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의 여론 읽기

뜻풀이


 
의문의 죽음들

한겨레(2002.1.8)

 

“까치야 까치야 뭣하러 왔냐/ 때때옷도 없고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

고 김남주 시인의 새해 노래다. 새로움 없는 새 아침에 시인은 물음표를 보낸다. 까치가 답이 궁했을 법하다. 덕담을 할 섟에 벽두부터 슬픔에 잠길 뜻은 없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새 아침을 맞았는가. 아니다. 새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옹근 15년 전 `새해'로 돌아가 보자. 전두환 정권은 한 청년을 연행한 뒤 `전설'로 남을 발표를 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그 말을 숫백성이 믿었다면 어찌됐을까. 6월 대항쟁은 미뤄지고 박종철은 의문사 명단에 자리할 터이다. 다행히 고문진상은 드러났다. 하지만 15년이 흐른 오늘도 진실이 은폐된 죽음은 숱하다.

애오라지 유족들이 애면글면 싸워왔다. 살인범을 밝히라는 지극히 당연한 요구는 강파른 길을 걸어야 했다. 의문사를 추적해야 마땅할 언론은 시치미 뗐다. 가슴에 피멍 든 어머니·아버지들이 흰 머리에 찬이슬 맞으며 422일을 길 위에서 철야 농성했다. 결국 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떴다. 하지만 위원회 활동이 마감을 앞둔 오늘까지 80여건에 이르는 의문사 대부분은 어둠에 묻혀 있다. 국정원·기무사·검찰·경찰의 `적극적인 비협조' 탓이다. 보관하고 있는 자료 요구에 `회신 지연'은 예사다. 아예 거부하기 일쑤였다. 언론 또한 일부 저명인사의 의문사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데 그쳤다. 권력기관의 비협조는 방관했다. 무슨 깜냥일까. 혹 `공범'이어서일까.

비협조에 언죽번죽 `명분'도 내건다. 의문의 죽음에 `좌경'이 많단다. 비밀·공안 문서로 처리해 놓았다. 위원회 활동이 정작 피맺힌 의문의 죽음들에 면죄부를 주는 꼴 되기 십상이다. 여북하면 유족들이 위원회의 전면 혁신을 내걸고 농성을 벌였겠는가. 그래서다. 김대중 정권이 `대통령소속' 위원회를 구성한 것만으로 일을 다했다고 자위한다면 큰 오산이다. 권력기관이 겯거니틀거니로 협조하지 않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현 정권에 있다.

의문사는 일그러진 한국현대사의 산물이다. 진상규명은 결코 유족과 위원회만의 몫이 아니다. 언론인은 물론 `살아 있는 자' 모두의 의무다. 민주와 통일을 가리틀어 온 수구세력의 죄를 밝혀 참된 화해에 이르는 데 진상규명의 뜻이 있다. 현실은 어떤가. 학살의 진상을 은폐한 수구세력은 예의 진실을 감추며 되록되록 눈을 굴린다. 신문권력은 본디 그렇다치자. `박권상 체제'의 한국방송은 지난 4년 동안 그 막강한 여론형성력을 도대체 어디에 탕진했는가. 국가보안법이 사상의 자유을 짓밟는 나라, 냉전세력이 저들만의 언론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대한민국임을 의문의 죽음들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대통령소속 진상규명위까지 흐지부지 끝난다면 비단 남우세스런 일로 그치지 않는다. 역사가 우리 시대를 과연 용서할까. 그 정도의 자정능력마저 없기에 외세가 우리를 줄곧 시들방귀로 여기는 게 아닐까. 보라. 미국이 백범 암살에 깊숙이 개입한 혐의가 드러나도 그저 그뿐 아닌가. 암살 진상을 밝히라는 정당한 요구조차 당당히 하지 못한다.

미국과 수구세력이 반세기 넘도록 저지른 의문의 죽음들은 지금도 지하에서 원혼으로 신음하고 있다.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 밑에 얼마나 수많은 피울음들이 깔려 있는가. 그 원혼과 피울음 위에서 대한민국은 부패공화국으로 치닫고 있다. 민족정기를 말하기도 쑥스럽다. 심지어 친미사대주의 언론은 `전쟁의 해'를 선포한 조지 부시 정권을 부추기는 `불장난'도 서슴지 않는다. 생게망게한 일이다. 새해이되 새해가 아닌 까닭이다.

정녕 언제일까. 이 땅에 새 아침을 열 그 날은. 민주와 통일의 길에 목숨바친 저 수많은 넋들이 편히 쉴 그 날은. 뭣하러 왔느냐. 까치에게 묻지 않아도 좋을 새해는.

 

섟에: ...할 망정 도리어

옹근 : 본디 그대로의

애오라지: 한갖 또는 오직

애면글면: 약한 힘으로 몹씨 힘든 일을 해내느라 온갖 힘을 다하는 모양

강파르다: 몸이 여위고 파리하다, 성질이 깔깔하고 괴팍하다 

깜냥: 일을 가늠보아 해낼 만한 능력, 지니고 있는 힘의 정도 

언죽번죽: 남을 흉보는 입의 놀림

여북/여북이나: 얼마나, 오죽(예: 그 아이가 돌아오면 여북이나 좋으랴)

겯거니틀거니: 서로 겨누느라고 이리저리 걸거나 틀고 버티는 모양

가리틀다: 남의 횡재에 끼어 들어 무리하게 한 몫을 청하다, 잘 되어가는 일을 안되도록 틀다

시들방귀 : 시들한 일이나 사물을 우습게 여기어 일컫는 말, 사물을 시들하게 여기는 것

생게망게하다: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아니하다. 말이나 짓이 터무니가 없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