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간론의 의의

 

1.자신을 찾고 있는 인간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니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인간이 아닌가? 아니 나 자신은 누구인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끊임없이 던져 온 이 물음은 아직도 인간은 자신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인간이 이런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면서도 그 스스로 대답을 내릴 수 없다는 이 모순 자체가 이미 인간의 신비와 함께 인간의 무지를, 인간의 존엄성과 함께 인간의 가련함을 입증한다. 파스칼은 이 점을 짧은 경구로써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델피 신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말로써 유식하다는 당대의 온갖 지식인들의 무지를 폭로하고 그들을 창피하게 만들었던 소크라테스처럼, 오늘 우리는 "나 자신을 알라"는 자신의 요구 앞에 무지와 당황을 경험한다. 우리는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특히 나 자신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 나는 자신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폭로한다면, 스스로 죽고 싶거나 그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을까? 아마도 소크라테스도 정적(政敵)에 의해 죽임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를 모르는 인간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에 독배형에 처해진 것은 아닐까? 아니 혹시 그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면서까지 인간의 무지를 여지없이 드러낸 후에 그가 구원자로 환영한 죽음으로부터 해답을 갈구한 건 아닐까? 이것은 영원한 수수께끼에 속한다. 이것을 풀지 못해도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뭔가 배울 수는 있지만, 역사가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러나 나 자신이 누구이며, 나는 어디로부터 왔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럭저럭 살아 갈 수 있을까? "이런 골치 아픈 문제로 고민하느니 당장 살아가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절박한 항의를 하는 사람이 아직 많겠지만, 그렇다고 "왜 사느냐고 물으면 웃지요!"라고 대답하는 것으로써 인간의 도리를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아니 소크라테스의 교훈처럼 모른다는 것 자체가 실상은 가장 잘 아는 것이 아닌가? 무지가 지식의 출발점이 아닌가? 모든 지식이 이 무지의 자각과 폭로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지가 지식의 종착역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가? 인간은 지식의 보고(寶庫)와 천지(天地)를 두루 다 돌아보았는가? 아직 다 돌아보지 않았든지, 대답없는 이 질문의 탐험길에서 낙오하거나 자포자기했든지 간에 우리는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를 몰라서 앓고 있고, 또 굴러 떨어지는 바윗돌을 영원히 올리도록 저주받은 시지프처럼, 끊임없이 질문하고 회의하고 절망하고 희망한다. 이러한 운명의 굴레 자체가 이미 인간됨의 본질이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은 이미 반쯤은 해답을 내린 셈이 아닌가?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노래 '하숙생'은 이미 인간이 하숙생임을 정의해 놓고 부르는 노래가 아닌가? 이로써 해답은 이미 다 내려진 것이 아닌가? 인간은 하숙생으로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는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 안식처를 찾는 것보다는 하숙집을 제 집으로 알고 체념, 아니 만족하며 사는 게 더 유익한 게 아닌가?

그러나 체념하든 만족하든 간에 인간은 여전히 그 속에서도 영원한 자기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만으로 만족한다는 그 자체를 통하여서도 자신의 본 모습이 어딘가 있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전제, 아니 희망한다. 비록 이 사실에 대한 꿈이 한여름 밤의 꿈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인간은 꿈을 꾸며 산다. 아니 지금 인간은 긴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현실은 긴 잠과 긴 꿈이며, 언젠가 깨어날 때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는 않을까? 여하튼 인간은 자신을 찾고 있다. 자신을 찾고 있다는 바로 이 사실을 통하여 인간은 이미 인간으로서의 길을 들어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답없는 대답을 향한 힘찬 탐험의 길을! 우리 모두 이 길을 다함께 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