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민권 (Citizenship)

 



기꺼이 우리가 이야기할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제안한다. 원로원이 인두세 (laographia) 명부에 등록할 책임이 없는 사람들(사실은 세금을 내야하는 자들-역주) 매년 ephebi(18-20 까지의 청소년) 함께 공공기록부에 기록됨으로써, 국가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을 보게 것이다. 그리고 순수한 알렉산드리아의 시민모임이 개화되지 않은 무식한 사람들에 의해서 파괴되는 것을 보호해야 것이다.(PSI 1160: The Boule-Papyrus)

 

위에 기록된 파피루스는 로마제국 시대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시민들과 비시민인 유다인들 간의 반목과 갈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편에서는 상대편의 시민권 획득을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반대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했던 유다인들은 그들 자신이 비시민으로 취급받는 것에 상당한 수치를 느끼게 되었다. 왜냐하면 유다인들은 나름대로 정권의 특혜를 받아 누리던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프톨레미 시대(the Ptolemaic Period)에도 유다인들은 시민권은 갖지 못했지만 그와 유사한 대우를 받아 누렸다. 그러나 로마가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곤경에 빠지게 것이다. 왜냐하면 아우구스투스(Augustus) 황제가 비시민들에게 인두세(poll-tax) 부과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다인들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시민권을 획득하려고 노력할 밖에 없었다. 이처럼 시민권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항임을 짐작케 한다.

오늘날 한국의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보 사태로 언급되는 재난으로 온통 난리가 났으니, 돈의 위력을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 필자가 유학 에중 수금(收金) (?) 고국을 방문했던 1993 8월에는 실명제의 여파로 많은 국민들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덜덜 떠는 모습들이었는데, 이제와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거라는 실명제와 경제정의는 어디로 가고, 한보의 껍데기만 남았는지?

우리가 걱정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우리가 대한민국의 시민권을 소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국이나 미국 혹은 독일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면 그 나라 사람들은 이같은 사태를 겪는 한국을 한 편에서는 조롱하고 또 한 편에서는 고소해할 것이다.

그런데 신약성서는 우리 믿는 성도들을 가리켜 천국의 시민이라 부른다. 이 얼마나 의미있는 표현인가?

 

1. 고대 상황

모든 나라의 국민은 모두 시민권 (Citizenship)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공식적인 시민권은 먼저 도시 국가로부터 출발했다고 본다. 원시 기독교의 시대는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통치하던 시대였다. 그 시대의 문서에 의하면, 우리는 아테네(Athene), 로마(Rome),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와 다소(Tarsus)가 서로 견줄 만한 고성을 소유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 국가(polis) 라는 단위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먼저 확립되었다. 그들은 로마가 배울 만한 제도와 법도 소유하고 있을 정도였다(P.Oxy. 2177). 도시 국가의 시민들은 공화 정치를 시도했으며, 정기적으로 모여서 그들의 관심사를 토론했다. 그들이 바로 시민권을 소유한 첫 번째의 사람들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인 기술을 고마 로마인들은 천재적으로 모방했으며, 시험적으로 적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시대가 시작되면서, 그들은 황제를 그들의 보호자(princeps, pater patriae, paterfamilias)로 모셔야만 했다. 왜냐하면 로마는 도시마다 자유(자치권)를 주었지만(Augustus때의 Anatolia의 도시국가들에서 100개의 화폐를 발행했을 정도였다), 로마의 보호는 항상 도시 국가들이 로마에 복종한 결과였던 것은 당연했다. 그러므로 이같은 상황에서 그들에게 제국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소망이 아닐 수 없었다.

 

2. 로마 시민권의 개요

로마의 시민권은 엄청난 힘이 있었다. 우선적으로 명예(honour)를 상징했고 비시민권자들의 법적 고소에서도 특별한 보호를 받는 장치였다. 비록과거의 신분이 노예였을지라도, 현재 시민권을 소유했다면, 그 권리는 인정되었다. 로마 제국이 강성해지고, 지중해 세계에서 그들의 권위가 확대되면서, 그들이 정복한 사람들의 충성에 답례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수여하기도 했다.

1) 시민권을 획득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로마인 부모의 자녀로 출생하는 것이다. 자녀는 로마의 시민인 부모 또는 시민과 로마인과 결혼할 있는 법적 권리를 소유한 외국인 (connubium)에게서 출생함으로써 로마에 소속된다.

2) 시민인 주인에 의해 해방된 노예는 시민권을 소유할 있었다. 로마 제국에서 노예들은 범주로 나뉜다(시골 노예, 도시 노예, 광산 노예, 황제 노예 ). 남자 노예가 해방되었을 , 그는 자유인(libertus) 된다. 여성 노예가 해방되지 않고 낳은 아이는 노예로 남는다. 왜냐하면 배우자가 법적으로 자유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방된 이후에 태어난 아이는 완전한 시민권자가 된다. 많은 해방된 노예의 아들들이 이태리의 도시의 특권 계층까지 올랐을 정도였다(M.L. Gordon, The Freedman's Son in Municipal Life, JRS 21, 1931, 65-77).

3) 정부가 수여하는 방법이다. 하나의 특수한 도시 국가의 통치 그룹 또는 개인 등에 수여된다. 즉 로마에 대한 그들의 충성된 봉사에 대한 답례로 수여된다.

4) 군에서 제대할 때, 제대 군인들이 시민권을 받았다. 그들은 대개 16년, 20년 또는 25년 간이나 복무를 했다. 이 시민권 역시 자식들에게 대물림할 수 있다.

 

3. 바울의 경우

학자들 가운데는 바울의 부모나 조부모가 한 때 노예였으며 이후 해방되어 시민권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시민이은그를 방면한 주인의 이름을 소유했으며, 노예라는 오명(汚名)이 1 세대 혹은 그 이상 붙어 다녔다. 그러나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고하지 않는다. 또한 만일 바울이 그의 부모가 로마 시민의 노예로서 해방되었기에 시민권을 획득했다면, 바울이 자동적으로 다소의 시민권을 얻게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바울의 다소 시민권을 언급하고 있다(행 21:39).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부모 또는 조부모가 제국에 특별한 공로를 제공하므로써 그 대가로 황제의 개인적인 선물로 주어졌을 세 번째의 경우가 바울에 해당될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특권은 무엇이었을까? 로마 시민들(civis Romanus) 가진 특권은 우선 참정권을 가지며, 공직을 수행할 있었다. 그리고 사도행전(cf. 25:11) 바울재판에서 있는 바와 같이, 법정에서 황제에게 상소할 있었다. 그렇다면 제국의 시민들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그것은 상상할 없을 정도로 소수였음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제국은 소수의 시민권자들(전체인구의 5%) 중류의 자유민들 그리고 엄청난 수의 노예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므로 시민권에 대한 시대의 관심은 실로 대단하였다. 이같은 관심은 주후 212 년에 카라칼라(Caracalla) 황제가 칙령(Constitutio Antoniniana) 발표하여 제국의 모든 거주민들이 로마 시민권을 소지할 있을 때까지 계속하여 증폭되었다고 말할 있다. 이와같은 시민권의 내용들을 이해하면서 신약성서에 표현되는 시민권에 대한 본문들을 읽어 본다면, 시대상을 이해하면서 부수적인 해석의 효과들을 얻게 있을 것이다.

 

4. 신약성서에서의 시민권의 역할

위에서 살펴본 바와같이, 신약성서에서 시민권의 논의는 바울의 경우에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특히 사도행전(16:37, 22:25, 23:27)의 바울의 재판 이야기에서 잘 나타나 있고, 에베소서(2:12)와 빌립보서(3:20)에서도 시민권을 언급한다. 이와 같이 신약성서에 언급된 시민권들의 용례를 살펴 보면, 모두가 특권을 나타낸다. 사도행전의 바울은 재판받으면서 자신의 시민권을 활용하여 황제에게 상소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누가의 궁극적 목표가 된 세상의 끝으로 이해된 로마에 바울을 보낼 수 있었고, 에베소서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기 이전의 이방인은 이스라엘의 시민권자가 아니었기에 외인들로 간주되는 수치를 받았지만, 그리스도는 그것을 자유롭게 하였고, 빌립보서에서 시민권은 성도들이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누릴 천상의 공동체에 속한 시민임을 선언하고 있다.

즉 시민권은 대단한 힘과 능력을 지닌 그 당시의 최대의 명예였으며, 어느 곳이나 갈 수 있는 통행권(passport)였음은 불문가지이나, 신약성서에서는 그 위력들이 그리스도 아래 굴복한다는 특징이 있다. 시민권을 소유한 자가 그것을 복음 선교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음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온전한 평등을 이룬 천국의 시민권을 주시는, 곧 거짓 평화(Pax Romana)의 대표로 출현한 로마 황제나 그 이상의 세상의 권력자를 능가하는 이 세상의 구원자(Salvator mundi)로서 진정한 평화(Pax Christi)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의 온갖 죄악을 해결하시고 인류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골고다를 향하는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사순절(Lent)을 지나고 있는데, 높은 보좌를 버리고 이 땅을 찾아오신 모든 것을 비우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배우며, 이 땅이 주는 거짓 평화와 안락에 연연해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묵상하며, 우리는 이 땅의 나그네요 나의 영원한 고향은 천국이라는 천국의 시민권자로서의 자부심과 담대함을 가지고 영원한 타향사람(paroikos)으로서 이 땅,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부활의 주님을 영광스럽게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