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의 여론 읽기

뜻풀이


한 줌과 두 당

한겨레( 2001.12.11)

 

민주노동당과 사회당. 두 진보정당 사이에 논쟁이 뜨겁다. 두 당의 토론방도 달아올랐다. 논쟁은 기실 필요했다. 진보세력 대동단결은 시대적 숙제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왜나가고 있다. 더러는 새된 선소리다. 진의보다 저의를 캔다. 자칫 죄다 `개량주의자'나 `기회주의자'가 될 판이다.

“얼마든지 부드럽게 말해도 될 것을 칼로 끊듯이 논리를 세워 말한다.” 올해 4·19강연에서 `통혁당 무기수' 신영복 교수가 던진 쓴소리다. 참여연대를 내올 당시 김중배 대표는 강조했다. “왜 뺄셈만 하는가. 덧셈을 하자.”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흘러 연대하자는 신 교수의 `물 연대론'을 되새김질할 때다. 공통점을 찾아 덧셈을 해도 모자랄 섟에 애써 차이를 찾기에 더욱 그렇다. 악다구니도 서슴지 않는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진보세력 내부에 정설처럼 내려온 `경구'도 이제 과녁을 정조준 할 때다. 내부의 적이 더 문제라면, 오늘 그 `적'은 누구인가. 뺄셈만 하는, 칼로 끊기만 하는 작풍이 아닐까.

무조건 부드럽자는 뜻은 물론 아니다. 덧셈만 하자는 제안도 아니다. 부드러움이나 덧셈을 강조할 때 정작 싸움의 본질을 잊을 우려도 있다. 그래서다. 물처럼 흐를 때와 칼날을 벼릴 때, 더할 때와 뺄 때를 구분해야 한다.

가령 대한민국 수구세력의 살천스런 눈으로 보자. `가관' 아닐까. 아니 더 정직하자. 민중의 살가운 눈으로도 그렇다. 흔히 진보세력은 수구세력을 한 줌도 안 된다고 경멸해왔다. 기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현실과 당위는 다르다. 80 대 20으로 나누어 80%의 민중을 대변했다는 당이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얻은 민중 표는 얼마였는가. 그나마 다음 대선에선 두 당으로 나선다? 아니다. 더이상 진보정치세력이 희화화될 순 없다. 가슴이 뜨거울수록 미덕은 차가운 이성이다. 오늘 진보정치세력은 수구세력에겐 `한 줌'이다. 그럼에도 조각조각이다. 반면 수구세력의 한 줌은 어떠한가. `강철대오'다.

흔히 현대를 여론정치시대라고 말한다. 그 말이 얼마나 과학적인가는 잿빛 이론가들에게 맡겨두자. 중요한 것은 진보세력이 여론 시장에서 한 줌인 현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신문과 방송이다. 언론 개혁 없이 진보적 여론형성이 가능할까. 반세기 동안 이 땅에 뿌리내린 언론체제는 견고하다. 1987년 6월대항쟁 뒤 진보매체·대안매체가 곰비임비 선보였다. 두 당도 신문 <진보정치>와 <사회당>을 발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적 한국의 여론시장은 진보세력에 장벽이다. 대다수 진보정치세력은 <한겨레>도 우호적이지 않다며 비판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뜻밖에도 많은 진보정치세력이 언론개혁운동마저 한낱 보수판 내부의 싸움쯤으로 넘긴다는 데 있다. 진보세력의 둔감과 대조적으로 수구세력은 민감하다. 보라. 1961년 박정희는 쿠데타 직후 <민족일보>를 폐간했다. 옹근 40년 전 12월 발행인 조용수를 기어이 처형했다.

군사정권이 이룬 언론체제는 오늘도 마침표가 없다. 더러는 왜 언론개혁을 부드럽게 설득하지 못하느냐고 나무란다. 하지만 반민주·반통일세력과 싸움에서 부드러움은 사치다. 언론권력이 언죽번죽 언론개혁을 `홍위병'으로 여론화한 것은 운동에 부드러움이 없어서가 아니다. 정반대다. 역사의 칼날을 가는 사람이, 그리고 그 연대가, 적어서다. 진보세력 안에 물의 연대가 아쉽다면, 수구세력 앞에 아쉬운 것은 날을 세운 결기다. 물의 연대 또한 연대를 밑절미로 한 칼을 상정하지 않을 때 그저 물에 지나지 않는다. 물이 절실할 때와 칼로 끊을 때를 가르는 슬기가 아쉬운 오늘은 `겨울'이다. 가진 것이 없기에 따뜻한 체온을 서로 보태는 연대는 더 간절하다.

중뿔나게 민중의 뜻을 참칭할 뜻은 없다. 하지만 숫민중의 갈망은 분명하다. 칼로 끊을 때 물이면서, 정작 물이 절박할 땐 칼을 들이미는 풍경은 절망이다. 민주노동당-사회당 논쟁이 창조적이길, 하여 하나로 거듭나 참정치에 목마른 겨레의 갈증을 촉촉이 적셔주기 바란다.

 

왜나가고: 국어사전에 없음(어긋나다의 사투리?)

새되다: 목소리가 높고 날카롭다

선소리 : 조리가 잘 맞지 않는 말

섟에: ...할 망정 도리어

살천스럽다: 매섭고 쌀쌀하다  

살갑다 : 겉으로 보기보다느 속이 너르다, 마음씨가 부드럽고 상냥스럽다

곰비임비 : 계속 일이 일어나거나 물건이 거듭 쌓이는 모양, 계속

옹근 : 본디 그대로의

언죽번죽: 남을 흉보는 입의 놀림

결기: 지그시 참지 못하고 발끈 성을 내거나, 벌컥 행동하는 성미

밑절미: 어떤 사물의 기초가 되어 있는 바탕  

중뿔나다 : 관계가 없는 사람이 곁에서 불쑥 참견하며 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