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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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출 자 : 신대원II 5차, 이종국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는 소명은 그리스도교계나 그 교회 안으로, 다시말하면 살아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으로의 소명이나 부르심을 의미한다.(681)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개별적인 동역자들, 제자들, 증인들이 아닌 그로 인해 그 자신과 함께 하고 서로 서로 연합된 그러한 복수성(plurality)을 예견했다. 그 개인적 관계에 관한 그의 목적은 그를 단순히 연합차원의 관계 안으로 놓는 것은 아니었다 (681).

그것은 그와 함께 그에 의해 부름 받은, 그가 부르고 있는, 그가 부를, 매우 다른 조건 아래의 매우 다른 감각을 지닌 다른 공동체와 연합하는 것이다. 다른 종교의 연합과 모든 추종의 유형은 그들의 일반적 상황에서 비롯된 사회적 충동, 그들을 함께 하고 형제로 만드는 신뢰와 공동체적 감각에서 일어날 수 있으나 예수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이러한 방법에 의해 일어나지도, 존속되지도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공동의 목적을 갖는 자들에 의해 체험되는 연합과 협력의 자연적 필요에 의존하지 않는다. 개인은 스스로 그의 종교적 그리고 도덕적 성향의 충동과 힘에 의해 크리스챤이 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오거나 그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다른 신자들과의 연합된 공동체를 통해 크리스챤이 될 수 있다. (682). 그는 인간들을 그 자신에게 급히 다가서거나 일하게 하거나 무의미한 위치에 놓지 않고 그의 제자가 되고 증인이 되게 하는 특별한 의미 안에 그 자신과 함께 그들을 다른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그의 공동체에 나란히 놓는다. 아무튼 그의 개인적인 경험은 경외와 그에게 다가오는 개인적인 해방이 될 것이며, 크리스챤은 부름받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감동을 받고 그는 그들 안에서 그의 형제들을 발견하고 그들에 의해서 용기를 얻고 변화를 하며 그들과 함께 집단 속에서 성장해 나가는 특별한 점을 발견할 것이다(682c).

그러나 증인의 사역에 있는 -그것은 본질적으로 그를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이것이다 - 그는 처음부터 , 몇몇이나 다수가 아닌 -그가 그들과 그들의 특별한 상황을 알든 모르든 간에- 이러한 사역을 맡게되는 모든 사람들과 연합한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과단지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로서 활동하는 단순한 사실에 의해 그들과 연합된다(683a).

그와 그들은 매우 다른 방법들 속에서 증인의 사역을 받았을 지도 모르고, 채택할 수 있고, 이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사역에서 분리될 수 없다. 그들은 그들 모두를 부르는 주에 의해 근거하고 기초하는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그들의 선생으로 말미암아 구성된 하나의 형제애의 범위 안에 놓여진 항상 동등하게 구별된 사람들의 한 구성원이다. (683b)

화해론 3부에서 교회의 현상과 문제를 다룬다. 여기에서 교회의 현실은 사도적 교회 같은 선교나 보냄이라는 특별한 관점으로부터 이 세 번째 화해의 교리 안에서 다루어진다.(684c). 첫 번째와 기본적인 이 일부에서, 우리는 세계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존재하는 순수한 사실적 직무로부터 임시적인 격리에 있음을 첫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공동체는 세상의 역사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어느 곳에서나 영향을 받고 부분적으로 세상의 역사에 의해 결정된다. 환언하면 공동체 자신의 역사의 발생은 세상과 교회역사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이다. 다음의 세 질문은 우리들의 주의를 필요로 한다.

1. 공동체의 역사적 환경의 범위 안에서 발생하는 것은 무엇인가?

2. 공동체는 이 세계사 속에서 공동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 하는가?

3. 공동체는 세계사 안에서 어떻게 생활하며 존속해야 하는가?

이것은 조화를 위한 관계 혹은 보냄에 대한 질문으로 공동체의 과업과 직무라는 주제에 대해 우선적으로 대답해야 하는 질문이다.(684c)

첫 번째로, 우리는 세계사의 범위 안에서 존재해 온 공동체를 그리고 세계사에 둘러싸인 공동체를 신학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부분적으로 그것을 결정하고, 계속해서 관여하는 중에 전체적 흐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동반하는 역사 안에서 무엇이 발생하는가? 세계사라는 용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의해 새로 만들어지면서 세계사에 존재한다는 것을 미리 가정한다. 그것을 가진 일정한 연결에서, 우리는 예언자의 증인을 제외하고 그것에 맡긴 기독교 공동체의 상황에서 발견한 몇가지 관점으로부터 세계관이나 철학을 설명하려고 시도할 수 없다. 우리들 유일한 선택은 이해되지 않고 해석되지 않는 세계사를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견지에서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황, 그리고 그것의 역사로 진실되게 보고 이해하는 것이다(685b).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부르고, 어떤 주인의 음성을 듣는 것이 아닌 모든 주의 주, 절대적인 주, 모든 사람과 모든 만물의 주되신 이의 음성을 지각하게 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음 안에서 시작해야 함을 분명하게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한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하나님이신 말씀(요1:1), 처음과 나중이기에 어떠한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말씀, 영원의 높이로부터 시간의 깊이들 안에 말하여진 말씀을 들음이다(685c-686a).

한 편,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주에 관해서 잘못된 관점을 갖고 있다. 곧 이스라엘의 왕이 곧 세상의 왕이며 세계사가 그의 지배 범위에서가 아닌 밖에 생긴다는 인식을 하지 않고, 또한 하나님의 모든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일부분이 이 세계사에 개입되었다고 생각하려 한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지는 은혜로운 하나님과는 차이가 있는 다른 하나님을 생각하거나, 하나님에 의해 지시된 목적과 정신과는 다른 왕국을 생각하는 적당치 않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686c). 세계사도 여전히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진행된다. 세상 역사를 세속적이거나 범죄하는 역사로 심각하게 보거나 이해한다면 그 공동체는 믿음과 식별의 부족의 죄를 지을 것이다(687c).

세계사와 관련하여 신학적으로 이야기하고 상기할 수 있는 결정적이고 납득할 만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인간의 혼돈은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지배된다. 아무리 타락하고 혼돈된 역사라도 세상 역사 자체에 근거를 지닌 역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화해하신 하나님께 예속되어 있는 역사인 것이다.(693) 우리는 지금 낮은 관점에서 분명하게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여기서 공동체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사를 신학적 면에서 고려해야 한다. 개략적으로, 그러나 직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 중의 주로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자백하며, 그의 지배와 능력과 지혜를 믿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혼돈(confusio hominum)과 관련이 있다(693b).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4:4)"(696a).

우리는 고귀하고 자애로운 하나님에 의해 통치되는 세계를 회상하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그 다음에 이러한 전제 속에서 세계 역사가 펼치고 전시하고 있는 거대한 인류의 혼돈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이러한 두 가지 견해 모두 이론적으로 긴박하면서도 필요하였으며 지금도 그러한 것이다. 선한 창조자와 그리고 그의 창조물의 주인으로서 고귀함에 계신 하나님과 그리고 그가 의지하고 계시고 행하려 하는 것들은 우리들에게 있어 분명히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며 포괄적이어야 하는 논제가 되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다음으로 위에서 언급한 것 못지 않게 진지하며 필요한 것은 인간과 인간의 행동, 인간의 혼돈(confusio hominum)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사는 위에 계신 하나님이 보시기엔 너무나 분명하지만 아래의 인간이 보기에는 너무나 모호한 것이다. 이 말은 세계사의 온전한 이해는 기독교공동체가 자신에게 위임된 예언적 증언의 관점에서 볼 때 가능하며 , 세계사가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701b) 기독교 공동체는 그것의 상황과 관련해서 되불러 올 수 없는 긴장이나 지식 자체인 말씀에 의해서 명령되어지고 권한을 부여받은, 항거할 수 없는 군주의 신분이신 하나님을 믿는 논리 안에서 기초가 되고 빛과 같은 말씀아래 인간의 혼란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701c).

다른 측면에서 역사 자체를 매우 걱정스럽고 근심스럽게가 아니라 한쪽 면에서 주님의 역사를 용기 있고 확신 있게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둘러싼 우주의 발생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존재라는 실례가 진짜인가?(702a) 신학적 형태와 용어로 이루어진 독특한 기독교 공동체가 이러한 한계 안에서 생각할 수 있는가? 우리는 대개 세상에서의 교회의 목소리는 선언하기에 중대하게 조명하거나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급하고 중요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거나 주목할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놀랄 필요가 있다(703).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providentia Dei)와 인간의 혼돈(confusio hominum)과 관련한 말을 헤겔 철학의 논제와 대조로서 너무나 쉽게 간주하였는지도 모른다(703c).

이점에서 찾아지는 세 번째 문제와 뛰어난 관점 혹은 중대한 단어는 그 자체로서 모순을 취하고 두 측면을 통합하여 이런 식으로 극복하는 헤겔 철학의 종합으로서 관찰되며 이해되지

않는다. 세계 역사를 보는 것과 이해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 때 기독교 공동체의 특별한 은사와 과업이 이렇게 행하는 것일까? 이 일이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로, 그것은 명백하게 둘 다 매우 다른 독특한 방법으로 신비함을 인간의 혼란과 신의 섭리에서 제거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704a). 인간의 혼돈과 하나님의 섭리는 본질적으로 수용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역사의 순간으로서 보여지고 다루어지고 조절되어야 했다. 그러나 둘 다 또한 절대적으로 구별되는 대조적인 특징을 잃을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더 이상 절대적으로 단언되고 존경받으며 숭배해야하는 요소로 여겨질 수 없으며, 인간의 혼란도 절대적으로 부인되며 혐오되어야만 하지 않는다. 둘 사이의 결정은 세계사를 생각하고 이해하는 문제로서 변경할 수 없도록 마지막 단어로 더 이상 진술될 수 없다. 둘 사이의 긍정적인 관계는 증명된 의존과 교제의 기초로 찾아지고 발견되어지고 유지되어야 한다.(704b).

기독교인의 고려와 이해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혼란 아래에서 얻어지는 공통분모를 기본적 덕목으로 삼아(바탕 삼아) 더 높은 수준 안에서 평가하고 측정하고 승인하고 확인하는 특수한 것이어야 한다.(704c).

우리들의 주된 과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말하여진 세 번째 단어인 기독교 공동체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실제요 진리이며 유일 가능한 대안이라는 것을 명쾌하고 단순하게 납득시키는 것이다(706b).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신 밖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이와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그 권리와 권위로 말하시고 행동하는 살아 있는 존재이다. 그 안에서 세상에 보여진 하나님의 은혜는 현재 우리들처럼 사람이 지각할 수 있는 원리가 아니다(706c).

선이나 악을 위해, 신비에 존재하는 우리는 세계사의 안에 있는 공동체와 공동체의 흐름에 관련된 위임된 세 번째 단어로서 은혜를 설명하고 선언할 때 이것을 고려해야 한다(707a). 매우 처음부터, 우리는 명시적으로 기독교인의 관점으로, 세계 역사에 대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위임된 것처럼 예언적 증인으로 위임됨으로서 예상하는 관점을 갖고 신학적으로 보아왔다(707c).

세계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것 주위에서 무엇을 보는가?(708b)

확실히, 위로는 이 사건의 주요 지배자인, 사람과 세계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처음과 최후의 영광스러운 광경을보며, 아래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이웃과 틀어진 사람 중의 무서운 광경을 본다. 충돌, 수수께끼, 모순을 본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어떤 진짜의 종합을 , 위와 아래사이의 어떤 조화, 그리고 긍정적인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혼돈 사이의 어떤 관계, 다른 것을 기초해서 다른 것을 이해하는 어떤 가능성을 본다(708c).

세상 역사 안에서 창조된 하나님의 백성들인 공동체는 이 새로운 것 즉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세계에 그의 말씀과 사역을 소개해야 한다. 공동체에 위임된 직무는 세계에 이 새로운 것-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709b).

이 새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스스로를 세상을 위한 존재로 계시하시며, 세계사 안에 말씀하신 것이다. 세계사의 안의 사건과 계시로서의 이 새로운 것 예수 그리스도는 공동체에 의해서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세계를 하나로 연합하는 은혜의 간단한 보증. 이 새로운 것? 의심할 여지없이 세상에 말해진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이 은혜에 참여한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험한 새로운 것이 된다. 세계사 속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지하는 새로운 것, 새롭고 유일한 사람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는 그의 안에 있는 세상에게 말하여진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 "그의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 방법, 세상에 그의 은혜를 언급하는 하나님에 의해 사용된 도구나 운반 기구 그 이상을 나타낸다. 그는 이 이름을 가지는 분이다. 그는 하나님 그 자신이며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와 함께 한 본질이다(710c).

세상에 계시된 구체적인 사건의 모습은, 모두를 위한 시간 안에서 보여진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다. 그것은 사실이고 근본적인 이 상황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이 새로운 사물은 그 모두인 사람의 상황과 그러므로 세계 역사를 변경하는 사건이다(711b).

하나님과 세계와의 화해, 그의 앞에서 그를 위한 모든 사람의 의인화와 성화, 세계사 안에 있는 계명의 회복에 뿌리를 둔 인간의 혼란의 그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말씀 안에서의 이루어진다(712a).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현실성(reality)은 두 왕국의 충돌이 아닌 하나님의 한 왕국이다. 우리는 새로운 사색의 방법에서 우리들 자신을 발견하는 어떤 두려움과의 우리들의 일반적인 서술로 돌아갈 수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공동체 주위의 세계사에 직면하기 전에 구체적으로 서있는 세계에 말해진 하나님의 은혜이다. (712)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사람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에게 사람을 나타냈다. 그는 이미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소송을 변호하였습니다. 그는 이미 아버지로서의 그 결정적인 행동을 실행하였고 사람 혼란의 이동에 의한 하나님의 왕의 섭리를 실행하였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명령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평화를 결론지었다(713c).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서, 새로운 모든 것은 이룩되고 만들어졌다.

이것은 그 공동체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내버려지고 부인하는 모든 반대하는 현상 대신에 인식하고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714b)

세계 역사의 새로운 현실성이 예수 그리스도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려지고 만들어짐에 따라, 이들은 세계사 안에서 매우 다르게 세상 역사를 보며 참여한다.(716a).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 믿음 안에는 지식과 복종 둘 다가있으며 세계사는 이것에 의해 보여진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안에서 일어난 변화의 사실을 받아들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우주적이고 명확한 계시가 종말에는 모든 인류에게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변화를 이미 확신하고 있다. (716b).

공동체가 역사의 새로운 현실에 관해 그것에 맡겨진 작은 가능성을 가지고 충실하다면, 그것의 믿음이 나태하거나 죽은 믿음이 아니다면 이것을 피해서는 안된다.

세계에 언급된 하나님의 은혜의 빛에서, 세계 역사의 새로운 현실과 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낙관주의나 비관에 의한 방해가 없는 그것은 지명된 목적을 기대한다.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대담하게 희망을 품고 세계를 향해서 대담하게 희망을 품어야 한다(720b).

요 약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공동체에로 부름을 받았다. 공동체의식의 중요함 안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세계사와 기독사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너무나 분명한 사실은 세계사이든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이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분하는 것은 기독교 공동체를 포함한 온 세상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함과 다를 바 없다.

세계사이든, 그 안에 존재하는 기독교 공동체의 역사이든지 그 안에서 움직여지는 힘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의 섭리로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를 화해시키며 이 둘 간에 항상 존재하는 긴장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기독교 공동체는 그에 의해 시작되는데 이는 그를 향한 인간의 복종과 그를 아는 지식이 동반되어야 한다. 공동체는 예수의 사역과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 사명을 위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