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레와 카리스마타

- 성령 체험에 대한 웨슬레의 견해 -

 조종남(전 서울신대 학장)

 

I. 들어가는 말

최근에 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 운동과 연관하여, 많은 질문을 받는다. 성령의 역사 에 동반하는 표적들 - 가슴이 뜨거워진다, 사람이 넘어진다 등등. 이런 현상이 성령의 역사의 외적 증거인지, 아니면 인위적인 것인지? 이런 현상이 없다면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것인가?

교회 역사에서 위대한 일을 행한 지도자들에게도 이런 문제가 늘 제기되었던 것 같다. 이에 우리는 18세기 영국의 교회와 사회를 새롭게 한 위대한 전도자요, 신학자인 요한 웨슬레의 경 험과 견해를 살펴봄으로 참고를 삼고자 한다.

II. 웨슬레가 경험한 성령의 역사

2.1. 웨슬레는 목사 관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엄격한 청교도적인 경건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교회의 모든 규율을 엄격히 지키면서 자라났다. 그런 경건과 신앙생활은 그의 옥스 퍼드(Oxford) 대학 시절, 신성클럽 활동으로 연결되었다.

총망을 받는 목사요 옥스퍼드의 강사로서, 미국 죠지아에 선교사까지 갔다왔다. 그러나 그 는 명목적인 신자로 활기가 없는 목사였다.

그러던 중, 1738년 5월 24일 올더tm게이트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 면서 그는 자기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는 그가 체험한 성령의 증거(역사)였다. 이런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웨슬레는 지금까지의 지식적인 믿음이 확실한 자기 자신의 믿음 (his own)이 된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주일 뿐아니라, 바로 ‘나를 위하여 돌아가셨도다.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까지도 사하셨도다. 진실로 그리스도만이 구주이시 다" 라고 확신하게 된것이다. 그는 그의 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738년 5월 24 (수)

저녁에 나는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모이는 집회에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 나 참석했다. 그 집회에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서의 서문’을 읽 고 있었다. 오후 9시 15분 전쯤 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 여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변화를 말하고 있을 때 나는 내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나는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주심을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가 나 같은 죄 인의 죄까지도 가져가 주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확 신을 얻게 되었다.

그 후에 나는 나를 악의에 차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모욕하고 핍박하던 자 를(마 5:44) 위하여 온 갓 정성을 다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이 얻은 내심의 체험을 공개적으로 증거 했 다....

집에 돌아온 후 여러 가지 유혹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그래서 소리를 치니 까 모두 달아났다. 그러나 유혹들은 찾아오고 또 찾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다 본즉 하나님은 그의 성소로부터 도움을 보내주셨다. 여 기서 나는 나의 현재상태와 나의 과거 상태가 서로 다름을 발견했다. 과거에는 은혜 아래 있고, 또한 율법에게 속하였으므로 비록 전력을 다해 싸웠는데도 패 한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항상 승리하는 자다.

웨슬레는 이런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참 믿음 (saving faith)를 갖게 되며, 확신(assurance) 을 갖게 될 뿐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참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된 것이다. 스타키(Starkey) 는 이런 성령의 증거(역사)가 웨슬레의 신앙생활에 능력과 목적을 부여한 것이라고 했다. 이후 부터 웨슬레는 적은 일에나 큰 일에나 성서적 그리스도인, 성서적 기독교를 재긍정하는 메소티 스트 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웨슬레도 그러했듯이 신자는 이런 성령의 증거를 체험하지 않고서는 참 신자가 될수 없는 것이다.

2.2. 웨슬레의 전도 사역은 성령의 계속적인 역사에 힘입어서 힘차게 전개되어 나갔다. 그는 자기의 설교 사역이 올더스게이트에서의 체험 후 어떻게 달라졌는 가를 다음과 같이 증언하 고 있다.

1725년부터 나는 설교를 많이 하였으나, 그 수고에 대한 열매를 거의 못 얻었다. 그러나 1738년 이후, 곧 올더스게이트에서의 신앙 체험 후, 나의 설교는 그리스도 중 심의 설교였으며, 나의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덤불 속의 불처럼 역사하였다.” 청 중은 모두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증거하는 것이었다.

웨슬레의 이런 선교 사역은 마침내 18세기 영국에서 놀라운 교회의 부흥, 개인과 사회의 갱 신을 가져왔다 .

그러나 우리는 이런 놀라운 사역을 함에 있어, 웨슬레 자신이 성령의 강한 역사를 체험했 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웨슬레가 그의 일지에 기록한 그의 체험을 들어보자.

1739년 1월 1일 (월)

“웨스트리 홀 목사(웨슬리의 매부), 챨즈 킨친 목사, 인감 목사, 조지 휫필드 목사, 허칭 즈 목사, 내 동생 찰즈 목사가 60여명의 다른 형제들과 함께 페터 래인에서 갖게 된 애찬 식에 참석했다. 세벽 3시 경이었다. 우리가 계속 갈급하게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위에 매우 강하게 임재하셨다. 그 권능아래 많은 사람들은 넘쳐흐르는 기쁨으 로 울부짖었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의 현존 앞에서 그 위엄과 놀라움에서 약간 깨어나자마자, 우리는 한 목소리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다" 를 불렀다.”

웨슬레는 1744년 12월 23일과 25일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744년 12월 23일(주일) ... 나는 이상하게(unusually)생기가 없었고 마음이 무거 웠다... 그 다음날, 나는 아직도 죽은 사람과 같았다. 그러나 저녁에 내가 스노우필드에서 기 도를 하고 있는 동안, 내 기억으로는 이 전에 본 적이 없는 빛과 능력을 발견했다. ...

25일(화) ...나는 아침에, 하나님의 은혜로, 어제와 같은 영적 상태에서, 일어났다. 아마도 8시경,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두 세 사람과 함께 있었는데, 그 때 나는 하나님 면전 에서 심한 두려움(awe)과 평안함(tender sense)을 느꼈다. 이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그리고 나는 왼 종일 하나님의 면전에서 지냈다....

많은 웨슬레학자들은 이런 사건이 웨슬레가 강조하던 온전한 성결 또는 성령충만의 사건이 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웨슬레의 사역이 보다 힘있게 전개된것은 부 인할 수가 없다.

2.3. 성령의 강한 역사는 그 후 웨슬레의 전도 사역에서도 거듭 거듭 일어났다. 이런 역사를 통하여 많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를 영접하게 되며, 신자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 었다. 실의에 빠졌던 신자가 새로운 힘과 기쁨을 회복하며, 마음의 평강을 얻으며, 주를 찬양 하게 되었다. 또는 병든 자가 치유를 받았으며, 사귀들린 자가 고침을 받는 일들이 일어났다.

명실 공이, 웨슬레의 사역은 초대교회에서 보듯이 말씀의 전파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 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이런 역사는 놀라운 외적 표적도 동반했다 어떤 때는, 말씀을 듣던 사 람 가운데 어떤 사람이 넘어진다 든가, 몸을 떤다든가, 소리를 지르곤 했다. 웨슬레가 친히 기록한 몇 개의 예를 보기로 하자.

기이한 현상이 나타남

1739년 6월 15 일(금)

저녁에 나는 피곤한 몸과 지친 마음으로 왑핑(Wapping) 집회에 갔다. 로마서 3:19에 관해 말씀 선포를 하려 했으나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를 몰랐다. 우리는 계속 찬송을 불 렀다. 나의 마음은 어딘지는 모르나 공동 서신과 히브리서의 많은 귀절 들로 가득 차 있었 다. 나는 하나님께 직접 지시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고 성경을 열었더니 히브리서 10:19-2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 체니라....”의 말씀을 주셨다.

내가 사람들에게 “새롭고 산 길(a new and living way)”을 통해서 가장 거룩한 “성소'에 들어오라고 열심히 죄인들을 초청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눈물과 큰 소리 로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푹 쓰러져서 그 자리에서 몸에 힘이 빠진 상 태로 누워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몹시 떨고 진동을 했다. 어떤 이들은 너무나 비탄에 젖 은 나머지 육체의 모든 부분에 일종의 격동적인 동작을 보였으므로 4-5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을 당하지 못했다. 나는 많은 히스테리 환자와 간질병 환자들의 발작 증세를 보아 왔 으나, 그러나 이들은 그러한 증세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즉시 하나님께 믿음이 약 한 자들이 마음에 상처받지 않도록 기도했다.

신유의 역사가 일어남

웨슬레는 야고보서 5:14-15을 주해하면서, 신유의 기적은 항상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 로 신유의 기도는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뿐 아니라, 즉 장로들도 병 낳기를 위하여 기도하 면 된다고 이해했다. 웨슬레의 이런 신앙과 가르침은 그의 사역에서 여러 번 나타나고 있다.

1741년 5월 10일 (월요일)

나는 죄인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다. 그 동안 별로 피곤을 몰랐다. 그러나 그후 이어진 애 찬식때, 나는 허리와 머리가 아플뿐 아니라 몸에 열이 계속해서 있었다. 기도를 하려고 하 니, 기침이 몹시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 나에게, “믿는 자들에게는 이적 이 따르리라(막16:17)”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큰 소리로, 주여 나의 믿음을 도우셔서 (increase my faith), 당신의 은총의 말씀을 입증하소서하고 주님께 구했다. 내가 그렇게 말 하는 동안에, 나의 아픔을 사라졌고, 열도 떨어져서 기운을 차리게 되었다. 그후 나는 오 랫동안(for many weeks) 아픔과 약함을 느끼지 않았다. 오 주님,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1746년 11월 12일(수요일)

저녁 예배 시간에, 나는 심한 치통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피어씨가 말하기를, 자기도 치아가 부서져서 여러 해동안 고생을 했는 데, 많은 의사들은 고칠 수 없다고 말했 지만, 순간적으로 완전히 치유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기도 를 드렸다.

1756년 4월 6일(화요일)

설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주 어두운 밤이었다. 나는 나무 쪼각에 발이 부딛쳐 아파서 넘어졌다.‘아- 나는 지금부터 여러 주 동안 말씀을 듣지도 설교하지도 못하겠구나'생각했 다. 그 순간 나의 가슴에 와닫는 말씀이 있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라, 그리하면 너는 일어서리라.” 그래 나는 뛰어 일어나며, 내 발을 뻗치면서 외쳤다.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오니, 나로 하여금 일어서게 하시옵소서.” 그 순간, 통증이 멈추고, 나는 일어섰다. 그후 나의 발은 전처럼 아주 튼튼해졌다.

1767년 5월2일

토마스 B___라는 사람이, 3 마일 쯤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심한 파상을 입고 죽을 뻔 했 다. 그러나 우리 교회(societies)에서 성도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순간적으로(at once)고 침을 받아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다.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함

1739년 10월 23일 (화)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부득이 킹스우드(Kingswood)에 있는 한 젊은 부인 (Sally Jones란 여인임)에게 다시 가야만 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할테니 각자가 판단하 시기 바람) 그녀는 19-20세 정도 였으나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 워 있었는데, 2-3명이 그녀를 잡고 있었다. 무서운 광경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실망과 공포와 고뇌가 그녀의 창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온몸이 수천번 비틀어지는 것으로 보아 지옥의 개들이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을 나타내었다. 견딜수 없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뒤섞여 나왔다. 그러나 그녀의 돌처럼 굳어버린 두 눈은 울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입을 열자마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저주를 받았단 말이예요, 저주를. 영원히 파멸되었어요. 엿세 전에만 왔어도 나를 도울 수 있었을텐데. 이젠 늦었어요. 이제 나는 마귀 의 자식이예요. 나를 마귀에게 주어 버렸어요. 나는 마귀의 것이니 마귀를 섬겨야해요. 마귀 와 함께 지옥에 가야해요. 나는 마귀의 것이고, 그를 섬겨야 해요. 그와 함께 지옥에 갈거예 요. 나는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구원을 받지도 않을 거예요. 나는 저주받아야만하고 받을거 예요. 그리고서 그녀는 악마에게 기도를 시작했다.

우리는 “주님의 군사여, 일어나라, 일어나라”(챨스 웨슬리가 지은 찬송)라는 찬송을 불 렀다. 그러자 그녀는 즉시 잠자듯이 푹 쓰러졌다. 그러나 우리가 떠나자 마자, 말할 수 없이 격렬하게 다시 소란을 피웠다. “돌 심장이여, 터져버려라....” 그리고 그녀는 두 눈을 천정 의 구석을 향해 고정시키고는, “아, 그가 저기 있어요. 좋은 악마여, 와서 나를 데리고 가렴. 네놈이 나의 골통을 부셔버리겠다고 했잖아. 와서, 빨리 하란 말이야. 난 너의 것이고, 너의 것이 될것이란 말이야. 나를 데리고 가다오.”

우리는 다시 그녀에게로 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녀는 전처럼 또한번 푹 쓰러졌 다. 그런데 또 다른 여인(Betty Somers로 판명됨)이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9시 경 내동생 찰스가 왔다. 우리는 함께 11시까지 계속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고통당하는 첫번째 여인과 두번째 여인의 영혼속에 한순간 평화의 말씀을 주시니, 그들 두 여인은 원수 와 복수자(시 44:16)를 잠잠케하신 주님을 함께 찬양하였다.

1740년 5월21일(수)

저녁에, 웃는 귀신들린 여자가(a spirit of laughter)나타나 모두가 어려움을 겪었다. 모든 사람의 주의가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는 외식을 부리는 사람이 아닌것을 모두가 아는 바다. 그렇게 포악하게 악령에 사로잡혀 날뛰는 것을 일찍이 본적이 없다. 그녀는 가끔 가끔 웃 는다, 그리고서는 거이 까무러친다. 그러다가는 큰 소리로 저주를 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한다. 그렇게 하다가, 발을 구르며 야단을 한다. 그때 그녀의 힘이 어찌 강한지, 사 오명의 사람이 달려들어도 그녀를 억압하기가 힘들었다. 말할 수 없이 강했다. .....그러나 마 침내 그녀가 그리스도를 부르며 도와달라고 하자, 그녀를 괴롭히던 난폭함은 사라졌다.

이런 치유의 사건은 그 후도 가끔 있었다. 웨슬레는 구로우세느터의 감독 와버튼 (William Warburton, Bishop of Gloucester 1759-79)이 쓴 책, 성령의 직무와 역사(The Office and Operations of the Holy Spirit Vindicated from the Insults of Infidelity and the Abuses of Fanaticism)에서 웨슬레를 비판하며 성령의 기사이적을 부정적으로 설명한데 대 한 논평으로 1760년 11월 26일에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증언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내 말(horse)이 다리를 몹시 절었다. 그리 고 나는 심한 두통이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이나 짐승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치유하실 수 있지? 하고 생각했다. 직각적으로 나의 피로와 두통은 멈추고, 내 말은 같은 순간 다리 를 절지 않았다. 그렇다. 진실이 믿는 (수천명에 달하는)많은 성도들은 이와 같이 확실한 기 도의 응답을 체험했다고 나는 믿는다.

R---A---씨는 자연법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광견병(distemper)에 걸렸었는데, 인간 적인 수단을 쓰지 않고 순간적으로 치유를 받았다......

저녁에 나는 안 카루캇트를 방문했다. 그녀는 얼마동안 말을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 도를 시작하자 마자, 하나님께서 그녀를 치유하시어 그녀는 말을 했다. ...

젊은 두 여자가 사귀가 들려 이상한 모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몇 친구가 나와 내 동생이 와서 기도해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위하여 기도했다. 그들은 고침을 받았다. 로마 시람들이 사용하는 마술을 사용했냐구요? 나는 그런 마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마술을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2.4. 이런 사역이 일어남으로 인하여, 웨슬레의 복음 증거는 권능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다 른 한편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열광 주의자' 라고 비난도 받았다. 왜냐하면, 당시의 영국교회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나 성령의 기사 이적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유명한 정통주의 신학자요 부리스톨의 감독인 버틀러(Bishop Butler)는 웨슬레에게, “당신이 집회에서 사람들이 발작을 하고, 그러면 당신이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들었는데 ... 성령의 기적적인(특수한, 일시적인, exordinary)계시나 은사들이 있는 것처럼 행하는 것은 무서 운 일,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당신은 이 지역에서 설교하지 말고 떠나라"고 충고했다.

이런 반대자는 버틀러 감독뿐 만이 아니였다. 릿치필드의 감독은 출판물까지 발행하여 웨슬 레의 주장은 열광주의자들의 교리며, 무용한 것(futile)이라고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성령이 신자 안에 내주하며, 내적 증거를 한다고 주장한다던가, 또는 성령에 의하여 기도 하고 설교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성령의 기적적인(비정상적인) 은사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인데, 이런 사역은 사도 시대와 초대교회에만 속한 것이다. 따라서 말세(오늘날)에서 그런 일이 일어 나는 것처럼 행하는 것은 헛된 일이며, 이는 열광주의자들의 교리이다.”

타이어맨에 의하면, 이런 반대는 기브손 감독(Bishop Gibson), 와버튼 감독(Bishop Warburton) 등 여러 지도자들로 부터도 받았다.

2.5. 이런 반대는 불신하는 일반 신자들로 부터도 왔다. 웨슬레는 1739년 5월 20일(주일)의 일 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739년 5월 20일

“우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지 않고 그리고 귀로 듣지 않고는 어떤 사실도 받아 들이려 하지 않은다...그러나 사람들은 ‘표적과 기사’(요4:48)를 보고도 믿으려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은 사실들(표적과 기사)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사실 들을 자기 나름대로 설명하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현상은 순전히 자연적인 현상이 란 말이야. 사람들은 밀패된 방에서 열때문에 쓰러지는 것이야”라고 설명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속임수야...왜 자기네들 개인 집회에서만 그런일들(표적과 기사)이 발생 한단 말이야? 왜 태양아래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단 말이야?”라고 빈정댔다...

오늘 21일 월요일 우리 주님께서 직접 응답해 주셨다. 내가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 나님 됨을 알지어다”(시46:10)의 말씀을 강조하며 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밀패된 방이나 개인 집회에서가 아니라 야외(브릭크야드 옥외집회)에서 2000명 이상의 증인들 앞에서 권 능을 보여주시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한 사람 또 한 사람 그리고 또 한사람 계속해서 땅바 닥에 꼬꾸라짐을 당하여, 하나님의 권능의 현존 앞에서 몹시 떨었다. 다른 사람들은 고뇌에 찬 큰 소리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행16:30)라고 울부 짖었다. 한 시간이 체 지나기 전에 그들 중에는 내가 처음보는 일곱 사람이 기쁨이 충만하여 찬송을 부르면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데 대하여 하나님께 온갖 힘을 다하여 감사하고 있었다.

저녁에 니코라스 거리에서의 집회때 내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자 마자, 한 사람이 ‘마음 에 찔려’(행2:37) 용서와 평화를 간구하여 몹시 괴로워 하는 울부짖는 소리에 예배의 방해 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벌써 이루어 주신 일을 선포하면서,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라는 중요한 진리를 증거로 내세웠다. 또 다른 사람이 푹 쓰러졌는데, 그 옆에는 반대 이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한사람이 서 있었다. 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라 서 있는 동안에, 가까이 있던 어린 소년도 똑같은 현상으로 쓰러졌다. 뒤에서 눈을 똑바로 뜨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서 있던 한 청년 이 죽은 사람처럼 푹 꼬꾸라지더니, 곧 땅을 치면서 소리내어 울부 짖기 시작했다. 여섯명 의 장정이 그 사람을 저지하기가 힘겨웠다. 그의 이름은 토마스 멕스필드였다(Thomas Maxfield: 그 후 웨슬리와 함께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고 훗날 목사가 됨).

웨슬레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변호했다. 이런 계기는, 동시 에 웨슬레로 하여금 성령의 역사, 특히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에 대한 신학을 개진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면 웨슬레의 성령, 특히 성령의 증거에 대한 교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III. 성령의 내적사역과 외적 표적

3.1. 그런 논란속에서 웨슬레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안 가질 수는 없었다. 그는 1739년 7월 7일의 일지에서, 동료목사와 상의한 것을 볼 수 있다.

1739년 7월 7일 (토)

나는 휫필드 목사와 하나님의 내적인 역사와 동반되는 외적인 표적(쓰러지는 일)에 관하여 의논할 기회를 갖게되었다. 나는 그가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주로 사실과는 다른 엄청난 거짓된 소문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그분자신이 보다 더 잘 알게 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휫필드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는 모든 죄인들을 연단 앞으로 초청 했을 때, 그분 가까이에 있던 네 사람이 거의 동시에 쓰러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들 중의 한사람은 움직이지도 않고 의식도 없이 누워 있 었고, 두번째 사람은 몹시 덜덜 떨었고, 세번째 사람은 소리는 내지 않고 끙끙 앓으면서 온 몸에 강한 발작적인 움직임(진동)을 보였으며, 네번째 사람은 똑 같은 발작적인 동작을 하 면서 눈물과 큰 소리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때부터 우리는(웨슬레와 휫필드) 모두 하나님 께서 역사하시는 대로 수용하기로 하였다.

3.2. 웨슬레는 그의 표준 설교집을 출판하였다. 웨슬레는 그의 표준 설교집을 감리회의 교리 표준으로 삼았듯이, 교인들의 양육을 위하여 설교집을 출판했던 것이다. 그는 설교집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가 성서 속에서 발견한 하늘로 가는 길에 관하여 이 설교에 적절히 기록하였다. 그 리고 이 설교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구원의 길과 인간이 꾸며낸 길이 어떻게 다 른가를 보여 주었다. 나는 참되고, 성서적이면서 경험적인 신앙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 설명에 있어서 신앙의 참된 부분은 조금도 삭제하지 않고, 또 거짓된 것을 덧부치지도 않 으려 했다. 이렇게 하면서 내가 특별히 바라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첫째, 이제 방금 천국을 향하여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역사를 잘 알지 못 하기 때문에 천국가는 길에서 돌이키게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을 형식주의와 단순한 외 적 종교(mere outside religion)에서 보호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외적 종교는 마음의 종교 (heart religion)를 세상 밖으로 축출시켜 왔다.

그리고 둘째, 마음의 종교, 곧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the faith which worked by love) 을 가진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율법(the law through faith)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 여 악마의 올무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웨슬레는 냉냉한 형식주의와 무분별한 열광주의를 경계하며, 성서적 경험적 기 독교를 긍정하려는 것이었다. 이런 웨슬레의 관심은 주로 성령의 역사와 연관된 일이었다.

3.3. 정통신학자들에게 대한 충고:

첫째, 당시의 소위 정통신학자들에게 답하면서, 웨슬레는 지금도 복음이 권능으로 전파되며,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살고 있다면, 성령은 비상적인 극적인 은사 곧 카리스마타 (charismata)를 나타낸다고 믿었다.

3.3.1. 또한 그런 성령의 역사가 초대교회, 곧 성서시대에 성행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이 사도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런 역사가 현재 나타나지 않는 것은 (disappearance) 교회가 콘스탄틴 시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세속적인 로마인들이 교인이 되어, 신앙에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웨슬레에 의하면, 이는 성령이 후퇴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이 식어져 있는 즉 그저 죽은 형 태만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성령께서는 역사하시지 않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웨슬레 는 말하기를, 이런 기사이적들이 정지되고 있음은 교회가 평온과 안전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 스도인들은 안위와 명예롭게 믿고저하기 때문이다.

3.3.2. 쉬지않고 오는 비난과 공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웨슬레는 성령의 감동 (Inspiration)과 증거(Witness)는 필요한 것이며 늘상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성령의 감동이라함은, 성령께서 내적으로 도우시는 역사로써, 이를 통하여 사람의 이해와 의지를 깨우쳐 주며, 사람의 연약함을 도우며, 신자를 위로하며, 정결케하며, 성결케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란 결국 성령께서 신자 안에서 역사(operate)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람이 회개하거나, 믿음으로 거듭나는 일이나, 성화와 성장, 이 모든 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 한 것이다. 웨슬레는 믿음의 생활을 계속적인 “나와 너(I-Thou)”의 영적관게에서 이해한 것 이다.

이런 성령의 증거는, 웨슬레에 의하면, 직접적이며(immediacy), 사람이 인식할 수 있도록 체험되는 것이로되(perceptible),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3.3.3. 신자에게 역사하는 성령은 같은 성령이지만, 성령은 자신의 뜻에 따라 여러가지 모양 으로 역사하신다. 어떤 때에는 강한 능력으로, 또 어떤 때는 조용히, 보이지 않게 역사하신다. 웨슬레는 말한다. “성령으로 하여금 자신의 방법대로 행하시게 하시오. 성령은 당신보다 더 현 명하시며, 그 분은 모든 일을 잘 행하실 것이다.”

이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가 다양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적으로 이루워진 사역의 내용이 하나님께로 온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후자가 본질적인 것이라면, 전 자는 우연적인 것(accidental)으로 그 표적이 다양하다. 본질적인 것이 없는 현상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내용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야 한다. 여기에 웨슬레는 열광주 의자들을 경계하기에 이른다.


3.4. 열광주의자들에 대한 경계:

3.4.1. 당시의 열광주의자들은 나타나는 현상과 표적에 치중하여, 은혜의 수단(교회출석, 성 례전(세레와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 또한 성경을 읽고 상고하는 일들)을 무시했다. 때로는 입신 함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워졌다고 간주하며 정숙주의(Quietism)에 빠졌다.

이에 웨슬레는 "은혜의 수단" 이라는 설교를 거듭하면서 그들의 그릇됨을 지적하면서 시정 하려고 했다. 또한 “신자안에 죄” 라는 설교를 하면서 그들의 그릇된 구원관을 시정하 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타레인 집회를 주도하고 있던 모라비안 교도들이 웨슬레의 충고를 받 아드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웨슬레는 1739년 말에 마침내 모라비안 교도와 결별하고 메소티스 트 연합회 (United Methodist Society)를 발족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많은 교회사가들은 이 사건이 웨슬레의 메소티스트를 기 독교 주류에 선 복음적 운동으로 자리잡게 하는데 크게 공헌했다고 본다.

3.4.2. 더욱이, 웨슬레는 때로는 마귀의 역사로 흡사한 기적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 다. 웨슬레는 그의 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1741년 1월 11일 (주일)

나는 마귀의 권능도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는 경우를 경험했다. 우리가 룸(the Room) 에 있는 동안 되어진 일이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있던 죤즈 부인(부리스톨 집회소의 회원) 이 성경을 읽기위해 성경을 잡더니, 갑자기 성경을 던져버리고는, 말하기를 “나는 충분히 착하단 말이에요. 난 더이상 절대로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지 않을거야”라고 했다. 내가 왔 을때에도, 그녀는 같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난 항상 죄로 가득찬 사람으로 내가 하는 모 든 일에 죄를 짖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제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어요. 내가 선량한 기독교인이란 것 말이에요. 나는 내 일생에 남에게 해되는 일은 한적이 없단 말이야. 지금 보다 더 착해질려고 바랄 것도 없단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같은 소리를 수없이 말하면서, 오만과 거짓의 악령이 그녀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다음날 12일(월)에 나는 “치유받기 원합니까?”라고 물었다. 죤즈 부인은 “나는 온전한 사람이에요”라고 했다. 나는 “그러나 구원받기 원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녀는 “나는 구원 받았어요. 고민할 거리가 없단 말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죤즈 부인이 몸과 마 음이 가장 격렬한 고뇌 속에 빠져있음을 식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몹시 땀을 흘리면 서도, 몹시 냉담한 태도로 조금도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자, 죤즈 부인은 못봐줄 정도로 노발대발 하더니, 곧 죽은 사람처럼 푹 쓰러졌다. 몇분이 지나 그녀는 다시 소생하여 우리와 함께 기도했다. 우리는 그녀를 당 분간은 조용히 놓아두고 떠났다.

12일(월)에 죤즈 부인은 종일 격렬한 고뇌 가운데 사로잡혀 있었다.... 화요일에 많은 사람 들이 그녀를 보려고 찾아왔다. 그녀는 찾아온 사람마다 그들이 실제로 지은 죄나 마음으로 지은 죄를 다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들의 죄지은 내용을 너무나 면밀히 잘 알아 맞추니까, 몇몇 방문객들은 올때보다 더 빨리 도망가버렸다.

오후에 남편인 죤즈씨가 킹스우드로 사람을 보내어 나를 불러오게 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웨슬리 목사님은 오늘밤에 오시지 못하시고 내일 아침에 오실거에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니, 하나님 스스로가 역사해주실거에요. 내일 아침 6시 이전에 저는 치유받을 거 에요”라고 했다.

죤즈 부인은 가만히 누워 있더니 아침 6시 15분경 쯤, 그녀는 입을 열고 “당신(남편)이 평 안할지어다.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눅 10:5). 하나님의 평화가 나의 영혼에 오셨도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심을(욥 19:25) 나는 안다”라고 말했다. 그후 몇일동안 그녀의 입은 주님 의 찬양으로 가득차고, 그녀의 말은 주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에 관한것 뿐이었다.

3.4.3. 이런 일이 있은 후, 웨슬레는 나타나는 현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한 바가있다.

1743년 3월 12일 (토)

나는 두번째 전도 여행을 끝마쳤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두 가지 문제를 특별히 조사했다. 첫째, 지난주 거의 매일 밤마다 설교하는 동안 큰소리로 부르짖는 사람들의 경우에 관한 문 제이고, 둘째, 우리를 떠나가버린 사람들의 수(數)와, 떠나간 이유와 원인에 관한 문제이다.

전자의 경우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1) 그들 모두는 (내 생각에는 예외없이) 완전히 건강한 사람들로서, 한번도 발작을 해본적 이 없었으나, 마침내 이러한(넘어지는) 현상을 체험한다는 사실.

(2)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든지, 혹은 들은 말씀을 묵상하고 있는 동안에, 이러한 현상은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사람들 각자에게 순간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

(3) 사람들은 쓰러지는 순간에, 몸에 힘은 완전히 빠지고, 격렬한 고통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사실.

사람들은 (3)째 현상이 일어날 때 그 현상을 각자 다른 방법으로 표현했다. 어떤 사람은 마 치 칼로 그들의 내부를 찌르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마치 아주 무거운 짐이 그들 위로 내려 누르고 짜서 땅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어떤 사 람은 심히 목이 졸려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가슴이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으며, 또 다른 사람은 마치 심장이, 모든 내부가, 몸 전체가 조각 조각으로 찢어져 버리 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러한 (3)의 징후를 나는 어떤 자연적인 원인으로 돌릴 수도 없고, 또한 하나님의 영(성령) 의 영향으로 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올때에, 사단이 그들을 찢어 버린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단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탄식을 발하게 함으로써, 공포에 싸인 사람들을 놀라게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게 하려고 회책하는 것같다.

(4) 사람들은 육체 뿐아니라 마음도 여러 모양으로 영향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왜 이러한 영향을 받게되는지 그 이유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것 또한 교활한 악령의 짓이라 고 본다. 이 악령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어리둥절하게하고 혼동하게 함으로 써 악령의 계획을 폭로하지 못하도록 한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분명하고도 특별한 설명을 할 수 있었다. 이 러한 경우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souls)을 찔러서, 그들의 외적인 죄와 마찬가지로 내적인 죄가 무엇인가를 확신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치는 하나님의 진노 하심을 느낌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비난자인 사단이 큰 권능을 가지고 이와 같이, 사람들에게 희망이 없다라고 말하며 또한 영원히 파멸되었다라 고 말하고 있다. 이런 때에 사람들을 순간적으로 사로잡게 되는 여러가지 육체적인 고통 때 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억지로 크고 비참한 소리를 지르도록 한다.

3.4.4. 우리는 위의 (1) - (4)항목까지 본대로, 웨슬레는 넘어지는 현상이 성령의 역사로 되 어지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로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려는 사단의 역사로 되어지는 경우도 있 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타나는 현상에 대하여 분별할 줄을 알아야 한다.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759년 11월 25일 (주일)

오후에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와 함께하셨다. 그런데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려는 것보다는 위 로함을 주시기 위한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는 방법이 전에 내가 이곳을 다녀 갔을 때와는 현저하게 다름을 보았다. 이제는 입신하는 사람도, 울부짖는 사람도, 넘어지 는 사람도, 진동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몇 사람만이 몹시 떨었으며, 나지막하게 말하는 소리 만 들렸다. 많은 사람들이 “풍부한 화평”(시 37:11)으로 생기가 넘치게 되었다.

위험한 것은 울부짖음, 진동, 환상, 입신 등과 같은 현상이 우리의 내적인 역사(변화)에 필수적 인 것이라하여, 이러한 현상 없이는 안되는 것처럼 생각하여, 특수한 현상을 너무 강조하는 것 이다. 또 다른 위험은 아마도 이러한 특별한 현상을 너무 과소 평가하든지, 전적으로 정죄하든 지, 또한 하나님의 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하나님의 역사에 방해가 된다고 상상하는 것 이다.

이 문제에 관한 진실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급작스럽고 강하게 역사하셔서 그들이 죽어야 마땅한 죄인들임 을 확신시켜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에 대한 자연스러운 결과는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울부 짖거나, 강하게 육체적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것이다.

(2) 믿는 자들을 강건하게 하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시기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다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꿈으로, 입신과 환상으로 은총을 내리시는 것이 다.

(3) 위에 나타난 일에 있어서도 어떤 경우에는,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그저 일어난 것인지, 하 나님의 은총으로 일어난것인지를 혼돈하곤 한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워졌다는 것을 잊곤하다).

(4) 사탄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기 위하여 이러한 현상을 모방하여 흉내를 내는 데, 사탄의 의도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the whole work)를 불신하도록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사탄이 흉내 를 낸다고 해서 하나님 역사의 전부를 포기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며, 또한 동시에 하나 님 역사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도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처음에 이러한 역사는 의심할 여지없이 전적으로 하나님께로 부터 온것임을 확실히 믿었다. 오늘날에는 부분적으로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날 때 마다 우리로 하 여금 그 역사가 어느정도 순수한가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이며, 그리고 그 역사가 불순 한 점이 섞였는지, 또한 타락한 것인지 식별할 수 있게 하실 것이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가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정해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실제로 그렇지도 않은 일을 보고 느낀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한 하나님의 영(성령)의 권능에 진정으로 압도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나 진동하는 동작을 흉내 내는 사람도 있음을 가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진 정한 역사를 경시하거나, 혹은 부인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림자가 본질을 멸시할 수 없는 것은, 위조품이 진짜 다이아몬드를 멸시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사탄이 우리가 보게된 환상을 역 이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만의 죄를 짖게하는 호재(好材)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떠한 결 론을 내릴 수 있을까? 우리는 오로지 자만하지 않도록 경계해야하고, 겸손한 사랑 외에는 하나 님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서 스스로 작은 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 다고해도, 환상을 일반적으로 경시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요 비기독교도적이다.

위에서 본 웨슬레의 글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비한 은혜를 과장하거나, 영적인 무 지로 인간의 감성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영적 흥분과 환상에 빠지는 신신비주의 (Neo-mysticism)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3.4.5. 여기에 웨슬레는 나타나는 영적 현상과 표적이 하나님께로 오는 것인지, 마귀에서 오 는 것인지를 분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웨슬레는 그의 설교 “성령의 증거 (I)과 성령의 증 거(II), 그리고 “우리 영의 증거”라는 설교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이 설교에서 그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증거 없이는 신자생활에 활역소가 생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는 모든 신자가 누릴 특권이다. 이점에서, 위에서 보았듯이, 웨슬레는 정통적인 신학자, 냉냉한 형식주의자들의 무감각함을 비판하였다.

웨슬레가 말하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란, 우리 영혼에 나타나는 하나의 내적 인상(inward impression on the soul)으로써, 신자는 이를 통하여 성령의 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내적 증거에 동반하는 외적 표적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것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위에서 지적했듯이, 이 직접적인 증거가 하나님께로서 나온 것인지를 분별 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때로는 마귀도 기이한 일을 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웨슬레는 객관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것을 말한다. 곧 성령의 간접적인 증거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점에서 웨슬레는 분명히 열광주의자들과 구분되며, 동시에 신자들 이 무분별한 열광주의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간접적인 증거로 웨슬레는 성서의 말씀을 들고 있다. “여러분은 조금이라도 성경에 서 이탈한다면, 아니 성경 본문의 의미를 그 문맥에 나타난 대로의 분명한 문자적 의미에서 이탈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때나 열광주의에 빠질 위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성경은 우리가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권고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으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고 하셨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는 기독론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 스도가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성령에 의하여 행동 하셨다면, 성령의 역사, 증거는 예수님의 가 르침과 행동에 부합하는 것이랴야 한다는 것이다.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1739년 6월 22일(금)

오후에 나는 피쉬폰즈(Fishponds)에서 설교를 했으나, 내 안에 생명도 활기도 없었기에,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제쳐두고 다른 일꾼들을 추수때 보내시지 않나 하는 의심이 부쩍 들었 다. 나는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집회에 참석하여 연약한 상태에서 “사랑하는 자들아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요한일서 4:1)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청중들에게 모양으로나, 소문으로나, 자신들의 느낌으로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성령 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또한 그들이 본것 같은 꿈이나, 환상이나, 계시로도 성령을 판단치 말며, 또한 그들의 몸에 나타나는 어떤 현상이나 비탄의 모양으로도 판단치 말라고 했다. 이러 한 것들은 그 자체가 애매하고 논란의 대상이 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로 부 터 되어진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단순하게 믿을 수도 없으며 비난 받을 수도 없으나 다만 “율법과 증거의 말씀”(사8:20)에 따라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참 영의 역사와 증거는 회개와 하나님깨로부터 거듭나는 일에 따라야 한다. 또한 성경이 말하는 대로 성령의 증거에는 겸손과 기쁨, 평강, 그리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 따 라야 한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 증거에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선한 양심과 성령의 열 매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성령의 증거가 타당한 확신으로 받아드리는 데 있어서는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와 간접적인 증거가 공히 있어야 한다고 웨슬레는 강조한다.

IV. 요약과 결론 - 관용의 정신

4.1. 웨슬레는 성령의 역사를 중요시하고 강조했다. 그는 올더스게이트에서의 가슴이 뜨거 워지는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확신 있는 신자가 되었으며, 그의 사역에 능력과 목적을 갖게 되었다. 그가 이끈 18세기 영국교회에서의 부흥운동, 아니 전 세기에 걸친 복음적 부흥운동은 분명한 성령의 역사였다.

웨슬레는 성령의 강한 역사를 체험했다. 이런 성령의 내적역사는 기사 이적과 같은 기이한 현상도 동반했다. 그러므로 한편 웨슬레는 오해와 비판도 받았다. 특히 성령의 기사 이적은 사도시대로 종료되었고, 현재는 없다고 생각하는 당시의 정통주의 신학자들과 영국교회 신학자 들로 부터 비판을 받았으며, 열광주의자로 오해받기도 했다.

4.2. 이에 대하여 웨슬레는 성서가 인정하는 성령의 기사 이적은 현재도 있다는 것을 교부들 의 글과 자신의 경험을 들면서 변호했다. 특히 그가 그로우세스터의 감독, 와버튼(Warburton) 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체적으로 변증했다. 웨슬레는 초대교회가 보여주었듯이, 복음이 능력으 로 전파되며 진실한 믿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지금도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들, 곧 카리스마 타(charismata)는 나타난다고 믿었다.

오늘날 이런 표적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교회의 신앙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웨 슬레에 의하면, 성령의 역사가 멈춘것이 아니다. 성령께서는 사랑이 차디 차게 식었고, 신앙이 죽은 상태로 남아 있는 신자들 안에서는 그런 역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참 믿음이 있는 곳에 는 지금도 그런 은사로 역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오늘의 신학자들이 받아드려야 할 충고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웨슬레가 체험했고, 역사에서 입증되었듯이,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 없이는 신앙의 확신과 박력이 없기 때문이다. 종 교와 철학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철학에는 힘이 없다. 종교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은 확신에서 오는 것이다.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 없이는 하나님과의 산 관계가 이루워지지 않는다. 하나님 은 지적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에서 나타난다.

4.3. 이와 같은 각성은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운동에서 메아리치고 있음을 본다. 로잔운동 은 함께 모여 세계선교의 대과제를 인식하며, 성서의 빛 아래서 신학적입장을 정립하며, 오늘 의 시대에 적응성 있는 선교방법을 모색하고, 온 교회가 협력하여 세계복음화에 헌신하자고 다 짐하는데서 시작된 운동이다. 이 대회는 여러 교회가 함께 협력하는 기초로서 유명한 로잔언 약을 발표했다. 그리고 1989년에 마닐라에서 제2차 대회를 갖었다. 이 대회에는 170국에서 약 3,000명의 지도자가 참석했다. 그리고 로잔언약을 보완하는 마닐라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 언문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복음(The Whole Gospel)의 선포에는 기사이적이 동반함을 인지했 다.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하며, 이는 사탄에게서의 해방, 곧 하나님 능력의 나타냄을 부분적으로나마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성령을 인격적으로 체험한 진실한 신자는 모두가 긍정하는 바일 것이다.

최근에 미국 달라스 신학교의 교수 왈래스 박사(Daniel B. Wallace)의 간증을 소개하고저 한다.

왈래스 박사는 달라스 신학교의 교수이기에 당연히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를 믿는 신학자이다. 물론 카리스마적인 신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청년시절에 방언도 하고 싶 었고, 카리스마적인 체험도 하고 싶어, 은사집회에도 참석했었다. 그 집회에서 자기가 방언 을 못하니까, 인도자가 말하기를 ‘너는 아직도 구원을 못받았다”고 하기에, 너무 실망하여 그런 그룹과의 사귐을 끊고 말았다. 그 후 공부를 하여, 달라스 신학교의 신약학 교수가 되 었다. 그는 성서도 잘알고, 주석도 잘하는 학자이다. 그러나, 오늘날 성령께서는 초대시대처 럼 역사한다는 것은 믿지 않는 세세션니스트(cessationist)의 입장에 서 있었다.

그런데 3년전에 8살 난 아들이 중병에 걸려서 수술을 받았다. 아이의 체중은 85파운드에 서 45파운드로 줄어들어 몸이 말라갔다. 너무 약해져서 화장실 출입도 혼자 못했고, 이런 처지에서 그는 ‘연구의 대생으로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를 인격적으로 친히 만나, 자기의 친구요, 지도자요, 위로자가 되시는 하나님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그는 자기의 신앙에 대해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는 하나님께 가까히 가기 를 바랬다. 그런데, 그가 늘상하고 있는 신학적 방법(성경주석, 신학적 추리)으로는 그런 하 나님을 발견할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하나님을 찾고 또 찾는 가운데 그는 세세션니스트적인 분위기가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 투쟁 끝에, 그는 마침내 자기 가슴속에서 성령을 체험하였다. 그리면서 그는 성령은 지금도 역사하고 있다. 지금도 신유와 기사 이 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이성주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보다 지식에 우위성을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성령의 신유, 기사이적을 부인함으로 하나님의 능력(God's ability)을 부정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4.4. 그러나 웨슬레는 위에서 살핀대로, 또 다른 한편, 은혜의 수단(The means of Grace)을 부정하는 열광주의자, 정숙주의자들을 경계하며, 신자는 성령의 정상적인 은사 곧 사랑의 은사 를 힘써 구하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웨슬레는,냉냉한 신앙을 갖고 있는 형식주의자들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한편, 지나친 열광주의자들을 경계하였다.

성령의 역사가 기적과 같은 외적인 현상을 동반하지 않을 때도 있을 뿐만 아니라, 외적으 로 나타나는 현상은 또한 다양하기 때문이다.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은 내적 역사이며, 외적 현 상은 우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4.5. 웨슬레는 은혜의 경험도 강조했지만, 그의 신학의 최고 권위는 성서였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는 말하기를, “나의 근거는 성서이다. 그렇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성서를 따른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령의 체험, 곧 성령의 내적 증 거도 모두 성서에 의하여 시험하여야 한다.

“성서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계시가 참 하나님의 계시인지 아니면 그저 사람이 짐작 한 계시인지를 가려내는 시금석인 것이다. 사람들이 율법에 호소하든 체험에 호소하든 모든 영(spirit)을 성서에 의하여 시험해보아야 한다.”

4.6. 이 문제와 연관하여, 한가지를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는 웨슬레가 각자 다르게 체험을 하는 신자들에 대하는 관용의 태도이다.

웨슬레는 기독교의 교리에서 본질적인 것 (essential. substance of the doctrine)과 비본질 적인 것(non-essential. circumstance of the doctrine)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 근본적이며, 본 질적인 것을 고수했으나, 비본질적인 것, 곧 의견(opinion)에 있어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것 으로 동의’하고 관용의 정신을 발휘했다.

웨슬레는 은총론에서 그렇게 대립되었던 죠지 휘트필드의 서거에 즈음하여 행한 설교에서 이를 잘 들어내고 있다.

그가 각 곳에서 외친 그 위대한 성서적 교리들을 고수한다. 그러나 교리들 가운데에는 보다 덜 본질적인 교리들도 있다. 이 본질적이 아닌 교리들에 있어서는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들도 여러 세대 동안 의견이 분열되어 왔다. 이런 일에 있어서는 그렇게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합의 하도록(agree to disagree) 생각해도 좋다. 아니 그렇게 생각을 하라. 그러나 한편 우리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중요한 교리들을 굳건히 붙들자.

4.7. 이런 관용적인 정신은 성령체험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쟁과 태도에서도 잘 들어나고 있다. 그 당시의 영국교회 지도자들은 성령체험,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 또는 신유, 기사이적을 말하면, 도매급으로 열광주의자, 또는 마술사라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웨슬레는, 열광 주의(Enthusiasm)의 성격이 어떤 것이며, 진실한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기사 이적, 신유의 역사들을 열광주의에서 오는 것이라고 혼돈하지 말라고 설명한다.

웨슬레는 ‘열광주의의 성격 (The Nature of Enthusiasm)’이라는 설교를 출판했다. 이를 1749년에 출판했고, 이어서 1755년, 1778년, 1789년에는 소책자로 재 출판했다. 또 그는 ‘편엽 된 생각을 조심하라 (A Caution Against Bigotry), ‘관용의 정신(Catholic Spirit)* 이라는 설 교를 출판했다.

여기에서 웨슬레는 우리가 배격해야 할 열광주의자는, 일반적으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나 영감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의 상상이나 환상에 의존하여 광열(religious madness)에 빠지거 나,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닌 것을 하나님에게 들켜 씨우는 그릇된 자들이라고 규정한다. 이들 은 진실하지만, 실수를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보다 사람의 상상이나 꿈을 따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상상이나 환상을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가져다 맞추는 과오를 번번히 범한다. 그러면서 또한 교회에 주어진 은혜의 수단들을 사용하지 않는 과오를 범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에서도 기적적인 능력과 표적이 따르는 것을 부정하지 말라고 했다. 따라서 이런 역사가, (1)성경의 증거와 어긋나는가, (2) 그런 역사의 열매가 어떤 것인가, (3) 이 런 역사를 들은 사람들의 나타내는 열매가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면서 평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런 헤아림이 없이 무턱되고 기사이적을 따르거나 성령의 직접적인 증거를 열 광주의로 보는 것은 그릇된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는 바로 웨슬레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에 대 한 변호이기도 했다.

4.8. 오늘날에도 이성주의와 유물론적 사고에 빠진 신학자들은, 자기 이성으로 이해가 안되 는 것은 모두 신비주의적이요, 열광주의라고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초월적인 하나님의 성 령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이성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신비적인 요소’가 있음이 당연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여기에서 웨슬레가 말하는 대로 헤아림없이 ‘기적적인 것’은 무조건 신비주의 나 열광주의자들의 소행이요, 마술을 쓴다고 하는 평가는 경솔한 일이다. 이에, 웨슬레는 그의 설교에서, 참 열광주의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알지 못하는 것을 함부로 말하지 말며, 일 반적으로 들은 소문을 가지고, 사람을 열광주의자라고 판단하지 말라. 당신은 남을 판단하는 은 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함으로 또 하나의 열광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는 늘 말과 행동을 항상 조심과 두려움으로 하여야 한다.

4.9. 그러나 웨슬레는 동시에 비성서적인 열광주의에 빠져, 자만의 죄를 짖는 것을 경계하 는 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웨슬레는 양자간의 노쟁에서 신자들의 고집과 편협함을 경계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는 예 수의 제자가 주님을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 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고 하신 말씀을 풀이하면서, 하나님의 일하는 사람이 나의 교회에 속하지 않았거나, 내 편이 아니며, 내 의견과 다르다고 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며, 일방적인 비방을 삼가라고 했다.

성도는 더욱 기도하며, 경성하여 일하면서, 피차간에 더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는 웨슬레의 ‘관용의 정신’을 반영하는 태도이다. 그는 중요한 교리에서는 양보가 없지 만, 여러 의견(opinions)에서는 ‘의견을 달리하는 것으로 동의하고’ 주님의 일에 협력하는 정신을 주장했다.

4.10. 이 글을 마치면서, 웨슬레가 성령의 기적적인 역사에 대한 논증의 마지막에 기록한 귀절을 인용하고저 한다.

나는 성경이 약속한 것들을 기쁨으로 받아 행한다(I enjoy). 기독교에 행해온 것을 와서 보라. 이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나는 이런 옛 그리스도인들 (그들이 실족함이 있 었다해도) 더 존경한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서는 순수한 기독교에 대한 것을 별로 보거나, 쓴 글을 읽거나,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소위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일에 대하여 전적으로 무지하면서도, 이에 대한 깊은 선입주견을 갖고, 그는 열광주의라고 하면서, 반대한다. 무엇 때문인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이나 나 자신을 초대 교부들과 같은 그리스도인들 로 만드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참 고 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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