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허화시에서 환락산까지


1. 진충의 열매 미도(잠 11:30, 14:25)

신앙의 동지를 허화시에서 잃은 기독도는 외롭게도 피곤한 몸을 끌고 허화시를 피하여 피하여 나왔다. 차라리 얼른 죽은 진충이 부러웠다. 얼른 죽기보다 오랫동안 값있게 잘살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에녹이 3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여 장기간에 거룩한 생활을 한 것은 일찍 순교한 아벨보다 못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기쁘게 하여 노아 홍수 전에 육신 승천의 영광을 얻은 것이 아닌가? (히11:5)

순교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 아무나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진충은 순교했는데 기독도는 죽지 않고 여전히 순례의 길을 계속했다. 주님의 모든 제자들은 다 순교하였는데 사도 요한은 고종명(考綜命)한 것이다.

그때 허화시에서 미도(美徒)란 성도가 기독도의 뒤를 따랐다(오천영 목사님 번역한 책에는 유망(有望)이라 하였다.)

미도는 허화시 사람으로서 기독도와 진충이 그 시장에서 언어와 행동을 한 것이나 또한 애매하게 고생 당하고 진충이 죽으면서도 핍박자를 축복하는 것을 보고 크게 감동받아 단연 허화시를 떠나 기독도와 같이 가기를 결심하고 나선 것이었다. 기독도와 결의 형제를 맺고 끝까지 천성까지 동행한 사람이었다.

● 생명의 면류관

이는 곧 진충의 열매이니 생명의 면류관이다. 진충의 죽음이, 진충의 피 한 방울이, 눈물과 흘린 땀 한 방울이 결단코 헛되지 않았다. 밀알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썩음으로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음과 같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그 태도에 사울이 회개하여 바울이 됨과 같이 진충의 거룩한 죽음이 미도를 낳은 것이다.

만주 명월구 교회에 있던 이원호 장로의 간증을 들으면, 그의 부인이 독실한 신자였는데 지성으로 자기의 불신 남편을 위하여 기도하고 권면하다가 3년 전(간증 당시부터)에 세상을 떠나게 두었다. 중병의 고통 중에도 자기는 불구하고 주야로 그 남편 회개시켜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다가 마지막 운명시에 혀는 꼬부라지고 입술은 타서 말은 못하고, 그 남편을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 남편은 무슨 유언이나 하려는 줄 알고 귀를 들이대었더니 뜻밖에 죽어 가던 아내가 정신이 나서 남편의 목을 끌어안고 귀를 쥐고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한참 쑤셔 놓고 운명하고 말았다.

그 남편은 무섭기도 하고 일변 이상하여 "이 사람이 죽으면 죽었지 왜 남의 귓구멍을 쑤셔 주는가? 오! 깨달았다. 내가 너무 귀가 막혀 신령한 음성을 듣지 못하니 귀 좀 열어 들으라고 하는 일이로구나"하고 죽은 시체를 부둥켜안고 대성 통곡했다고 한다.

"너는 어쩌면 그렇게 지성으로 죽는 최후 순간까지도 네 고통을 생각지 않고 이 무지한 남편의 영혼을 위하여 애쓰다가 즐겨 죽느냐. 목석이 아니거든 이제 내가 못 깨닫겠는가" 하고 회개하여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지금은 훌륭한 장로로 교회의 일 많이 하는 중이다. 진충의 죽음은 이러한 것이다.

2.이도의 무리(벧후 2:13-16)

허화시에서 나올 때에 미도만 아니라 이도(利徒)란 자가 따라 왔다. 저는 교언성(巧言城) 사람으로 재산가이다. 그의 일가로는 기변(奇辯), 이심(二心), 개가(皆可)가 있고 그 중에도 그 성읍 교회 목사 이언(二言)은 저의 외삼촌이라 했다.

그의 작인은 백사(百舍)요 장모는 아첨(阿諂)이라 하고 훌륭한 학교를 졸업하였는데, 탐심시(貪心市) 호리동(好利洞) 고등상업학교를 마치었다.

교장은 어리(漁利) 선생이요 동창생은 거재(巨財), 애전(愛錢), 인색(吝嗇)이요 학과는 매매하는 법, 이익 얻는 법, 속이는 법. 대접하는 법, 후려 먹는 법, 형세 믿고 눌러 먹는 법, 종교적 가면을 쓰고 모리는 법, 자선 사업의 미명 아래 명예와 사리사욕을 채우는 법 등을 다 배웠다.

저의 종교는 그렇게 엄격한 것이 없고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가고 결코 거슬러 다투지 아니하며 언제나 햇빛이 찬란하고 사람들이 환영할 때에는 길거리에서 좋아하는 무리들이다(벧후2:13-16).

기독도와 미도는 비가 오든지 바람이 불든지 춥든지 덥든지 모험적으로 나가지만 이도의 무리들은 항상 꾀만 부리고 기독도와 미도의 이상과 맞지 아니하여, 그만 두 패로 갈리어 기독도와 미도는 앞으로 나아가고 이도와 그 동창생들은 뒤에 떨어져 기독도의 일을 비평하고 있었다.

● 두 가지 계통

옛날이나 현대 교회에도 기독도의 계통이 잇는 동시에 이도의 당파가 있는 것이다. 아벨이 있는 동시에 가인이 있고, 이삭 대 이스마엘, 야곱 대 에서, 룻 대 오르바, 여호수아와 갈렙 대 불신앙의 열 정탐꾼, 열두 제자 중에도 가룟 유다와 오순절 교회에도 아나니아 부부가 있었다.

루터의 복음주의가 있는 동시에 교황의 교권주의가 있었다. 오늘날도 영계의 계통에 순복음 신본 정통이 있는 동시에 육에 속한 인본주의자들이 많은 것이다.

소위 예수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고, 십자가의 구속도 믿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 다시 오시는 예수를 그대로 믿지 않고, 그저 예수를 한 선생으로 모범적 인물로만 모시고, 십자가의 죽음은 한 의협심으로 정의를 위한 자기 개인의 죽음이라 했다.

자기들을 온전히 주께 드리어 신앙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과 예수를 자기들 편리대로 이용하려고 애를 쓴다. 사람이 보기에는 영리한 것 같고 자기들 생각에 스스로 지혜롭다 하나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고 그들의 미래는 가련하게 될 뿐이다.

● 거꾸로 찬 주머니

이도의 무리들은 앞서간 기독도를 비난하기 좋아했다.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동생 눈의 티를 빼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람을 만드실 적에 주머니 두 개를 주어 남의 허물 주머니는 뒤에 차고 내 허물 주머니는 앞에 차라고 하셨는데, 못된 인간들은 주머니를 바꾸어 차 남의 허물 주머니를 앞에 차고 자기 허물 주머니를 뒤에 차 밤낮 남의 허물만 보고 제 허물은 모른다고 하니, 이것이 이른바 자과 부지(自過不知)라는 것이다.

이도의 무리는 그러한 자들이다. 성도들은 남의 허물 보기 전에 먼저 자기 잘못, 자기 흉을 잘 보아야 한다. 편론(偏論)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다른 사람을 편론하지 말라. 다른 사람을 편론하는 편론으로 너도 편론을받을 것이라고 주님이 산상 보훈에서 말씀하셨다(마7:1). 주머니를 똑바로 차야 할 것이다.

이도의 무리가 기독도를 비평한 조건은, 너무 강경하고 고집하여 제 생각만 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의사를 무시한 것이요, 또 눈치도 모르고 형제도 모르고 모범적으로 나가기만 좋아한다는 것이요, 의를 너무 지나치게 한다는 것이요, 마지막에는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다. 그리고 저들이 모여서 기독도에게 질문할 것을 토론하였다. 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도가 봉급을 많이 받아야 성경도 부지런히 보고 설교도 좋은 설교가 나오고 전도자의 인격이 올라간다는 것이요. 둘째, 교회 법규를 너무 엄중하게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좀 어기어도 많은 사람의 마음을 맞추어 나갈 것이라고 하고 셋째, 사업을 번창시키기 위하여 교회에 들어와서 장사도 잘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고 또 부자 아내를 취하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유익하게 쓰면 좋다는 것 등의 그럴 듯한 질문을 가지고 기독도를 따라와서 거재란 자가 선봉에 서고 이도의 무리들이 논전(論戰)을 걸었다.

이상의 문제로 질문하여 대답하여 달라 하니 기독도는 그 말을 듣고 여지없이 반박하였다. 예수의 종교를 내세워 가지고 세상의 이익을 구하는 것은 제일 가증한 일이며 위선자요 이단자이며 악마와 마법사라고 하였다.

다시 몇 가지 실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1. 하몰과 세겜 같은자(창34장)로 야곱의 딸과 재산을 탐하여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인 할례를 하고 전멸을 당한 자와 같음.

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같은 위선자로 갈따귀는 걸려 먹고 약대는 통으로 삼키는 착취자와 같음.

3. 가룟 유다와 같이 금전을 사랑하다가는 배은 망덕자 됨

4. 마법사 시몬이 돈가지고 성신 사려다가 저주받음과 같음이 아니냐고 하였다.

이도의 무리들은 다시 말을 못하고 뒤로 물러갔다.

3.재산은 데마(딤후 4:10)

기독도와 미도는 안일(安逸)이란 땅을 지나는데 재산(財山)의 데마라는 자가 불렀다. 여기 좋은 금광이 있으니 조금만 수고하면 큰 부자가 되리라 했다. 미도가 그 소리를 듣고 형님 우리 좀 가 봅시다 했다.

기독도는 당연히 거절하고 미도더러 우리 갈 길 바쁜데 한검음이라도 더 빨리 가야 한다고 했다. 돈을 탐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라 하지 않았는가. 데마는 계속하여 만단으로 꼬였다. 기독도는 꾸짖어 가로되 "데마야, 너는 우리 주의 원수라. 너는 가룟 유다의 길로 우리를 가르치려느냐? 그 앞길은 멸망이니라" 하고 책망하여 물리쳤다.

뒤에 따라오던 이도의 무리들은 데마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천성 가던 길을 멈추고 재산으로 가서 데마와 같이 금광으로 다들어가서 죽었는지 금을 캐느라고 아니 나오는지 도무지 종무소식(終無消息)이다.

네 사람의 마음 보소 금을 보고 따라가네

세상 이득만 취하다가 노상 절명하였구나

온 천하를 다 얻고도 제 생명을 잃으면

무슨 유익 있으리오 모든 탐심 물리치소.

이는 인생 중년에 당하는 시험인 것이다. 이도와 데마는 다 황금 만능주의자요 물질주의자들이다. 특별히 데마는 바울 사도를 따라 전도 사업에 몸 바치었던 자인데 세상을 사랑하여 나갔다(딤후4:10).

청년 시절에는 재물에 대한 욕망이 비교적 적으나 중년에 들면 가정의 책임이 중하게 되므로 달라진다. 위로 노부모를 모시고 아래로 아이들을 많이 길러내고 또한 사회 사업과 종교 사업에 대한 욕심이 왕성하므로 경제에 대한 관념이 강해지고 자본 획득에 수단을 부리려는 것이다.

교역자들도 식구가 점점 늘어가고 자녀들 교육 문제가 박두하여지면 성직을 끝까지 봉행(奉行)하지 못하고 그만 데마의 걸음과 발람의 길을 걷는 자가 적지 않은 것이다.

●악마의 콩

서양 격언에 "악마의 콩을 삼가라"는 말이 있다. 무슨 고리인가 하면 돼지를 길러 팔면 사 가는 사람이 됫박에 콩을 담아 가지고 돼지 우리 문을 열고 앞에서 뿌리면서 도수장으로 끌고 간다. 도수장은 그 돼지 어미도 죽고 아비도 죽고 돼지 형제들도 다 죽은 곳인데, 그 돼지도 고소한 콩 주워 먹는 재미에 꿀꿀 따라 가다가 도수장 문안에는 더 많이 쏟아져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갈까 말까 하다가 거기 들어가면 죽을 줄 알면서도 에라 죽어도 먹고 죽자 하고 들어가 콩을 입에 물자마자 장치하였던 전기에 맞아 즉사하는 것이다.

그날로 사람의 밥 반찬감이 되고 만다. 그 돼지는 콩을 먹고살려고 하다가 콩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돼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악마도 인생들 앞에 돈이라는 콩을 뿌리면 돈돈 하다가 돈으로 망하는 것이다.

물은 배를 뜨게 하는 데 대단히 필요한 것이지만 만일 배에 구멍이 뚫어져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배는 물에 잠겨 물로 망하고 만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물질의 힘으로 산다. 그러나 욕심의 구멍이 뚫어져 물질을 탐하다가는 물질로 망하는 것이란 말이다. 황금은 흑사심(黑邪心)이라 하였고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하셨다. 다시 말하면 너희는 먼저 생명 있는 말을 앞세워라. 물질 마차는 따라가리라.

●말과 마차

그러나 어떤 멍텅구리가 마차를 앞에 세우고 말을 뒤에 세우고 가자고 하면 일이 될 것인가? 오늘날 유물주의 사상이나 자본주의자들은 다 마차를 앞에 세우고 말을 뒤에 세우는 거꾸로 된 세상이라. 이리하여 세상이 복잡하게 되어 가는 것이다.

유물이냐 유산이냐? 오늘 소위 신자들이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을 무신론자요 뮤물주의자라고 비웃으면서도 실제로 신자들과 교역자들의 실생활을 보면 하나님 없는 자같이 너무나 물질에 인색하고 물질을 사모하고 물질을 따르는 자가 적지 않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내가 도로 찾으면 네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12;20).

4.소금 기둥(눅 17:32)

두 사람은 멀리 가지 않아 길가에서 뒤돌아다 보는 여자 소금 기둥을 보았다. 그 이마에 기이한 글자를 썼으니 "롯의 처를 생각하라" (눈18:32)고 하였다.

기독도는 미도더러 "이 소금 기둥은 우리를 경계시킴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의 아내가 소돔성에서 나와 가지고도 재물 생각으로 뒤돌아보다가 저 모양이 된 것이니 우리가 만일 데마의 말을 듣고 재산으로 갔다면 어찌됐을 것인가. 저 여인과 같이 사람의 구경거리가 될 번하였소." 미도는 "내가 그렇게 어리석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저 여인의 죄와 나의 죄가 구별이 없건마는 나는 롯의 아내처럼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이 일을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유혹에 들지 말자고 피차결심하고 나아갔다. 그 소금 기둥은 한길 복판에 서 있어 저도 안 가도 남도 못 가게 방해했다.

오늘날 교회에 생명 없는 신자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사데 교회와 같이 교회문 가로막고 저도 아니 가고 남도 못 들어가게 하는 소금 기둥 신자가 얼마나 많은 것인가. 롯의 아내는 형식적 신자요, 물질 토대한 신앙이요, 구원을 경히 보는 자요, 불순종하는 신자, 두 마음을 품어 몸은 세상에서 나왔으나 마음은 여전히 세상에 있는 자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고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약4:8-10).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넜으나 광야에서 애굽 생각만 하다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광야에 쓰러진 것도 전감(前鑑)을 삼아야 한다(고전10:5-6).

5.생명간의 쾌락(시36:8 ; 겔47:3,10)

기독도와 미도 두 사람은 맑은 강가에 이르니 이 강 이름은 "하나님의 강"이라고도 하고 "생명강"이라고도 했다. 두 사람은 이 강변길로 매우 상쾌하게 걷고 있었다. 강 좌우편 언덕에는 푸른 나무가 있어서 여러 가지 아름다운 열매가 맺혔고 그 잎사귀는 여행 중에서 나기 쉬운 여러 가지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재였다.

그리고 이 강변에 잔디밭 언덕이 있어서 기묘한 백합화가 만발하고 사시 장춘(四時長春)이었다. 여기서 두 사람은 목욕도 하고, 생수도 마시고, 과일도 먹고, 누워서 자기도 하고, 즐겁게 얼마 동안 지내면서 노래를 불렀다(시36:8-9).

생명 강수 맑은 물에 놀다 가세 우리 행인

기화 요초 만발하여 나의 마음 즐겁도다

생명과와 생명수로 피곤한 몸 새 힘 주네

천성 복락 받는 자가 오직 우리뿐이런가.

이는 우리 신도들이 때를 따라 일 년에 수차례씩 부흥회를 열어 놓고 은혜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부흥 성회 중에서 굶주렸던 심령이 진리의 생명과로 배불리 만족하고, 목이 갈한 심령들이 강과 같이 흐르는 생명수로 해갈을 얻으며, 병들었던 영육이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란 주의 말씀으로 치료를 받으며, 여러 가지 시련으로 시달려 피곤하던 심령들이 방초 동산 잔잔한 물가에서 안식을 얻음은 보좌에 않으신 어린양이 선한 목자 되시고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그 눈에서 눈물을 다 씻어 주시는 하늘의 은총을 지금도 맛보게 되는 것을 가르침이다(겔47:6-12).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오

내가 이복을 받는 그 원인과 비결은

성신이 내게 계심이라.

그러나 이곳이 늘 있을 곳은 아니다. 다시 떠나야 한다. 변화 산상의 베드로처럼 물질 망막 만들어 놓고 영계 인물들을 머물게 하려는, 또 썩을 은혜에 도취하여 자기 중심주의로 나가려는 자 되지 말라. 우리가 여간한 은혜에 자족하여 은혜 뒤 끝에 실패하기 쉬운 것이다. 다음에 두 사람의 하회(下回)를 보라.

6.사도의 초장(욘1:3)

생명간을 떠난 저들은 쉬었다 가려니까 다리가 더 아프고 피곤하고 생명강 생각만 났다. 그래서 좀 쉬운 길을 찾아 노방원(路傍原)이란 언덕에 올라 보니 자기 좋은 사도 초장(私道草場)이 있다. 미도는 이 길이 정로(正路) 같지 않다고 하니 기독도는 관계없다고 하면서 자기만 따라오라 했다.

이거야말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판이었다. 그 앞에 또 한 사람이 마침 가는데 이름은 허시(虛時)다. 이 길이 천성 가는 길이냐고 하니 그렇다 하면서 자기만 따라오라 했다. 조금 가다가 날은 저물고 허시가 보이지 않았다.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어디서 꾸르륵 소리만 났다. 아마 자기만 옳다고 하는 구렁텅이에 빠진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그제야 길을 잘못 든 것을 알고 돌아서니 캄캄하고 풍우 대작(風雨大作)하고 천둥 번개하며 창수가 나서 참길을 잃어버렸다. 어찌 할 줄 몰라 헤매다가 남의 의책(疑柵)이란 울타리의 그늘에서 비를 피하고 앉았다가 피곤한 중에 둘이 잠이 들었다.

저희가 잠든 곳에서 멀지 않게 의혹성(疑惑城)이란 곳이 있었다. 그 주인은 절망(絶望)이라는 장대한 자였다. 저가 아침에 일찍이 밖으로 산보하다가 두 사람이 자기 지경에서 자는 것을 보고 크게 소리하여 깨워 가로되, 너희는 어떤 놈인데 내 지경에서 잠을 자느냐고 했다.

두 사람이 대답하되 우리는 천성 가는 사람인데 길을 잘못 들어 여기 있노라고 하였다. 절망은 너희가 밤중에 내 지경을 범하였으므로 내게 죄를 지은 자이니 함께 가자 하고 잡아 끄니 두 사람이 벗어날 수 없이 꼼짝 못하고 끌려갔다. 그곳은 자살한 자가 많은 곳이었다.

거기서 수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밤까지 구류됐다. 한 조각 떡이나 한 방울 물도 주지 않는 아주 적막한 곳이었다. 기독도가 더욱 한탄한 것은 자기이 경솔한 탓으로 미도까지 고생시키는 것이었다. 그래도 미도는 원망하지 않고 기독도를 위로했다. "이같이 고생하는 것이 오히려 굴러서 복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하며 마음을 진정하라고 했다.

방초 동산 우거진 데 다리 저는 사람들아

무슨 일로 실족하여 저 지경이 된단 말인가

정로 버린 사람들은 저와 같이 될 것이니

괴로우나 즐거우나 바른 길로 용진하라.

은혜의 생명강 지나 사도 초장에서 고생하였다. 부흥회 뒤 끝에 방심하면 시험받기 쉬운 것이다.

● 은혜받은 후에 조심하라

어느 교회는 부흥회 후에 그 신자들이 잠깐 다녀간 부흥사만 사모하고 자기 교회 목사는 배척하는 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설교가 재미없다는 둥 목회를 잘못한다는 둥 불평 불만으로 교회파동을 일으킨다. 자기 장래 신세를 망치는 자를 종종 보게 되는 것이다.

부흥사가 부흥회 잘못시키면 신자들은 예수께로 인도하지 않고 자기에게로 인도한 절도나 강도 되기 쉽고, 신자들이 은혜 잘못 받으면 더욱더 교만하고 자만하게 된다. 고집과 자만으로 불순종의 사도 초장을 걷다가 절망옥(絶望獄)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부흥회나 수양회 참석하는 것은 마치 환갑 잔치 가서 한밥 잘얻어 먹는 것과 같은 것인데, 제 집 와서 환갑 잔치 생각만 하고 자기 집 밥맛없다고 굶으면 자기 혼자 배고플 것이다.

그리고 괴로우나 즐거우나 정로로 가야지 사도 초장으로 나가다가는 봉변을 당하는 것이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것을 다시스로 가다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가 무슨 환난 질고에 들게 되거든 먼저 사도 초장의 걸음이나 없었는가 하고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하나님의 시련이요, 공중에 부는 바람은 마귀 시험이요, 지상의 창수는 세상과 인간의 시험을 가리킴이다.

이러한 시험에 부딪힐 때에 반석 위에 지은 집은 꾸준히 승리 하려니와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당신들의 신앙은 반석 위의 집인가? 알곡이냐? 쭉정이냐?

7.절망옥을 벗어남(욘2장)

절망의 포로 된 기독도와 미도는 옥중에서 많은 신음을 했다. 절망의 아내는 불신(不信)이었다. 두 사람은 날마다 때리고 자살을 권고하고 위협했다. 그래서 기독도는 견디다 못해서 토요일 밤에 칼을 뽑아 자결하려 했다. 미도가 그것을 보고 "형님, 이것 웬일이오? 남 죽이나 저 죽이나 살인은 마찬가진 줄 모르시오?" 하니 기독도는 "우리가 이 고생하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니 죽어 땅 속에 묻히는 것이 절망옥에 있는 것보다 나을지라. 같이 자살하자"했다.

미도 가로되 "우리가 눈앞의 어려운 것만 보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노형이 이전에는 매우 담대하더니 그전 용기 다 어디 갔소? 아볼루온과 싸우던 용기, 사음의 골짜기를 지나던 그 담력, 허화시에서 참던 그 인내가 지금은 어찌되었는가? 이제 자살이란 말이 됩니까? 우리 기도합시다. 기도하지 않고 공연한 걱정과 근심 하였소" 하고 두 사람은 밤새워 기도했다.

절망의 아내 불신이 그 남편더러 "내일은 일찍 그 두 놈을 끌고 나가 집 뒤로 가서 해골 등을 보이고 자살하라고 해도 아니하면 때려 죽입시다. 그러나 무슨 곡절이 있는가 보오. 혹 누가 놓아 주기를 바라든지 혹 열쇠가 있는지도 알지 못하겠소." 절망이 "그 말이 유리하니 내일은 그 몸을 뒤져 봅시다" 했다.

그 밤중에 두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결사적으로 하더니 기독도가 홀연히 놀라 깬 사람과 같이 "이것 보시오. 내가 자유로 걸어 다닐 만한 이때에 이렇게 고통의 자리에 있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 수 없다"고 하면서 품에서 열쇠를 꺼냈다. 그 열쇠는 약속의 열쇠였다.

"이전에 은인을 만났을 때 받아 둔 열쇠인데, 아무 문이라도 열면 열릴 것이다. 내가 깜빡 잊어버렸노라" 하니 미도는 "천만다행이라. 빨리 시험해 보자" 하고 열어 보니 다 열렸다. 그날은 주일 새벽이었다.

이때 옥문 열리는 소리가 덜컥 나니, 절망 부부는 "앗! 이놈들 달아나는구나" 하고 따라 나왔다. 그러나 절망은 밤에는 힘을 쓰나 햇빛만 비치면 양각풍 경련증이 나므로 꼼짝 못하고 시들시들하다가 나가 자빠지고 말았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주님 부활의 생명이 절망의 옥에 갇힌 자에게 새 소망과 힘이 되는 것이다.

천국 가는 행인들아 왼편 길로 들지 마소

무지하다 저 절망이 가두어서 죽이려네

불행 중에 다행이라 구사 일생 하였구나

후세 사람 경계코자 이 돌비를 세우노라.

악마는 우리로 하여금 절망하게 한다. 의심과 불신앙으로 우리를 가두어 죽이려 한다. 소망은 하나님이 주시고 절망은 마귀가 주는 것이다.

소망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절망은 우리에게 죽음을 준다. 절망은 대적의 기세를 높여 주고 소망은 난관을 극복시키는 것이다.

● 마귀 전람회

어떤 사람이 마귀 전람회에 갔더니 모든 죄악을 써서 붙여 놓았다. 우상죄는 얼마요, 불효죄는 얼마요, 간음죄, 도적질죄, 거짓말죄 등 각색 죄악에다가 정가를 붙였는데, 그 중에 제일 고가로 팔리는 것이 절망이란 방망이라 했다.

그래서 전람회장 마귀에게 묻되, 살인죄 도적질 죄보다도 또 다른 죄보다 절망의 방망이에 제일 고가로 붙인 것은 무슨 여고냐 하니, 마귀 대답이 그것을 모르느냐 사람들을 제일 많이 망하게 하는 것은 이 방망이라고 했다.

옛날 가룟 유다도 이 방망이에 맞아 자기 선생을 팔아 먹고 자살하였으며, 사울왕도 이 방망이로 망하고,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하던 항우도 이 방망이에 맞아 오강에서 자살하고, 유력한 정치가, 사업가, 문학가, 유망한 청년 남녀들이 절망의 방망이로 다 망한다 했다. 그런고로 절망하거나 낙망하지 말라. 절망은 금물이다. 질병 중에도 절망하면 병세가 더 악화된다.

일본의 하천풍언(賀川豊彦)씨는 폐병으로 위지 사경이었으나 신앙과 소망으로 기적적으로 회생하여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동네 교회 이갑득이란 청년은 중학교 3학년인 18세에 그만 문둥병이 들어 온 가족이 절망에 빠질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홀연히 하늘에서 소리 있어 죽어도 영생이라 하는 음성을 듣고 기쁨이 충만하여 한바탕 춤을 추고 내려왔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신유의 이적으로 그 병은 물러가고 이제는 4남매를 두고 전도사 일을 충성스럽게 하고 있는 실물 교훈이 되었다.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는가? 말로는 유신론을 주장하면서도 실제 생활을 보면 참으로 가련하게도 하나님 없는 것과 같은 생활이 아닌가? 무슨 걱정, 무슨 고통, 무슨 염려로 절망하느냐? 오직 내가 항상 바라고 내가 주께 찬송하기를 더하고 더하리이다(시71:14). 오직 나는 여호와를 앙망하리니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노니 나의 하나님이 내 말을 들으시리라. 내가 비록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지라(미7:7-8).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

8.절망옥 지나 낙산의 위로(요16:20,24)

절망옥을 벗어난 두 사람은 대번에 환락산(歡樂山)에 이르렀다. 이 산은 임마누엘산, 향기로운 꽃과 아름다운 나무, 정결한 시내가 참말 한 폭의 그림같이 가위(可謂) 별유 천지요 비인간이라. 여기서 목욕도 하고, 목마르면 물도 마시고, 시장하면 과실도 마음대로 따먹으니 자유로운 곳, 문자 그대로 즐거운 곳이었다.

● 고통은 즐거움의 근본

절망 지나 낙산이 옴은 천리 원칙이다. 고통은 즐거움의 근본이다. 십자가 후에는 부활의 승리,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작은 고통에는 작은 기쁨이 있고 큰 고통에는 큰 기쁨이 오나니 어려운 일 당한 대로 족한 은혜를 주신다. 인자의 날은 해산하는 수고와 같다고 하셨다.

아기 어머니 해산 시에는 죽는 고통이 있으나 아이만 출생하면 기르는 그 재미, 그 즐거움을 해산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다(요16:21). 지금은 세계적으로 고통 절망 상태이다. 그러나 앞으로 세계적 환락산의 기쁨이 우리 앞에 전개됨을 바라보아 즐거워할 것이다.

왜정 시대 36년의 긴 고통 중에도 특히 9년간 전쟁 중에 받은 그 고통에 경제적으로 사상적으로 말 한마디 하는 자유가 없고 자녀를 빼앗기고 성을 갈고 숟가락까지 빼앗기고 밤낮 방공 연습하느라고 떠들 적에, 나는 그때 국내 국외로 돌아다니며 방방 곡곡에서 "지금은 해산하는 수고라 잠깐만 참으면 아기 낳는다"고 부르짖었다.

과연 1945년 8월 15일에 조선 독립 만세를 부를 적에 그 기쁨이 어떠하였는가? 그러나 해방되었어도 그 전과 같지만 이제 참되고 즐거운 해산을 바라보자.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어 타락한 우주에도 하나님의 신이 운동하심으로 새로운 천지가 되지 않았는가? 지금은 악마의 반동으로 이 세계의 정계와 교계와 사상이 모두 혼돈이요, 흑암이 공허함이 많으나 지금도 하나님의 영은 운동하고 계시니 반드시 환락의 신천지가 전개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멸절당하여도 거룩한 자손이 이 땅의 근본이 되리라(사6:13).

해산의 즐거움을 보리라

아 하늘 나라는 가까웠구나

진리의 세계는 전개되누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벗어나고서

광명한 세계로 빨리 나가자.

9.환락산의 목자들(벧후1:5-7)

낙산에는 양치는 목자들이 있었다. 이름은 지식(知識), 경험(經驗), 근수(謹守), 성실(誠實)이었다. 목자들은 하얀 양떼들을 몰고 푸른 방초 동산 잔잔한 물가로 인도했다. 그 목자들과 교제하며 지나온 모든 보고를 하고 많은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의 장막에서 잘 대접받고 하룻밤 편히 쉬고 이튿날 아침에 목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 이단(異端)이라는 봉우리에 올라 그 아래를 내려다본즉 그 밑에는 떨어져 산산이 부서진 사람의 시체가 많았다.

기독도가 그것을 보고 웬 해골이냐고 하니 그것은 순복음을 떠나서 이단의 교리에 떨어져 저 모양이니 너무 높이 올라가려는 자와 이단산에 가까이 가려는 사람들은 저 해골을 보고 정신을 차리라고 했다.

다음에는 경계산(警戒山)이란 봉에 올라가 보니 거기 어떤 무덤 속에 소경들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하니 의혹성의 절망에게 잡혀 두 눈을 빼이고 그 무덤에 던져진 것이라 했다.

기독도와 미도는 자기들의 지난 일을 생각할 때 소름이 끼쳤다. 다시 한 곳에 이르니 산 옆에 한 문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그 속은 매우 캄캄하고 연기가 자욱한데, 신음 고통하는 소리가 들리고 유황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옥 구경을 시켜 주었다.

마지막 한 곳을 더 구경시키는데 청경(請暻)이라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목자들이 망원경을 주며 저 건너편을 바라보라 했다. 그대로 하였으나 전에 구경한 너무 놀랍고 무서웠던 것을 생각하여 손이 떨려 자세히 보지 못하고 천성문과 약간의 영광만 바라보았다. 목자들의 친절한 교훈으로 지식과 경험을 얻게 되었다.

목자들의 이름이 지식, 경험, 근수, 성실인 만큼 진리의 풍부한 지식과 신앙의 모든 경험, 회개와 중생의 경험이 있고 성결의 경험이 있으며, 기도의 응답과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체험하는 사실을 하나하나 체득하였으며,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삼가 지켜 법도대로 행하며,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교회의 맡은 사명에 성실히 충성 되이 받드는 참된 목사와 거룩한 장로격을 이룬 자들이었다.

이단봉에 올라 이단과 사설을 분별하여 악한 사람을 용납하지 않고 스스로 사도라 하되 아닌 자를 시험하여 그 허황한 것을 드러내는 자들이요, 경계산 봉에서 의혹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순례자들을 경고하는 파수꾼의 직책을 하는 자들이며, 청경에 올라 바라보는 천성의 그리운 열정이 점점 더 높아가는 생활이다.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경건에 형제 화목을 더하고 형제 화목에 사랑을 더하여 하나님의 품성과 그리스도의 분량에 향상하는 귀한 존재들이었다(벧후1:5-7).

자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이 기다린다(벧전5:4).

낙산 청경 깊은 곳에 양 먹이는 저 목자야

옛적 일을 거울 삼아 오는 사람 가르치네

장래 평안 얻으려면 저를 따라 본을 삼고

지식 경험 근수 성실 네 생활에 장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