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조의 신학 사상(2)

 

한숭홍(장신대 교수)

목회와 신학 1991년, 11월호

 

세상은 역사를 따라서 흘러가고 역사는 세상을 보내는 전송객이다. 미래를 현재로, 현재를 과거로 넘겨주는 공작원이다. 역사는 공정하고 정직하다. 약한 것도, 선한 것도, 전쟁도, 평화도, 불의도, 정의도, 부흥도, 멸망도, 심판도 되는대로 그대로 넘겨준다. 지구상에 일어나는 형형색색의 사건을 침묵으로 고요히 넘겨준다. 이것이 국가의 흥망성쇠요 세상의 변천이요 인류의 역사이다. 역사는 가는 세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진리는 안가는 세상을 보여주었다.

 

Ⅰ. 김응조 신학의 설계도

현대신학의 중심주제가 인간의 실존성에 대한 탐구로 시작된 것은 이미 19세기 말엽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관심이 과학이론의 실증적, 경험적 연구에 의해서 점점 진화론적, 유물론적으로 규명되어 가면서 인간의 본래성에 깊은 관심을 갖게된 것이 신학에서 하나의 새로운 경향으로 발전된 것이다. 교리사를 개관해 볼 때 지난 2000년 동안의 신학의 중심은 사실상 죄인인 인간과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학설에 좌우되어 이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기독교 인간론을 비교하여 교회의 원초적 기능이나 기독교의 중심사상이 모두 구속론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 신부였던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개혁을 외치며 종교개혁운동을 전개했던 것도 구속신학에 대한 해석문제로 부터 발단된 것이다. 어떻게 구원받는가라는 문제가 최대의 논쟁이었다. 그 과정에서 교리상의 여러 이론들이 제시되고 토론되었으며 때로는 비판되기도 하고 때로는 수용되기도 했던 것을 교회사나 교리사는 증거해주고 있다.

현대신학은 사실상 이러한 문제들과 쟁점들을 규명하고 정립하는 작업을 형이상학이나 논리학의 기능적 수단을 통해서 형성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신학이라고 부르는 일체의 학문적 규정은 철학적 신학이거나 혹은 이론적 신학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 성서적 진리에 대한 교회적 이해가 신학적으로 취급되면 곧 이러한 진리 자체는 철학이라는 매우 엄격하고 딱딱한 정형 속에서 규정과정을 거쳐 표현되기 때문에 신학은 철학의 한 형식처럼 보여지게 된다. 이것은 진리 자체에 대한 이론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이 사실 수많은 순수한 신앙인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날 일군의 신학자들은 신학의 지평을 새롭게 설정하려 노력하면서 기독교 신학은 그 핵심문제를 추상적인 관념적 이해로부터 현실적인 삶의 상황에서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지금 이곳”의 신학(현장신학, 상황신학)을 역설하고 있으며, 또 어떤 신학자들은 삶의 생동성에 초점을 맞추어 신학은 행동하는 삶에서 이해해야 하는 과학이라고 힘주어 주장하면서 행동신학을 신학의 본래적 기능으로 펼쳐나가려고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신학자들은 신학은 사회성 속에서 기독교 복음의 본질을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신학을 역설한다. 최근에 와서는 자연과학적 접근과 생태학적 접근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이해를 중심으로 한 신학형성을 역설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이밖에 주제별로 많은 신학유형들이 거론되고 있으며 또 방법론에 따라서도 신학의 유형들이 분류 규정되기도 한다.

한국의 개신교 신학은 독일신학이나 영미신학의 전시장과 같은 신학이었다. 물론 60년대에 와서 “우리 신학”을 만들어 보려는 몇몇 신학자들의 노력이 미숙한 솜씨로나마 펼쳐졌고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회성에 초점을 맞춘 신학이 한국적 상황과 의식구조를 정형의 틀로서 수용하여 제조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모든 신학운동들은 아직도 한결같이 서양적 신학구조나 방법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서의 신학운동이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 때에 우리는 아주 독특한 한 유형의 신학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서양화의 틀을 깊이 구현한 신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학의 한국화를 역설하는 데 역점을 둔 신학함도 아닌 신학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것은 성서적 진리에 충실하려 했던 성서주의적 신학이라고 명명될 수 있는 신학이다.

이러한 신학함을 우리는 김응조 목사의 신학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신학은 서양철학에 의해서 이론화되거나 서양인의 의식구조에 의해서 인식되고 형성된 신학이 아니고, 순진한 성서관에 기초한 기독교 진리이해의 신학이다. 바로 이러한 신학을 김응조의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현대신학의 많은 유형을 대체적으로 규정하거나 지식주의에 의한 것이라고 부정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성서, 세례, 신앙, 성결, 종말 등을 강조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서구 신학의 이론도 한국신학의 시도도 모두 배제하고 그의 성서중심주의 사상을 그의 신학으로 구조하려 했다는 평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을 좀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그의 신학은 체계적인 신학수업에 의해 정립된 신학이 아니고 독학으로 정립한 신학이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평신도들의 성서 내용 이해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느낌도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신학의 많은 부분은 신학적으로 쟁점화될 수 있는 문제제시나 성서해석학적 논쟁점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매우 보수적인 성서관에 기초한 “신앙주의”이다.

그러나 김응조의 신학은 이미 하나의 교단신학을 구성했고 이 교단은 “순복음적 신앙을 계승”하려는 그의 단호한 결단에 따라 한국기독교사에서의 새 장을 열었던 것이다. 이 교단신학의 새로운 순복음성을 담은 성서관을 그는 “성서(聖書)의 위력(偉力)"이란 설교 속에서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자기 신학의 근본사상이며 “예수교 대한 성결교회”의 교단신학이라고 압축해서 부를 수 있는 사상을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복음중심주의적 신앙입장을 바탕으로 김응조는 “기독교는 수양이나 이지(理知)의 종교가 아니다. 따라서 개조(改造)의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신조(新造)의 종교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심과 같이 타락한 인류들을 새로 창조하여 새사람을 만들어서 신천지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는 그의 신학의 중심명제를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Ⅱ. 김응조 신학의 특색

위에서 김응조 신학의 설계도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제 그의 신학의 몇가지 요점들을 열거함으로써 그의 신학적 특색을 찾아보기로 한다.

 1) 신학이 하나의 독립과학으로 형성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 이해로부터 출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논쟁은 초대 교회시대로부터 최근의 신학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계속되어오고 있다. 기독교의 본질을 인간론적 기초에서 해석하려는 19세기의 인본주의 신학자들이나 실증주의적 세계관에 따라 기독교를 일종의 종교체계로 간주하려는 기독교 이해 등도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의 본질을 어떤 시각에서든지 규명하고 규정하려는 시도들이었다고 할 때, 신학은 어쨌든 기독교의 본질 자체를 가장 중심적 관심사로 다루어야하는 학문이라고 하겠다.

김응조는 기독교의 본질를 사도행전(2:38) 실려있는 베드로의 설교에서 드러난 베드로 신학과 신앙관에 입각해서 철저히 4대 요소로 구분 설명하고 있다. 그가 역설하는 “기독교 사대 요소”(基督敎 四大 要素)는 베드로의 신학을 압축한 것이며 그의 신앙주의적 신학입장에 따라 좀더 성서주의적이고 정통보수주의적으로 각색된 것이다. 그것을 그는 기독교의 4대 진리라고도 불렀으며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 혹은 존재양태로 규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근본구원에 대하여 “베드로는 진리의 네 요소를 가지고 설명하였다.”고 확신하면서 “누구든지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이 순서를 밟아야 신앙 세계에 들어올 수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기독교의 4대 요소, 즉 4대 진리는 첫째 회개(悔改)이다. “회개는 방향전환이다.” “회개는 죄의 절연(絶緣)이다"“회개는 과거의 청산이다.”라고 하는 세부적 설명을 통해 그는 회개를 제 1의 요소로 강조하고 있다. 둘째 세례(洗禮)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셋째 사죄(赦罪)에 관하여 진술하고 있다. 사죄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이므로 “인간이 성신을 힘입어 죄를 청산하면 하나님은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극히 성서적 메시지를 그는 다시 강조하고 있다. 사죄의 고백이 사라지고 있는 세태의 신앙형태에 대한 각성을 요청하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넷째 성신(聖神)을 받아야하는 절박한 신앙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회개하고 세례받고 사죄함을 받는 것은 은혜의 제 일단(一端)이니 곧 성신을 받을 준비이다.”라고 베드로의 설교를 개괄적으로 설명하면서 성결교의 4중복음(四重福音)의 제 1요강인 중생교리로 유도, 해석하고 있다. “여기까지를 교리상으로 말하면 중생이다.”라는 표현 속에서 우리는 기독교 신학의 최대 관심이며 기독교 진리의 정수는 중생신학이라는 그의 입장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기독교 진리관인 중생론은 상당히 내재주의적 신학경향을 띠고 있으며 감정의 신학에서 성 의 본질이 인간의 절대적인 의존감정에 의해서 실체로 인정되고 있는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적 신학진술과 유사함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생론은 사실 기독교의 평범한 진리이므로 그의 강조점은 새로운 신학적 이론이나 주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가 그의 중생론 속에 회개 세례 사죄 성신의 본질을 함축하여 강조했던 점에서 그의 신학적 경향은 주목된다. 그는 바울의 이신득의 사상과 베드로의 중생신앙을 접붙여 자신의 중생신학을 구조하려 했으며 이런 설계도를 통해서 바울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앙주의를 자신의 신학노선으로 수용하려 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신학함이란 매우 기백이 넘치는 모험적 도전이었다고 하겠다. 이것은 그가 시대사조나 신학의 경향에 따라 움직이는 그 시대의 유행 신학(Fashion theology)보다는 성서적 진리 자체 속에서 예수의 제자들과 사도들의 신학전승을 직접 자신의 신학으로 받아드렸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신학은 설교적인 요소가 강하며 신학이론 보다는 신학실천에 믿음에 대한 이지보다는 믿음므로 행함에 역점을 두고 삶의 신학 살아있는 결신의 신학을 피력했던 것이다. “회개 세례 사죄 성신 이것이 기독교 사대(四大)진리이다" 라는 그의 결론은 중생신학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강조한 것이다.

 2) 중생이 인간의 결단에 속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중생을 가능케 하는 존재는 신이다. 이 점에서 기독교의 신론은 매우 많은 이론을 통해 신학적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리고 때로는 이단설로 정죄되기도 했다. 김응조의 신학사상에서 그의 신론을 찾아보면 대체적으로 유일신론, 만유재신론, 범신론적 요소가 혼합된 일면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신관의 범신론적 요소는 극히 부분적인 면이므로 그의 신관 전체를 대표하는 이론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찾으라”라는 그의 외침 속에서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을 통해 신의 본질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곧 이어 신의 본질을 다음의 4가지로 설명하고 있는 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에 따르면 신은 곧 창조주로서 “우주의 주인”이다. 창세기 1장의 신의 본질과 바울이 비교적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는 신관(행17:24) 따라 그의 신에 대한 존재인식은 분명해졌다. 다음으로 그는 신을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행17:26)라는 바울의 신론을 그 근원인 창세기(1:27-28) 진술에서 추적하면서 “하나님이 인간을 내셨다는 관념은 동서양의 공통된 신념이다.”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그는 생명의 창조자로서의 신의 본질을 말하면서 인간의 하나님 형상(Imago Dei)을 간접적으로 강하게 역설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생명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생사를 주관하는 존재이므로 “인간의 생사는 하나님의 임의 처단이다.” 그의 신관의 특징은 신의 창조행위와 생사주장에 관한 이론을 비롯하여 세상통치에 관한 이론을 모두 현실적 삶의 현상과 관련하여서만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점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저희(인간)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행17:26)라는 내용을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신관에 대하여 부정할 필요는 없으나 하나님의 속성을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해석했더라면 그의 신관이 완전한 이론체계를 구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의 주장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나 행동에 대한 인간 자신의 책임감 및 책임의식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신학에서는 인간 및 인간사(人間事0 자체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거의 자율문화(autonomische kultur)나 인간의 자유및 자연질서에 주어진 신의 관용같은 것은 부정되고 있다. 이점에서 그의 신학은 철두철미 절대적 신률(absolute Theonomie)에서 정초된 신중심주의 신학이다. 그의 주장은 일면 기계론적 세계운행론과 유사하다. 인간의 의지나 자연법칙은 주어진 궤도위를 달리고 있는 기계적 유기체와 같을 뿐이다.

그의 두번째 관심은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대개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계시니라”(눅17:21)라는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는 신의 존재를 인간의 윤리적 규범을 통해 증명하려 시도했다. 이러한 신존재 증명은 일종의 도덕론적 신존재증명과 유사하다. 그는 하나님을 찾는 최선의 길로서 인간의 양심을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양심은 바로 하나님의 본성의 일부분이다. “사람의 양심은 하나님이 보내신 감독자요 당신의 본성의 일부분이다. 하나님이 양심을 통하여 일하시는 명령 계통이다.” “이러므로 양심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요 양심을 바로 찾는 것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또 한가지 신존재 증명의 길은 만유재신론(Panentheismus)의 방법이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라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에 관한 한 그는 도덕론적 신존재 증명 이외에도 현상계와의 연관에서 인식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며 또한 도덕성이나 현상적 인식에 의한 신존재의 증명을 인간의 본래성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계신다.”라는 제 1명제를 통해 만유재신론의 제 1성을 발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대자연은 하나님의 품안이다.”라는 제 2 명제를 통해 만유재신론의 제 2성을 발하였다. 곧 이어서 그는 매우 자연주의적 신학이해로 접어든 듯한 선언을 했다. 그의 제 3 명제라고 할 수 있는 이 선언은 “도시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을 자연에 가서 찾는다.” 이 제 3의 명제는 만유재신론적 주장보다는 철저한 범신론(Pantheismus)에 근거하고 있는 신관이라고 하겠다. 신은 자연의 창조자이며 자연의 섭리자이지만 동시에 자연 속에 존재하고 있는 최고의 존재로서 무소부재하다는 입장에서 그의 제 3의 명제는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그의 신 발견 방법은 만유재신론적이며 범신론적이므로 그의 신학의 특색은 혼합적인 사상과 방법에 의해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그의 세번째 관심은 “하나님을 어떻게 찾을까”라는 질문에서 알 수 있듯이 신인식론(Theorie von der Erkenntnis Gottes)이다. 인식되지 않은 존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존재론은 존재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존재한다.”(zu sein, to be)는 것은 이미 실천성을 내포한 개념으로서 구체적인 “있음”을 전제로하고 표현되는 개념이다. 하나님을 찾으려는 것 자체도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실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의 신인식론은 바로 앞에서 서술했듯이 만유재신론적 입장에서 이해된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멀리 계신 줄 아는고로 찾을 생각을 감히 못한다. 높은 하늘에나 먼 자연에나 높은 인격자에게만 계신줄로 생각한다. 하나님은 내 마음에 전후 좌에 내 몸에 우주 만물에 안계신 곳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가까운데서 찾으라”고 충고한다. 이것은 그의 신학의 내재주의 혹은 좀더 분명하게 표현하면 주관주의(subjektivismus)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의 신학의 특색 가운데 가장 괄목할만한 특징은 주관주의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점이다. 주관주의는 자아에 의해서 인식되는 실체에 대상성을 부여하므로 인하여 세계구조를 주관과 객관으로 양분한다. 주관주의는 주관이 객관을 인식하기 때문에 인식하는 자아가 절대적이다. 이미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주관은 대상과의 관계에서 개인만이 가질 수 있는 특수성 곧 인간의 본래성으로 이해하면서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만물의 척도(尺度)이다."(Der Menschist das Mab aller Dinge)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의 “인간척도론”(Homo-Mensura-Satz)을 그의 철학의 중심명제로 선언했다. 그의 이런 사상에 따르면 보편타당하고 객관적인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겠다. “진리는 대상에 의존하지 않는다. 객관적 사태는 그것을 우리의 정신 내에 수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떠한 정신에 의해서도 수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주관 자신만이 그것에 대하여 언제나 진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주관을 초 겸 개인적 본질로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주관이란 곧 역동하는 힘(F. Nietzsche), 에네르기아의 실체(H. Bergson), 과정(G. Simmel, Whitehead) 등으로 구현된 인간적 삶 자체 처럼 넓은 의미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김응조의 신학은 이러한 철학의 주관주의적 인식론에 비추어 볼 때 확실히 주관주의적 신학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신을 “누구든지 찾을 마음만 있으면 곧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신인식의 주체인 인간이 신을 발견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의 신인식의 길 곧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철저히 감각론에 입각한 경험주의이다. “하나님을 찾는 방법은 더듬는 것이다.” “더듬는다.”는 것은 지각행위이다. 지각은 경험에 기초한 인식의 수단이다. 따라서 지각하는 자와 지각의 대상은 주체와 객체로 양분되며 지각된 것이 인식에 이르기까지는 또 다른 여러 인식과정이 있다. 그의 신학 특색은 지각적 인식 행위 지각하는 행위를 통해서 신의 본질을 찾아내려는 점에서 매우 감각론에 접근한 신인식론이라고 할 수 있다.

 3) 김응조는 종말론을 어디까지나 기독교 역사철학의 한 특수형태로 규정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먼저 진리의 근원을 성서 자체로부터 규명하려 한다. 그러므로 그는 종말신학을 전개함에 있어 시간적 개념에 대한 진부한 이론이나 논리적 정의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고 종말의 보편적 의미와 종말의 개체적 의미를 시대의 징조들과 연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성취되지 않은 종말의식이나 이미 완성된 종말의식 같은 것은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다.

그가 주장하는 그의 종말사상의 특색은 구속사(Heilsgeschichte)와 세속사(Profangeschichte)의 관계속에서 종말의 때가 세속사의 징조들에 의해서 나타난다는 철저히 성서적, 묵시문화적 일반 종말론이다. 이것은 재림(再臨)과 시조(時兆)의 일치가 가능하다는 하나의 성서주의적, 보수주의 정통 사상이라고 하겠다. 그는 종말은 세속사에 개재하는 하나님의 섭리의 한 순간이나 성과 속의 만남의 한 순간에 펼쳐질 수 있는 때의 신학적 이해에 기초한 단순한 신학이론의 하나가 아니고 피조된 인간과 그의 세계 자체에 부닥치는 물리적 변화와 시간적 마지막의 절박석을 나타내는는 최후임을 인간의 신앙으로 수용하고 준비해야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종말사상은 자유주의 신학이나 신정통주의신학에 기초한 기독교 역사철학의 이론이나 인간의 실존성(Existenzialitat), 시대정신의 가치변화에 대한 우려 같은 것에는 관여하고 있지않고 오직 “시조”(時兆)의 현상에서 종말의 때를 추론하는 귀납적 방식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는 역사와 종말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문제를 무시하고 있으며 특히 인간사의 역사성과 개인의 실존적 역사성 등을 종말과 무관하게 생각하고 있다. 다만 그는 종말의 시대적 징조에 집착하므로 말미암아 예수 자신도 그 시기를 알지 못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당신이 재림하실 날짜에 대하여서는 아버지만 아시는 고로 언급(言及)지 않으셨으나 그 시기에 해당한 징조에 대하여는 아래와 같이 말씀하셨으니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를 가리킴이다.”

이미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신학의 특색 가운데서 종말론은 매우 특징이 강한 사상이다. 그의 종말론의 강조점은 현대신학자들의 대부분이 주장하는 개인적 종말론에 있지 않고 일반적 종말론에 있다. “종말론”이란 낱말 자체가 이미 “말일”(사2:2; 미 4:1), “말세”(벧전1:20), “마지막 때”(요일2:18)라는 성서의 개념에서 유래한 것으로써 신약성서에는 종종 이 시대 전체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쓰여지고 있기도 하다. 구약성서는 “이 시대”와 “오는 시대”로 시대구분을 하였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종말의 시기는 메시야 도래의 시기와 동시적이므로 종말은 동시에 이 시대가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이중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시대도 현재적 그리스도의 시대와 미래에 성취될 그리스도의 시대로 양분하며 종말은 이 두 시대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종말론은 이세상의 끝날과 그리고 인간사의 성취라는 두가지 측면을 성취하는 점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원죄의 사건으로 얼룩진 불완전하고 미완성의 역사이지만 완성의 역사를 향해 하나님이 정해주신 과정을 달려가고 있는 역사이다. 그런데 세속사의 마지막 종착점이 곧 세속사의 완성의 때이며 그 내용은 종말론에서 언급하는 사건과 징조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 대체적으로 성서적 종말사상이다. 일반적 종말론은 이런 시대적 의식과 종말사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을 포함하여 종말신학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런 사건들이 개인 각자에게 뿐만 아니라 시대와 인간사에까지 직접 관련된다고 역설한다. 그러므로 성서적 입장에서 전개된 일반적 종말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그외에 부활 최후의 심판 천년왕국의 건설 그리고 성도와 적그리스도의 선별 등이 그 중심주제를 구성하고 있다.

그 반면에 개인적 종말론은 인간 현존의 종말을 강조하므로 개인의 육체적 죽음 영혼의 불멸성 중간시대의 상태등을 그 중심내용으로 갖고 있다. 실존신학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개인적 종말론이다. 그들은 종말은 시각적 본질이며 시간은 실존성을 포함하는 개체적 의식과 같은 것이므로 종말론 자체를 개인 각자의 실존적 결단과 직결시켜 해석하고 있다.

김응조의 종말신학은 대체적으로 일반적 종말론에 초점을 맞추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에게서 일반적 종말론은 극소 평가를 받고 개인적 종말론은 극대 평가를 받는데 비교하면 김응조는 그들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Ⅲ. 김응조의 중심사상

이제 그의 신학의 중심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에서 분석하려고 하는 내용들은 이미 그의 신학의 특색을 서술하면서 그의 신학사상의 핵심이 종말론에 집중되어 있다는 언급과 관계있는 것들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종말론은 엄격히 말한다면 기독론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또한 천년왕국설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에 필자는 이곳에서 그의 글인 “나의 생애와 신학”으로부터 그의 기독론 종말론 천녕왕국설을 개관할 것이다.

 

 1. 기독론

기독론에 대한 서술을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의 연구 방법론을 “성서로서 이경교경(以徑敎徑)법에 의하여 해명”하는 방법이라고 명시했다. 이경교경 방법론은 성서 해석학적 방법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성서로 성서를 말하게 하는 방법 다시 말해서 성서가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이경교경 방법론은 자신이 강해작업을 통해 체득한 일종의 성서해석학 방법론이라고 볼 수도 있다. 기독론을 그는 탄생론 부활론 재림론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① 탄생론

순육론과 신인양성론을 성서적 근거에서 제시하면서 후자의 타당성을 주장한다.

 ② 부활론

도난설(마 28:13), 기절설(막16:11), 환상설(눅24:31), 조작설(막16:13), 천사설(마16:5), 신비설(막16:13) 등의 이론을 기독교 중심교리에 대한 불신의 결과로 단정하며 성서에 근거하여 예수의 부활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사후구원설을 비성서적이라고 이단시한다.

 ③재림론

그는 예수의 재림을 역사적 사실로 확신하며 성서의 전거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재림론 가운데 항림설(마 28:20), 성신강림설(요 16:28), 예루살렘 멸망설(마 24:15), 무재림설(벧후3:4), 영적해석 등을 비성서적이고, 거짓된 재림론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예수의 재림은 성서의 중심(히 10:37)이며, 성도의 산 소망(고전 15:52)일 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의 대망(롬8:19)이고, 시대의 요구(벧전4:7)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예수의 재림은 하나님의 예정(마 24:36)이며, 멸망의 선언(요일5:8)이고, 심판의 선언(행5:9)일 뿐만 아니라 승천시 약속(행1:11)이기 때문에 분명히 실현된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예수 자신의 공약(계22:20)이며, 예수가 제자들과 맺은 굳은 언약(요14:3)이란 점에서 공약된 확실한 사실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성도는 마땅히 깨어야 하겠다.”라고 경고하면서 시대성에 파묻혀 사는 인간에 대한 충고로 종말의 대망을 가지라고 역설한다.

 

 2. 종말론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이처럼 제자들의 종말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김응조는 종말론을 시대적 징조와 관련해서 서술하면서 시대성을 종말의 현상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는 다음의 9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①재난시대(災難時代)

이것에 대한 해석의 근거를 마태복음 24장 7절에서 제시하면서 20세기의 양대 세계대전과 천재지변 및 3차 대전에 대한 공포 같은 것을 그리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이념대립 등을 재난시대의 종말적 징조로 주장하고 있다.

 

 ②반종교운동(反宗敎運動

정치적인 기독교 박해와 무신론적인 사상으로 대표되는 유물론 공산주의 무신론 등의 시대정신과 사상을 가리켜 종말의 징조를 말한다.

 

 ③위선지시대(爲先知時代)

마태복음 24장 24절에 근거하여 주장한다. 그는 거짓선지자는 “유사종교의 탈을 쓰고 신비주의와 미신으로 우부우녀를 미혹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무서운 거짓 선지자는 교회안에 숨어서 신학자와 교수의 탈을 쓰고 소위 자유신학, 신신학, 현대주의 신학이라는 명칭하에 성경의 이적기사를 부인하고, 성경을 과학으로 해석하며, 성경유오설과 목적영감설등으로 성경의 권위를 박탈한다.”고 위선지시대의 종말 상황을 말하고 있다. 바로 지금 이때야말로 실증주의 신학시대라는 점에서 그는 종말의 징조가 보인다고 강변하고 있다.

 

 ④불법의 시대(不法의 時代)

그가 진술하는 불법의 시대란 인간의 행위가 간악해지고 양심이 마비되어 인간의 탈을 쓰고도 짐승같은 행위를 자행하는 시대를 말한다. 그는 이 시대의 징조를 가리켜 종말의 예표로 강조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종말징조의 하나라고 한다.

 

 ⑤복음전파의 만기(福音傳播의 滿期)

그는 복음전파의 만기를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라는 성서구절에 근거하여 주장한다. 그의 종말론에 따르면 우리는 복음 전파가 거의 끝나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⑥무화과 시대(無花果時代)

예언이 성취된 시대로서 이 세대를 보고있는 그는 지금이야말로 예수의 재림 때라고 매우 다급하게 역설한다.

 

 ⑦교통과 지식증진시대(交通과 知識增進時代) 그는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단12:4)라는 성경의 말씀을 오늘날의 과학문명에 결부하여 해석하고 있다. 그는 철저히 현대성을 종말시대의 징조로 직결하여 해석하고 있다.

 

 ⑧노아와 롯의 시대

오늘의 시대상황을 노아시대의 유물주의와 향락주의에 비추어 보면서 오늘의 인간의 삶을 종말전야로 설명했다. 그리고 롯의 시대는 멸망 직전 음란과 성도덕의 타락으로 상징되는데 우리의 시대 20세기의 현실이 노아와 롯의 시대징조와 같다는 점에서 시대정신의 종말을 말하고 있다.

 

 ⑨철(鐵)의 진흙시대(時代)

종말의 징조로서 그가 여기에서 강조하려는 것은 공산주의 사상과 민주주의 사상의 융합이 정치이념적 특질 때문에 불가능한 점을 제시하며 종말은 바로 이러한 징조를 보아도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그 근거로서 “피차에 합하지 못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라”(단2:43)라는 성서의 말씀을 증거로 제시하며 그의 종말론을 마무리 하고 있다. “2천500년전 다니엘의 예언이 문자 그대로 성취되므로 성서예언의 정확성을 믿을 수 있다.”는 결론이 그의 신념이다.

 

3. 천년왕국설

천년왕국설은 전천년설과 후천년설로 대별되지만 그는 전천년설을 신봉하고 있다. 그것은 그 스스로 전천년설이 후천년설보다 더 성서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는 전천년설은 ①생사자를 심판하려 오심(딤후 4:1) ②천년간 왕노릇하러 오심(계5:10) ③신부(신부)를 영접하러 오심(계19:7에 근거한다. “이상 세가지 사실은 천년전에 될 일로서 예수 자신이 아니고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위하여 성도의 휴거 공중혼인 7년간 공중에서 심판 7년간 지상에서 심판 적그리스도를 유황불에 던짐 성도의 부활 천년동안 주님의 지상통치(계5:10)가 실현된다. 이러한 내용으로 그의 전천년설은 이론화되어 있다. 그는 철저한 요한 계시록파라 불리워질 수 있을 만큼 계시록에 기록된 모든 사실을 바로 지금 이곳의 인간적 역사와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 그리고 나타날 징조로 해석하고 믿었다. “천년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리니”(계20:4) 그때를 위하여 참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강론이었으며 동시에 그의 신학과 사상 전부였다.

 

Ⅳ. 맺는말

지금까지 우리는 김응조의 신학과 사상을 그의 신학의 특색을 제시하며 살펴보았으며 또한 그의 신학사상의 핵심문제인 기독론 종말론 천년왕국설을 그의 서술에 기초하여 분석하면서 살펴보았다.

그의 신학과 사상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의 신학은 철저한 성서주의(Biblismus)에 위치하고 있는 보수정통주의 신학이며 바울의 신학과 베드로의 신학과 요한의 신학을 융합한 종합신학이다. 그는 항상 종말의식에 긴박하게 얽매여 살았으며 그의 신학의 핵심은 계시록을 중심으로 구조된 종말론이다.

 둘째, 그의 신학은 주관주의(Subjektivismus)가 강조되는 신학이며 이런 점에서 만유재신론적 입장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그는 신학을 이론으로나 이지로 만들어가는 학으로서 이해하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며 믿음으로 수용하며 행위로 실천하는 생동적인 원리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신학이 이론화되었을 때 풍기는 학문성 자체를 비판하고 오히려 성서의 본래적 논지를 해석하는 데 그의 학문하는 태도를 두었다. 이것을 그는 성서로 성서를 배우고 가르치는 방법으로 삼았다. 그가 성서주해에 일생을 헌신한 것도 바로 이런 의지 때문이다.

 셋째, 그의 신학은 이론정립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는 반면에 불필요한 이론이나 이론을 위한 이론과 같은 헛수고를 버리고 신앙주의(Fideismus)에 입각해서 신앙지상주의를 역설하고 있다는 강점도 있다. 그는 그의 교단(예성)의 중심교리인 4중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그의 신학구조의 4개 기둥으로 삼고 그의 신학과 사상을 건축했으나, 크게 본다면 그의 모든 신학과 사상의 중심은 종말론에 집약되어 있다. 철저한 종말신학으로 그의 신학은 구조되어 있으며 그의 종말신학은 4중복음 모두를 동시에 그 자체 내에 용해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교의학에서 교리의 마지막 장에서 다루는 종말론과는 매우 다른 비중과 의미가 있다.

가톨릭 신학자 포올(Pohle)은 “종말론은 교의학의 면류관이며 정수이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아마 이 명언은 바로 김응조의 신학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종말론은 그의 신학의 알파와 오메가이며 신학함(Theologisieren) 자체이다. 여기에 한국 기독교 1세기의 산증인이였으며 실천하는 신앙의 역군이었던 인간 김응조의 참모습이 있다. 그의 삶은 겸손했고 그의 신학은 힘이 있었으며 그의 사상은 호소력이 넘치는 강하고 분명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의 신학은 군더더기가 없는 순정품 신학이다. 그의 신학은 인공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그래서 순수한 맛을 그대로 내는 담백한 자연미(自然味)의 신학이다.

 

(주)

1. 19세기는 인간의 본성을 “실존”(Existenz)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이미 키엘케골(Soren Kierkegaard), 니이체(F. Nietzsche), 도스토에프스키(F. M. Dostojewski)와 같은 사상가들은 그들의 작품들 속에서 인간의 극단적 상황을 삶의 본래성으로 진술했다.이러한 실존철학은 신학에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마틴 하이덱거(MHeidegger)의 실존개념은 20세기 신학을 형성, 발전 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어쨌든 인간을 규정하는 원죄성이나 현세적 부정개념 등이 인간의 본래성으로 인식되면서 실존철학의 인간 실존성 개념은 실존신학(Existenz theologie)을 태동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20세기 초기에 철학계에 던져진 하이덱거 철학에 대한 논쟁은 불트만(R. Bultmann)에 의해서 수용되어 신학계의 논쟁으로 점화되기도 했다. 물론 불트만의 신학에서는 실존주의적 경향 뿐만 아니라 비신화론 논쟁도 신학계를 흔들어 놓는 자극을 주었다. 이것은 실존성과 과학적 세계관을 모두 한꺼번에 수용, 제시한 결과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격이었다.

2. 기독교 신학의 중심은 신론 기독론 인간론이다. 그 가운데 기독론은 초대 교부시대 신학논쟁의 중심이 되기도 했으며 기독론과 연관하여 복음 구속 재림 심판 등에 관한 신학적 이해도 병행하여 제기되므로 기독론은 매우 중요한 신학주제였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그리스도 중심주의 신학이 다시 강조되었던 것도 기독교의 초점을 그리스도에 맞추려는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기독론은 신학사 2000년의 중심주제로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의 점화점은 구원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구원론 때문이었다. 구원의 속량전 개념이나 설교가 루터의 신앙에 의한 구원 즉 이신득의(以信得義)주장과 너무 상이하기 때문에 루터는 결국 가톨릭의 오류를 비판하면서 신앙개혁운동을 전개했다. 종교개혁이란 곧 신앙론의 올바른 이해에로 복귀하려는 운동이었다.

4. 기독교 신학은 사실 서양 철학의 시녀적 도움없이는 형성될 수 없었을 정도로 매우 깊이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서양의 형이상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플라톤 철학의 영향은 신학의 이론화 작업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의 핵심까지도 결정짓는 큰 영향을 주었다. 기독교 신학의 총론은 말할 것도 없고 각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조직신학은 물론이고 심지어 실천신학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의 원초적 개념이나 사상의 영향을 배제하고는 성립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기독교 신학은 한마디로 철학적 신학이라고 불러본다. 이미 이런 이해는 빌헬름 바이셰델(Wilhelm Weischedel)과 같은 이들의 신학이해이기도 하다. 여기서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그러나 사실상 포괄적으로 이해하려는 철학적 신학이란 말은 기독교 신학의 철학성을 부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해석,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5. 한때 “안테나 신학”이란 말이 신학계에서 나돌던 시절이 있다. “유행의 신학”이라고 하는 조소적 낱말도 신학자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던 때도 있었다. 이것은 한국 신학의 독창성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매우 냉소적 소리였다. 이런 분위기와 연동하여 필자는 한국신학의 오늘의 현상을 외제 상품을 수입하여 진열장에 진열해 놓은 것같이 비유하여 “진열장 신학”이라 불러 본다. 자기 것이 없다는 말이다.

6. 김응조, 은총 90년 p 97.

7. 김응조, 생수를 주리라, 김응조신앙전집 1(서울 : 성청사 1988) pp 83-88("성서의 위력")

8. Ibid , p 114("신조(新造)함을 받으라” cf. Ibid., p.79("아라비아 신학(神學) 행장기(行狀記)")에서 그는 “신조”(新造)란 개념을 구체적으로 회개하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신생의 본질로 서술하고 있다. “철저한 회개에 확실한 구원이 있고 확실한 구원에 명백한 사명이 있다. 기독교는 수양 종교도 아니요, 아지(理知)종교도 아니다. 회개의 종교이다. 회개치 못한 사람은 교회의 사람은 될지언정 그리스도인은 될 수 없고, 회개치 못한 교역자는 사람의 종은 될지언정 하나님의 종은 될 수 없다. 바울의 복음 전도의 중심 사상은 당시 헬라 철학도 아니요, 가마니엘 종교학도 아니요 히브리 신학도 아니다. 다만 십자가에서 죽고 십자가로 인하여 다시 사는 회개의 진리를 전할 따름이다.”

9. Ibid , p 39("기독교 사대 요소”)

10. Ibid , p 43

11. Ibid , p 44 김응조 목사는 중생론을 “기독교 4대 요소”를 포함한 포괄적 입장에서 진술하면서 중생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성결교 4중복음의 첫째 복음을 말한다. 중생은 한마디로 “기독교 4대요소”의 집합체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4대 진리”로 표현되고 있기도 하다.

12. Ibid , p 46

13. Ibid , p 46

14. Ibid , p 47

15. 도덕론적 실존재 증명 방법은 도덕적 요청에 의하여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방법이다. 도덕적 요청은 양심에 의해서 발동되기도 하거니와 동시에 도덕적 요청에 의해서 양심은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양심을 신의 소리라고 하는 통념상의 이해처럼 신의 존재는 인간의 양심에 의해서 요청된 도덕률에 의해서 증명되고 있다는 점이 도덕론적 신존재 증명의 주장이다. 인간의 양심(도덕성)에 비추어 신의 존재가 인정된다는 점에서 칸트(I. Kant)는 인간의 도덕성(Sittlichkeit)을 선험적이라고 주장했다. 김응조의 양심 개념도 선험적인 도덕성에 동일한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김응조의 신학에서 신의 존재는 절대 신율에 의해서 절대 신앙의 길로 그리고 도덕적 요청으로 인식될 수 있는 양심의 선험성에 의해서 증명되는 양심의 길로 증명되고 인식되고 신앙된다.

16. Ibid , p 48.

17. Ibid , p 48.

18. Ibid , p 48.

19. Ibid , p 48.

20. Ibid , p 48.

21. Ibid , p 49.

22. Ibid , p 49.

23. Johannes Hirschberger, Geschichte der Philosophie I:41Altertum und Mittelalter  12 Verbesserte Auflage(Freiburg/Basel/Wien:Herder Verlag, 1976), p 55

24. Ibid , p 49

25. Ibid , p 175("재림과 시조")

26. 김응조 “나의 생애와 신학”(10) 크리스챤 신문(1980. 8. 9), 제 2면

27. 김응조 “나의 생애와 신학”(7) Ibid, (1980 7 12), 제 2면

28. 김응조 “나의 생애와 신학”(8) Ibid, (1980 7 26), 제 2면

29. 자연미(自然味)란 순수한 본질 천연성을 가진 맛이란 의미를 뜻한다. 김응조의 신학은 이런 의미에서 자연미의 신학이다. 그것은 순복음적이다. 그 스스로도 자신의 신학을 “순복음”에 정초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