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완전을 향한 웨슬리의 4대 회심
        
- 웨슬리의 여러 성령체험

 

김진흥 목사
 (충무감리교회)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먼저 밝혀두고 싶은 것이 있다. 한 가지는 이 글의 독자들은 이미 어느 정도 웨슬리에 대하여 알고 있는 분들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나의 글이 깊은 학술적 연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웨슬리안(Wesleyan)으로서 신앙의 진보를 위해 애쓰는 가운데 깨닫게 된 하나의 신앙적 통찰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통찰이 허망한 망상이 아님을 굳게 믿는다. 바라는 것은 나보다 더 많은 연구를 할 수 있는 누군가에 의해 나의 작은 깨달음이 학문적 논술로 나타나는 것이다.

웨슬리(John Wesley)는 루터(M. Luther)나 칼뱅(J. Calvin)처럼 교리 문제를 가지고 평생 씨름한 분이 아니다. 영국 감리교회와 그 외 이 교회와 역사적인 유대관계에 있는 감리교회들에서는 상식화된 것으로서 웨슬리안 전통주의(Wesleyan Orthodoxy)가 명백히 표현된 교리로 사용되어온 네 가지 교리(Methodist Four Alls), 즉 “①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필요가 있다. ②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 ③ 모든 사람이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 ④ 모든 사람이 완전 성화를 얻을 수 있다”에서 밝히는 대로, 이론에서가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죄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어떻게 하면 빨리, 실제적으로 이룰 수 있는지 고민하고 기도한 분, 또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분이 바로 웨슬리이다. 그래서 웨슬리의 가르침은 신학적 이론으로만 들여다봐서는 잘 정리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지는가 하면 모든 교리를 다 포함하고 있다는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처럼 모든 모순된 신학적 이론들을 다 포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여간 웨슬리는 한 사람의 온전한 신앙인으로서 살기 위해 평생 몸부림치신 분이다.

이런 맥락에서 웨슬리의 생애와 신학을 보면 지금 내가 말하려는 ‘웨슬리의 4대 회심’(Four Conversions; 이것은 내가 처음 사용하는 것일 뿐 공인된 학술용어가 아니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웨슬리가 웨슬리일 수 있게 된 데는 그의 일생에 네 번의 중요한 회심이 있었다.

첫째는 종교적 회심(宗敎的 回心)으로 그가 옥스퍼드에 다니며 신성클럽(Holy Club)을 만들 때이다. 나중에야 웨슬리 스스로 깨달은 것이지만 이 회심은 철저한 한 사람의 종교인이 된 회심이었다. 그는 이때 오직 성경의 사람으로 살려고 엄청난 수고를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여전히 그리스도 밖에 있을 뿐이었다. 어떤 이는 이때의 상황을 단지 확신이 없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그건 웨슬리의 고백과 일치하지 않는다. 웨슬리는 올더스게잇 체험이 있기 전에는 그의 설교처럼 단지 ‘99%의 종교인’이었을 뿐이다.

두 번째는 저 유명한 올더스게잇 스트리트에서의 신앙적 회심(信仰的 回心)이다. 이 체험으로 웨슬리는 비로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이 부분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설명을 생략한다.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이때 웨슬리는 비로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더스게잇의 체험이 웨슬리의 전부가 아니다. 거듭나는 것이 가장 귀한 은혜인 것이 사실이지만 웨슬리나 몇몇 위대한 그리스도인들만 체험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세 번째는 ‘성령의 사람으로의 회심’인데, 그가 신앙적 회심을 경험한 1738년 12월 31일 밤 런던 페터레인 집회소에서 몇몇 기도동지들과 심야기도를 하던 중 위로부터의 능력을 입히우는 경험을 한 것을 말한다. 웨슬리는 올더스게잇에서의 경험으로 ‘종의 믿음’에서 ‘아들의 믿음’을 가지게는 되었지만, 아들의 자격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아들로서 사는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한 초보 그리스도인들이 그렇듯이, 웨슬리는 중생의 경험 후에 찾아오는 딜레마에 빠진다. 불안과 두려움과 의심 등 여러 가지 시험을 겪게 된 것이다. 일찍이 사도 바울이 자신을 곤고한 자라고 탄식하던 것처럼 웨슬리도 성령충만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곤란의 늪에서 일순간 방황하지만 찾는 자가 찾을 수 있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열어주시는 주님께서 웨슬리를 인도하신다.

우선 1738년 여름에는 모라비안 교도들의 모임에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영적 원리를 배운다. 계속해서 그는 같은 해 10월 9일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1703-1758)가 쓴 『노스햄튼 대부흥운동사』라는 책을 읽으면서, 거듭나게 하신 성령의 역사는 거듭날 뿐 아니라 그 성령으로 충만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 은혜를 갈구하게 된다. 같은 해 12월 31일 밤 페터레인 집회소에서 기도하다가, 같은 날 밤인 1월 1일 새벽 3시경에 웨슬리는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로 바닥에 쓰러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위로부터의 능력의 입히움’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아들의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 수 있는 실력을 얻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중생했다 할지라도 웨슬리의 페터레인 체험 같은 회심이 없이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절대로 살 수 없다. 바울 사도는 이를 로마서에서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0-11)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여기까지의 회심은 거의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 경험하는 바다. 웨슬리가 웨슬리 되게 한 또 하나의 회심이 있었으니 바로 사명적 회심(使命的 回心)이다. 거듭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웨슬리는 기쁨 가운데서 교구목회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1739년 4월 1일에 지기인 조지 휫필드(George Whitfield)의 강권으로 처음으로 노천설교를 하게 되는데 웨슬리는 여기서 그의 신앙에 또 한 번의 회심을 경험하게 되었으니 바로 사명적 회심이다. 내키지 않는 상태로 웨슬리는 광부들을 대상으로 설교를 하였는데 웨슬리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강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큰 충격을 받는다. 교회 밖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고, 그들은 구원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살리시기를 시급히 원하시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신앙구조에 대변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교회는 교회 자체의 존립을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교인들만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교회는 교회 밖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주님은 신앙인이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고 거룩한 성품에 참여해 가게 하기 위해서만 자신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신 것이 아니다. 거듭나게 하시고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주셔서 위로하시고 능력 있게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 밖에서 죄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고, 결국 지옥으로 갈 운명에 처해 있는 영혼들을 구원의 주님께로 인도하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며 하나님은 이 일을 매우 기쁘게 여기신다는 것을 웨슬리는 깨달았던 것이다. 이것보다 우선하는 일은 없다.

이때부터 웨슬리는 복음전도를 위한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성령충만케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워주시는 것은 복음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목적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은혜만 받고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다. 웨슬리는 비로소 신앙의 완성을 향하여 놓여 있는 길을 찾은 것이다.

웨슬리 신앙만이 갖는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독교인의 완전이다. 완전한 그리도인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강단에서도, 신학교의 강단에서도 웨슬리의 이 완전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완전의 문제는 학문적 문제이기에 앞서 신앙의 문제인데 오늘의 우리에게는 기독교인의 완전을 이루고자 하는 웨슬리의 신앙적 열정과 고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신앙적 고민이 없는 한 웨슬리의 신앙체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웨슬리의 회심을 말할 때 올더스게잇의 경험만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웨슬리의 4대 회심을 알지 못하고서는 웨슬리의 그 집요하고도 집중적인 전도활동을, 또한 그 외의 폭넓은 활동 영역을 신학적으로 논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활천 2004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