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죽음을 기리며

 

(고 이수현 씨)




전철 길에 누워있던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함께 목숨을 잃은 이수현 씨와 화재를 진압하며 인명을 구하려다 역시 목숨을 잃은 여러 소방대원들의 갸륵한 희생은 우리에게 애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들의 값진 희생은 우리를 숙연케 하며,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놀라운 열매를 속속 맺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악명이 높은 아우슈비츠 포로 수용소에 갇혀 지내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의사 빅터 프랭클(V. Frankl)은 인생의 가치를 세 종류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자연만물을 즐기는 데서 얻는 향유 가치가 있고, 그 무엇을 만들어 냄으로써 얻는 창조 가치가 있으며, 삶을 수용하는 태도에서 생겨나는 태도 가치가 있는데, 프랭클은 그 중에서 태도 가치를 가장 높은 것으로 여겼다. 태도 가치는 사랑과 고난, 죽음을 통하여 가장 확실하게 실현된다.

짧은 인생을 사는 우리는 가급적 많은 것을 즐기기를 원하며, 남다른 것을 이룩하였을 때에는 뿌듯한 기쁨을 누린다. 하지만 아낌없는 사랑과 자발적인 고난, 희생적인 죽음만큼 인생을 더 값지게 하는 것은 없다. 주님의 생애가 바로 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날이 갈수록 퇴폐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 현대인을 구원할 자는 진정 누구인가? 나의 것을 움켜쥐지 않고 기꺼이 나누는 자요, 자기를 주어 남을 살리는 자다.

나와 내 가족, 내 민족만을 위하느라 남, 남의 가족, 다른 민족을 무시하고 짓밟는 자는 무가치한 자요, 그래서 구원을 상실한 자다. "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이다. 죄의 본질은 이기심에 있다. 그래서 영어에서 죄(Sin)라는 단어의 중심에도 내(I)가 도사리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보람과 가치도 물질적 축복이나 향락에 있지 않고, 바로 주님의 거룩한 삶을 본받는 것에 있다. 그분처럼 사랑과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위엄이요, 교회의 진정한 사명이다. 바로 부활의 영광도 고난과 죽음을 비껴가지 않고 오히려 이를 통과함으로써 주어졌다! 시기와 다툼, 죽임의 문화가 온통 활개치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사랑과 희생의 문화를 심고 가꾸는 자가 되어야 하며, 바로 이를 통하여 생명과 기쁨, 나눔과 평화의 나라가 이 땅에 널리 퍼져나가도록 기여해야 할 것이다. 이 시대에 우리는 복음과 함께 인생의 참된 가치를 전파하고 실현하는 일꾼이 되라는 부름을 강하게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