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참 인간 예수

 

1.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나사렛 예수가 참으로 하나의 인간(人間)이었다는 사실은, 그를 신화적 존재로 보려는 미약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자명한 전제이다. 특히 신약성서는 인간 예수의 온갖 체험(목마름, 굶주림, 슬픔과 기쁨, 사랑과 분노, 수고와 고통, 죽음 등)을 여실하고 솔직하게 증거한다(히 2:17). 예수는 죄인이 아닌 점을 제외하면,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았다(히 2:17).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모든 차원, 모든 경험 안에서 살았다고 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가 단순히 인간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가 인간으로서 인간인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는 신학적 질문이다. 신약성서는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또 예수를 통하여 종말론적이고도 궁극적인 방식으로 말씀하시고 행동하셨다는 사실, 아니 하나님이 세상을 예수 안에서 당신과 화해시키고자 했다는(고후 5:18) 사실에 온통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Kasper).

사실 상 신약성서 안에는 통일적인 예수상이 없고 여러 형태의 다양한 예수상이 서로 나란히 존재해 있지만,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통일성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우리를 위해 활동하셨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그리스도 즉 구원자이다. 신약성서는 예수에 대한 다양한 상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점에서 공통되는 기본음조를 지니고 있다(Pöhlmann).

인간은 스스로 죄를 지음으로써(행위죄, 자범죄), 죄인이 되고 그래서 자신을 죄의 감옥 속으로 감금시키기 때문에, 이 감옥을 스스로 열 수는 없다(원죄). 죄의 감옥은 오로지 바깥에서부터만, 즉 하나님에 의해서만 열려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자신의 구원,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소외된 인간이 소외된 인간을 구원할 수 없고, 죄인된 인간이 죄인을 방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인간의 감옥 안으로 찾아와 인간을 해방시켰다는 것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적 증언이다.

고대교회(특히 칼케톤 공의회, 451년)가 예수는 '참 하나님, 참 인간"(Vere Deus, Vere Homo)으로 규정한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수가 참 하나님이 아니라면 인간을 구원할 수 없을 것이며, 예수가 참 인간이 아니라면 죄인된 인간을 대속하고 하나님과 화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고대교회는 오랜 논쟁 끝에 예수의 양성론(兩性論)을 확정지었던 것이다.

신약성서에는 예수를 인간으로 부르는 호칭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인간적인 호칭은 '人子'(인간의 아들)와 '새 아담'이다.

1. 인자(人子)

구약성서의 다니엘서에서는 "세계의 지배자가 누구인지?"가 묵시적 환상을 통하여 그려진다. 다니엘은 여기서 세계사를 환상으로 보는데, 짐승 넷으로 표상되는 네 강대국(바벨론, 메대, 페르시아, 로마)을 통하여 이 세대가 인간적인 관계가 아니라 동물적인 관계가 지배하고 있음을 그린다. 이들의 미래는 몰락이요 심판이다. 이어서 다니엘은 하늘에서 사람의 아들(人子)과 같은 이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에게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고 모든 백성들이 그를 섬기게 되는 환상을 본다(7:13). 초대교회는 이 人子가 바로 예수 안에서 이 세계의 주, 지배자로 왔음을 고백했다. 인자는 누구인가? 그는 짐승같이 인류를 억누르는 짐승같은 권력들을 정의로 심판하고, 인류(하나님의 백성)를 인자의 인간적 왕국으로 인도한다. 예수는 짐승(야수)같은 인류를 그의 인간적 왕국으로 해방시키는 '인간적인 인간',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미래적인 인간'으로 나타난다. 물론 人子 예수는 다시금 폭력과 강압이 아니라 그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고, 찢겨진 인간의 삶에 화해를 가져와 주었다. 그래서 교회는 바로 예수의 수난에서 예수의 인간성을 보았다(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이 사람을 보라! ). 비인간적인 시대의 한 가운데서 인간의 체현, 인간적 인간의 존재를 예수 안에서 보았다(J. Moltmann).

2. 새 아담

바울은 예수를 '새 아담'으로 선포한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다. 옛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이 들어 온 것같이, 새 아담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들어왔다(롬 5:12-21).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체를 갖추고 이 세상에 들어왔고, 이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의 상황을 변화시켰다. 예수와 함께 이제 인간이 새롭게 규정되고 새롭게 변화되었다. 예수의 오심과 함께 하나의 새로운 구원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2. 오고 있는 인간

신약성서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다(고후 4:4, 골 1:15, 히 1:3). 그리고 인간은 바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도록 지음받았다(롬 8:29).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리스도의 형상은 인간의 메시야적 소명이다. 그리스도는 땅 위에 있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리스도와의 사귐 속에서 인간은 그가 규정된 바 그대로의 존재가 된다(J. Moltmann).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오고 있는 미래의 인간의 현존, 체현이다. 인자(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안에서 진정 인간적인 인간이 이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성의 목표이다. 그는 상실된 인간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인간을 가져온다. 그는 인간의 인류의 목표이다. 그는 인류의 소망이다. 그는 새롭게 피조될 새 인류의 형상이다. 이러한 '새 인간'의 형상을 창조되고 왜곡된 '옛 인간'의 형상의 빛 아래서 고찰해 보기로 하자. 어떤 의미에서 예수는 오고 있는 인간, 미래적 인간인가? 이것을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조명해 보자.

1. 하나님을 위한 존재(인간 앞에서 하나님을 대리하는 인간)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는 언제나 자신보다는 하나님을 더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거룩함,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한 자이다(주기도문!).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에게 돌렸다. 예수는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의존되어 있었다(눅 23:46). 예수는 아버지에게 순종한 자였다(롬 5:19, 빌 2:8, 히 5:7-9, 12:2). 예수는 전적으로 하나님과 일치하는 자였다(요 10:30, 17:10 등).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만을 신뢰(신앙)하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으며, 하나님의 뜻(나라)에 따라 산 자였다(죄 이해와의 대조적 비교 : 불순종, 불신앙, 교만, 정욕). 이처럼 예수는 하나님을 향해 전적으로 열린 자, 하나님을 위한 존재로서 우리의 존재의 규정, 목표, 오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의 현존이 되었다. 그는 그의 삶과 죽음 전체로서 하나님을 향해 열려 있고 하나님에게 바쳐짐으로써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킨 화해자,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었다. 특히 그의 죽음은 철저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신뢰한 결과와 그 표현으로서, 하나님과 소외된 이 세계 안에 구원, 화해 즉 하나님과의 일치, 친교의 회복을 가져다 주었다(D. M. Baillie, Kasper). ?

K. Barth : 예수의 '신성'의 의미는 하나님을 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 안 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의 불가피한 관계 안으로 놓여졌다. 따라서 하나님 없는 인간은 참 인간이 아니다. 예수 안에서 인간됨은 "하나님과 함께 함"이다 (KD Ⅲ/2, 161).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음은. . . 가능성이 아니라 인간됨의 존재론적인 불가능성이다"(KD Ⅲ/2, 162). 예수 안에서 인간은 항상 하나님의 처 분에 내맡겨졌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초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기 때문 이다. 하나님의 은총의 선택 안에서 '함께 선택되거나 이 은총을 향해 선택된 피조물'(KD Ⅲ/2, 174)로서 인간은 감사히 청종하며 책임적으로 순종하는 자기 헌신 안에서 존재한다(KD Ⅲ/2, 200-217.). 바로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자유를 갖 는다. 예수 안에서 계시된 진정한 자유는 결코 열려 있다고 하는 두 가능성 사이 의 추상적인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선택 안에서 확증된 피조적 존재를 기쁘게 붙잡는 행위이다.

Kasper : "예수는 하나님의 다스림의 내림(內臨)을 맞이하기 위하여 자신을 온 전히 열어 젖혔고, 하나님의 현존을 위한 빈 양식(樣式)이 되었고 백지가 되었 다"(aaO., 384).

2. 인간을 위한 존재(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대리하는 인간)

예수의 실존의 특이성은 단지 하나님을 향한 그의 전적인 순종, 신앙만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그의 개방성, 그의 헌신과 봉사에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남을 위한 존재'(Sein für Andere : Bonhoeffer), 위타인간(爲他人間), 공존인간(共存人間 : Kasper, 387.)이다. 그는 특히 가난하고 고통 당하는 자들의 편에 서서 함께 고통당하고, 자신을 주고 봉사한 자였다(막 6:34, 고후 8:9, 빌 2:6 - 종의 모습). "그의 본질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를 편드는 데 있다. 그의 본질은 자기헌신이고 자기포기이다. ?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람이다. 그의 본질은 헌신과 사랑이다. 그의 박애심은 그의 신자성(神子性)의 현현방식(Epiphanie)이다. 이웃인간을 지향하는 그의 초월은 하나님을 지향하는 초월의 표현이다. 그가 하나님께 대해서는 전적으로 수용의 존재(순종)인 것과 같이, 우리에게 대해서는 헌신과 대리의 존재이다. 이중의 초월에서 그는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의 중보이다"(Kasper, 390).

K. Barth : 예수의 '인성'의 의미는 동료인간을 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러 한 그의 인간성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생기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으로부터 나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자신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당신을 향하는 존재이다. 바로 이 점에서 이것은 훼손된 인간됨이 아니라 진정으로 완성된 인간됨이다. 예수는 진정한 인간성의 본질을 드러내심으로써, 우리에게 다음을 가르친다: "모든 인간의 인간성은 그의 존재가 다른 인간들과 함께 있도록 결정된 점에 있다".(KD Ⅲ/2, 290.). 서로의 눈을 바라봄으로써만, 함께 말하고 서로에게 귀 를 기울임으로써만, 서로 도움으로써만, 우리는 다른 인간들과 참으로 만날 수 가 있다(KD Ⅲ/2, 299-318.). "참으로 자연적인 인간은 . . . 그의 마음의 자유 가운데서 그의 동료인간과 함께 하는 인간이다"(KD Ⅲ/2, 337.). 이러한 "인간 존재의 파괴할 수 없는 연속성(Kontinuum)"(KD Ⅲ/2, 349.)은 남자 여자의 이 중성 안에서 그 자연스런 자리를 갖는다. 사실 이러한 연속성은 세계 안에서 소유할 수 있는 상태로서 인간의 임의처분의 권한에 내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 고, 오히려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함에 근거해 있다. 여기서 바르트는 동료인간성의 지평 안에서 유비(類比)의 고리를 취한다: "인간 예수는 동료인 간을 위하는 인간이다. . . . 인간은 동료인간과 함께하는 인간, 당신과 함께 하는 나, 여자와 함께 하는 남자이다"(KD Ⅲ/2, 382.).

3. 만물을 위한 존재(만물을 충만케 하는 자의 충만)

예수는 인간 앞에서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대리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창조의 중보자요(골 1:15 - 만물은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하여, 예수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만물의 화해자이기도 하다(우주적 그리스도론).

※ 히 1:3 - 만물을 지탱함.

※ 계 1:17 - 만물의 처음과 마지막.

※ 요 1:3 - 만물의 근원, 빛과 생명.

J. Moltmann :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난 장자라면, 그는 새로운 인 간성의 새 아담일 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의 장자로 이해될 수 밖에 없다"(예수 그리스도의 길, 389).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온 우주의 화해는 진리를 상실당하고 상처받은 모든 피조물들의 칭의와 하나님의 정의의 관철을 뜻한다. 인간과 하나님의 화해, 인간 상호 간의 화해, 인간 자신과의 화해는 자연과의 화해를 직접적으로 포괄할 수 밖에 없으며 ? "(434).

"우주적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영적 차원을 위하여 나는 도마복음의 로기온 77번으로부터 알려지지 않은 예수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깨달음으로부터 기도가 다음과 같이 확장되지 않겠는가?: 온 마음을 다하고 온 정신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하여 너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이 땅도 너희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생명을 거룩히 여기자. 왜냐하면 생명은 거룩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신다."(J. Moltmann :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中 Ⅵ. '우주적 그리스도' 참조/이신건 역 대한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