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의 여론 읽기

뜻풀이


정치 혐오의 정치

한겨레(2001.11.27)

 

탈정치를 넘어 반정치란다. 대학가 `이념투쟁'은 끝났다고 선언한다. <중앙일보> 기획기사다. 대문짝만한 활자로 손발친다. `총학생회장 선거전/반운동권·반정치 바람.'

게서 그치지 않는다. “비운동권을 넘어 반운동권이 주류”라고 서슴없이 단언한다. 대졸 취업난과 정치 무관심의 반영이라는 분석이 곁들여진다. `실사구시형 전환'이고 `정치색깔을 벗어 던졌다'는 평가가 살천스레 이어진다. 참으로 그러한가. 아니다.

무릇 정치를 혐오하고 삶을 달관한 사람은 어느 시대나 수북이 있었다. 도드라지게 언론사에는 많았다. 기실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집요하게 학생운동에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언론이 아무리 여론을 왜곡하고 가살피워도, 젊은 지성들은 당당히 그 여론에 맞서왔다. 언론이 군부에 대를 이어 충성했을 때도, 하여 대다수 국민들이 눈 먼 투표에 동참했을 때도, 학생운동은 애오라지 진실을 외쳤다.

문제의 핵심은 과거 학생운동에 적대적 보도가 정치 행위였듯이 오늘의 새퉁스런 `반정치 보도' 또한 정치적이라는 데 있다. 곰곰 따져볼 일이다. 과연 이 땅에 살면서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분명히 해두자. 사람답지 못한 삶은 결코 운명이 아니다. 정치의 산물이다. 지역과 색깔이 지배해왔기에 정치혐오는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탈정치 또는 반정치이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정치혐오, 그것은 누군가의 정치이다. 정치의 결과이자 목적이다. 혐오해서 방관할 때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누군가 파놓은 `정치 함정'에 걸려든다. 우리의 정치혐오 뒤에서 누군가는 정치를 만끽한다. 보라. 대한민국과 달리 의료와 교육이 두루 무료인 나라, 실업자도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으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지상에 얼마나 많은가. 비록 이상사회는 아니더라도 그 정도나마 이룬 나라는 과연 그저 됐을까. 아니다. 끊임없는 정치적 관심과 정치투쟁이 애면글면 일궈낸 결실이다. 민중을 위한 입법에 앞장 설 진보정당이 의석 하나 없는 한국의 정치현실은 고스란히 민중의 삶에 고통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정치를 혐오할 때 바로 그만큼 우리의 삶은 벅벅이 고통이다.

청년실업의 문제가 바로 그렇다. 오늘 젊은 세대의 미래가 우울한 현실은 언론권력이 선동하듯이 학생들이 정치투쟁에 매몰돼서가 결코 아니다. 정반대다. 오히려 대다수 대학인이 1990년대 후반 이후 시나브로 정치에 무관심한 대가다. 정치투쟁이 많아서가 아니라 정치투쟁이 적어서다.

최근 화제가 된 <고대신문> 설문조사를 보자. `다시 태어나도 모국을 택할 것인가'에 대학생 30.1%만 그렇다고 답했다. 그 사실을 부각한 언론은 대부분 이유를 기사화하지 않았다. 왜였을까. `정치타락'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정치혐오로 젊은 지성마저 탈정치·반정치를 혹 내세운다면 참으로 대학에 미래는 없다. 아니 이 땅에 희망은 없다. 신문과 방송이 부추기는 소비주의·제국주의 문화에 찌든 이 땅을 살잡아야 할 주체는 청년이다.

도파니 정치혐오를 부풀려 여론화하면서, 혐오스러운 정치모리배들을 언제나 지지해온 것이 바로 언론이었다. 여론왜곡에 맞서 줄기차게 한국 현대사에 새로운 정치지평을 열어온 젊은 지성의 과제는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더 절실하다.

오늘이 젊은 세대로선 절망의 계절일 수 있다. 진보정치 세력마저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으로 어근버근 갈라지고, 게다가 녹색당까지 나서는 풍경은 정치혐오를 더 거들 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 현실 또한 청년들이 동참할 때 싸목싸목 바뀌지 않을까.

그렇다. 정치혐오는 누군가의 정치적 노림수다. 언제까지 저들이 파놓은 우물에 갇혀 사뭇 초탈한 듯 은둔할 터인가. 언제까지 정치에 달관해야 하는가. 김영삼에 이어 `김대중 정치'마저 낙엽처럼 조락하는 2001년 늦가을. 깨끗한 희망을 키울 때다. 우리의 정치를 위하여.

 

살천스럽다 : 매섭고 쌀쌀하다 

가살(을) 피우다 : 가살스러운 태도를 보이다

가살(을) 떨다 : 경망스럽게 가살을 부리다  

가살(을) 빼다: 거만하게 가살스러운 태도를 취하다

가살: 얄망궂고 되바라져서 어루리지 않는 태도

가살스럽다 : 가량스럽게 야살스럽다

애오라지 : 한갖 또는 오직

새퉁스럽다 : 어처구니없고 엄청나게 새삼스럽다.  

애면글면: 약한 힘으로 몹씨 힘든 일을 해내느라 온갖 힘을 다하는 모양

벅벅이 : 틀림 없이 그러하리라고 추측의 뜻을 나타내는 말  

시나브로 :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살잡다: 국어 사전에 없음

살잡이: 쓰러져가는 건물을 살대 같은 것으로 버티어 바로 일으켜 세우는 일 

도파니: 이러니저러니 여러 말할 것도 없이 죄다 물어서, 도틀어

어근버근 : 꼭 맞지 않아 짜임새 따위가 벌어져 흔들리는 모양, 여러 사람이 서로 마음이 화합되지 않아 벌어진 모양 

싸목싸목: 천천히 조금씩 걷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