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의 여론 읽기

뜻풀이

 

대학가의 '철퇴'

한겨레(2001.7.24)


 생게망게한 일이다. 섬뜩한 말이 유행이라고 개탄하는 글에서 상대를 `악령·홍위병·하이에나' 따위로 몰아친다. 전투적 선동으로 지식인사회가 갈라지고 있다며 `편가르기 전투'를 선동한다. 소련이 무너진 뒤 사상을 잃은 진보세력이 전투적 글쓰기를 한다는 `고급 색깔론'도 등장한다.

뜻 있는 지식인들이 기고를 거부한 신문에 깜냥껏 기고하는 것은 물론 자유다. 하지만 진실까지 왜곡하는 교수의 자유는 보기 딱하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전투적 작문의 `원조'는 신문권력이다. 짐짓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부르대는 교수들이 임금을 받고 있는 대학사회만 들여다보자.

1970년대 이후 신문권력은 학생운동을 집요하게 공격해왔다. 군사독재에 맞서 줄곧 민주화운동을 벌인 학생운동을 `폭력·살인집단'으로 훌닦았다. 옛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4년 전 <조선일보>는 학생운동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쇠파이프 특공대'로 규정하며 “철퇴를 내리라”고 권력에 다그쳤다. 철퇴는, 실제로 내려졌다. 은유가 아니다. 합법적 선거로 뽑은 학생운동 집행부가 이적단체가 되었다. 대량 구속이 이어졌다. 철퇴로 학생운동은 쇠퇴했다. 철퇴의 시퍼런 서슬은 김대중 정권 아래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학생운동은 우리 현대사의 동력이었다. 일제와 이승만 독재 그리고 군부의 학살에 온몸으로 맞서왔다. 기나긴 투쟁의 순간 순간에 교수와 기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여북이나 말길이 막혔으면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이라는 당연한 주장을 위해 숱한 학생이 몸을 불사르거나 던져야 했는가. 기실 오늘의 언론인과 교수들이 언죽번죽 권력비판를 들먹이는 밑바닥엔 학생들의 핏빛 무덤이 있다.

늘 그러하듯 문제는 꼬인 지식인이다. 잘못된 언행에 정당한 비판을 받았다면 모름지기 고마운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잡을 일이다. 하지만 고마울 섟에 고깝게 여기는 윤똑똑이들이 있다. 온갖 `이론'과 `사상'을 끌어대 자신을 합리화하느라 작은 잘못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학생들에게 신문이 철퇴를 내리라고 권력에 주문했을 때 침묵하던 그 입으로, 학생들이 피울음으로 민주주의를 외칠 때 외면하거나 되레 공격하던 그 붓으로, 신문권력이 교수를 사상검증한다고 나섰을 때 모르쇠하던 그 가슴으로, 새퉁스레 언론자유·권력비판·다원주의를 내세우며 신문권력을 두남둔다. 지식인의 위기가 있다면 바로 그 추한 몰골이 아닐까.

하지만 오늘의 대학가에 `위기의 교수'들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학문에 정진하는 교수들이 다수다. 더욱이 대학의 부활을 감지케 하는 움직임도 싹트고 있다. 신문권력이 묵살로 감추고 있지만 민주화에 동참해온 교수들이 `신문을 위하여' 나서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진실을 호도하는 교수를 비판하는 풍경화도 신선하다. 대학의 비판정신이 살아나고 있지 않은가.

신문권력의 횡포와 마취로 긴 잠에 든 대학이 깨어나고 있다는 판단은 아직 이를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뜻 있는 교수들과 젊은 대학인들이 마침내 언론의 문제를 직시하고 철퇴를 들었다는 데 있다. 행여 철퇴라는 표현에 꼬투리잡지 말기 바란다. 조선일보가 권력에 촉구한 철퇴와 대학인의 철퇴는 글자만 같을 뿐이다. 권력의 철퇴와 민중의 철퇴는 다르다. 대학에 대한 물리적 철퇴와 대학에 의한 지성의 철퇴는 더욱 다르다. 조선일보를 반대하고 신문개혁을 촉구하는 8천여 대학생들의 1차 선언은 때늦은 자각이지만 새 국면을 예고한다. 신문개혁이라는 절박한 시대적 과제 앞에서 1980년대 이후 갈라진 학생운동 또한 연대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성숙한 지성의 철퇴는 언제나 역사를 성숙시켜왔다. 학생운동의 철퇴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철권통치에 차례로 꺾자를 쳤다. 하지만 일제·이승만·박정희·전두환과 밀월을 즐겨온 신문권력은 여적 엄존하고 있다. 예의 국가보안법을 수호하며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에 적대적이다. 혹 그래서가 아닐까. 일찍이 그들이 학생운동에 “철퇴를 내리라”고 권력에 촉구한 까닭은

 

생게망게하다 :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아니하다. 말이나 짓이 터무니가 없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깜냥 : 일을 가늠보아 해낼 만한 능력, 지니고 있는 힘의 정도

훌닦다 : 남의 허물이나 약점을 들어 몹시 쳐서 나무라다

여북/여북이나 : 얼마나, 오죽(예: 그 아이가 돌아오면 여북이나 좋으랴)

언죽번죽 : 조금도 수줍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이 비위가 좋은 모양

...섟에 : ...할 망정 도리어

윤똑똑이 : 저만 잘나고 지나치게 영리한 체하는 사람

모르쇠 : 아무것도 모르는 체하거나 모른다고 잡아떼는 일(동사: 모르쇠로 잡아떼다. 모르쇠를 대다)

새퉁스럽다 : 어처구니없고 엄청나게 새삼스럽다.

새퉁이: 밉살스럼고 경망한 짓을 하는 사람

두남두다 : 잘못된 것을 두둔하여 도와주다. 가엾게 생각하여 돌보아주다. 편들다. 역성들다.

묵살 : 보고도 못본 체함, 아무 말없이 문제로 삼지 않고 내버려 둠

꺾자를 치다: 중요 문서의 여백에 꺽자를 그리다. 글에서 글줄이나 글자를 지워 버리기 위하여 꺽자를 그리다.  

여적 : 여태까지, 아직의 사투리인 듯함(국어사전에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