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기술의 명암(明暗)

 

 

인류의 역사는 복제 기술의 역사이기도 하다. 옛 조상들은 책이나 그림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야만 했다. 그 수고는 얼마나 컸겠으며, 시간도 얼마나 많이 들었을까? 이런 불편을 크게 해결한 것이 바로 인쇄술의 발명이다. 인쇄술은 우리 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만약 인쇄술의 발전이 없었더라면, 종교개혁이나 세계적인 혁명, 민주주의의 획기적인 발전도 거의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20세기에 발명된 복사기는 인쇄술이 갖는 여러 한계를 크게 넘을 수 있게 하였다. 이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문서를 똑같이 복사해 낸다. 더욱이 컴퓨터의 발전은 복제 기술에 엄청난 도약을 가져왔다. 이젠 문서나 그림만이 아니라 동영상, 음악까지 쉽게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욱이 20세기에 들어서서 인간은 생명체와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을 획득하였다. 앞으로 인간은 하나님도 복제하려고 들지도 모른다.

다른 과학 기술의 경우에도 그렇지만, 복제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편리함과 혜택을 주었는가? 지식과 정보를 손쉽고도 광범위하게 생산하고 전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사귐과 소통을 나눌 수 있게 되었으며, 소수의 정보 독점과 이로 인한 권력 독점으로부터도 크게 해방될 수 있었다. 누구나 정보의 생산자가 될 수 있으며, 이젠 개인이 인터넷 신문과 잡지의 발행인이 되고, 개인 방송국까지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기술은 양면성을 갖는다. 복제 기술의 발전은 엄청난 혜택과 함께 많은 문제점을 안겨다 주었다. 화폐와 서류를 위조하고 음란하고 불량한 정보를 대량 확산하는가 하면, 개인의 비밀과 인격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학생들로부터 보고서를 받아 성적을 매기는 본인은 종종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남의 것을 똑같이 복제하거나 교묘하게 요약하는 기술을 제대로 따라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의 학문성을 먼저 검토하려고 하였지만, 지금은 보고서의 진위를 가리는 일에 더 많은 정력을 기울일 때가 많아졌다.

만약 인간을 복제하는 기술이 허용되거나 악용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제 생활에서 한 사람이 서로 다른 행동을 할 때, 우리는 그를 다중인격자(多重人格者)라고 부른다. 그는 위선자가 아니면 사기꾼이 되기 쉽다. 그런데 나와 똑같은 인간이 복제될 수 있다면, "그가 내 자식인가 아니면 또 다른 나 자신인가?"라는 정체성의 혼란만이 초래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다중인격이 아니라 다중인간(多重人間)이 생산되는 것이다. 마치 일란성 쌍둥이처럼 한 사람이 두 얼굴과 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는 무슨 일이라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인간은 복제 기술을 통하여 영생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바로 불멸하는 신적인 존재가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하나님의 진위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영적인 혼란에 빠질 지도 모른다. 지금도 자신을 오류가 없는 하나님으로 착각하는 존재가 많은데,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자칭 하나님들이 서로 경합을 벌리며 인간을 노예로 삼으려고 할까? 요즘 유행하는 말로 우리는 참으로 엽기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럴수록 성도들은 더욱 깨어 기도하여야 하겠다. "주여,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하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사 정직하고 겸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더 큰 힘을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