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교회 85년사


 

 

아현교회 85년의 발자취가 한 권의 책 속에 소담스럽게 담겨졌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85년의 역사를 자랑하기 차마 부끄러운 듯, 부피는 절제되어 있고, 색감은 단아하다. 대중잡지처럼 친근한 크기와 현대적인 디자인이 첫 눈에 반하게 한다. 책의 끝자락을 손으로 잡으면, 숫처녀의 치렁한 치마 자락인 양, 속을 들추어보고 싶은 엉큼한 호기심이 문득 발동한다.

그리고 하얀 바탕 위에 새겨진 과거(한자로 쓰여진 제목)와 현재(그래픽 문자)가 구세대와 신세대를 정겹게 이어주는 듯하다. 그 품새가 마치 이웃 아낙네, 아니 어머님의 펑퍼짐한 치마와 같아서, 얼른 안기고 싶어진다. 독특한 디자인으로 그려진 "85"라는 글자는 숱한 풍상(風箱) 속에서도 알찬 열매가 영근 지난 역사를 알알이 끌어안는 모습이다.

10년 단위가 아니라 5년 단위로 끊은 심사(心思)도 특이하다. 아현교회가 남달리 세월을 민감하게 느낀다는 증거일까? 앞으로도 과연 그리할 수 있을까? 간간이 곁들인 사진과 만화는 역사책을 대하는 거부감을 덜어준다. 권위와 허세를 부리지 않고 언제나 자기를 내어주는 신선한 샘물처럼.

하지만 정작 사람과 하나님에게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이다. 겉과 모양은 화려하지만, 속빈 강정과 같은 것들은 우리를 얼마나 역겹게 하는가? 필자(박양식 박사)의 집필의도는 역사학도답게 진지하다. 서울 한 모퉁이의 자그만 교회의 역사를 다듬는 솜씨도 뛰어나지만, 그것을 아우르는 배포도 야심만만하다. 여기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사(구원의 역사)를 읽으려 하고, 민족사의 맥락까지 더듬으려 하다니!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성결교회는 역사의식이 좀 부족한 편이고, 그래서 사회참여에도 소극적이었다. 그래서 아현교회의 역사에서 민족사와 함께 한 흔적을 발견하려는 그의 노력은 더욱 안쓰럽고, 귀한 만큼 고맙기 이를 데 없다. 아현교회가 때로는 역사의 멍에를 함께 지려는 모습으로, 때로는 시대와 단절한 고고한 선비처럼 속으로 응집하는 모습을 그는 잘 그려주고 있다.

빈곤한 자료와 난처한 역사 서술의 한계 속에서도 평신도들의 모습을 가급적 많이 발굴한 것은 이 책의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한국사가 흔히 군왕의 치적을 중심으로 엮어지듯, 한국의 개 교회사도 대개가 목회자 중심으로 서술되곤 하였다. 자료의 부족보다는 역사의식의 부족이 빚은 현상이리라! 하지만 필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활동이 엘리트만이 아니라 이른바 민초(民草)를 통해서 더욱 선연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간증하려고 애쓴다. 목자요 기둥이요 해도, 양이 없는 목자가 무슨 소용 있으며, 기초가 없는 기둥이 어찌 버틸까! 모든 성도들 (평신도도 교역자이고, 교역자도 성도다!)의 땀과 눈물이 책갈피마다 흥건하게 배인 모습이 우리를 숙연케 한다. 새 하늘의 성벽에 박혀있는 온갖 진기한 보석처럼, 어두운 하늘에서 묵묵히 빛내는 별처럼 영롱하다! 90년사의 모습, 아니 새 천년을 맞이한 모습은 또 어떨까? 새 각시처럼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