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위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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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성 식(9 6 3 7 0 4 6)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세계(세상)를 위하여 존재한다. 이 공동체는 본성적으로 다른 인간 피조물을 위하여 존재하도록 규정지어진 피조물이다. 그것은 단지 다른 모든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내어 줌으로써만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이런 식으로 세계의 창조자와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하여, 그리고 인간을 향한 그분의 목적과 뜻을 실현한다. 가장 궁극적으로 세계를 위하여 존재하는 이는 하나님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가장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므로, 그것은 결국 궁극적으로 세계를 위하여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그 자신의 존재 의미와 목적을, 세계와 인간을 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섬김과 제자됨(제자도)을 이룸으로써 실현한다. 762 쪽

예수는 그 공동체를 부르시고 모으시며 건설하신다. 그분은 주와 목자로서 그것을 통치하신다. 그는 자신의 임재와 자신의 거룩한 영의 계몽시키는 힘을 통하여 그 공동체를 새롭게 구성한다. 그 안에서 하나님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화해시키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을 내어 놓는다. 확실히 그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부름받아 나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계로부터 분리되었고, 세계 안에서 분리되어 구성되어졌고, 그리고 세계에 맞서서 배치되어 있다. 이런 구분 속에서 그공동체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주는 그 독특한 영광을 드러낸다. 763 쪽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하나의 사건으로서 경험되고 맛 보아지고 느껴져야 하는 곳은 우선적으로 그 공동체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평화가 단지 그 공동체에만 제한되고 그 안에서만 향유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거짓 평화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사람의 칭의와 성화는 단지 많은 그리스도인들만이 특권적으로 누리거나 단지 그들 상호간에 나누는 위로와 강화나 충고만을 위하여 발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의 계몽시키는 힘은 단지 공동체가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을 뛰어 넘도록 재촉하고 강요한다. 그 힘은 그 구성원들의 환영받는 경험을 뛰어넘도록,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약속된 모든 것을 넘어서도록 요청한다. 그리고 오직 이 강요와 재촉을 따르는 한에서만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공동체이다. 그것은 철저히 세상 속으로 보냄받은 공동체인 것이다. 764 - 768 쪽

여기에서는 세상 속으로의 파송에 있어서 그 임무를 실질적으로 실행하는 것의 기초와 관련되어 있는 더욱 필수적인 요소들에 대하여서 논하고자 한다.

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공동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교제라고 말함으로써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자신을 알지 못한다. 세상은 하나님도 인간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언약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세상은 자신의 기원과 상태와 목표도 알지 못한다. 세상은 자신의 실재에 대해서 무지하다. 예수의 공동체는 하나님과 인간과 그 사이의 언약을 아는 상태로 인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다는 그 점에서, 바로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고 세상 속으로 파송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세상을 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사람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의해 결정된 인간의 실존과 상태가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전체적이고도 세밀하고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고 다시 살아났음과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관련이 있고, 또 약속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예수와 또한 그를 통해서 하나님과 관련되어질 수 있다는 그 사실이 누락되어진 채 파악되어지는 세계상은 온전한 세계상이 아니다. 예수와 그의 언약의 기초 위에서 바라보지 않는 모든 세계 이해는 설득력도 없고 명료하지도 않은 것이다. 769 - 772 쪽


2)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공동체는 세상과의 연대성을 알고 실천하는 집단이다. 공동체는 세상에 순응해서는 안된다. 공동체를 위해 빛나고 있는 것은 세상을 향한, 그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사랑 바로 그것이다. 세상과의 연대성이란 세상에의 헌신을 의미한다. 이때 우리의 관심은 사람들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가 타락하여 혼란 중에 있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를 위한 궁극적인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무리에 대해서 연민을 가지고 그들에게 자신을 동일시시켰다. 예수의 공동체는 바로 이점에 있어서 예수와 다른 길을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세상과의 연대성이란 우리가 거룩하고 지혜로운 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에게 그들이 있는 그대로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고, 불의한 그들 옆에 그들의 친구로 앉는 것, 어리석은 자들 가운데 그들의 하나로 취급받으면서 함께 거하는 것, 그리고 매우 세속적인 차림으로 지옥 가운데로 접근해 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과의 연대성이란 그들과 같아지는 것이다. 773 - 776 쪽

3)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공동체는 세상을 향하여 의무를 지니는 집단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계실 때 관조적이거나 단순히 관찰자로 머물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는 세상과 함께 고난당하였고 세상을 위하여 행동하였다. 교회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동역하도록 부름받았다. 교회는 단지 세상의 실상에 대해서 더 많이 인식하거나 단지 희망을 함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다 하고 세상의 미래를 함께 기다리고 촉진시키기 위해서 보냄받았다. 세상에서 교회의 관심은 인간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역동적으로 개입하시고자기를 내어주신 것이 공동체의 존재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동하지 않거나 중립적인 사람은 하나님에게 신실한 자들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의 이해와 연대와 참여와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교회는 그들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을 피해 간다 하더라도 세상이 하나님과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을 알아야만 한다는 그것만큼은 피해 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궁극적으로 세상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요 4 : 35). 그러나 교회의 그 본질적 사명 외에도 인간성이 요구하는 실제적 필요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사역은 서로 분리되어진 것이 아니다. 776 - 780 쪽

우리는 위에서 진정한 공동체는 세상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에 대하여 살펴 보았다.그런데 위에서 말한 이 세 가지 사명에 대해서 좀더 확고한 기초적 설명이 요청된다.

1) 우리는 먼저 공동체에 가입한 사람들에 대해서 논하여야 하는데, 그들은 세상을 알고 세상과의 연대성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세상에 대해 헌신해야 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런 것을 할 의지도 사명도 없다. 그것은 그들의 본성과 일치하지도 않고 그렇게 자명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런 것을 하려는 결심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런 삶을 살 자유가 주어져 있다. 그들이 이 일을 실행한다면, 그들은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선물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은혜가 실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2) 우리는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에 대해서 논하고자 하는데, 이 교제는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세상을 위하여 헌신하는 자유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이 자유를 개인적으로 받았고, 또 개인적인 책임과 결단 속에 발휘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의 개인적인 치장이나 장식,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인 기준이나 목표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사용되어지도록 허용된 자유는 아니다. 그들은 각자 개인적으로 참여하지만, 그러나 그 자유는 어디까지나 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모두 공동체와의 일치와 화합을 이루는 속에서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3) 그러나 세상을 향한 이 사명은 단지 교회 공동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구현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자유로워지는 은총은 개인의 요청과 수용과 실천없이 단지 공동체에 소속되었다는 것만으로써도 주어진다라고는 간단히 말할 수 없다. 세상을 향한 사명에 있어서 하나님과 교회 구성원 사이의 관계 형성은 두 주체 사이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780 - 784 쪽

다음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입장인 우리의 전제의 기초에 대한 지식을 전개하여 보고자 한다.

1) 교회 공동체는 자신의 기원과 그 유지가 매우 뚜렷한 힘, 즉 미래를 향하는 그 힘의 지속적인 사역에 근거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교회를 움직이는 힘은 교회 자체나 어떤 다른 외부적 힘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자유로운 힘이다. 이 힘은 타율적이거나 기계적이지 않으며 분명하고 자발적이다. 이 힘은 하나님의 말씀에 상응하고 순종함으로써 발현되게 된다. 그 말씀은 교회에 의해 수용됨으로써 자유를 주는 그 힘을 현실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성령의 역동적인 사역을 의미하는 것이다. 786 - 787 a

2) 기독교 공동체는 자신이 성령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실행하고 성취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 위에 근거하는 것임을 안다. 그분을 고백하는 것은 교회의 직무이다. 교회가 존립되고 육성되어지는 근거는 그것이 공통적으로 예수를 고백하는 자들의 모임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인격으로는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시고, 그의 사역으로는 계약의 중재자이시며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하여 행동하시며 세상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787 b - 790 a

3) 기독교 공동체는,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라는 독특한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교회에 대해서 고백을 행한다는 사실에 대한 즐거운 반응이라는 것을 안다. 이것은 공동체 스스로의 행동이기는 하지만, 임의적이지는 않은 복종적 행위이다. 790 b - 792 a

4) 기독교 공동체는 그 용어의 신약적인 의미로 볼 때, 그것에 대한 유사성으로서만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공동체는 그 자체와는 다른 신 - 인적 실재에 대한 후속적, 일시적 반영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 실재와의 유사성을 확보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단지 불완전하고 부정확하게 그것을 묘사하고 표시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단지 복사에 불과하다. 이 공동체가 단지 유사한 수준에서 묘사해 내는 그 실재 그것은 사실은 하나님 나라로서 그것은 이미 시작되었고, 예수의 부활 속에서 이미 독특하게 계시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의 재림시에 결정적이고도 보편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성령이 그의 전 창조계 속에서, 자신의 배타적이고 모든 것을 관통하고 모든 것을 결정짓는 주권을 세우는 것이다. 예수 자신이 완전한 하나님 나라이다. 그분 안에서 이 신적 주권은 시작되었다. 예수의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로의 출발과 목표는 모든 사람과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께의 섬김(예배)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때 공동체의 기능은 그것을 따라가는 것과 동시에 그분의 보편적 부르심을 선도(안내)하는 것이다. 792 b - 795




요약


교회는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해 주는 매개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사랑을 이루어드리는 공동체로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지향한다. 세상에 대한 교회의 그 사랑은 전도와 섬김(필요 공급)으로써 실천되며, 이때 그러한 실천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활동이다. 선교라고 명명되어질 수 있는 이러한 교회의 실천은 공동체의 차원에서는 1) 세상을 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2) 세상과 연대성을 갖는 것 3) 세상을 향하여 의무와 책임, 즉 복음 전도와 필요 공급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개인적 차원에서는 말씀 속에 나타나는 성령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써 고백, 즉 입으로 하는 고백과 동시에 행동으로 하는 고백을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항상 세계를 향한 방향 속에서 그것의 실재를 보도록 하고, 또 세계를 위한 것으로부터만 그것의 현존을 확인하도록 허용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