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빕과 퓨전 문화

 

 

 

김치와 불고기는 세계에 널리 알려진 자랑스런 우리 나라의 음식이다. 하지만 외국에도 비록 오래 묵히지는 않지만 샐러드 종류가 많으며, 쇠고기 요리 방법도 다양하다.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음식은 바로 "비빔밥"이다. 여러 재료를 한꺼번에 넣어 비벼먹는 풍습은 왜 생겨났을까? 적은 반찬을 맛있게 먹는 선조들의 지혜 때문일까? 아니면 하도 피난을 다니다 보니 상을 차리기가 귀찮아 생겨난 습성일까?

그런데 재료를 한꺼번에 넣어 섞는 습성은 비단 음식 문화에만 나타나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심성은 유별나게 혼합적이다. 외래 문화도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 처음의 모습 그대로 잘 남아 있지를 못한다. 그것들이 전통적인 요소와 함께 섞이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아주 다른 문화들끼리도 잘 섞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룡산은 종교 비빔밥의 전시장이었다. 기독교에도 샤머니즘적 요소(기복주의, 개인주의)와 유교적 요소(계급주의, 형식주의), 불교적 요소(현실도피, 운명주의)가 두루 섞여 있음도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만큼 온갖 종교가 뒤섞인 유사 종교들이 흔한 나라도 없다. 한반도가 대륙의 끝에 붙어 있어서 대륙 문화들이 온통 유입되었으며, 근세에는 대양 문화(일본과 미국의 문화)가 공격적으로 상륙하여 우리 문화와 뒤섞였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새로운 비빔밥 문화가 다시금 거세게 일고 있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어울려 새로운 문화 형태가 생겨나고 있는데, 이를 사람들은 퓨전(fusion)이라고 부른다. 퓨전이라는 말은 "융해", "융합"이라는 뜻인데, 순수 우리말로 바로 "비빔"이 아닌가? 퓨전 문화를 선도하는 것은 음식이지만(치즈 비빔밥, 치즈 김밥, 나물 리조트, 구절판 밀쌈 등), 전자 제품과 패션, 음악과 춤 등에서도 퓨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바야흐르 비빔밥 전통이 현대에 이르러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 것이나 마구 비벼댄다고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문화와 인종도 당연히 섞일 수 있다. 종교도 불가피하게 섞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참과 거짓까지 마구 뒤섞이니, 이를 어쩌나? 예나 지금이나 우리 나라에서는 순수하게 사는 것이 정말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