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웨슬레의 사회성화의 신학적 근거

-김홍기 저: [존 웨슬리의 희년사상] 발췌요약 -

  

1. 복음적 신인협조설

웨슬레는 루터의 신앙의인화(Justification by faith) 신학에 철저히 근거하면서도 성화신학을 칼빈보다 더욱 발전시켰다. 그의 성화신학이 칼빈의 성화신학보다 더욱 행동을 강조하는 이유는 복음적 신인협조설에 있다. 칼빈의 성화는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서 인간 속에서 행하는 행동이지 인간은 노예 신세이다. 거기에 반하여 웨슬레의 성화는 하나님의 성령이 먼저 역사(役事)하지만 거기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응답으로, 곧 신인협조로 성화가 이루어진다. 신앙의인화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총으로만 이루어지고 그와 동시에 일어나는 거듭남도 성령의 내재한 은총으로 가능하지만, 성화는 믿음(하나님의 선물)과 사랑(인간의 선행적 참여)으로 이루어진다고 웨슬레는 생각한다.(30)

그러나 이 인간의 선행을 가능케 하는 자유의지는 본성적으로 - 자연적으로 -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행적 은총(Prevenient grace)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 선재적 은총은 자유의지뿐 아니라 양심과 종교성으로도 나타난다. 이 선재적 은총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구원을 향해 - 은총을 향해 -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구원의 은총을 열망하는 열심과 사모하는 마음도 의미한다. 그리고 의롭다 함을 얻고 거듭난 성도라도 자유의지 때문에 타락할 수 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계속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성령의 은총의 주도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적 응답과 참여에 의해 구원이 완성된다. 이러한 웨슬레의 복음적 신인협조설은 동방교회의 Gregory of Nyssa와 John Chrysostom의 영향, Augustine의 영향, 그리고 James Arminius의 영향 등에서 형성된 것이다.(31)

2. 행동주의

웨슬레의 행동주의 신학은 루터의 신앙제일주의(solafideism)와 정숙주의(qeitism, stillnes)를 비판하면서 형성된다. 웨슬레의 올더스케잇 체험은 마르틴 루터와 강한 연속성을 지닌다... 그의 회심은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루터적 신앙의인화 신학에 의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그러나 웨슬레는 그의 설교 "하나님에 관하여"(On God's Vyneyard)에서 루터의 구원론을 비판한다. 루터가 의니화만을 강조하고 성화에 무관심하였다고 비판한다. 루터는 의인화만을 강조하고 성화에 관심이 없었으나, 로마 천주교는 성화를 강조하다가 의인하에 무관심해졌다고 웨슬레는 지적한다.(32)

... 루터에게서 선행은 의로워진 크리스쳔의 자동적 결과이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저절로 맺히듯이, 신앙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면 선행의 열매는 저절로 맺힌다고 루터는 해석한다.

그러나 웨슬레에게 있어서 선행과 사랑은 저절로 맺히는 열매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적 참여에 이해 신인협조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다.

그래서 루터는 로마서를 강조한 나머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평가절하하였으나, 웨슬레는 신앙과 함께 야고보서의 선행을 동등하게 중요시한다. 웨슬레는 해석하기를, 로마서가 말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75세 때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의 믿음이요, 야고보서가 말하는 아브라함의 행함은 그후 25년 후에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의 행함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야고보서의 행함은 로마서적 믿음을 전제한 행함이지, 믿음 이전의 선행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웨슬레는 도덕적 행동을 강조하는 산상수훈도 야고보서처럼 중요한 설교본문으로 선택하였다. 산상수훈 설교는 그의 성화신학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33)

이렇게 산상수훈 등을 성화생활의 기준으로 생각한 것은 칼빈의 율법이해와 상통한다. 루터는 율법의 제1용법, 즉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과 제2용법, 즉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악한 무리들을 다스리는 공민법적 역할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율법의 제3의 역할(tertius usus legis)로서의 성화생활의 채찍질과 선행을 말한다. 곧 율법을 통해 자아부정과 영성훈련을 실천함으로써 더욱 경건하고 성화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칼빈의 율법이해가 웨슬레에게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칼빈은 선행 - 율법을 준수하고 복종하는 행동 - 은 성령의 역사다. 인간은 다만 노예 신세일 따름이다. 그러나 웨슬레의 선행이해는 성령의 역사와 거기에 대한 인간의 자유의지의 적극적 응답과 참여로 표현되어 있다.(34)

3. 개인 성화와 사회성화

웨슬레의 구원론의 핵심은 성화다. 회개는 종교의 현관이요, 믿음은 종교의 문이라면, 성화는 종교 자체이다. 그런데 이 성화는 개인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이다. 웨슬레는 신앙의 본질은 내면적이지만, 신앙의 증거는 사회적이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성화가 아닌 성화를 모른다고 말하며, 사회적 종교가 아닌 종교를 모른다고 말한다.(34)

웨슬레의 개인적 성화는 성결적 요소로서... 세속성과 죄악성으로부터의 분리와 성별을 뜻한다... 웨슬레의 사회적 성화는 성육신적 요소로서 세속성으로부터 분리된 성별의 힘을 갖고 세속을 찾아가는 성육신적 참여, 곧 사랑의 적극적인 행위를 세상 속에서 실천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성결은 소극적 성화의 방법이고, 사랑은 적극적 성화의 방법이다.35)

4. 은총의 낙관주의

이 성화의 완성이 죽기 전에 가능하다고 웨슬레는 말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죄악성의 깊이로는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은총의 높이가 크시기에 크신 은총으로 지상의 완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런 절대적 완전은 죽음 후에 영화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완전은 정착된 상태가 아니고 계속적인 과정을 속에 있다... 또한 이것은 개인적 완전을 의미할 뿐 아니라 사회적 완전을 뜻한다.(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