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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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광 훈 (신대원 5차, 9726126)

 

 

교회 공동체는 세계 사건 안에서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G. p.826, E. p.721>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숨겨져 있는 세계 사건의 새로운 사실성의 인식 안에서 존재하는 족속이요, 스스로의 확신, 결의와 소망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결단 안에서 존재하는 인간 족속이다.

<G. p.827, E. p.722> 교회 공동체는 실제적, 가시적, 근본적이며, 모든 가능한 인간적인 일의 관점에서도 가시적이다. 분명히 그것은 또한 실제적이면서도 비가시적이다. 즉 아무의 눈에나 보이는 것이 아니며, 현상이 아니다. 실험적이나 합리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며, 원리적으로 셀 수 없는 알려지지 않은 크기이다.

<G. p.828, E. p.723> 그러나 그 공동체가 외부와 세상에 가시적이 아니고 다른 역사적 요소와 구별이 되어 버린다면, 그리고 이런 양상을 갖지 않고 모든 이에게 오해가 된다면 교회 공동체가 아닐 것이다.

<G. p.830, E. p.725> 단순한 감사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과 상응하게 그를 따르는 한 인간 족속이 다른 족속들과 같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그의 백성이요, 그의 사역 안에 존재 될 수 있는 백성이라는 것이다.

<G. pp.840-841 , E. pp.734-735> 이제는 가시적인 면과 비가시적인 면을 세계 사건 속에서의 모든 독특한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를 몇 가지 점에서 자세히 묘사해본다.

Ⅰ. 교회 공동체는 완전히 그의 환경에 대해서 종속적이기도하고 반면 완전히 자유하기도하다. 종속적이라는 말을 이해하는데는 모든 자유안에서 그(환경)에게 묶여있는 것을, 그리고 완전히 자유한다라는 말은 환경에 대해서 모든 종속성을 지배하고 스스로의 법칙과 그리고 거기서부터 나오는 자의, 자력이며, 그것은 환경을 설정한다.

우리는 그 종속성과 자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분야인 언어를 생각한다. 교회 공동체는 스스로 말 할 것이 있다. 그러나 자기 독자적인 언어가 없다. 그러나 인간적인 언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초월할 수 없다. 언어는 하나님이 아니다. 언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그의 자신(언어)의 단어들로 하나님을 섬길 뿐이다.

<G. pp.842-843, E. pp.736-737> 교회 공동체의 자유는 언어의 영역에 있어서 그의 근원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 안에 두고 있다. 이 언어는 말씀을 지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씀은 언어를 지배한다. 그 지배를 통해 말씀은 공동체의 말을 자유로운 말로 바꾼다. 언어는 하나님을 단지 섬기고 또 하나님을 증거한다.

<G. pp.845-846, E. pp.739-740> 우리는 공동체의 종속성자유에 있어서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다시금 공동체는 만일 그가 이 관점(사회적인 구조의 관점)에서 전체적인 종속성을 보지 못하고 전체적인 자유를 깨닫지 못하면 스스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부르심의 소유성과 위탁은 세계사건 속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존재성의 형태와 상응한다. 그들의 법과 질서는 모든 특별함과 또 개개인에 있어서 어느 정도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 따라 정해지고 경우에 따라 어떤 세계 역사적인 상황에서 어느 정도 명령적으로 다가오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자연의 본보기에 따른다.

Ⅱ. <G. p.849, E. p.742> 우리는 공동체의 가시적인 존재와 비가시적인 존재를 통해서 어떤 정해진 세계의 사건 속에 하나님 백성의 존재를 두 번째 관점인 공동체의 완전한 약점완전한 능력에 대해서 구체화 해보기로 한다.

약점이 없이는 그 공동체의 완전한 능력에 대해서 실속이 없고 신빙성이 없게 얘기될 뿐이다. 이 능력은 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의 개인적인 존재에 관점에서 뿐만아니라, 바로 연약함 가운데 강하고 목적에 이르게 하며 완전하게 하였다. 예수님의 능력도 아주 최고의 연약함 가운데 강하였다.

<G. pp.850-851, E. pp.743-744> 세계 사건 속에서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두 가지 말 할 것이 있다. 공동체는 아무 것도 아니었고 또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점에서 먼저 세계 사건 속에 장소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들의 약점은 그들의 장소가 당연히 어울리고 안전하며 튼튼한 장소인 것을 의심치 않았던데 있다.

공동체가 만일 예수님과 달리 여우에게 굴이 있고 하늘의 새에게 둥지가 있는 것처럼 그들의 머리 둘 곳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은 그들의 연약함을 이런 장소를 전혀 갖지 않았던 예수님과 나누어야만 할 것이다.

<G. pp.854-856, E. pp.747-749> 그리고 우리는 공동체의 연약함과 능력의 관점에서 또 다른 문제로서 세계 사건 가운데의 사역과 그의 성공에 관해서 생각해본다. 그들의 연약함은 이 관점에서도 명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공동체가 성취에 있어서 무엇을 제안합니까? 그들이 충성스럽고 열심히 역사에 투자했던 활동들에서 무엇이 나옵니까? 크고 작은 세계의 사건에서 사회와 개인의 생활에서 무엇이 다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그의 행함과 결과에 있어서 드러나지만, 아주 보잘 것이 없고 약소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업적에 비하면 아주 문제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세상에서 창출하는 것이 실제로는 한번도 표면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현저한 약점입니다.

<G. pp.857-858, E. pp.750-751> 그러나 그들의 활동완성의 연약함 안에는 그들의 능력이 숨어있고 그들의 능력, 즉 모든 다른 능력을 능가하는 능력이 약동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스스로 강함을 드러내고자하는 시도들을 포기해야 합니다.

 

세계사건 안의 교회 공동체의 존재 양태

<G. pp.859-860, E. pp.751-752> 어떻게 교회 공동체가 세계사건 가운데 존재합니까? 이것이 세 번째 문제의 요약입니다.

(기독론적 교회론적 원칙)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들의 신비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각자에게 주어진 힘이나 자유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신비는 그들을 효율성을 나타내고 묘사하는 분명한 실재기초와 인식기초입니다.

<G. p.861, E. p.752> 하나님의 백성에 기초와 신비를 묘사하는데 가장 높은 두 가지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창조하시고 행하며 그래서 하나님은 신비 안에 그리고 교회 공동체에 계신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을 행하며 그의 진리와 능력과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신비 안에 있다.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결속되고 그에게 맡겨지고 또 의무가 지워진 백성으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존재로 불려지고 그 안에 보존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그의 부르심의 능력이다. 그의 부르심의 능력은 그 안에 계시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다.

<G. pp.862-863, E. pp.753-754> 하나님 백성의 존재는 단지 그의 하나님 안에 있다. 교회 공동체의 존재는 단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다.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므로 존재한다. 그러나 단지 그가 존재하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공동체는 그의 존재가 예수님의 직함과 그의 차원이 되므로 존재한다.

<G. p.866, E. p.757>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는 그의 높이와 길이와 하나님의 초월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성령론적 교회론적 원칙)

<G. pp.868-869, E. pp.758-759> 첫 번째에 나오는 기독론적 교회론적 원칙은 성령이 지구상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부르고, 모으고, 밝히고 거룩하게 한다는 두 번째의 성령론적 교회론적 원칙의 해명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바꿔서 두 번째 원칙을 통해 첫 번째의 기독론적 교회론적 원칙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원칙은 하나의 같은 실재를 나타낸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상대방을 불필요하게 하지 않고 둘 중 어느 것도 상대방의 원칙을 감하지 않는다.

성령은 그의 백성을 그의 행사와 활동을 통해 그의 공동체가 되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 소유의 하나님의 능력이다.

<G. p.870, E. p.760> 성령의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기초와 교회 공동체의 존재의 비밀이 된다. 이것이 두 번째 원칙으로 우리의 세계 사건 안의 교회 공동체의 존재 양태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이 된다.

 

<요약 평가>

교회 공동체는 실제적이면서도 비가시적이다. 교회 공동체는 완전히 그의 환경에 대해서 종속적이기도하고 반면 완전히 자유하기도하다. 인간적인 언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초월할 수 없다. 언어는 하나님이 아니다. 언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 장소와 활동(능력)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은 약함 속에서 강함이 있기 때문에 연약함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여우도 굴이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한 그 공동체가 가장 강한 것이다.

바르트는 공동체가 세상의 사건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며, 유지하는가? 물음에 대하여 기독론적-교회론적인 원칙과 성령론적-교회론적인 대답을 한다. 이 둘은 결코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기독론적-교회론적인 원칙은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존재성 속에로 부름을 받아서 존재하며, 그 분의 증언의 공동체로서 존재해야 한다. 성령론적-교회론적 원칙은 성령의 능력 안에 하나님의 백성을 포함시키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