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의 여론 읽기

뜻풀이


부자와 여자

한겨레(2004.7.19)

 

 
부자와 여자. 논리적 맥락이 동떨어진 말이다. 하지만 두 낱말은 대한민국의 한 30대 남성에게 ‘필연’으로 다가왔다. 유영철. 경찰에 따르면 그에게 부자와 여자는 ‘증오’로 이어졌다. “26명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서른네 살. 청년노동자 고 김선일과 동갑이다. 1970년생인 그의 생명도 온전할 리 없다. 이미 부자신문이 ‘극형’을 들먹이듯이 밧줄에 걸릴 터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고 김선일과 비교할 뜻은 전혀 없다. 다만 유영철의 삶을, 1970년생 한국인의 인물화 또는 풍경화로 그려볼 필요는 있다. 서른넷에 전과 14범이었다. 가장 최근에 감옥 문을 나섰을 때 다짐했단다. “있는 놈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

왜 그랬을까. ‘희대의 살인마’로 다시 철창에 갇혔을 때 말했다. “내 인생이 순조롭지 못하고 전과자로 전락하게 된 것은 부자들 때문이다.” 그래서다. 윤똑똑이들은 입을 모은다. 부자와 여자에 대한 빗나간 증오이자 왜곡된 한풀이라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참으로 참혹한 범죄 아닌가. 다만 성찰해볼 일이다. 실제로 그의 삶을 톺아보면 ‘순조롭지 못한 인생’은 가난 탓이었다. 막노동을 하던 아버지의 사남매 가운데 삼남인 그에게 불행의 꼬리는 길었다. 열넷에 ‘아빠’가 숨졌다. 결국 인문고를 가지 못했다. 공고 시절 ‘절도’로 소년원에 갇혔다. 이어 감옥을 들락거렸다. 안마사와 결혼했지만 복역 중 이혼당했다. 출소해 정을 준 여성도 결국 손사래 치며 떠났다.

엽기적 살인행각 끝에 최종 검거된 날은 2004년 7월16일. 우연이지만 옹근 5년 전 탈옥수 신창원이 잡힌 날이다. 신창원, 그도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다. 어려서 ‘엄마’를 잃고, 가난으로 학교를 중퇴했다. 열다섯에 절도로 소년원에 갔다. 서울 돈암동의 부자를 털다가 강도치사로 무기징역이 확정됐지만 감옥을 탈출했다. 다시 잡혔을 때, 그는 일기를 남겼다. 자신과 “전두환·노태우, 그 추종자들”의 죄를 비교하며 물었다. “누구의 죄가 더 무거운가.” 고백에선 서리서리 적개심이 돋는다. “수백을 살해한 자들은 아직까지 살아서 잘난 체하며 떵떵거리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 한순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사람을 해쳤지만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속죄의 삶을 살아 보고자 했던 사형수들은 죽었고 지금도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

탈옥수의 소년원 회고도 섬뜩하다. 교도관이 재소자들의 입을 모두 벌리라고 명령한 뒤, 차례차례 그 안에 가래침을 뱉었단다. 비슷한 시기에 소년원에 간 유영철에게 감옥은 어땠을까. 교도소에서 증오를 ‘교도’받지 않았을까. 인명을 경시한 사고는 자신의 인명이 경시받아서가 아닐까. 증오의 화살이 첫 절도와 맞물려 부자로 정조준된 게 아닐까.

문제는 정당한 분노가 뒤틀린 증오로 빗나갔다는 데 있다. 온갖 쾌락을 누리되 전혀 나눌 줄 모르는 보비리들, 이 땅의 수구세력에 정당한 방법으로 맞서야 했다. 잘못된 과녁은 그가 살해한 여자들에서 정점에 이른다. 체포된 뒤 여성들에게 “함부로 몸 놀리지 말라”고 말했지만, 진실은 어떠한가. 살해한 여성 대다수는 그와 같은 처지 아닐까. 빗나간 증오가 애먼 여성의 참극으로 이어진 셈이다. 가부장제의 남성중심 사고가 그를 지배한 탓이다.

“있는 놈”에게 부니는 여성에 대한 범죄적 적개심은 그들을 성욕의 ‘배출구’로 삼은 기름진 남성에 대한 정당한 분노로 나아가야 했다. 범죄학의 ‘세력이론’을 빌릴 필요도 없다. 분명하지 않은가. 탐욕적인 부라퀴들이 ‘매매’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여성을 사실상 ‘강간’하고 있는가.

물론, 분노를 살인으로 드러내기는 인간적 죄악이자 저들의 ‘올가미’다. 돈으로 돈 세상을 참으로 벗어나려면, 울뚝을 삭이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정치 참여’로 비상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정반대의 길을 갔다. 그래서다. 유영철과 그 손에 죽어간 동시대인들의 저 참혹한 운명 앞에 하릴없이 무력감을 느끼는 까닭은. 황금 만능의 대한민국 풍경에 스멀스멀 분노가 솟는 까닭은.

 

윤똑똑이: 저만 잘나고 지나치게 영리한 체하는 사람

톺다: 샅샅이 뒤지면서 찾다.

손사래 : 어떤 말을 부인 또는 거절하거나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손을 펴서 내젓는 일. (준말)손살.

손사래(를) 치다 : 손을 펴서 마구 내젓다

옹근 : 본디 그대로의

서리서리 : 1.서려 놓거나 서려 있는 모양. 2.(어떤 감정이) 복잡하게 서려 있는 모양.

보비리 : 다랍게 인색한 사람.
애먼 : 엉뚱하게 딴
부닐다: 붙임성 있게 가까이 따르다, 남을 도와서 고분고분하게 굴다.

부라퀴 : 1.야물고도 암팡스러운 사람. 2.자기에게 이로운 일이면 기를 쓰고 영악하게 덤비는 사람

울뚝 : 성미가 급하여 언행을 우악스럽게 하는 모양

스멀스멀 : 작은 벌레 따위가 살갗 위를 기는 것같이 근질근질한 느낌이 드는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