고생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 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어다(약 5:13). 쉬지 말고 기도하라. 힘써 기도하자.

일본인 신도양(新島襄)씨는 말하기를 "하늘나라에는 무릎으로 가야한다"고하였다. 무릎의 생활은 두말할것 없이 기도의 생활이다.

환난은 인간으로 하여금 기도로 가게 하고 기도는 환난으로 하여금 인간에게서 떠나게 하느니라.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성도와 산은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다.

노아의 아라랏산,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모세의 시내산, 엘리야의 갈멜산, 우리 주님의 갈보리 산은 다 넘기 어려운 간난산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 무릎을 꿇어 영광의 산이 되었다.

7. 휴식정의 졸음(잠 6:6-11)

산 중턱에 정자 하나가 있는데, 이는 주께서 길가는 사람을 위하여 피곤할 때 쉬라고 지어 놓은 것이다. 기독도는 너무 피곤하여 휴식정(休息亭)에 앉아서 십자가 밑에서 천사가 입혀 준 의복을 만져 보고 특히 거기서 얻은 증표를 꺼내어 쥐고 좋아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 증표를 떨어뜨렸다.

그때 한 사람이 깨워 가로되 "갈 길 바쁜데, 웬 잠을 이렇게 자는고 개미한테 가서 공부를 좀 해야 되겠다"고 했다. 기독도는 화닥닥 깨어 보니 밤새도록 잠을 잤다. 정신이 들어 급히 달려 올라갔다. 산마루에 거의 올라가니 웬 두 사람이 숨이 하늘에 닿을 듯이 급히 마주 달려왔다.

두 사람의 이름은 심경(心驚)과 회의(懷疑)라. 그들이 말하되 "우리도 천성 가던 사람인데 가는 길에 사자 두 놈이 있다. 사람이 살고 보아야지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같이 돌아가자"고 했다. 기독도는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돌아가도 장망성에서 죽을 터이니 나는 나아가다가 죽어도 영생이 있으니 그대로 가겠다" 하였다.

심경이와 회의는 "너 혼자 잘 가거라. 우리는 돌아간다" 하면서 달아났다. 기독도는 맘을 진정하고 가려 해도 무서움과 의심이 점점 더 엄습해 왔다. 그때에 천사가 주신 증표를 꺼내어 보고 위로를 받으려고 찾아보니 아무리 뒤져 보아도 간 곳이 없었다.

"이것, 큰일 났구나! 이것 웬일일까? " 어디서 떨어졌는가 생각해 보아라(계 2:5). 곰곰이 생각하니 "아하! 내가 휴식정(休息亭)에서 꺼내 보면서 졸다가 떨어뜨렸구나. 이것 어찌하나! "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번민하고 애통하나 무슨 소용 있는가, 다시 찾아야지. 무릎을 꿇고 자기의 우매한 것을 용서하여 줍소서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왔던 길을 도로 내려갔다.

여러 시간 올라왔던 길을 도로 가니 공연한 헛걸음이라. 내려 가면서도 간절히 그 증표를 다시 찾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내려갔다. 혼자 탄식하기를 "잠깐 쉬라고 하는 정자에서 내 육신 평안과 향락을 위하여 방심하였으니 참으로 불쌍한 인간이로다. " 마침 쉬던 정자에 와 보니 잃었던 아멘 증표는 떨어진 그곳에 그대로 있었다.

너무 감격하여 주께 감사하고 하늘을 쳐다보니 해는 서산에 넘어갔다. 날이 저물었다. 밝은 대낮에도 가기 어려운 산길을 방중에 어찌 넘어가나 또 주저앉아 통회하고 아무리 하여도 아니 갈 길이 아니니 용기를 내어 올라갔다. 배는 고프고 다리는 아프고 목은 마르고 피곤할 대로 피곤하여 죽을 지경이었다.

참으로 실패하기는 쉬워도 회복하기는 힘든 것이다. 격언에 "일분 동안에 실패한 것이 백 년에 회복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주께서 "자지 말고 깨어 기도하여 시험에 들지 말라"고 부탁하신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하시는데, 베드로는 그날 밤 무심하게도 잠만 자다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저주까지 하고, 은혜 회복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하였는가? 전설에 베드로는 닭이 울 때마다 그 실패를 생각하여 울었다고 한다.

내가 아는 교역자와 신자들 중에도 한때 그렇게 열심히 충성스럽게 주 위하여, 교회 위하여 나가던 형제 자매들이 잠시 쉰다고 하다가 아주 타락한 사람이 한두 사람 아니고, 다시 회복하려하여도 삼손이 머리털 깍이듯이 힘을 잃고 허덕이는 신자들을 많이 보았다.

자전거 탄 사람은 잠시라도 쉬지 말고 페달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정거하는 때에는 나가 넘어진다. 여름에는 덥다고 산으로 바다로 피서를 가느라고 야단하는 동역자 여러분들, 조심하라. 어떤 목사가 강에 나가 낚시질하다가 물에 빠져 죽어 미신사회에 비방거리가 되고, 또 주일에 뱃놀이를 나갔다가 배가 뒤집혀 익사자가 종종 일어나니 주께 영광되지 못한다.

예수와 동행, 동거, 동락, 예수로 만족하자. 내가 만주에서 순회 전도할 때 부흥회 앞 자리에서 어떤 자매가 아이를 업고 와서 자기 진상을 고백하며 애통해 했다.

고국에 있을 때에, 어느 교회 장로의 딸로 보육학교를 졸업하고 그 교회 유치원 보모로 있으며 교회 찬양대를 지도하다가 미혼 처녀로서 같은 찬양대의 아내 있는 집사와 사랑이 지나쳐 깜박 실수하여 불의한 관계로 소문이 나자, 두 남녀는 만주로 와서 아이를 둘이나 낳고 살림을 하지만 남자는 아주 타락하여 방탕하고 술 주정뱅이가 되어 밤낮 그 여자를 때리며, 나는 너 때문에 망했노라고 고통을 주니, 집에 돌아갈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냐고, 아직 그 양심은 살아있어 그 속에서 발버둥이를 치는 것이었다.

가문을 망치고, 교회를 망치고, 자기 신세를 망친 이 일은 백년 아니라 천년 만년에도 무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이러한 실패로 우는 남녀가 어찌 한두 사람에 그치리요 일시 찰나의 꿈꾼 향락이 영원히 무르지 못할 가련한 신세, 불행의 종국을 가져옴을 생각하여 방심하지 말라.

천국 가는 행인들아, 만사만단(萬事萬端)에 종국을 생각하라. 그러나 아주 자포 자기 낙담하지 말아라. 죄 지은 사람이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이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리라(잠 24:16).

배전의 용기 백배로 은혜를 회복하라. 주는 너를 사랑하신다.

8. 발목 잡아맨 사자(수 1:5 ; 벧전 5:8)

기독도는 밤중에 산을 천신 만고로 올라갔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다행히 산꼭대기에 아름다운 집인 미궁(美宮)이라는 굉장한 궁전이 있었다. 천성 주인이 길 가는 나그네 위하여 예비한 집이었다. 그 집을 바라보고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는데, 조금 전에 심경과 회의가 보고 무서워 도망하던 사자 두 놈이 미궁 문 앞 가는 길 좌우편에 엎드려 있는 것이다. 이를 본 기독도는 본능적으로 공포와 의심에 놀래어 뒷걸음질 쳐 도망하려는 찰나에 경성(警醒)이라는 사람이 "기독도야, 그 사자를 무서워하지 말아라. 발모가지 잡아맨 사자다. 그 짐승을 여기 둔 것은 행인들의 믿음을 시험함이니 어찌 그리 담력이 약한가?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정로로 가운데로만 오라" 했다.

기독도는 새로 용기를 내어 사자 두 마리 사이로 지나가는데 웬걸 좌우편에서 사자들이 "으르렁 으르렁" 달려들었다. 그러나 몸을 해치지는 못했다. 발모가지를 잡아맨 까닭이다. 만일 좌로 치우치면 좌편 사자에게 상할 것이요 우로 치우치면 우편 사자에게 물릴 것이다.

그렇다. 악마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으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이다. 성도들은 좌우로 치우치지 말아야 만사에 형통하리라(수 1:7). 극단적 성질을 가지고 발모가지 잡아맨 사자 보고 경거망동(輕擧妄動)하다가는 반드시 악마의 발톱에 찢기고 좀더 심하면 아주 마귀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왜정 시대나 해방 후에 세상 술에 취하여 너무 앞장 서 나가면서 교회에 속화를 불러들이는 발람의 길을 밟고, 또 한편 신령파라고 자칭하면서 뒤로 물러가 좌편 마귀에게 사로잡혀 니골라당, 즉 이단의 걸음을 걷는 자 많음은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교회 강단을 탕탕 두드리면서 국가가 있은 후에 종교가 있다고, 국가 없는 종교가 무슨 소용 있느냐고 웅변을 토하는 목사 보고 "야! 참애국자로구나" 하고 알고 보니, 과거 왜정 시대 황국신민 만드느라고 돌아다니며 시국 강연 많이 해서 그렇게 애국강연도 잘하는 모양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는 소위 진리 옹호파라고 자칭 신령파라고 하면서, 현대 교회는 다 마귀당이며 다 마귀 자식이라고 악수도 하지 않고 한자리에 앉지도 않고, 교회당은 다 불살라버리고 새 예배당은 못짓고 개인집, 술집, 우상 숭배하던 미신자집, 요리집에 모이면서도 자기들만 신성하다니, 신사 참배하지 않은 계명은 잘 지켰는지 모르나 제일 되는 사랑의 계명은 버렸으니 그 무서운죄를 어찌할꼬?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50보로서 100보다. 숨은 부끄럼이 적지않다. 함께 회개하고 속화와 이단 퇴치하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힘써 싸워 다시는 그런 길을 밟지 마사이다.

9. 미궁의 안식(히 4:10-11 ; 엡 1:13)

기독도가 미궁에 들어가니 근신(勤愼), 경건(敬虔), 현지(賢智), 인애(仁愛)란 성도들이 나와서 영접하여 배고픈 기독도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기독도에게 마실 것을 주고, 병든

기독도에게 약을 발라 주고 평안방이란 방에서 잠을 재우고 몇날 동안 안식하게 하여 피곤한 몸이 새 힘을 얻도록 했다.

그리고 서재로 데리고 가서 구약의 성도들의 역사와 전기를 다 구경시키고, 무기고로 데리고 가서 옛날 주의 종들이 사용하던 모든 기구를 구경시키고 다시 기독도에게도 무장시켜 주면서, 이제까지는 무장이 없어도 왔지만 앞으로는 더욱 어려운 시험이 있을 터이니 무장을 단단히 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 구원의 투구, 의의 호심경, 진실의 띠,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성신의 검을 들려 주었다. 그런데 기독도의 무장은 앞에만 시켰지 뒤에는 시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돌아서지 말라는 것이다. 돌아서면 위험하다.

이 미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회를 가리킴인 듯하다.

이 미궁의 성도들을 보라.

1. 경성-미궁 문 지키면서 오는 사람을 경고시키고 면려시키며 영접하여 준다. 대개 주의 전의 하루가 다른 곳의 천 날보다 아름다우니 내가 하나님의 성전 문을 지키는 것이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 승하도다(시 84:10).

성도들을 항상 깨우고 면려시키는 파수꾼의 사명은 중한 것이다. 거짓 파수꾼은 다 소경이요 무지하여 벙어리 개와 같이 짖지 못하고 다 꿈꾸는 자요 잠자기를 즐기는 자로다(사 56:10).

진실한 파수꾼은 자기가 경성하고 다른 사람을 경성시킨다. 엘리야와 같이, 나단과 같이, 세례 요한과 같이 신구약의 모든 성도들은 참된 경성이었다. "오! 주여,오늘날 우리 교회에 이러한 경성의 파수꾼을 많이 보내 주소서."

2. 근신(딛 2:12)-자신에 대한 생활에 근신하자.

첫째, 말에 근신하라(약 3:2). 혀는 곧 불이다.

화살은 한번 쏘면 다시 집어 올 수 있지만 말은 사람 귀에 들어가면 다시 빼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 행위에 근신하라. 일거수 일투족, 한번 앉고 서는 것, 한번 웃는 것을 근신하여야 한다.

어떤 여자는 공연히 실없이 웃기 잘하다가 봉변당할 뻔하였다. 남의 남자를 보고 공연히 웃다가 그 남자가 밤중에 담 넘어 들어오니 소리를 지르나 너 나를 보고 항상 웃지 않았느냐, 이제 새삼스럽게 왜 배척하느냐고 하였다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어디를 가든지 또 무슨 일을 하든지 할 수 있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기 위하여 조심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께서 저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한다고 하셨다(요 17:19).

3. 경건-이는 하나님께 대한 태도이다. 세상의 도덕 군자는 근신함도 있고 의롭게 살기도 하나 하나님께 대한 경건은 없는 것이다. 참 경건은 하나성의 성임재(聖臨在) 앞에서 항상 기도와 진리 묵상과 거룩한 봉사와 신앙 생활이 있어야 한다. 경건한 모양은 있으나 경건한 능은 버린 자가 되지 말라(딤후 3:5).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라(딛 2:12).

4. 현지(잠 1:2-3)-세상을 향하여 지혜롭고 명철하여야 한다. 주님께서도 순하기는 비둘기같이 하고 지혜롭기는 뱀같이 하라고 하셨다(마 10:16).

지혜는 흥보석보다 귀하고 많은 정금보다 귀하니 모든 하는 것이 다 여기 비교할 수 없느니라(잠 8:11).

그래서 솔로몬은 이 지혜를 간구하여 만고 역대에 비교할 수 없는 현지의 임금이 되었고 그 부귀를 더할 수 없이 얻었다(대하 1:7-13).

5. 인애(고전 13장)-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생활이다.

종교계에 위대한 것 다섯 가지가 있다고 고린도전서 13장에 말하였다. 천사와 사람은 방언을 하는 웅변, 모든 학술을 통달하는 지식, 산을 옮길 만한 믿음, 내 있는 것으로 구제하는 자선 사업, 내 몸을 불사르는 순교다.

그러나 여기에 사랑을 빼 놓으면 쓸데없다고 하였다. 진실로 그러한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웅변으로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재주가 있어도 사랑 없는 웅변은 앵무새와 축음기 같고, 아무리 천문지리(天文地理) 상통하달(上通下達)의 지식이 있어도 사랑 없는 지식은 인간 사회에 해독제(解毒劑)가 되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 없는 신앙은 미신이다.

미신 이단이 무엇인가? 사랑 없는 신앙이 미신의 극단이요, 이단의 괴수자이다. 아무리 구제와 자선 사업을 많이 하여도 사랑없는 자선은 위선밖에 될 수 없다. 또 내 몸을 불사르는 순교자라도 사랑 없는 순교는 지옥의 밑창 귀신밖에 될 수 없다.

아, 위대한 사랑 인애여 ! 미궁의 세도는 인애스러워야 한다. 이들이 모인 교회는 참말 천국이다.

자신에 대하여 근신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경건하고, 세상을 향하여 현지로우며, 사람을 대하여 인애의 품성을 가진 자라야 미궁의 성도이며 참교회의 회원 자격을 가진 자로다.

10. 미궁의 사명과 특색

1. 미궁은 하나님 계신 궁전이다.

2. 미궁은 사랑의 뜨거운 가정이다.

3. 미궁은 진리를 배우는 학교이다.

4. 미궁은 안식을 주는 평안방이다.

5. 미궁은 그리스도 신부를 단장시키는 미장원이다.

6. 미궁은 그리스도의 정병을 무장시키는 무장장이다.

7. 미궁은 작은 천국이다.

평안방이 있다는 말 들은 지가 오래더니

연약하다 죄인 몸이 여기 와서 즐기도다

미궁이야 높고 높다 주의 은혜 아니런가

걱정 근심 다 버리니 작은 천국 여기로다.

다음의 일곱 가지 특색이 있어 교회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당신들의 교회는 이러한 특색이 있는가?

1. 교회는 하니님이 계신 궁전이니 거룩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임마누엘(聖臨在) 앞에서 성별되어 있는가?

어느 교회당에서는 돈받고 영화 구경시키는데 미신자들이 구경와서 담배를 피웠다. 예배당에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하니 "여보, 내가 예배당에 왔소? 돈 내고 활동 사진 구경 왔지" 하니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네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대개 말씀을 들으러 나가는 것이 미련한 자의 제사 드리려는 것보다 나으니라(전 5:1-2).

2. 교회는 사랑의 뜨거운 가정이다. 사랑 없는 가정, 사랑 없는 교회, 사랑 없는 사회는 지옥이다. 마귀 소굴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밤낮 싸움과 파쟁으로 목사패, 장로패, 가난뱅이패, 서울패, 시골패, 함경도패, 경상도패, 늙은이패, 젊은이패 등등 예배에 패 자가 쭉 들러붙었다. 이 다음 천국 가서도 패 자 골라 차고 다니려는가? 회개하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근심하신다. 형제들 싸움에 제일 애가 타고 슬퍼하는 이는 부모일 것이다.

3. 교회는 진리를 배우는 학교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여야 한다. 또한 신도들은 다른 소리 들으려 하지 말고 진리요 생명이신 주의 말씀을 사모하라.

어떤 교회에 의사가 처음으로 나왔다. 그 교회 목사이 생각에 큰 고기가 걸렸구나, 어떻게 하면 내 설교가 저 의사의 마음을 만족하게 할까 하고 성경 한 절 보아 놓고는 위생 강연을 한참 하였다. 의사는 그만 기분이 불쾌하였다.

마지막 목사의 손을 잡고 "목사님, 왜 그러십니까? 목사는 성경 말씀을 전해야지 왜 위생 강연을 하셨습니까? 아무리 위생강연 잘하시면 나만큼 하겠습니까" 하였다 한다. 주의 어린 양들은 사이비(似而非)한 독초 먹고 다 병들어 쓰러진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것이 기근이로다.

4. 안식의 평안방인 교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기독도들을 영접하여 하늘의 평강, 주님 가슴에 있는 참평안을 나누어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하였으니, 부드럽고 연한 가지가 열락하여 한데 엉크러진 그늘 아래로5-6월 염천(炎天)에 길가는 나그네들 다 와서 쉬고 먹고 마시고 즐겁게 하는 사명이 있는 것이다.

5. 교회는 그리스도의 정병인 복음의 결사대를 무장시키는 무장장이다. 오늘 악마를 위하여 사탄을 위하여 또 자기들의 그릇된 주의와 사상을 위하여 재산을 버리고 명예를 버리고 처자를 버리고 생명을 초개같이 여기는 악마의 결사대는 벌떼같이 일어나는데, 주를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는 적은 것 하나 희생하지 못하는 비겁자들이 어찌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겠느냐? 복음의 용사들아, 일어나라 !

6. 교회의 사명은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단장시켜 오시는 주님을 맞게 함에 있다(벧전 3:3-4). 새 신부가 새 신랑 방에 들어가려면, 그래도 목욕도 하고 새 옷도 갈아입고 분도 좀 바르고 향수도 좀 뿌리고 들어가야지 더러운 몸 그대로 들어갔다가는 첫날 저녁에 소박 맞을 것이다. 예수의 신부들은 거룩함으로 단장하라(고후 11:2 ; 요일 3:3).

겉 단장을 그만두고 속 단장을 하자(벧전 3:3-4).

7. 교회는 작은 천국이다. 하늘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의와 평강과 기쁨이다(롬 14:17). 초대교회와 같이, 안디옥 교회와 같이,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되어라.

어떤 사람은 현대 교회의 부패함을 들어서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는 일이 있지만 그것은 은혜이다. 오순절 교회에도 아나니아 부부가 있었고, 예수의 거룩한 제자들 가운데에도 가룟 유다가 있었으니 유형적 지상 교회에 아무리 이상적 교회라 할지라도 불순한 분자가 도무지 없을 것은 아니다.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거룩하고 참된 천국 교회원들은 예수를 그 중심에 모신 신령한 보이지 않는 교회 성도들로 엉크러져 있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교파를 초월하여 상대적 입장에 서지 않고 절대적 입장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신이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명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에게 속하고 너희는 그리스도에게 속하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속하였느니라.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으로서 자랑하지 말라(고전 3: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