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죄인으로서의 인간

 

1. 죄인도 하나님의 형상인가?

타락한 죄인도 하나님의 형상인가? 기독교 전통에서 지금껏 "죄인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주장이 자주 거론되어 왔지만(루터 등), 성서는 타락 후의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부른다(창 5:1-3, 9:6). 그러므로 인간은 범죄 후에도 하나님의 형상을 잃지 않는다. 즉 인간은 타락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재한다(v. Rad).

그러므로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되었다, 없어졌다, 취소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칼빈은 타락한 인간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의 흔적, 잔여물이 있다고 말하지만, 종종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 도말, 취소되었다고 말한다. → 비일관성? Hoekma, aaO., 78ff.). 오히려 우리는 죄인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박탈된게 아니라 변질되거나 왜곡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변한 것은 인간됨, 인간의 구조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역할, 기능의 방식(Hoekma, 147) 혹은 인간의 능력, 재질, 재능, 이런 능력들의 형태, 본질, 성향, 방향(바빙크, 앞의 책, 147 참조)이다.

2. 죄의 본질

1. 불순종으로서의 죄

창조의 면류관, 세상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에게 불순종한다. "죄는 하나님의 계명의 손상이고, [요한의 정의에 의하면] 율법위반이며 무율법(Gesetzlosigkeit)의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이 갖는 구원의미를 왜곡て멸시함으로써 죄를 짓는다."(K Barth)

구약성서에서 죄는 본질적으로 '불순종'인데, 이것은 특히 죄를 의미하는 단어 Päscha(반항), Chet(계명위반) 등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신약성서에도 죄는 불순종으로 파악되었다(롬 5:19 -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과는 달리").

이처럼 죄는 일시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 하나님에 대한 반항이다.

2. 불신앙으로서의 죄

불순종의 근거는 하나님의 주권에 맞선 인간의 자기소외(Selbstentfremdung)이다. 즉 불신앙의 뿌리에서 불순종이 자라난다. 불신앙은 모든 죄의 원형(Urgestalt)과 원천(Ursprung)이다(K. Barth).

불신앙이란 인간이 그의 전체성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실존적 일치성의 분열이야말로 죄의 근본적 특성이다. 불신앙은 인간이 자신의 중심을 신적인 중심에서 떼어 놓으려는 충동이다. 인간은 죄를 통하여 자신과 세계의 근거인 하나님과 맺고 있던 자신의 일치성을 상실한다(P. Tillich).

신앙이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의미한다면, 불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왜곡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이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실현된다면, 죄는 하나님의 형상의 변질로서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단절하려는 인간의 시도 속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이 범죄 후에도 상실될 수 없듯이, 하나님과의 관계성도 완전히 상실되진 못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왜곡, 변질됨으로써 결국엔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 아니 하나님의 미움을 사는 것(롬 1:30), 하나님과 원수(관계) 맺는 것(롬 5:10, 골 1:21)의 형태를 띈다.

불신앙은 인간이 거듭 자기 자신으로 집중되는 것, 자기 자신 안에서 중심을 갖고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즉 인간의 자기중심성, 자기폐쇄성, 자기충족성을 뜻한다(K. Barth).

인간은 스스로 결정하려고 함으로써, 죄를 짓는다(인간의 자주성, 자율). 인간은 스스로 결정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현실적으로 분리된다(v. Rad). 이처럼 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 없이 살려는 인간의 불신앙을 의미한다.

3. 교만으로서의 죄

하나님이 금한 열매를 따먹으면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뱀의 유혹이 의미하는 것은 창조에서 하나님에 의해 설정된 경계를 넘어서서 인간존재를 확대하는 가능성이다. 즉 순수히 인식론적인 풍부함의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인간 저 편에 있는 신비에 대하여 친숙하게 되고, 그 신비를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생을 고양시키는 가능성이다. 즉 인간의 타락은 도덕적 악, 인간 이하의 존재에로의 전락에서가 아니라 영웅주의(Titanismus), 인간의 교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에서 일어났다(v. Rad).

인간의 범죄는 단순히 자기 자신에 대한 인간의 오류, 자기소외, 자기중심성, 자기폐쇄성만이 아니라, 광기와 허풍(영웅주의), 하나님의 영광의 찬탈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하고 그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한다. 이러한 혼동 속에서 죄인은 자신을 사이비(거짓) 신(Pseudogottheit)으로 만든다(K. Barth).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Coram Deo)은 하나님과 같이(Sicut Deus) 되려고 한다. 인간은 뱀의 유혹 - "너희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Eritis sicut Deus) -에 넘어가서, "하나님에 대한 순종보다는 자율(자주)성 안에서 더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v. Rad)

R. Niebuhr에 의하면, 죄의 첫 번째 형태인 교만에는 네 가지의 종류가 있 다.

① 권력의 교만 : 이것은 자기만족, 자기우월을 주장하고 자기들이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교만.

② 지적 교만 : 이것은 진리에 대한 자신의 이해의 한계성, 편파성을 알지 못 하고 자신의 지식, 신앙이 남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 람들의 교만.

③ 도덕적 교만 : 이것은 타인이 자신의 높은 독단적인 표준에 일치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그를 정죄하는 사람들의 교만.

④ 정신적(혹은 종교적) 교만 : 이것은 자신의 도덕적 교만을 신적인 권위로 인준하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의 교만이다.

< R. Niebuhr,「The Nature & Destiny of Man」, 186ff.>

죄는 온통, 항상 어디서나 교만이다. 인간의 교만은 불순종, 불신앙의 구체적 형태이다(Barth ,그러나 불순종, 불신앙이 인간의 교만의 구체적 형태가 아닐까? 즉 교만은 이것들의 뿌리가 아닐까?)

K. Barth에 의하면, 죄는 교만만이 아니라 동시에 태만, 기만이기도 하다.

교만은 죄의 능동(행동)주의적 형태, 영웅적, 프로메테우스적 형태이고,

태만은 죄의 수동(정적)주의적 형태, 비영웅적 형태이며,

기만은 죄의 이데올로기적 형태이다.

교만은 불순종, 불신앙의 구체적 형태이고,

태만은 은총에 거슬리는 경솔, 슬픔, 절망을 선택하는 행위이며,

기만은 부정과 파괴만을 일삼는 행위이다.

4. 정욕(육욕, 색욕)으로서의 죄

유혹설화에는 범죄가 행해지기 전의 미묘한 감정이 설명된다. 금단의 열매는 인간에게 "먹음직하다"는 야성적인 충동과 "보기에 탐스럽다"는 심미적 충동 그리고 "영리하게 해 준다"는 세속적 명예의 충동을 일으킨다(요일 2:16 - 육체적 쾌락, 눈의 쾌락, 세속적 자랑). 즉 죄는 인간의 정욕으로 표현된다(v. Rad).

Augustinus는 정욕(Concupiscentia 혹은 cupiditas)을 죄의 결과, 형벌로만 이 아니라 죄 그 자체와 새로운 죄의 원인으로도 보았다(서로 다른 해석의 동기). 라틴 스콜라 철학자는 죄와 정욕을 구분했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정 욕 자체를 죄로 이해했다.

Tillich - 정욕도(불신앙과 교만 외에) 죄의 또 다른 표지로서 "현실 전 체를 자신의 자아에게로 병합하려 하고, 전 세계를 자신 안으로 끌어 넣으 려고 하는 무한한 갈구이다."

Niebuhr - 육욕은 죄의 한 형태이다. 육욕(Sensuality)은 권력이나 지식 혹은 미덕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신체적 쾌락을 통해서 자기를 찬양 하는 방법이 될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서 교만으로부터 유출된다.

K. Rahner - 육욕은 가치와 선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취하는 모든 반동적 입장이다(Zum theologischen Begriff des Konkupiszenz, in : H. Ott., 신 학해제, 171.).

바울도 죄를 '탐욕'으로도 설명한다(롬 7:7 - "탐내지 말라는 율법이 없었 더라면, 탐욕이 죄라는 것을 나는 몰랐을 겁니다. 죄는 이 계명을 기화로 내 속에 온갖 탐욕을 일으켰습니다.")


3. 죄의 기원(?)

타락설화에는 '뱀'이라는 동물이 유혹자로 나타난다. 이 뱀은 무엇 때문에 타락설화에 나타나는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무슨 역할을 하는가?

여기서 뱀은 하나님의 대적자, 하나님에게 맞서는 악마 혹은 창조자를 거역하는 존재라고 이해하는 신화적 해석은 거부되어야 한다. 이 본문은 그러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뱀은 오로지 유혹하는 과정에서만 나타난다(Westermann).

설화자가 생각하는 뱀은 '악마적' 세력의 상징이 아니며 더욱이 사탄의 상징은 아니다. 뱀의 유혹과정은 비신화적인 과정으로 나타난다. 설화자는 가능한 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려고 하기 때문에, 악을 어떤 방식으로든 객관화하지 않으려고 매우 주의하며, 그래서 그는 악을 가능한 한 외부에서 온 세력으로 인격화하지 않았다(v. Rad).

뱀은 '악의 기원'에 관한 물음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 여기서 악의 기원을 인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악의 기원은 여기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악의 기원에 대한 원인론은 전혀 없다(Westermann). 설화전체에 걸쳐서 이 인간의 적대자는 규정하기 어려운 익명 속에 있으며, 해명되지 않고 있다(v. Rad).

W. Zimmerli : "유혹은 절대적으로 설명불가능한 것으로서 갑자기 하나님 의 선한 창조 안에 나타난다. 유혹은 수수께끼로 남겨져 있다."(Komm, z.St., in : Westermann, 325)

그렇지만 우리는 뱀을 팔레스틴 사람들의 생활권 안에서 이해해 보려고 시도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생활권에서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하는 동물학적인 뱀의 종류로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지혜로운 동물? - 아프리카의 설화에도 인간에게 영생을 약속하지만 불멸의 상실을 말하는 전달자인 동물이 나타난다. 그는 허물을 벗음으로써 생명을 연장하기 때문에, 생사를 넘어서는 지식을 갖고 있다. Westermann, 324), 일종의 예언자적 통찰력에 의해 뱀으로 형상화된 악을 보았다. 창 3:14-15의 뱀과 인간의 투쟁설화는 악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지는 않지만, 피조세계 안에 기존해 있는 것으로서 바로 인간을 노리며 숨어서 엿보고, 도처에서 인간과 생사를 건 투쟁을 벌이는 일이다(v. Rad).

그렇지만 뱀으로 상징화된 악을 우리는 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뱀은 저자시대에 성행한 풍산신앙에서 생명을 표상하는 통속적인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뱀은 그 시대에 가나안 사람들의 풍산신앙의 배후에서 준동하던 악마를 표상한다(P. E. Ellis, 김원주 역, 연대기 작가의 역사, 유다의 예언자들, 분도, 114). L. Hartmann은 「낙원에서의 죄」라는 논문에서 "저자는 전 인류의 원조의 죄를 그 자신의 시대에 알고 있었던 범위 내에서 전 인류의 근원적 죄로 묘사하였다. 이 죄는 하나님에게만 속한 것을 피조물에게 돌리는 이른 바「자연 숭배」였다. 저자의 생각에 이교도들이나 하나님 예배에 불충실했던 저자 자신의 동족들이 자연 신을 달램으로써 사람과 짐승의 다산, 농작물의 풍작을 확실케 하기 위하여 거행하였던 징그러운 온갖 의식, 마술은 뱀을 의인화하여 주술적 상징으로 삼았다. 그러나 저자는 오직 야훼 하나님만이 생명나무의 참된 열매를 주실 수 있다고 가르쳤다"고 말한다(같은 책, 114).

(Westermann은 악의 근원을 이스라엘과 대적하는 종교에 있다는 해석을 문제시한다. 창 2-3장에서 아담은 이스라엘을 대표하지 않고 인류를 대표한다. aaO., 325)

※ 물론 뱀은 타락설화가 기록되기 오래 전부터 남근(男根)의 상징 중의 하나였다. 뱀을 풍요의 신으로 숭배한 가나안 사람들은 남근숭배를 통하여 다산(多産)신앙을 표현했는지도 모른다(우리나라의 남근제의, 특히 미륵불에 관련된 출산신앙).

그렇지만 성적인 주제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 - 불순종의 주제 안에 포함된다. 즉 죄가 성적인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원인론적인 견지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계약에 따라 살기를 거부하는 하나의 전형을 다루기 위해 뱀의 상징이 사용되었다.

<존, L. 토펠 , 홍성현 역, 평화의 길., 나눔. 80 참조>


4. 죄의 결과 <삼중적 소외로서의 하나님의 형상의 왜곡>

범죄(타락)의 결과는 인간에 내린 하나님의 형벌(인간의 죄책)로 경험되든지, 아니면 인간성의 부패(타락, 오염)로 경험되든지 간에, 하나님의 형상(본래적 인간됨)의 왜곡(변질)으로 나타난다.

아담의 범죄는 창조질서의 교란을 초래했는데, 이 교란은 특히 하나님의 형상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즉 하나님의 형상은 삼중적 소외(하나님 소외, 인간 소외, 자연 소외) 중에서 경험되며, 이 소외는 또한 여러 가지의 부정적 결과(물화 등)를 낳는다. 하나님의 형상의 왜곡은 실로 삼중적 관계성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1. 하나님 소외(하나님과의 교제의 파괴)

a) 창 3:8f. : 인간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도피한다.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은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착란의 표징이다. 이 때부터 두려움은 부끄러움과 함께 인간에게 일어난 치유될 수 없는 타락의 상흔이 되었다(v. Rad).

b) 창 3:22 : 인간은 동산으로부터 추방된다. 인간의 의존관게를 벗어났으며 복종을 거부했고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독립했다. 더 이상 복종이 아니라 그의 자율적 의식과 의욕이 자신의 생의 권리가 되었으며, 이로써 그는 자신을 피조물로 이해하기를 중지하였다. 생명나무를 격리한 것은 형벌인 동시에 인간의 숙명적 죽음에 대한 새로운 확증이다(v. Rad).

⊙ 보론: 죽음은 하나님의 형벌인가?

창 3:19("너는 흙[먼지]이니 흙[먼지]으로 돌아가야 하리라")에서 죽음은 마치 범죄한 인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형벌처럼 기록되어 있다. Augustinus과 라틴 교부들은 랍비와 바울의 이론에 따라 고난과 죽음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로 생각했다[Hoekma도 이에 동조한다. aaO., 233f. 참조]. 그러나 몇몇 교부들(Clemens, Origenes)과 현대 신학자들(K. Barth, K. Rahner, Moltmann 등)은 이런 인과론적 관계를 부인한다.

v. Rad : 인간 안에 질료적인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인간은 죽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듯이, 인간이 '불멸할 수 있는 소지'를 상실했 다고 말할 수는 없다. "너희는 죽으리라"고 창 2:17이 말하고 있지만 죽음 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었다는 데 설화자의 관심이 있 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① 죽음의 현실성이 언급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적어도 인간이 이런 종말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 게 되었고, 이것을 알게 됨으로써, 그의 삶 전체가 우울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음을 뜻한다. ② 범죄 이전에는 인간에게 그런 말씀이 한 번도 들려진 적이 없었으며, 그 때문에 이 말씀은 주제상으로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고 형벌의 말씀에 속하게 되었다.

Hoekma : 육체의 죽음이 죄가 가져온 결과의 하나이지만, 삶의 가장 깊은 의미가 하나님과의 교제이기에, 죽음의 가장 깊은 의미는 타락 이전에 인간 이 누렸던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이 분명하며, 이 단절은 영적인 죽음이라 는 사실을 덧붙여야 한다.

c) 롬 1:20f, :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에 우상들을 섬기게 되었다. 옛날 사람들은 나무와 돌로 우상을 만든 반면에, 현대인들은 그들이 경배해야할 그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 옛날보다 훨씬 미묘한 형태로 우상을 만들고 있다(자기 자신, 인간 사회, 국가, 돈, 명예, 소유, 쾌락과 같은 우상들/ Hoekma).

K. Barth : 인간의 우상생산(국가, 문화, 자연, 맘몬, 인물, 에술과 학문, 교 회와 미덕 ? 인간은 이러한 초상들 앞에서 하나님에게 모호한 경배를 드린 다. Rö-1. 18.) - 하나님은 자기 중심적인 소유욕구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인간의 물신숭배는 인간의 사고의 행동을 물화(物化)한다. 인간이 하 나님을 소유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우상들에 의해 소유되고, 그래서 그들 에게 예속된다. 이로써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소외된다(단네만, 칼 바르트의 정치신학, 57ff. 참조)

하나님과 인간의 혼동, 하나님의 행동과 인간의 행동의 혼합, 물화되고 소외 된 인간(앞의 책 105f 참조), 화해하지 못한 사회(자본의 지배, 자본주의 안 의 인간 존재의 소외와 물화, 관료주의화, KD Ⅲ/4, aaO., 169ff.)

2. 인간소외(인간 공동체의 파괴)

a) 창 3:12f : 서로 사랑하고 돕도록 맺어진 남녀의 관계(창 2:2 -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부부의 반려관계가 죄책의 전가와 더불어 파괴된다. 죄는 함께 저지르지만, 그 죄는 인간들을 하나님 앞에서 결합시키는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고립시킨다(v. Rad).

서로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던 그들이 이제 부끄러워 하게 된다. 부끄러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혼란의 신호이다(v. Rad).

부끄러움(수치)은 불신에서 나타난다. 이제 남자와 여자는 서로 이용하고 악용하려고 한다(H. Wolf).

b) 창 3:16f. : 여자는 이제 남편의 굴욕적인 지배를 받는다. 남자에 대한 그리움은 성취되거나 안식을 얻지 못하고 굴욕적인 지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여자는 임신의 수고, 분만의 고통을 받는 고달픈 삶을 살게 된다.

c) 사랑의 파괴 : 간음, 매음, 계간, 수간, 이성모방(동성애), 이런 것들은 창조된 인간성을 위협하고 혼란에 빠뜨리는 것들이며, 피조된 인간성 속에 나타난 사랑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들이다. 하나님과의 파괴된 관계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부부생활의 파괴이다(H. Wolf).

d) 형제살해(가인의 아벨 살해), 인간살상(전쟁), 도둑질, 강탈, 무관심, 소외 등.

K. Barth : 화해되지 못한 사회의 특징

① 사적(私的) 존재, 강탈자적(强奪者的) 존재의 이기주의 실현(재산획득과 증식이 지배하는 사회).

② 생존투쟁, 갈등과 적대관계의 사회.

③ 관료화된 사회.

④ 지배-복종의 관계가 수립되는 사회.

요약 : 자유와 평화가 없는 사회, 물화되고 소외된 사회, 형제가 없는 사회, 비사회적인, 원자론적인, 적대주의적인 사회, 은총을 상실한 사회(단네만, aaO., 194f.)

3. 자연소외(자연질서의 파괴, 교란)

a) 창 3:17-19 : 남자의 형벌은 생의 깊은 중심 즉 생계를 위한 그의 노동, 활동, 염려에 내려졌다. 그러나 그 저주는 남자 자신에게 내려진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데, 즉 모든 인간생활의 가장 깊은 토대, 즉 남자의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영역인 땅에 내려졌다. 여기에도 피조세계에 깊은 혼란을 가져오는 균열, 적대가 있다. 인간과 땅 사이의 유대관계에 단절, 소외가 일어났는데, 이것은 인간과 경작지 사이에 있는 무언의 고투로 표현된다(종신토록 수고함,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냄, 땀 흘림).

그러나 노동 그 자체가 저주로 평가되진 않는다. 노동은 낙원에서도 부과되었다. 단지 노동이 생을 매우 고달프게 만들고, 노동이 실패의 위험 속에 있으며, 노동의 소득이 노력에 비해 너무나 보잘 것 없다는 사실을 설화자는 피조세계 안에 있는 불협화음으로 묘사한다. 이 어구는 인간과 땅 사이의 불가해한 관련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상세히 해명하지 않고 단순히 하나의 사실로 제시할 뿐이다. v. Rad).

b) 인간의 기술남용(지배욕과 불안으로 인한 기술적 가능성의 남용 - 바벨탑 건설!), 자연착취, 오염.

?H. Wolf - 인간이 지배해야 할 물질에게 오히려 인간이 지배를 당할 때에는 언제나 포악한 비인간(Unmensch)이 나타난다(AaO., 375).

5. 원죄(原罪)의 문제와 본질

1) 원죄론은 교의학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어려운 주제 중 하나이다. 원죄론은 인간의 범죄가 단순히 최초의 한 인간 아담의 개인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집단적, 보편적 행위임을 설명하려는 신학적 개념인데, 이 개념(혹은 표상)의 뿌리는 바울의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롬 5:12f -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

바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일어난 구원의 부편성은 죄의 보편성을 뒷받침해 준다. 즉 죄의 보편성은 구원의 보편성의 전제이다(롬 11:32, Vgl. 3:23f). 그리고 그에게서 보편적인 죽음의 사실이 죄의 보편적 확산을 뒷받침하는 주장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죄는 죽음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로 왔다(롬 5:12).

이처럼 바울은 아담을 인류의 죄의 창시자와 대표자로 본다. 그렇지만 바울은 유전적인 질병처럼 세대를 따라 전달되는 죄의 유전적 숙명에 대해서는 말하진 않는다. 죄의 보편성은 아담의 형태로 설명되고, 아담에게서 유추된다. 모든 개개인은 그 스스로 죄를 짓고 죄의 결과를 겪는다. 그렇지만 바울은 죄의 보편성을 죽음의 보편성에 근거시키면서 죄의 보편적 확산을 말한다. 이로써 전 인류는 아담과 관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 명제의 근거를 설명하지 않은 채, 단순히 아담과 전 인류의 집단적 관련성을 말하고 있다. 아담은 모든 인간의 원형(Urbild), 총괄개념(Inbegriff)으로 여겨진다(W. Pannenberg).

2) 그리스 교부들은 아담의 죄를 전체 인간의 행위로 이해하면서도, 이에 죄의 유전사상을 결합시키진 않았으나 라틴 교부들, 특히 터툴리안, 아우구스티누스는 유전죄 이론을 대표하였다.

Augustinus : 우리 모두가 범죄한 그 한 사람이었기에 우리 모두는 그 한 사람 안에 있는 것이다. ? 이미 씨눈 상태의 본성이 존재해서 그로부터 우리가 번식되어지도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City of God, 13권 14장).

종교개혁자 Calvin Luther도 유전죄 이론을 Augustinus의 노선에 따라 주장하고 있다.

Calvin : 불순한 씨의 후손인 우리는 날 때부터 죄에 전염되어 있다(371). 썩은 뿌리에서 썩은 큰 가지가 나왔으며 여기서 나온 작은 가지에 부패가 전달되었다. 이와 같이 부모에게서 자녀가 부패했고 자녀는 다시 그 후손에 게 대대로 병을 옮겨 주었다. 바꿔 말하면 아담에게서 시작한 부패는 선조 로부터 후손에게 전달되어 끊임없이 흘러간 것이다. ? 어거스틴이 말하는 것과 같이, 죄 있는 불신자든 죄 없는 신자든 사람은 썩은 본성에서 자녀를 낳기 때문에 무죄한 자녀가 아니라 유죄한 자녀를 낳는다(기독교강요, 상 373f).

Luther : 시편 31:7에 따라 죄는 자연적인 출산의 과정에 의해 번식된다. 이것은 결혼(성교)과 출산행위가 죄라는 뜻이 아니라 씨의 죄성을 뜻한다. 죄성을 갖는 아담의 씨로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다. 우리는 아담의 혈 통으로 인해 죄인이 된다(P. Althaus. Theo. M. Luthers, 144).

3) 그러나 오늘날 유전죄로서의 원죄이해는 문제시되고 있다.

a) 바울은 죄의 보편성을 말하지만, 죄가 '전가'된다든지, 아담의 죄로 인한 저주가 어떻게 우리에게 전가되는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다(Hoekma, 275).

b) 유전죄는 우리에게 우리가 범하지도 않은 죄에 대한 죄책을 전가시키고 있다.

c) 만약 우리의 죄를 시간적て역사적으로 아담에게 소급한다면, 우리의 죄과는 우리의 죄과가 아니게 될 것이며, 원죄는 우리에게 잘못을 지우기 보다는 오히려 그 잘못을 면제해 주게 될 것이다(Pöhlmann, 교의학, 236).

d) 전통적 원죄론은 원죄와 자범죄, 존재적 죄와 행위적 죄의 일치성도 강조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죄인이 되는 것이고, 죄인이 됨으로써 죄를 짓는다(E. Schlink, in : 앞의 책, 238).

4) 원죄론의 재해석

원죄는 역사화, 고정화, 인과화, 생리화되어서는 안 된다. 원죄는 생리적 유전의 모델로 설명될 수는 없고 인간의 일치성(P. Althaus), 집단적 인격(J. Fraine), 죄의 연루성(J. Weismayer), 죄의 불가피성(E. Kinder), 죄의 초주체성(H. Thielicke), 비극적 보편성(P. Tillich)의 모델로 설명될 수 있다.

H. Thielicke : 원죄의 개념은 죄 속에서 인격적인 것과 초인격적인 것이 논리적으로 풀 수 없이 서로 얽혀 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원죄는 행 위죄와 다른 또 하나의 형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명확한 특징, 즉 죄의 초주체성을 의미하는 것이다(Theo. Ethik. Ⅰ, 465,)

H. G. Pöhlmann : 원죄는 죄가 단지 인간'으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너머로' 온다는 사실, 인간은 단지 죄의 '주체'일 뿐만 아니라 그 '대상' 이라는 사실, 죄는 단지 악한 '것'일 뿐만 아니라 악한 '자'라는 사실을 의미 한다(교의학, 239).

L. Scheffczyk : 원죄는 인간존재 안에서 죄가 인격적인 행위이면서도 힘, 숙명으로 경험됨을 신학적으로 깊이 표현하는 용어이다(Einführung in die Schöpfungslehre, 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