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본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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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준 기(M. A. 2차)

 

 

Credo catholicam ecclesiam(나는 보편적인 교회를 믿는다). 가톨릭의 의미는 보편적인,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말은 결국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정체성(identity), 연속성(continuity), 보편성(universality)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701) 이것이 결국 교회의 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특징에 의해서 교회는 항상 그리고 언제나 동일성(sameness)을 갖는다.(701) 이러한 특징에서 이러한 동일성으로 교회는 존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러한 동일성을 갖지 않은 교회는 참된 교회라 할 수 없다. 가톨릭 개념은 그러므로 분명히 참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보편적이지 않은 교회는 거짓교회다. 다른 본질을 갖는 교회가 참 교회가 될 수 없다. 가장 나쁜 경우 배교적인 교회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교회는 참된 교회의 본질에 대항하여 등을 돌리거나 교회 자체를 부정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참된 교회 공동체로부터의 이탈은 결국 분파(sect)화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가톨릭이라는 말 자체가 분화된 교회의 개념을 대표한다.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양성 속에서도 어떤 정해진 것 그리고 속일 수 없는 것을 내포한다는 것이다.(702)

Credo catholicam ecclesiam는 교회 형태의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교회 공동체로 만드는 본질에 있어서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국가와 지역에서 동일성을 갖는다. 그리고 카톨릭이란 말은 에큐메니칼(ecumenical)이란 의미를 갖는다. 즉 전체 세계 안에서 사는 것, 모든 하늘 아래서 사는 것, 바로 거기에서 교회는 교회로 실존한다.(702, 703)

이러한 교회는 어떤 다른 공동체에 의해서 규정되거나 통제 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을 기독교인 되게 하는 정체성이다. 기독교인은 먼저 기독교인이 되고 나서 문화, 국가, 인종 등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703)

또한 가톨릭이란 의미는 시간적이고 역사적인 범주를 갖는다. 교회는 이런 과정에서 변화 속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길 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교회 자체가 끊임없이 변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어떠한 형태로 교회가 존재하든 어느 시대에 교회가 존재하든 교회의 동일성은 유지된다.(704)

참된 공동체는 그 구성원 즉 교인과의 관계성을 갖는다.(705) 기독교인은 자신의 신앙을 기독교 공동체와 함께 나눈다. 그래서 개개의 신앙 자체가 중요하지만 그것은 공동체의 신앙인식과 고백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신앙 인식과 고백은 공동체의 신앙인식과 고백 아래에 놓여지게 된다. 공동체의 인식과 고백을 떠난 개인의 인식과 고백은 공허한 것이다.(705)

하나의 교회, 거룩한 교회와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교회 역시 믿음이 없으면 볼 수 없다.(708) 여기에서도 그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가톨릭성의 근거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교회의 카톨릭성은 자신의 현실성인데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되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교회의 카톨릭성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빛의 반사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기 뿐만 아니라 저기에도 계시고 어제뿐만 아니라 오늘도 계시고 모든 역사적 형태 안에 계시며 모든 개개의 기독교인을 넘어서 계시는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자기의 공동체 안에 사시고,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기 때문에 결국 교회가 보편적 일 수 있고 실제로 또한 그런 것이다.(708)

그러나 교회는 영적이면서 세상적인 존재이다. 교회가 세상적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교회에게 근심과 걱정, 고통 등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내부적이고 외부적인 싸움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교회 자신은 그것을 극복 할 수 없다. 또 교회의 사역과 투쟁의 결과 때문에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바로 그분 교회를 모으시고, 보호하시고, 유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사역이 교회를 만든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동일성의 근거와 표준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보편성이다. 그분께서 교회 공동체를 참된 교회로 구성하시고 잘못된 교회로부터 자신의 교회를 구별하신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교회는 애매모호한 분파(sect)가 된다.(711,712)

Credo apostolicam ecclesiam(나는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 이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말이다. 하나의(una), 거룩한(sancta), 보편적인(catholica) 표제가 처음 나오고 381년 이후 '사도적인'의 표제가 등장하게 된다.(712) 사도적이라는 표제는 교회 고백의 네 표제 중에서 절정의 역할을 한다. 사실 지금까지 알아본 이 네 표제는 영적인 것이지 사회학적인 것도 아니고, 법률적인 것도 아니고, 심리학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네표제를 생각 할 때 credo라는 말이 항상 중요하다. 마땅히 신앙 안에서 사도적이라는 개념이 바르게 인식될 수 있고 신앙을 떠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신앙이 바로 구체적인 표준(criterion)이다.(712)

사도적이란 말이 의미하는 것은 사도의 적절한 권위, 가르침, 인도에서의 따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교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과제를 감내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러한 점에서 참된 교회이고 하나의 교회이며 거룩한 교회이고 결국 사도적인 교회가 된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 있다는 것은 이러한 사도의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운동에 참여할 때 교회는 참된 교회가 된다. 이 운동은 매우 구체적이고 영적 과정이다. 이 과정은 신앙 안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해서 만이 인색 될 수 있다.(714,715)

그러나 교회의 사도성은 역사적이고 법률적인 근거에서 재단될 수 없다. 인간적인 근거에 사도성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사도성은 교권적 권위에 의해서 전달 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성령도 신앙도 필요 없는 것이다. 교회사도성은 인간으로부터 인간에게 전해지는 직제가 아니고 공동체의 존재를 위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성령의 선물이라고 이해해야만 한다. 사도적 공동체의 성립과 지속의 본질은 성령에게 있다.(716,717)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알림(자기계시)의 지상적이고 역사적인 매개체는 다름 아닌 사도들이었다. 그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셨고 임명하시고 보내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사도들은 특별하고 유일한 방법에서 예수에게 속했던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지상적이며 역사적인 독특한 위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거기에서 바로 그들은 바위가 될 수 있었는데 그 바위 위에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공동체를 세우시길 원하셨고 세웠고 그리고 아직도 세우고 계신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사도성이라는 것도 모래 무더기에 불과하다.(719) 그 위에 아무 것도 세울 수 없다. 사도는 그저 종일 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내용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면에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역할을 한다.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긴다. 그를 위해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선택되고, 불려지고, 위임되었다.(719)

그런데 사도들에게 주어진 영예가 있다. 주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 나라의 열쇠가 그들에게 들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의 숨겨진 영광을 하나님 자신의 증거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널리 전하는데 있다.(719)

참된 교회의 사도성과 표징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 원칙에 있다.(721) 이 양자를 떠나서 교회의 사도성을 이해 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다. 또 사도들은 구약성서의 권위를 인정했다.(721) 또한 신약성서에서 봤을 때 열둘은 머리되신 분의 계시를 눈으로 본 사람이다. 이 열둘이 바로 신약성서의 권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사도적이란 말이 의미하는 것은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을 말한다. 따라서 사도적 공동체가 의미하는 것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즉 이공동체는 신약성서에서 사도들에게 의해 들려지는 말씀을 인식하고 또한 구약성서의 함축적인 증언을 들으면서 자신실존의 근거와 표준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또 사도적 교회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말씀을 인식하고 읽으며 정경으로 존중하고 그에 따라서 살아가는 교회를 말한다. 따라서 성서와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성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722,723)

요 약

교회는 역사속에 존재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교회의 실존이다. 따라서 교회는 다양성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다양한 모습과 형태를 취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교회 공동체로 만드는 근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통해서 모든 교회는 언제나 구체적인 동일성을 갖게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분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물론 이러한 사실도 믿음을 통해서만 인식가능하다. 믿음을 통해서 모든 교회를 하나로 묶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식하게 된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교회의 보편성이 파괴되어 지기 때문에 교회는 애매 모호한 섹트로 전락하게 된다.

교회는 세상에서 사도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도적 교회를 고백한다. 사도적이란 말은 사도가 가졌던 권위, 가르침, 인도함을 교회가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세상속에서 사도들이 선포했던 메시지를 듣고 그 역할을 떠맡는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교회는 마땅히 사도들의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사도성은 교회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사회로부터 온 것도 아니다. 또 교회의 사도성은 인간으로부터 인간에게 세습되는 직제도 아니다. 그것은 성령의 선물이다. 교회의 사도성을 가능케 하는 분은 성령이시다. 주께서 사도들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신 것처럼 성령께서 교회에게 당신의 영광을 주신 것이다. 교회는 세상 속에서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의 말씀을 가지고 하늘문을 열어주는 공동체로서의 사역을 한다. 그런의미에서 우리는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