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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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자: 김 민 수(M.Div3차)여 주 상(M.Div3차)

 

 

공동체의 봉사는 아주 분명하며, 그러므로 제한적이다. 그러나 또한 유망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다음 주제가 될 것이다.

1.공동체의 봉사의 성격

1)공동체의 봉사는 명확성을 갖는다.

공동체의 봉사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주 단순한 사실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분에서 우리가 본 것과 같이 세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존재하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와 같고, 그리하여 우리가 세 번째 부분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그 증언에 의한 범위 내에서 그 직무를 실행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존재의 명확한 근거를 갖는 그것의 출처와 목적 안에 존재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역사가 일어났으며, 하나님의 자비로운 자기계시 안에서 그것의 표출이 계속된다. 하나님의 봉사와 인간의 시중, 이둘 사이에는 그의 예언자적 임무와 사역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걸터있다. 소명안에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성령의 밝혀주고 깨우치는 힘 때문에 그는 우리의 어제로부터, 오늘을 통하여, 내일로 계속적으로 이동하는 공동체의 목표와 끝을 향하여 재촉하는 공동체의 역사를 통하여 행진한다.(p.830) 공동체의 봉사는 예수그리스도의 제자도 안에서 처럼, 그것의 성직임명과 성직수임에 의해 하나님과 사람에게 대한 봉사와 같이 구체적인 범위가 주어졌다.그를 선포하고 그가 선포하는 그 자신, 혹은 복음은 봉사 안에서만 쟁점이 될 뿐이고 증거의 범위이다. 그가 바로 하나님이고 바로 인간이다. 그가 하나님과 인간의 중개자이다. 그가 인간을 위해 성취된 은혜의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집행자이다. 진실되고 주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위대한 봉사는 진실되게 그리고 정확히 말해 인간과 하나님의 봉사 모두의 분명하고 확고한 연합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이름안에서 실행된 봉사는 분명한 봉사이다.(p.831)

2)공동체의 봉사는 제한성을 지닌다.

이러한 명확성 안에서 공동체의 봉사는 제한성을 지닌 공동체 위에 놓인다. 두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봉사라는 사실에 의해 그리고 좀더 특별히 그것의 증인들의 봉사라는 사실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은 봉사이다. 하나님과 인간에게 대한 봉사, 그 이하도 아니고, 그 이상도 아니다. 봉사는 적극적인 순종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봉사로서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적극적인 순종을 의미한다. 결국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을 위한 구체적인 봉사 보다 다른 어떤 것을 해야하는 것으로 명령된 것이 아니다.그러므로 그것은 그들의 책임, 중요성, 필요에 전혀 상관없는 allotria(사소한 일)를 추구하라고 명령된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봉사는 제한적이다. 사실에 의해 그것은 증인들의 봉사와 같이 실질적으로 한계가 정해진다. 우리는 공동체를 구성하고 요구되어진 증인들의 봉사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공동체는 기독교인들이다. 심지어 이 개개인들은 결정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증인들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개자, 그의 예언자적 과업안에서 위대하고 적극적이던 초기의 증인들의 현존안에서 말씀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들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동역자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확립된 그의 속죄의 말씀, 그 안에서 보증되고 맺어진 하나님의 계약, 그 안에서 확립된 하나님의 주권을 들을 수 있으며, 들을 수 있었던 사람들의 동역자이다. 그들의 봉사는 세상에 들려지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는 그것을 이루고 나타내신 유일한 분임을 세상을 향해 알리는 그의 증인들의 고백을 근거로 이루어져 있다.(p834) 공동체는 이 이상도 이하도 달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동체가 스스로 그 역량 이상을 하려고 하거나 성취하려고 하는 것은 거짓된, 권위없는, 오도된 예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p836) 공동체는 이 명확한 증인의 봉사보다 다른 것을 하라고 명령받지 않았다(p.837)

3) 공동체는 약속을 갖는다.

공동체는 또한 약속을 필요로 한다. 공동체는 공동체의 봉사를 이행하기를 구하고 보증하는 확신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공동체의 봉사를 안전하게 하며, 특별히 그 자신과 그것이 세상과의 관계속에서 수행할 수 있게하고, 홀로 불안정한 결과와 이러한 모든 위협에 대하여 보호한다. 그리하여 공동체의 봉사는 항상 보증된다. 그것은 공동체에게 말해지고 위임된다. (p.839) 공동체에게 무엇이 말해지는가, 즉 모든 차원안에서 그에게 고유한 능력과 진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의해 그리고 그 안에서 공동체를 위해 말해진, 세상의 새로운 실재, 하나님 나라, 계약, 화해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공동체에게 주어진 그런 약속이며 확증이며, 공동체의 증언을 유지하고, 공동체가 대면하고 있는 압력에 대해 성공적으로 대항하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의 내용과 주제이며, 근원이신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러한 약속과 확신을 주셨다. (p.840)공동체는 하나님과 함께 가고, 서 있어야 하며, 그와 함께 섬겨야 하며, 그의 증거가 되어야 하며, 그와 함께한 결과를 이뤄야 한다. 이것이 공동체가 살아았을 수 있고 그의 섬김을 특정화 하는 약속이다(p.842) 공동체는 다른 세대에서부터 다른 세대로 계속되는 어느 날에도 약속을 통해 인내할 수 있다.따라서 예수 안에서 행한 공동체의 사역의 약속은 공동체가 받아왔던 flutuat nec mergitur(그는 외부에 의해 어려움을 직면하나 흔들리지 않는다)의 표어(motto)를 정당화 한다고 할 것이다(p.843)

2. 공동체 봉사의 본질(nature)

1)복음의 선포(declaration)

공동체가 어떤 무엇을 계획하고,전념하고, 수행하든, 그리고 공동체가 그것을 성취할 수 있거나 없을지라도, 공동체는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소개해야만 하고, 그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사건을 소개해야 한다. 그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선한 공동체를 가르치는 것일지라도 복음의 내용을 구성하는 하나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지적하고 상응하는 인간 역사적 사실을 드러내야만 한다.(p844) 공동체와 그의 구성원들이 속해있는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화해,언약,영광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세상속에 보여지고 드러나야만 한다는, 그리고 그들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함께 나눠야 한다는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만약 이렇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될 수 없다.(p.845) 모든 적용과 설명속에서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선포와 동일한 사실적 기록을 그것에게 주는 것과 그의 선언을 강조, 확신, 반복하는 사실적, 권위적, 힘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공동체의 모든 사역은 단순히 약간의 고통이 아니라 총체적 결함이다.(p846)

2)복음의 해설(explication)과 설명(explanation)

증거에 대한 공동체의 사역은 직접적으로 복음의 전개와 이러한 설명속에서 존재하고 또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적 사건 즉 복음의 내용을 구성하는 하나님의 역사적 사건은 침묵하거나, 그의 의미가 숨겨지거나, 모호한 것이 아니다.(p.846) 공동체의 봉사는 복음의 선언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설명(해석)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선포와 복음 그 자체의 내용으로부터 계속적으로 기원한 해석을 따라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신인 중재자인 예언자의 활동에 따라 인간 방식을 따라가야 한다.(p847) 세상은 복음이 선언되어진 것 처럼 복음이 설명되어야만 할 필요성을 갖는다. 공동체는 그들에게 지식을 인식시켜야만 하고, 혹은 그들에게 성령이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예언자들의 말씀에 의해 이 지식이 그들에게 드러날 것이고 또한 intellectus fidei (신앙의 지성)이 일어나도록 할 수 있다는 방법을 심어야만 한다.(p848) 공동체는 세상에 복음을 선포할 뿐만 아니라 복음의 내용의 명백성을 드러내기 위한,.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그리고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한 역할을 교회의 역사속에서 계속하였다. 복음은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복음은 일반적으로 이해할만하고 납득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의 내용은 합리적인 동시에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의 범위에 따라서, 표현과 사상, 인간 관심의 계속되는 변화와 형식안에서 이해되고, 명확한 방법에 대한 인간적 견해에 의해 모든 사건을 소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인간 언어들로 말해져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p849)

3)복음적인 지시,적용(evangelical address)

공동체의 증거와 사역은 또한 상황과 형태속에서 복음적인 지시이다. 즉 적용의 형태속에서 설명과 선언을 말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복음적 지시는 진공상태 속에서 설명과 선언을 성취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상황속에서 복음적인 말은 실제로 설명되고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복음적인 말은 진심으로 세계 곳곳의 사람에게 이르렀을 때만 성취될 수 있다. 그들에게 말해야 하고, 그들에게 설명해야 하고, 그들에게 명심시켜야 한다. 복음적인 말은 빈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인간 사회와 모든 사람에게 직접 나가야 한다(p850) 복음의 내용은 설명과 선언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세상을 향해서 갖는 호소를 형성해야만 한다. 세상은 이러한 호소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세상은 공동체와 하나님의 선포와 설명의 증거에 의해 특별한 방향으로 이동되거나 충격받을 필요가 있다(p851)복음적으로 사람에게 말한다는 것은 복음의 설명과 선언의 위대한 유사점을 그들에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적으로 사람에게 말한다는 것은 가능한한 그들의 환상만씩 강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복음적 설명은 매우 단순하게 모든 견해에 ,그의 사역의 모든 형태속에서 그리고 세상을 위한 존재로서 세상을 회피하지 않고 세상에 들어가 구체적으로 그의 존재를 인식시켜야 한다.(p853) 공동체에게 섬김이 하나님과 사람을 위하여 위임되고 자격이 주어졌다. 공동체는 섬김을 주어야만 한다. 공동체는 가장 위대한 겸손과 반면에 가장 큰 결심으로 그렇게 해야만 한다.(p854) 공동체의 구성원들 모두에게 각각의 특별한 관심과 특별한 순종과 특별한 신앙심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들이 각각 그리고 모두에 의해 보다 많이 열려지면 열려질수록, 공동체의 증거와 사역은 보다 많은 de iure(원칙적으로)뿐만이 아니라 de facto(실제적인 것으로 부터)의 종합된 다양성을 보여 줄 것이다(p855)

한편으로, 공동체의 봉사의 두 가지 형태(Form)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다.

공동체 사역에서 말하는 것이나 치료하고 행동하는 것 둘 모두다 똑같이 강조되고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예수님에의해 제자들에게 주어진 지시와 그들의 실재적 사역으로 말해지는 것을 나타냄으로써 항상 그 행위에 선행하는 말이 분명한 연속성을 보여준다는 것이 기억되어야만 한다(p863) 올바른 순서는 먼저 말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진지함과 강조점을 가지고 그의 말에 상응하도록 행동해야만 한다는 것이다(p864)

3.공동체가 말하고 특별히 행동해야하는 다른 봉사들

1)하나님을 찬양함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기독교 공동체의 봉사에서 그 역할을 확고히 하는 것이고, 인식되는 것이고, 증명하는 것이고, 칭송하는 것이고, 찬미하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존재 두가지에 대한 것이다. 공동체의 존재와 모든 기독교인의 존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이어야 한다.(p865)노래는 인간 표현의 최고의 형태이다. vox humana(인간의 음성)은 기독교 공동체의 봉사에 헌신된 최상의 표현이다(p866).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공동체의 봉사의 피할 수 없는 근본적 형태중의 하나이다.

2)복음에 대한 설교(explicit proclamation명백한 선포)

공동체는 증거 즉 공동체에게 부여된 증거에 대해 명백히 기억되어야 하고 공동체는 그의 주장에 대한 확신을 갖어야 한다. (p867) 또한 진정한 설교는 예수에 대한 선포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하늘과 땅 사이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인간적인 선언이나 설교들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설교는 성경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의 기록들을 조사해야 한다. 이것들은 모두 공동체의 사역에 속한다. 우리가 교훈이나 신학적인 이야기를 할 때 이런 성경적 연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설교는 성경연구에 의존한다. 하지만 성경연구가 설교의 전부가 아니다. 설교는 성경에 기초하여 복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p868) 설교는 학문적인 교훈도 아니고 논쟁도 아니고 과거에 대한 회상도 아니다. 설교는 각각의 사람들로 하여금 불신앙을 버리고 신앙의 결단을 하게 해주며 또 불순종 대신 순종하게 한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을 알게 해준다.(p869) 그러므로 설교가 취약한 공동체는 공동체의 사역 자체도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설교적인 측면에서의 개혁이 요구된다.(p870) 즉 진리되신 성령이 공동체에게 지식을 주실 뿐 아니라 믿음을 주시며 그 공동체 안에 참다운 지식을 세우시는데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을 받은 공동체는 단지 말뿐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행동으로의 개혁이 되어야 한다. 실제적인 행동이란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증인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3) 구성원과 세상에 대한 교육 (instruction)

복음은 복음을 믿는 자나 믿지 않는 모든 자의 삶속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는 구성원들을 가르쳐야 한다. 더 나아가서 넓게는 세상모두에게 가르쳐야 한다. (p870) 이것은 단순히 설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들에 대한 성경적인 원천을 알게 하는 것, 또한 어떤 것을 알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답하는 것, 이러한 것들은 단순히 몇몇의 전문가들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전체의 봉사로서 바로 공동체 모두의 일이다.(p871)

4) 복음화 또는 복음증거 (evangelisation)

세상으로 향한 공동체의 모든 말과 행동의 사역은 바로 "복음화"라는 말속에 요약할수 있다. 그러나 이 복음화는 단순한 전도와는 구분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모든 시대에 걸쳐 교회에게 주어진 특별한 사역이다. 복음화는 잠든 교회를 깨우는 것이다.(p872) 공동체의 예배와 설교와 가르침은 진정한 복음화라고 하는 특성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세상사람들이 복음을 들을수 있게 하는 것이다. 복음화라는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란 변화되지 못한 평범한 그리스도인과 진정한 크리스챤 사이의 벽을 허무는 것이다. (p873) 복음적이지 못한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며 따라서 복음화에 의해서 새롭게 될 필요성이 절실하다. (p874)

5) 선교 (mission in the narrower sense)

공동체의 또 다른 기능은 더 정확한 의미에서 사도적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것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파송하는 의미에서 선교의 기능이다. 선교에 있어서 교회는 가든지 보내든지 해야 한다. 은혜의 계약에 관하여 예수 안에서 선포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 듣지 못한 곳에도 증거되어야만 한다. 공동체에 주어진 이러한 소명은 이방세계에 이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증거하라는 명령이다. 거짓 우상들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죽으셨다 살아나심이 바로 자신들을 위함이라는 것을 증거해야 한다. 그래서 선교의 사명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선포하는데 있다. (p874) 선교적인 사명만이 공동체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 그러한 공동체만이 전체의 공동체를 대표 할수 있다. 선교의 유일한 목적은 이방사람들에게 복음을 알려야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만 하며 사람들의 영혼구원에만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선교는 교회의 전체사역의 기초가 된다. 그래서 선교는 설교와 복음증거 뿐만 아니라 또한 교육과 봉사(diaconate)를 통해서 수행되어져야 한다. (p875) 따라서 그들이 사역하고 있는 국가에 미션스쿨을 통하여 교육도 시켜야 하고 의료선교를 통해서 육체적인 건강도 증진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복음화를 위한 수단이다. 선교는 인간의 노력이라기보다는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부르심을 통하여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선교적 사역의 목적은 이방세계에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케 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선교사역은 지배하고 다스리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되며 오직 봉사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한 선교는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게 하여 그들 자신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증인이 되게 해야만 한다. (p876)

6) 신학 (ministry of theology)

목회의 신학에서 공동체의 표준은 주님의 명령(마28)이며 궁극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배경으로 해야한다. 문제는 신약을 구약의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해석상의 신학이다. (p879) 또한 복음에 대하여 충성을 하는 것은 초대교회부터 이어온 역사이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복음에 대한 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닮아가느냐에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복음의 방향을 잡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실천신학이다.

신학이 올바른 학문이 되려면 끊임없는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학의 근처에는 항상 인간의 교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신학함의 어려움이다.(p880) 어느 시대이든 복음전하는 일이 중단되지 않았고 계속 개선되어 이어왔고 이어갈수 있다. 분명한 것은 그 과정속에서도 영적인 싸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신학논쟁등) 그러나 신학은 긍정적이며 평화스럽다. 분명 이것은 신학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문제이다. 신학은 평화를 추구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인간의 교만에 있다.(p881)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개념, 생각, 희망, 행동, 불순종, 타협안하는것들을 항상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닮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우리가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신학은 사회의 공동체는 그것을 무시할수 없을 것이다. 또한 멋모르고 떠드는 모든 소리들이 없어질 것이다. 결론은 모든 기독교인이 자신이 신학자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p882)

7) 기도(prayer)

기도는 공동체의 사역이다. 기도는 단순히 그 사람의 영적수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반드시 행해야할 사역이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오늘날 행하고 있는 모든 사역의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기도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과 그의 중재안에 연합하는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수 있다. 우리가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큰 은혜를 받은것과 또한 장래에도 같은 은혜를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기도는 공동체가 존재하는 한 이미 행해졌었고, 행해지고 있고, 행해질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p883)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재와 계약, 화해의 증인으로서 반드시 기도를 훈련받고 또한 교육받아야 한다. 공동체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동체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p884)

8) 영혼의 치료(cure of soul)

영혼을 치료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 일을 위하여 부름받은 사람이 같이 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인 누구든지 이 책임을 회피할수 없다. 영혼을 치료하려면 하나님이 창조하고 유지하는 것이므로 그 약속과 희망을 불안과 고통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부담을 가져야 한다.(p885) 영혼을 치료하는 것은 기독교 상담, 또는 목회상담을 통하여 마음을 닫지 않게 하여 하나님 말씀을 단계적으로 알고 영원한 생명으로 갈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은 그가 예수의 증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는 일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일에 그를 사용할수 있다. 반면 기독교인으로 잘못한 것을 교회는 마땅히 훈계할수 있어야 한다. 영혼을 치료하는 것,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일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람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사람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버지, 친구, 조력자가 되시며 사람은 언약의 말씀을 듣고 증인이 되어야 한다.

영혼을 치료할때는 심리적으로 봐서는 안된다. 영혼은 영혼이다. 영적으로 봐야 한다. (p886) 목회적인 돌봐줌이 분명 무엇을 하는것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p887)

9) 그리스도인의 모범적인 삶의 모습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부름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충성하는데 달려있다. 분명 이것은 신약시대에 그랬었고 지금까지 이어왔다.(p887)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할 위험이 있는데 그 위험속에 빠지지 않으려면 마태복음 24장 49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외형적으로만 할것이 아니라 주님의 오실 것을 대비하는 자세도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깨어있어야 한다.(p888) 또한 어느정도 깨어 있지만 완전히 충성하지 않는것도 덜 위험하기는 하지만 위험하다. 믿는자들이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p889) 분명 증인의 삶은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이러한 봉사는 의미가 있고 유익되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집사들이 봉사했던것처럼 우리들도 그들을 본받아야 한다. (p890) 말씀전하는 일이 누가 할 일인가를 따질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25장처럼 작은자들을 칭찬함같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될수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화해는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었다. 그것이 바로 설교의 핵심이다. (p891)

10) 공동체의 봉사

공동체가 봉사를 하는데에 실제적인 문제점들이 몇가지가 있다.

첫째는 봉사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 한계는 사회가 악하고 전쟁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동체가 봉사를 멈춰야 하나?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 (p892)

두 번째는 원래 기독교인들이 하던 것을 이제는 나라가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보면 기독교 공동체가 힘을 많이 잃었지만 그래도 우리들도 계속 해야 한다. 나라에서 한다고 안할것이 아니라 그것이 근본 우리들이 해야 할 봉사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계속 해나가야 한다.

세 번째는 선교처럼 공동체의 봉사 또한 공동체의 관심사이다. 사회에 대한 봉사활동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이 책임이 없다고 느낀다면 우리들은 기독교적인 공동체가 아니다. 인간적으로 세상이 강해져서 기독교인이 무엇을 하며 효과가 없어보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니다.(p893)

11) 공동체의 예언적 행동

증인으로서의 공동체의 행동은 예언적 행동이다. 다시말하면 현재의 사건들과 모든 일들이 곧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증인이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 우리들은 주님의 음성을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실일을 기대하면서 현재는 그렇지만 우리는 미래를 보고 움직인다. 희망이 있다.(p895) 사실 어떤면에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말하자면 현재적 상황을 보면 악하고 전쟁이 일어나므로 우리에게 희망이 있느냐고 회의가 될수도 있지만 분명히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는다는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롬12)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거룩한 산제사로 바쳐야 할 책임이 있다.. 분명히 이러한 예언적인 확신이 없으면 견디기 너무나 힘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희망이 있으므로 견딘다.(p896) 그리고 분명 기독교공동체 내에서 또는 외부에서 반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희망을 가져야 한다.(p897)

12) 공동체의 친교

공동체는 교제를 세워야 한다. 바로 삼위일체가 그 표본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 하나님이지만 삼위이신 하나님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신다. 교제는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든다. (p898)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 중에는 종교의 갈등, 종족의 갈등들이 있다.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이러한 것들을 해결하지 않고서 어떻게 선교할수 있겠는가!(p899)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는지역적 문제, 종교적 문제, 사회적 문제(계층문제등) 빈부차이등이 존재하고 있다.(p900) 그러나 주님의 최후의 만찬, 돌아가심의 의미가 무엇인가 세례와 주님의 성만찬은 바로 교제이다. 그것은 주님과 함께 되는 것이다. 세례와 주님의 성찬은 그냥 한 것이 아니다. 공동체가 이 사역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사람들 사이에서, 세상사이에서 공동체가 바로 평화의 증인이 되는 일이다.(p901)

4. 내용요약

공동체의 봉사는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며 그 범위가 제한적이다. 우리는 공동체의 봉사를 성격적인 면과 본질적인 면에 관하여 논의할 수 있다. 전자는 공동체의 봉사의 근원적인 질문이며 후자는 공동체의 증거와 봉사가 본질적으로 모든 환경과 상황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 가에 대한 질문이다.

공동체의 봉사의 성격은 첫째로, 명확성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실행된 봉사는 분명한 봉사이다. 둘째로, 제한성이다. 공동체의 봉사는 하나님과 인간에게 대한 봉사라는 사실에 의해, 그리고 증인들의 봉사라는 사실에 의해 결정된다. 셋째로, 약속이다. 공동체는 공동체의 봉사를 이행하고 보증하는 확신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고 그 안에서 공동체를 위해 말해진 약속이며 확증이다.

공동체의 봉사의 본질은 복음의 선언과 복음의 해설과 설명 그리고 복음적인 지시이다. 공동체의 봉사에는 말과 행동이라는 두 가지 다른 형태가 존재한다. 그러나 말하는 것이나 치료하고 행동하는 것 둘 모두다 똑같이 강조되고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예수님에 의해 제자들에게 주어진 지시는 항상 행위에 선행하는 말이었다. 이것은 말과 행동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동체가 공동체의 말과 함께 특별히 행동해야만 하는 다른 사역들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고, 복음을 명백하게 선포(설교)하는 것이다. 또한 선포되어진 말씀이 세상속에서 빛을 발할수 있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 그리고 세상사람들이 복음을 들을수 있도록 복음증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잠든 교회를 깨우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공동체는 선교에 앞장서야 한다. 이 선교를 통하여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게 하여 그들 자신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증인이 되게 해야만 한다. 또한 궁극적으로 신학이 있어야 한다. 확실한 신학적 바탕위에서 사역을 행해야 한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기도의 사역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치유할수 있도록 목회상담등을 통해 목양해야 한다.. 이 모든 사역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하나님 말씀에 충성하는 자세를 요구한다. 또한 공동체의 봉사에는 봉사의 필드인 이 세상이 너무나 악하다는 것과 기독교인의 봉사의 역할을 국가가 대신 수행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기독교인들 스스로의 의식부족등의 문제점이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봉사를 멈춰서는 안된다. 이 모든 문제들 속에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는 하나님 나라의 희망을 가지고 예언자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먼저 공동체내의 진정한 교제를 재건하여 우리안에 있는 문제들을 먼저 해결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과 인간의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