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한미국?

 

 

꽃같이 아리따운 나이의 두 여학생(효순이와 미선)이 등교길에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죽은 불행한 사건 때문에 연일 거센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미국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친미주의자들에게 미국은 우리 나라를 일제로부터 해방시켜주고, 공산군 침략을 막아주며 우리에게 빵과 복음을 건네주었으며 한국의 근대화와 민주화, 경제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고마운 은인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 반면에 반미주의자들에게 미국은 남북분단을 주도하고 한국땅을 점령하며 지금도 한국의 운명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는 포악한 강대국으로 생각될 것이다. 이 두 가지 논리는 제 각기 합당한 면이 있겠지만, 양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약소국인 우리 나라가 강대국에 의지하면서도 떳떳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이와 같은 처지를 "피조물의 허무한 종살이"(롬 8:21)에 비유했다.

아까운 두 목숨을 잃은 엄연한 피해자가 생겼는데 가해자가 없다고 판결한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위가 격렬해지고 소파(SOFA) 협정의 개정과 미군철수까지 주장하는 심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과 미군측의 사과까지 있었다면, 분명히 미군은 잘못을 인정한 셈이다. 그런데도 왜 가해자는 아무런 형벌도 받지 않았는가? 미군측은 배심원의 의견을 물어 판결하는 미국의 재판 관행을 이해해 달라고 한다. 그 밖에도 범인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입장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군 지휘관의 문책이 분명히 따를 것이고, 가해자 당사자에게도 분명히 불이익이 주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이없는 판결이 나온 이유는 아마도 강대국(힘 = 정의)의 위신을 지키려고 한 허세가 아니면, 미군 모집에 어려움을 느끼는 미국의 정책적인 배려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을 향해 껌과 초코렛을 달라고 손을 내밀던 우리가 성조기를 태우고 미군부대에 화염병을 던질 정도로 당당해진 모습만으로도 나는 무척 행복함을 느낀다. 그 만큼 우리도 잘 살게 되었고, 미국도 우리를 무조건 무시하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만한 부시가 사과를 할 리가 없지 않는가? 권력의 달콤함과 무상함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차제에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강력한 미국 앞에서 열등감이나 허세감를 갖는 것은 결코 미국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도 스스로 미국을 지나치게 숭배하거나 부당하게 깎아내리지는 않았는가? 지나친 친미와 지나친 반미는 둘 다 바람직하지 못하다. 과거에는 강력한 미국의 힘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비굴하게 살아왔다면, 지금은 우리가 한국인의 긍지를 버리고 미국에 자발적으로 굴종하고 있지는 않는가? 훌륭한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영어를 지껄이고, 미국의 정책만을 무조건 따르고, 미국문화를 열렬히 숭배하는 것도 과연 미국의 힘 때문인가?

더욱이 한국의 교회문화(예배의식, 찬송가와 악기, 절기와 복장 등)는 지나칠 정도로 미국문화 일색이다. 우리가 경제적,군사적으로 당당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미국 문화의 하부 구조가 되길 자처한다면, 우리는 허울뿐인 자주독립국으로 남을 것이다. 이러니 미국이 어찌 우리를 깔보지 않겠는가? 더욱이 미국이 우리를 어떻게 보든, 우리가 유구한 문화를 지닌 어젓한 독립국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진정한 대한독립의 날, 즉 남의 문화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날이 언제쯤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