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영화에 눌려 지내던 한국 영화가 모처럼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최근에 흥행하는 영화들은 한결같이 폭력을 다룬 것들이다. [친구]에 이어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킬러들의 수다], [달마야, 놀자] 등 조직 폭력배와 관련된 영화가 줄이어 나온다. 영화인들은 이런 유행 현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재미 삼아 봐달라도 주문하지만, 청소년의 모방 폭력을 보면 결코 재미로 보아 넘길 일만은 아니다.

왜 폭력 영화가 이처럼 인기를 누리는 걸까? 이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반영이다, 즉 우리 사회는 아직도 요소마다 폭력이 지배하고 있다. 통계 상으로 우리 나라에는 폭력 조직이 약 200여개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폭력 세력들은 얼마나 많을까? 폭력 영화는 단지 강한 자들의 "힘의 정의"만을 전파하지 않고, 가끔 약한 자들의 "정의의 힘"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위로부터의 폭력" 아래 억눌린 약자들은 비록 영화 속에서나마 "아래로부터의 폭력"을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고 갈채를 보낸다.

이래저래 우리는 폭력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간다. 아니 우리는 아직도 인간다운 문명을 건설하지 못하고 여전히 동물적 삶을 연장하고 있다. 권력 상층부에는 항상 폭력이 은밀히 기생하고 있다. 하지만 양심과 법, 정의에 따라 살지 않는 폭력배들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  

9월 11일에 일어난 미국의 테러는 경악스러운 폭력이었다. 왜 이런 끔직한 폭력이 일어났는가? 그것은 온 세계에서 폭력을 휘둘러온 "불량 국가"(촘스키)가 되돌려 받은 보응적 성격의 폭력이었다. 전 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솔직한 말대로 미국은 수많은 원주민, 노예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온갖 악행을 저질러 왔다. 그러므로  아직 죄값을 다 치르지 못한 미국은 이번 기회를 통해 통절히 반성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만한 미국은 테러에 대한 보복의 명분으로, 선의 이름으로 또 다시 엄청난 악을 행하면서, 폭력의 악순환을 재생산하고 있다. 모든 폭력은 악하다. 하지만 힘있는 자의 폭력은 힘없는 자의 폭력보다 더 악하다.

이 폭력의 문명을 누가 건질 것인가? 오직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만이 평화와 사랑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그리스도인은 특별히 "화평케 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강하게 듣고 있다. 주여!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성 프랜시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