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의 여론 읽기

뜻풀이

 

IPI 총장 귀하

한겨레(2001.9.4)

 

안녕하십니까, 요한 프리츠 사무총장.

오늘 서울에 오는 귀하에게 지면으로 인사를 전합니다. 국제언론인협회(IPI) 특별조사단이 현지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귀하의 방문은 한국위원회 방상훈 회장의 구속 때 미루어 예견된 일입니다. 세계신문협회(WAN) 회장도 귀하와 합류하기 위해 서울에 와 있습니다.

저는 군사정권과 싸운 민중들이 성금을 모아 세운 신문사에서 신문·방송을 맡고 있는 편집자나,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창립공동대표를 지낸 사람으로서 귀하에게 말할 뜻은 없습니다. <한겨레>와 언론운동단체에 귀하가 터무니없이 잘못된 선입견을 `신념'처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귀하 못지않게 언론자유를 중시하고 민주언론을 위해 살아온 한 언론인으로서 충고 한마디 할까 합니다. 듣그럽겠지만 언론의 생명이 진실에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마음의 빗장을 풀고 귀를 열기 바랍니다.

귀하는 한국의 언론상황을 탄압으로 예단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요. 맞습니다. 예단이 아닙니다. 언론자유가 탄압, 아니 유린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문제는 언론자유를 유린하는 원천적 주체가 새퉁스럽게도 바로 귀하가 옹호하는 일부 신문이라는 데 있습니다.

증거는 곳곳에 깔려 있습니다. 언론탄압을 부르대는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는 최근 한 사회과학 교수가 평양을 방문해 방명록에 쓴 표현을 트집삼아 대대적으로 마녀사냥을 벌였습니다. 지금 그 교수는 감옥에 있습니다. 귀하는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언론자유를 유린했는지 알고 있습니까. 민주주의의 기본은 언론 자유에 있다는 귀하의 말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렇다면 언론자유의 밑절미는 무엇입니까.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해괴하게도 언론이 언론자유를 구속하는 악법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생게망게한 일은 더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천문학적 규모의 탈세를 저질러놓고도 그들은 탈세인지 탄압인지 판단할 수 없다면서 `생각의 차이'를 강조합니다. 그 `생각의 차이'는 보안법에 이르면 실종됩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죄다 `마녀'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들은 탈세국면을 모면하기 위해 아직 피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이 땅에서 좌우갈등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진보정당이 의석 하나 없는 한국정치에서 그들은 끝없이 `빨갱이사냥'을 벌입니다. 한 교수의 방명록 서명으로 마치 대한민국이 결딴날듯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결국 `쿠데타원흉'을 부추겨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성과까지 기어이 되돌리고 있습니다.

귀하가 참으로 언론자유를 우려한다면, 탈세를 `관행'으로 여기며 사상의 자유를 짓밟는 신문사들의 파시즘이야말로 특별조사의 일차적 대상입니다. 줄기찬 민주화운동으로 군사독재를 물리친 위대한 한국민중이 왜 신문을 신문권력이라고 비판하는지 듣보기 바랍니다. 군부가 시민들을 학살할 때 바로 그 신문들이 학살의 원흉을 찬양하며 권력과 밀월을 즐긴 진실 앞에서도 제발 눈감지 말기 바랍니다.

참다운 언론자유는 오늘 전지구적 과제입니다. 지난 봄 미국의 석학 노엄 촘스키와 하워드 진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서방의 언론자유에 얼마나 한계가 또렷한지를 증언했습니다. 특별조사단에 촘스키에 견줄 지성까지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귀하가 한국 언론운동의 철학과 실천을 근거없이 훼손한다면 망설임없이 말하지요. 그것은 오만입니다. 귀하가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언론자유를 넓혀가는 데 힘 쏟길 권합니다. 1975년 동아사태 이후 사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한국의 언론운동은 지금 세계 언론사에 새 길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모쪼록 귀하가 이 땅의 세굳찬 언론운동에서 좋은 교훈을 얻고 떠나길 바랍니다. 귀하가 열린 지성을 지녔다면 한국 언론운동의 풍부한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때 한국의 푸른 가을하늘은 귀하의 삶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할 것입니다. 

 

새퉁스럽다 : 어처구니없고 엄청나게 새삼스럽다

새퉁이 : 밉살스럽고 경망한 짓을 하는 사람

 

밑절미 : 어떤 사물의 기초가 되어 있는 바탕

 

 

듣보다: 무엇을 찾아 살피느라 뜻을 두어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하며 알아보다 

 

세굳찬 : 국어사전에 없지만, 힘이 세다는 뜻인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