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상징적 효력

  

 

두 여학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치여 죽은 사건 때문에 한 동안 한국 사회는 야단법석했다. 소파 개정을 위해 모인 이 모임에 일부 반미 세력들이 끼어들어와 미군 철수를 주장했고, 북한 핵위기 때문에 더욱 불안해진 일부 보수 세력들은 이를 계기로 친미시위를 열기도 했다. 어떤 주장이 옳은지 여부를 떠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떳떳이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은 건강한 사회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우리는 할 말조차 못하고 얼마나 억눌려 살아왔는가?

이번 사건 가운데서 특히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촛불 시위다. 이와 같은 대규모 집회가 가능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월드컵 응원의 경험과 그로 인해 얻은 민족적 자존심,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급부상한 젊은이들 , 인터넷의 위력 등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촛불이 주는 상징적 위력도 결코 작지 않았다고 본다.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손마다 촛불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이리하여 월트컵 때의 붉은 악마와 엇박자 응원에 이어 이번에는 촛불이 중요한 문화적 상징으로 등장했다.

촛불은 분명히 화염병처럼 적을 공격하는 무기가 아니라, 죽은 자를 추도하기 위한 소박한 상직적 도구였다. 하지만 촛불은 추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희생 정신, 위를 향해 타오르는 염원의 몸짓, 역한 냄새를 제거하고 공기를 정화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은은한 냄새까지 풍길 수 있는 다양한 쓰임새 때문에 촛불은 오랫 동안 인류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래서 무속과 불교, 카톨릭은 촛불을 효과적인 상징 수단으로 이용한다. 개신교도 이전에는 촛불이나 촛불 형태의 전구를 이용해 왔으나. 지금은 대개의 교회가 더 이상 이를 이용하지 않는다.

개신교는 상징이나 의식보다 설교와 예배 행위를 더 강조한다. 하지만 인간은 상징적인 존재이며(카시러), 상징은 보이지 않는 종교적 실재를 지시하는 힘을 갖고 있다(틸리히). 그러므로 상징의 빈곤은 곧 종교성의 빈곤으로 이어지기 쉽다. 월드컵 대회에서 붉은 옷과 악마의 형상은 청중을 결집하고 열광시키는 중요한 상징 수단이었다.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는 붉은 악마를 비판하였는데, 문화의 상징 체계가 변할 줄도 모르고 무조건 이를 비난한 것은 큰 실수였다. 대안으로 제시한 흰 천사는 상징으로서 역부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비웃음을 사기도 하였다. 상징은 금방 만들기도 어렵고, 쉽게 없애기도 어렵다. 기왕의 상징을 잘 이용하거나 그 상징 체계에 적절한 변화를 주는 것이 훨씬 낫다. 언제까지 우리는 불신자들의 지혜를 비판하거나 시샘하기만 할 것인가? 교회가 촛불의 상징성을 회복하거나 강화할 수는 없을까? 고난의 의미를 거의 퇴색시킨 십자가 하나만으로 상징에 목마른 현대인의 심령을 적시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