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교회론

(제4권 1장)

 

 

제1장: 모든 경건한 자의 모체(母體)가 되는 진정한 교회 : 우리는 이 교회와 연합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모체가 되는 거룩한 보편적 교회. 14)

1. 교회의 필요성

먼저 편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우리가 복음을 믿음으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시고, 우리는 그가 가져오신 구원과 영원한 축복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일으키고 키우며 목적지까지 향상시키려면 무지하고 게으르고 또 경박한 우리들에게는 외적인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 약점을 대비해서 필요한 보조 수단도 첨가하셨다. 또한 복음 전파가 활발하게 전개되도록 이 보물을 교회에 맡기셨다. 목사와 교사들을 임명하셔서(엡 4 : 11) 그들의 입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가르치게 하셨으며 그들에게 권위를 주셨고 마지막으로 신앙의 거룩한 일치와 올바른 질서를 위해서 도움이 될 만한 것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셨다. 우선 성례를 제정하셔서 성례에 참가한 우리는 그것이 신앙을 자라게 하며 돈독 하는데 매우 유익한 보조 수단임을 느낀다. 우리는 육신의 감옥에 갇혀 있어서 아직 천사들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놀라우신 섭리로 우리의 능력에 적절한 방법을 취하셔서 아직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가 자신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방법을 지시하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을 가르치는 계획에 의하면, 이제부터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교회 정치와 교회 직제와 권세를 논하며 다음에는 성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시민 정부를 논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든 일이 교황 제도에서 사탄에 의해 더럽혀진 그 부패한 상태를 경건한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 그것을 버리도록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우선 교회를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의 품속으로 자녀들을 모으시기를 즐거워하셨는데 이는 그들이 유아와 어린아이 시절 동안만 교회의 도움과 봉사로 양육받을 뿐 아니라 어머니와 같은 교회의 보호와 지도를 받아 어른이 되고 드디어는 믿음의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하므로"(막 10 : 9 참조)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는 사람에게는 교회가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율법 하에서 이렇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도 이러했는데, 이것은 우리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의 자녀들이라고 말한 바울의 가르침의 증거와 같다(갈 4 : 26).

 

3. 성도가 서로 교통함

신조의 이 항목은 또한 어느 정도 외면적인 교회에 적용된다. 즉 우리는 각각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과 형제적 일치를 유지하며 교회가 당연히 가져야 할 권위를 교회에 부여하고 말할 필요도 없이 양떼의 일원으로서 행동해야 한다. 따라서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고 덧붙였다. 고대인들은 대개 이 구절을 빼놓았지만 그것은 옳지 않은데, 그 구절은 교회가 어떤 것인가를 잘 표현해 주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무엇이든 서로 나눈다는 원칙 아래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소집되었다고 하는 것이 이 구절의 뜻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은혜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르게 나누어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것은 시민 사회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다. 시민 사회에서는 각 사람의 사유재산이 허락되는데, 이는 사람들 사이의 평화를 보존하기 위해서 재산 소유권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가 기록한 바와 같이(행 4 : 32) 신조는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된 공동체를 주장하였으며, 그것은 바울이 에베소 신자들을 향해서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엡 4 : 4)고 했을 때 염두에 두었던 바로 그 공동체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시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모든 믿는 자들의 머리시라는 것을 참으로 확신한다면 그들은 서로 형제애로 묶어지지 않을 수 없고 또 그들이 받는 은혜를 서로 나누지 않을 수도 없다.

여기서 우리가 이 일에서 어떤 유익을 받게 되는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교회를 믿는 근거는 자기가 교회의 지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은 확실하고 튼튼한 기초 위에 서 있으며, 따라서 전 세계의 조직이 무너지더라도 교회는 동요되거나 넘어질 수가 없다. 첫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존립하며,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와 똑같이 동요하거나 파멸될 수 없다. 둘째, 교회는 영원 불변하시는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지체가 찢기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는 것과 같이 믿는 자들이 자기에게서 멀어지는 것도 허락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교회의 품안에 머물러 있는 동안은 진리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끝으로 우리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되는 약속들이 있다.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욜 2 : 32, 옵 1 : 17),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시 46 : 5). 교회에의 참여는 힘이 강하며 우리를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머물게 한다. "서로 교통함"이란 말 자체에 풍성한 위로가 있다. 주께서 그 지체들에게 주시는 모든 것과 우리의 것은 우리의 소유가 된다고 확신할 때, 신자들이 받는 모든 은혜는 우리의 소망을 굳세게 만든다.

그러나 이렇게 교회의 연합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런 교회를 꼭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해력이 미치지 못하는 교회를 눈으로 분명히 볼 수는 없을지라도 교회는 신앙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은 교회를 여전히 존중해야 된다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또 보이지 않는 교회를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의 믿음이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버림받은 자와 선택받은 자를 구별하라는 명령을 받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이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할 일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로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자신의 소유가 되었으며, 우리도 그 일원이 될 때에는 그와 같은 위대한 은혜를 나눠 받게 된다는 것을 진심으로 확신하는 것이다.

 

4. 눈에 보이는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체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교회를 논할 생각이므로 교회를 아는 것이 얼마나 유용하고 얼마나 필요한가를 "어머니"라는 단순한 칭호에서 배워야 한다. 이는 이 어머니가 우리를 잉태하고 낳으며 젖을 먹여 기르고 우리가 이 육신을 벗고 천사같이 될 때까지(마 22 : 30) 보살피고 지도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생명으로 들어갈 길이 없기 때문이다. 연약한 우리는 일평생 교회에서 배우는 자로 지내는 동안 이 학교에서 떠나는 허락을 받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의 품을 떠나서는 죄의 용서나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 이것은 이사야와(사 37 : 32) 요엘이(욜 2 : 32) 말한 것과 같다. 에스겔도 그들과 같은 뜻으로, 하늘 생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거절을 당한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호적에 기록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겔 13 : 9). 그와는 반대로 진정한 경건 생활을 향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시민으로 등록된다고 한다(사 56 : 5, 시 87 : 6 참조). 그러므로 시편의 다른 곳에서,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권고하사 나로 주의 택하신 자의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기업과 함께 자랑하게 하소서"(시 106 : 4-5)라고 말한다.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의 아버지 같은 은총과 영적 생명의 특별한 증거를 그의 양떼에 제한시킨다. 따라서 교회를 떠나는 것은 언제든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

 

(보이는 교회 :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과 교회의 표지. 7-9)

7. 보이지 않는 교회와 보이는 교회

우리가 알 수 있는, 보이는 교회를 어떻게 판단할 것이냐 하는 것은 앞에서 논한 것으로 이미 명백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성경에는 두 가지 교회가 있다고 말했다. 성경에서 "교회"라고 하는 말은 어떤 때에는 하나님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이 교회에는 양자로 삼으시는 은혜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과 성령의 성화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진정한 지체가 된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 이런 의미의 교회는 현재 지상에 살아 있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천지 창조 이후 지금까지 선택받은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그러나 "교회"라는 이름은 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경배한다고 고백하는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때가 많다. 우리는 세례에 의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되며, 성만찬에 참여함으로써 진정한 교리와 사랑에 의한 우리의 연합을 증거하고, 주의 말씀 안에서 일치하며, 말씀을 전파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성직을 보존한다. 이런 교회 안에는 이름과 외형만 있고 그리스도는 전혀 없는 위선자들이 많이 섞여 있다. 야심과 탐욕과 시기가 가득한 사람들 또한 중상하는 사람들이 심히 많고 아주 불결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얼마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잠시 허용되는 것은 자격이 있는 재판 기관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기 불가능하거나 강력한 규율이 언제나 제대로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서 말한 교회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눈에만 보인다고 믿어야 한다. 그와 같이 우리는 나중 말한 것, 즉 사람들과 관련한 "교회"라고 하는 것을 중히 여기며 그 교회와의 교통을 계속해야 한다.

 

(이런 표지를 지니고 있는 교회는 아무리 결함이 많아도 버려서는 안 된다 : 분열의 죄. 10-16)

10. 교회의 표지과 권위

말씀을 선포하며 성례를 지키는 것을 우리는 교회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표식으로 결정했다. 이 일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아, 반드시 결실이 있으며 또 반드시 성공을 거둔다. 말씀이 선포되는 곳마다 즉시 결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씀을 받아들이고 언제나 말씀이 거하는 곳에서는 반드시 효과가 나타난다. 어쨌든, 복음 선포에 경건하게 귀를 기울이고 성례를 경시하지 않는 곳에서는 우선 교회의 형태가 보이며, 그것은 속임수도 아니요 모호한 것도 아니다. 아무도 그 권위를 멸시하거나 경고를 무시하거나 또 그 지도를 반대하거나 그 징계를 경시해서도 안 된다. 그 교리를 버리고 그 단결을 파괴하는 것은 더욱 용인할 수 없다. 주께서는 그의 교회의 교통을 심히 중요시하시므로, 교회가 말씀과 성례를 소중히 여긴다면 그는 그런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떠나는 교만한 사람을 배반자와 배교자로 여기신다. 주께서는 교회의 권위를 존중히 여기시므로 그것이 침범을 당할 때에는 자기의 권위가 떨어지게 된 것으로 믿으신다.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요 "하나님의 집"이라고(딤전 3 : 15) 부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바울이 사용하는 이런 말의 뜻은,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진리의 충실한 파수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봉사와 수고에 의해서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기를 원하셨고, 영적 양식과 구원에 유익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심으로써 스스로 한 가족의 아버지이심을 보이고자 하셨다. 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는 자기의 신부와(엡 5 : 27) "그의 몸이니‥‥‥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으로(엡 1 : 23) 택하여 세우셨다고 하는 것은 교회에 대한 평범한 찬사가 아니다. 따라서 교회를 떠나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이러한 악한 분리를 회피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를 전복시키려고 전력을 다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벼락을 맞아 분쇄되는 것이 당연하다. 또 우리가 모독적인 불충으로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우리와 맺어주신 혼인을(엡 5 : 23-32 참조) 피한다면 그보다 더 무서운 죄악은 상상할 수도 없다.

 

(교회가 완전치 못한 거룩으로 분열의 정당한 이유가 되지 않고 도리어  교회 내에서 죄의 용서를 실천할 기회를 준다. 17-22)

17.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

또한 그들은 교회가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아무 근거 없는 말이 아니라고 주장하므로 교회는 특히 어떤 의미에서 거룩한가를 검토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점에서 완전하지 않은 한 교회라고 인정하지 않게 되고 결국 교회는 하나도 남기지 않게 될 것이다. 물론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은 옳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 : 25-27). 그러나 주께서 주름잡힌 것을 펴며 티를 씻기 위해서 매일 수고하시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는 아직 완전히 거룩하지가 않다. 그러므로 교회는 매일 전진하면서도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거룩하다. 즉 하루하루 전진하지만 아직은 거룩이라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점을 다른 곳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겠다.

예언자들은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욜 3 : 17), "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사 35 : 8, 52 : 1 참조)라고 예언하였다. 모든 교회 회원이 흠이 없다는 뜻으로 이 예언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과 완전한 순결을 열심히 갈망하기 때문에,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아직 완전히 성취하지 못한 순결을 그들에게 인정하신다. 또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성화의 증거를 보기 어려운 때가 많을지라도 우리는 천지 창조 이후로 주의 교회가 없는 때가 없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시대가 마지막으로 완성될 때까지도 주의 교회가 없는 때는 없을 것이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인류 전체가 처음부터 부패하고 타락했지만 주께서는 이 오염된 덩어리 속에서 어떤 그릇은 귀히 쓰도록 항상 성별하셔서(롬 9 : 23이하) 주의 자비를 받지 않는 시대가 없도록 하신다.

이 일은 확실한 약속으로 다짐하셨다. 예컨데, "내가 나의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였다"(시 89 : 3-4),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시 132 : 13-14) 그리고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내가 말하노라 이 규정이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폐함을 입어 영영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렘31 : 35-36)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