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의 성서론

 

김영봉

 

-- 이 논문은 존 웨슬리의 성서 이해를 다루고 있다. 존 웨슬리에게 있어서 성서는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그의 성서 이해를 알아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웨슬리의 성서관과 해석 방법에 집중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웨슬리의 신학이나 설교가 얼마나 철저히 성서신학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언급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필자는 웨슬리의 설교를 읽으면서, 그가 얼마나 성서 신학적으로 바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거듭 확인하고 있다. 이 과제를 독자에게 맡긴다.

 

모든 종교인이 다 그렇듯이, 그 사람의 생애와 사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이 경전으로 삼았던 문서에 대한 그의 이해와 사용 방식은 매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그 사람이 종교적인 면에 대하여 진지한 사람이었다면, 더욱 그러하다. 진지한 종교인에게 있어서 경전은 가장 권위 있는 가르침이며 믿을만한 지침이다. 따라서 그 경전의 내용은 (그가 이해한 방식대로) 그의 생애와 사상을 크게 결정짓게 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존 웨슬리는 스스로를 "한 책의 사람"(homo unius libri)이라고 말할 정도로 성서를 귀중하게 생각하였다:

바로 이것이, 내가 1725년부터 줄곧, 그리고 좀 더 결정적으로는 1730년부터 계속하여 지향해 왔던 요점이다. 그 때, 나는 homo unius libri, 즉 "한 책의 사람"이 되기 시작하였다. 성서 이외에는, 상대적으로 말해서, 다른 것을 보 지 않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물론, 이 말은 그가 성서 이외에는 아무 책도 읽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위의 인용구에서 "상대적으로 말해서"(comparatively)라는 어구가 암시하듯이, "한 책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우선 순위를 말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제임스 조이(James K. Joy)가 웨슬리를 "천 권의 책의 사람인 동시에 한 책의 사람"이라고 불렀듯이, 그는 보기 드문 다독가(多讀家)였다. 그 많은 도서 목록 중에서 성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따라서, 웨슬리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는 작업에 있어서, 성서에 대한 그의 이해를 살피는 일은 필수적인 요소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근거에서 필자는 본 소고에서, 성서의 성격에 대한 웨슬리의 이해와 웨슬리적 해석 방식을 살펴보고, 그것들이 오늘의 신자들에게 주는 의미에 대하여 논의할 것이다.

1. 18세기 영국 교회의 성서 이해

아무리 창조성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살던 당시의 시대적 사조를 완전히 벗어나서 살수는 없다. 우리의 관심인 존 웨슬리도 역시 "그 시대의 아들"(a son of his age)이었다. 따라서, 그가 신학 수업을 하고 또한 저술 작업을 하던 18세기의 영국의 전반적인 신학 사조에 대하여 묻는 것은 당연한 순서이다. 특히, 이 논문의 주제를 위해서 우리는, "18세기의 영국 신학계는 성서를 어떻게 이해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 질문이 특히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 시기에 유럽 대륙, 특히 독일에서는 합리주의와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하에 성서에 대한 비평적인 연구가 줄을 이어 출판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철학의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나 현대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슐라이에르마허(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1768-1834)의 공헌에 비견될 만큼, 이 시기의 성서학 연구에도 크나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미 17세기말에 리차드 시몽(Richard Simon)은 신약 문서에 대한 역사적 비평을 시도하였으며(Histoire Critique du Vieux Testament, 1678), 레씽(Gotthold Ephraim Lessing)이 그의 선생 허만 라이마루스(Herman Samuel Reimarus)의 유고집 Wolfenbuettel Fragmente(1778)를 출판하여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때가, 바로 웨슬리가 영국에서 부흥운동과 저술운동에 열중하고 있던 같은 시기였다. 라이마루스의 이 유작집에 있었던 소 논문 "Von dem Zwecke Jesu und seiner Juenger"는 복음서 연구와 역사적 예수 연구의 역사에 있어서 한 분수령으로 작용하였다. 미카엘리스(J. D. Michaelis)가 신약성서 개론을 펴낸 것도 이 시기이며(1750), 제믈러(J. S. Semler)가 정경의 역사적 기원을 비평적으로 연구한 것도 이 시기이다(1771-75). 얼마 후에는 아이히혼(J. G. Eichhorn)에 의해서 구약성서 개론도 출판되었다(1780-83). 이러한 역사는 18세기 후반의 독일의 성서학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버해협 동편에서는 성서에 대한 "역사-비평적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다.

우리의 관심은, 과연 이러한 새로운 사상적 변화를 웨슬리가 얼마나 알고 있었으며, 얼마나 받아들였는가에 있다. 이 점에 대하여 우선 지적해야 할 점은, 영국 전체가 독일의 비평적 분위기에 대하여 상당히 늦게서야 알게 되었으며, 알고 나서도 한 동안의 저항기를 거쳐서 19세기 후반에서야 보편화되었다는 점이다. 1807년에 가서야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교수인 허버트 마쉬(Herbert Marsh)가 미카엘리스의 신약개론을 영어로 번역을 하였으나, 이 책은 곧 정죄를 받았다. 이 정도로, 성서에 대한 비평 정신에 관한 한, 영국은 반세기 이상 늦게 독일을 뒤좇고 있었다. 따라서 웨슬리가 살아 있을 동안에 독일의 비평학은 영국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이 점에 있어서 웨슬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서에 대한 웨슬리의 이해는 오히려 전통적인 보수적 이해를 수용한 것이었고, 뒤에서 보겠지만 독일의 경건주의의 경향에 가까왔다. 이 사실은 아래에서 보게 될 그의 성서관에서 드러나며, 또한 독일 경건주의 신학자 요한 벵겔(Johann Bengel)의 주석을 극찬한 데서도 드러난다. 독일의 경건주의는 18세기에 일어나고 있던 새로운 비평학의 경향을 배격하면서 전통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웨슬리의 이러한 경향을 비추어 보면, 만일 그가 독일의 비평적 경향을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개연성은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정직하게 말해서, 웨슬리의 육신은 비평 시대의 초기에 살았으나, 그의 정신은 비평 이전 시대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 말이, 웨슬리는 맹목적인 문자주의자(blind biblist)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는 앞에서 말했듯이 18세기 영국의 아들이었다는 사실만을 확인하기를 바랄 뿐이다.

2. 웨슬리의 성서관: 성서는 어떤 책인가?

웨슬리는 전통적인 교회의 믿음인 "성서의 영감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감리교인의 특징"(The Character of a Methodist)이라는 글의 한 구절에서 확실히 표현되어 있다:

사실, 우리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바 로 이 점에서 우리는 유대인이나 터어키인이나 불신자들과 구별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행의 유일하고도 충분한 기준 (the only and sufficient rule)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우 리는 로마 교회의 교인들과 구별된다.

성서는 영감되었기 때문에 신앙과 실행의 "유일하고도 충분한" 표준이 된다. 영감에 대한 이 믿음은 그의 설교와 성서 주석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면, 고린도전서 7:25에서 바울은,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라고 말한다. 이 구절에 대한 웨슬리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즉, (주님으로부터의) "특별 계시가 없으되." 그가 그것[직접 계시]을 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사도들은 신적으로 영감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차이는 있다 -- 어떤 경우에는 특 별한 계시 그리고 특별한 명령을 가지고 썼으나, 또 다른 경우에는 그들에게 함께 했던 신적인 빛 즉 하나님의 영이 주는 영원한 보화의 힘을 빌어 썼다. 따라서, 이것도 역시 그들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신앙과 실행에 대한 신 적인 지침이다.

따라서, 이 구절에 표현된 견해에 따르면, 성서 저자들은 두 가지 유형의 영감에 의해 성서를 썼다. 하나는 명시적인 "특별 계시"요, 다른 하나는 암시적인 "영감"이다. 인간 저자의 소리가 표면적으로 크게 들리는 곳에서는 두 번째 유형의 영감이 작용했다고 보아야 하고, 화자가 구체적으로 하나님이나 예수 혹은 성령으로 되어 있는 본문들은 첫 번째 유형의 계시가 기록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웨슬리는, "거룩한 성서에 대한 신적 영감에 대한 분명하고도 간결한 증명"(Clear and Concise Demonstration of the Divine Inspiration of the Holy Scriptures)이라는 한 페이지짜리의 논문에서 독특한 영감론을 피력한다. 그에 의하면, 성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네 가지의 중요하고도 강력한 증거가 있다: 신적인 능력에서 온 기적(miracles), 신적인 이해에서 온 예언(prophecies), 신적인 우수성(divine goodness)에서 온 가르침의 우수성(goodness), 그리고 신적인 거룩성에서 온 인간 저자의 도덕적 품성. 이 네 가지의 증거들은 성서가 영감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해 준다는 것이다.

이토록 위대한 성서를 누가 썼을까? 웨슬리에 의하면, 세 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1) 선한 사람이나 천사에 의해 쓰였거나, 2) 악한 사람이나 악마에 의해서 쓰였거나, 3) 하나님에 의해 쓰였거나, 셋 중의 하나이다. 선한 사람이나 천사가 자신의 말을 쓰면서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속일 수 없을 터이고, 악한 사람이나 악마가 썼다면 그 내용이 이렇게 훌륭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웨슬리의 주장이다. 따라서 남는 가능성은 "하나님" 뿐이다. 이렇게, 웨슬리는 성서의 영감성에 대하여 확신하였고, 또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의 영감성 주장에서 주목되는 점은, 전승에 대한 맹종보다는 내용의 우월성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성서의 영감에 관한 웨슬리의 주장 중, 눈 여겨 볼만한 것이 또 하나 있다. 그는 디모데 후서 3:16에 대한 주석에서, 벵겔의 도움을 받아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성령은 성서를 기록한 사람에게 영감시켰을 뿐 아니라, 진지한 기도 로써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계속하여 영감을 주고 계시며 초월적으로 도우 신다.

즉, 그는 일회적인 영감만을 믿은 것이 아니다. 성서 저자들에게 작용했던 영감은 오늘에도 계속적으로 작용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구약성서에 대한 주석에서 그는, "성서는 그것이 쓰여진 동일한 성령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성서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기도"를 든다. 그러나, 그 영감은 새로운 성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식으로 활동하지는 않는다. 이미 기록된 성서의 의미를 밝혀주는 방식으로만 활동할 뿐이다. 앞으로 더 자세히 논의될 것이지만, 성서 이해에 있어서의 성령의 계속적인 역할에 대한 인식은 웨슬리로 하여금 문자적인 독서와 기계적인 적용의 오류에 빠지지 않고, 심미적으로 읽고 창조적으로 적용하도록 도와주었다.

아울러서 간단히 지적하고 넘어갈 점은, 성서의 영감설이 일반적으로 수반하는 부수적인 믿음들을, 웨슬리가 보여 준다는 점이다. 성서의 영감에 대한 믿음은 일반적으로 성서의 무오성과 의미의 통일성에 대한 믿음에로 인도한다. 유대인들의 성서 이해가 그것을 잘 증명해 준다. 영감에 대한 웨슬리의 믿음도 역시 그로 하여금 "성서의 모든 부분들은 신적이며, 모든 부분이 함께 단일체(one entire body)를 이루며, 그 안에는 아무런 결함도, 과잉도 없다"고 말하게 만들었다.

성서의 모든 부분들이 단일한 메시지를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웨슬리에 의하면, 성서는 "하늘로 가는 길"(the way to heaven)을 보여준다. 그 길을, 그는 "믿음에 의한 의인(義認)"(justification by faith)의 교리에서 발견한다: "믿음을 통한 의인은 성서뿐만 아니라 교회의 중심 교리이다." 그는 또한 "성서가 말하는 구원의 길"(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이라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한다:

"믿음"과 "구원"이라는 이 두 개의 간단한 단어들이 모든 성서의 요체이며, 성경의 전체의 정수라는 사실은 쉽게 판별될 수 있다. 그것들에 대한 모든 실 수들을 피하고 이 두 단어에 대한 참되고도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해 노력하 면 할 수록 그 판별은 더욱 쉬워진다.

즉, 웨슬리는 성서의 중심을 "믿음을 통한 구원의 도리"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그 도리는 세 가지로 나뉜다: 1) 인간은 모두 죄 안에서 죽었고 따라서 진노의 자식이라는 것; 2) 인간은 믿음으로만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 3) 믿음은 내적, 외적 거룩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 그는 이 세 주제로써 성서를 읽고 해석한다. 이 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며, 바로 이 길을 성서가 보여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는 성서를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웨슬리는, 처음에 가까이 했던 모라비아 교도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던 것이다.

3. 웨슬리의 성서 읽기

윌리암 아넷(William Arnett)은 그의 학위 논문에서 "웨슬리의 해석 원칙"(Wesley's Rule of Interpretation)을 여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우선, 아넷의 요약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 장을 시작하기로 한다.

첫째, 문자적인 의미가 강조된다.

둘째, 성서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맥락(context)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셋째, 성서를 통해서 성서를 해석한다.

넷째, 성서 해석에 있어서 경험이 강조된다.

다섯째, 이성은 믿음을 돕는 한에서 허용된다.

여섯째, 실용성을 염두에 두고 해석한다.

아넷의 분석은 웨슬리의 성서 해석 원칙의 주요 특징들을 포착했다는 점에 있어서 인정받을 만하다. 이제, 이하에서는 이러한 특징들이 가지는 심층적인 차원들과, 아직 주목되지 않고 있는 또 다른 특징들에 대하여 논의할 것이다.

우선, 웨슬리가 문자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벤자민 잉햄(Benjamin Ingham)은 자신의 모친에게 보낸 편지에서 웨슬리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계시되었다고 믿는 그것 외에는 아무런 원칙을 가지 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그는 늘, 가장 문 자적인 의미를 최고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 본문의 문자적 의미가 다른 본 문의 의미와 모순을 이룰 때만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문자적 의미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성서 해석의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로버트 그랜트(Robert Grant)가 잘 소개하고 있듯이, 종교개혁 이전 시기까지 교회의 성서 해석을 지배한 것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전통을 이은 "비유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이었다. 그러나 이 해석은 많은 오역을 허용해 주었고, 따라서 종교 개혁의 중요한 공헌 중 하나는 "문자적 의미"에 대한 강조였다. 웨슬리가 문자적 의미의 우선성을 강조한 배후에는 이와 같은 역사가 숨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비유적 해석을 통한 성서의 자의적(恣意的) 해석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웨슬리의 성서 해석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특징은 본문의 문학적, 역사적 맥락(literary-historical context)을 강조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독서 방법을 우리는 "문학적 혹은 심미적 읽기"(literary or aesthetic reading)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독서 방식의 배후에는 성서 본문의 성격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가 깔려 있다. 즉, 웨슬리에게 있어서 영감은 성서의 언어적 어법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성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어 각각에 주어진 의미, 그것에 의해 표현된 거룩한 감동, 그리고 인간 저자에 의해서 표현된 감정 등을 관찰해야 한다." 이런 입장에서 그는 단어의 의미에 대한 물음 뿐 아니라, 전후 문맥에 대하여 세심한 배려를 보인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본문의 언어적 표현을 꿰뚫어 보는 직관적 독서를 즐겨 한다.

그 한 예로서, 우리는 빌레몬서 9절에 대한 주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오네시모에 대한 빌레몬의 너그러운 처사를 간청을 한다. 웨슬리는 이어지는 10절과 11절에서 바울이 얼마나 세심하게 표현을 하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10절에서는 "오네시모"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나의 아들, 내가 옥중에서 낳은 아들"이라는 표현을 앞세운 이유는, 오네시모에 대한 빌레몬의 좋지 않은 감정을 고려한 까닭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11절에서도, 오네시모의 과거의 무익성에 대한 간략한 언급 직후에 그의 현재의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도 역시 바울의 세심한 배려에서 온 것임을 지적한다.

이런 예에서 분명해지는 것은, 웨슬리는 비평 이전의 사고 안에서 살기는 했으나, 기계적인 문자주의자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오히려 성서 해석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의 창조성을 보여준다. 본문을 그것 자체로서 완전한 통일체로 보고, 그 본문 내면의 역동성(dynamics)을 고려하여 그 의미를 찾아내려는 태도는, 편집비평의 뒤를 이어서 성서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문학비평적 독서"(literary reading) 태도에 놀라울 정도로 가까이 있다.

이러한 읽기 방식과 관련하여 지적해야 할 것이 바로 "묵상적 읽기"(meditative reading)이다. 웨슬리는, 성서 읽기 방법을 소개할 때마다 "묵상"을 중요한 요소로 지적한다. {구약주석} 서문에서 그는, 효과적인 성서 읽기의 여섯 가지 요소를 열거한다. 여섯번째 항목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6) 만일 우리가 읽으면서 자주 멈추어서, 읽은 내용으로 우리 자신의 내면과 행동을 검사하는 것도 역시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께서 우 리를 능하게 하셔서 그의 복된 뜻에 우리가 순종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을 발 견하게 될 때 찬양할 계기를 제공해 줄 것이며, 반대로 우리의 양심이 거기에 미치지 못할 때에는 겸비와 기도의 계기를 제공해 줄 것이다.

그는 또한 어느 대화 중에 성서를 이해하는 세 가지의 주요 방식으로서 "읽기"(reading), "묵상"(meditating), "듣기"(hearing)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가 성서 이외의 책들 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책인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 Kempis)의 {그리스도를 본받아}(Imitatio Christi)의 서문에서, 그 책을 읽는 방식으로서 "묵상"을 강조한 적이 있다. 이러한 묵상적 읽기의 예가 실제로 그의 {신구약 주석}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마태복음 14:10; 16:24과 마가복음 2:6; 9:38 등을 그 예로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구절들에 대한 주석에서 웨슬리는 신학적, 문학적 설명을 보류하고 묵상으로 대신한다. 마가복음 2:6의 주석에서 그는 이렇게 적는다: "오 하나님, 저로 하여금 이 작은 죄들 중 하나라도 범하지 않게 하소서! 속히 저의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리게 하소서!" 묵상을 통하여 직관력으로써 본문의 의미를 꿰뚫고, 그 동일한 직관력으로 본문과 자신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웨슬리의 성서 읽기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서 읽기에 있어서 "실천"의 중요성을 웨슬리는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바로 앞에서 {구약주석}의 서문의 일부를 인용한 바 있는데, 그 부분을 계속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당신이 [그 묵상을 통하여] 어떤 빛을 받으면, 최선을 다하여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그것도, 즉시로. 조금의 지체도 없게 하라. 당신이 무엇을 결 심하였든지, 그 순간부터 실행하기 시작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이 말 씀이 현재의 구원과 영원한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임을 발견할 것이다.

실천이 없는 학문은 올바른 학문 방식이 아니라는 동양적 학문관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음 믿음이라는 야고보의 제언(2:14)을 생각케 하는 대목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대화에서도 웨슬리는 성서를 읽되, "계속하여"(constantly), "규칙적으로"(regularly), "세심하게"(carefully), "신중하게"(seriously), 그리고 "생산적으로"(fruitfully) 읽으라고 제안한다. 생산적으로 읽으라는 말은 읽은 것을 실행하는 데 관심을 두라는 뜻이다. 성서 읽기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중용(中庸)의 장구(章句) 20장의 내용과 신기하리만큼 놀라운 일치를 보인다. 중용은 학문하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넓게 배우고(博學之), 깊이 캐어 묻고(審問之), 진지하게 생각하고(愼思之), 명쾌하게 분별하고(明辨之), 돈독히 행하라(篤行之). 이 다섯 가지 요소를, 웨슬리는 성서 읽기에 있어서 적용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4. 결론: 성서학의 비평 말기적 회의와 웨슬리의 성서읽기

웨슬리는 "성서의 사람"이었다. 성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성서의 세계 안에서 살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프란츠 힐더브란트(Franz Hilderbrandt)는, "그의 설교들, 편지들 그리고 일기들은 구구 절절이 성서적 용어로 말하고 성서적 방식으로 주장하고 성서적 범주 안에서 생각하는 한 사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실로, 그는 "한 책의 사람"이 되기로 한 결심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다. 따라서, 앞에서 지적했듯이, 그의 성서 이해를 아는 것은 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큰 역할을 담당한다. 그 뿐 아니라, 오늘의 성서 읽기에 있어서도 그의 성서 이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웨슬리의 성서관은 그 근간에 있어서 종교 개혁적 전통에 견고하게 서 있다. 영감론에 대한 믿음이라든지, 성서에 대한 구속론적/기독론적 해석이 그 예이다. 그는 도버해협 동편에서 시작되고 있던 비평적 사조의 영향으로부터 면역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비평 이전(pre-critical) 시대의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비평 이전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가 남겨준 모든 창조적 영감들을 모두 무시할 만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시대의 한계(constraints of his time) 아래에서 살았지만, 오늘의 성서 읽기에 여전히 중요한 영감들을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자주 지적되어 왔지만, 3세기가 넘도록 역사비평방법을 전능의 도구로 사용해 왔던 성서학은 얼마 전부터 비평 말기적 회의와 무기력에 빠져 있다. 역사비평학이 시작된 이후에 이루어진 이 엄청난 학문적 발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이요, 사상과 실천의 문제에 있어서 성서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물론, 이 말이, 역사비평학의 학문적 정당성을 부인하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무미건조하고 복잡하고 무기력한 해석 작업을 보충할 만한 어떤 돌파구가 생겨나야 할 것이라는 요청이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에 문학비평, 정경비평, 사회학적 비평 등이 새로이 제기되어 그 실용성을 검증하고 있는 중에 있다. 우리는, 웨슬리의 성서 읽기는 이러한 새로운 경향들과 매우 가까이 있음을 발견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보여 준 심미적, 묵상적, 실천적 성서 읽기는 역사 비평 후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좀 더 풍요롭고 생산적인 성서 읽기에 대한 하나의 대안을 제공해 준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웨슬리의 전통을 따르기를 원하는 현대인은 성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비평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웨슬리가 그 자신의 시대의 아들이었듯이, 우리도 비판적이고도 건설적인 "우리 시대의 자식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비평 이전 시대로의 회귀는 결코 대답이 아니다. 현대인들이 계속하여 전승해야 할 웨슬리의 유산은, 그가 성서 읽기에 있어서 보여준 창조성(creativity in reading)과 실천에 있어서 보여준 신실성(faithfulness in practice)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비평주의의 유산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으로서 필자는, 바로 이러한 노력이 앞으로 일어날 것을 전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