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그리스도의 몸 

 

 

 

[Ⅰ]

 

 

1) 그리스의 몸 이해

 

호머(Homer)는 오직 시체만을 소마(soma: 몸 혹은 육)라고 부른다. 그는 오직 남의 몸(시체)을 볼 때만 몸을 보았으며, 살아 있는 인간을 전체로서 이해하는 단어를 알지 못하였다. 그에게서 몸은 외계의 사물이었다. 플라톤(Platon)은 몸(육)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몸(육)은 하늘의 영혼을 끌어내리는 것이고, 인간을 속박하는 악한 것이다. 죽음을 통하여 영혼은 해방될 수 있다(Socrates).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의하면 몸은 형상과 질료로 구성되어 있다. 영혼은 몸의 목적으로서 몸과 분리할 수 없다. 오직 몸 속에서만 영혼은 형상의 원리로 살아 있다. 스토아(Stoa) 사상에서는 혼을 육적인 것으로 보는 발전된 견해가 나타난다. 여기서 인간은 몸 안에서 있는 일체의 존재로 간주되고 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완성하는 행위, 가장 높은 가능성에 도달하는 행위로 영웅화되었다.  

 

2) 구약성서의 몸 이해

 

구약성서에서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서 전체적인 존재이다. 구약성서에는 육 혹은 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없다.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은 몸과 영혼을 분리하지 않았고, 형상과 질료를 구분하지 않았으며 대우주와 소우주의 구별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 후에 영혼이 계속 살아 있다는 플라톤적인 생각은 없다. 죽음은 몸과 영혼의 죽음이다.  

 

3) 신약성서의 몸 이해

 

신약성서의 인간 이해에 큰 기여를 한 자는 바울이다. 그는 몸에 관해 자주 그리고 아주 독특하게 말하였기 때문에 신약학자들은 이 개념의 해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바울의 몸 개념에 대한 신약학자들의 견해는 다양하다. 그 중에 몇 사람만을 소개하려고 한다.  

“바울신학이 동시에 인간학이기도 하다”고 역설한 불트만(R. Bultmann)은 바울의 몸 개념에서 인간 존재의 포괄적인 특성을 보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몸은 인간의 죽음 전이나 그 후에도 동일한 것을 표현하는 개념, 즉 인간 존재의 본질을 지시하는 개념이다. 몸은 신체의 형태나 신체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전인(ganze Person)을 의미한다. 바울에게서 몸은 외부로부터 본래적인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구성하는 본질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몸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곧 몸이다. 인간이 몸이라고 불리는 것은, 바로 인간이 자신을 자기의 행동의 객체로 만들거나 어떤 사건(체험)의 주체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몸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또 자기 자신과 거리를 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몸은 인간 존재의 역사성을 의미한다. 몸은 시간성, 역사성 속에 있는 인간을 가리킨다.(R. Bultmann, Theologie des NT). 

푹스(E. Fuchs)에 의하면, 몸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일관된 행동을 하도록 요구받는 인간을 표현하며, 인간 행동의 결단적 특성을 지시한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관된 행동의 결단을 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만약 이 결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간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부여한 피조적 본성을 그르치고 만다. 몸은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인간의 존재를 말한다(Ernst Fuchs, Christus und Geist bei Paulus. Eine biblisch-theologische Untersuchung, UNT H.23, Lribzig 1932). 

(E. Käsemann)에 의하면, 바울의 몸 개념은 인간의 외형적인 출현 방식을 의미한다. 몸은 창조자와 관계를 맺는 온 인간, 피조적 본성 안에 있는 인간,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지는 인간을 말한다. 몸은 인간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과 방향 속에 있는 전체적인 인간을 말한다. 바로 이 점에서 캐제만은 그의 스승 불트만의 견해에 동조한다. 하지만 그는 바울의 몸 개념을 초월적인 방향으로 취하는 불트만의 해석에는 반대한다. 캐제만에 의하면, 소마는 의사 소통의 능력, 세상에 속해 있는 현실을 지시한다. 바울이 인간의 몸됨을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세 가지다. 1) 하나님은 우리의 내면성에만 만족하지 않고, 우리가 몸으로 새로운 창조 안으로 들어가고 형제들을 위하여 봉사할 것을 원한다. 2) 하나님은 몸을 억압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몸 안에서 이웃과 만나기를 요구한다. 3)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세상의 일상적 생활 속에서 몸으로 순종할 것을 요구하며, 바로 이러한 몸의 순종을 통하여 이 세상을 통치한다(Ernst Käsemann, Leib und Leib Christi. Eine Untersuchung zur paulinischen Begrifflichkeit, BHTh 9, Tübingen 1933).      

슈바이처에 의하면, 바울은 몸을 경멸하는 열광주의자들에 맞서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개방성과 상호 교류를 가능케 하는 몸을 강조하였다. 몸은 자기 안에서 폐쇄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과 교회와의 대화와 사귐을 위해 열려 있는 인간의 존재를 표현한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의 삶을 표현할 때도 몸의 이미지를 사용하였다(E. Schweizer, Die Leiblichkeit des Menschen : Leben-Tod-Auferstehung, EvTh. 29. 1969).  

 

 

 

 

[Ⅱ]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것은 삼중적 의미, 즉 신학적-윤리적-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1) 신학적 의미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희망(종말적 잔치)을 선포하는 사도직(마 28:18 이하), 이를 대망하며 거행하는 성만찬(고전 11:23 이하), 그리고 형제적 사귐(마 18:20) 속에 함께할 것을 약속하였다. 더욱이 예수는 세상 안에서 고통당하는 자들과의 연대하는 가운데서 숨어 있는 방식으로 임재한다고 말하였다(마 25:31-46).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살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고 또 그 결합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들 상호 간에도 서로 일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기 위하여 종종 '그리스도 안(in Christ)'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그리스도의 통치'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통치'를 표현하는 바울의 어법이면서도, 또한 바울의 교회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그리스도들 상호 간의 일치를 표현하기 위해 바울은 몸의 개념(비유)를 훨씬 더 자주 사용한다. 바울에게서 특히 세례와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데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가 되는 사건이고(롬 6장), 성찬은 그 몸에 속해 있음을 축하하는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 예식이 친교와 일치해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한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친교, 일치, 교통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찬이 진정한 일치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즉 함께 나누어 먹지 않고 독점하거나 분열이 일어난다면, 진정한 식사의 친교도 없고 진정한 성만찬도 있을 수 없다(고전 11:17 이하).  

골로새서와 에배소서의 저자에게서 바울의 '그리스도의 몸'은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는 바울에게서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것으로 설명된다. 즉 여기서 그리스도는 보이는 교회보다 ‘더 큰 존재’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주적인 범위와 형태를 띠고 있으며, 온 피조물을 포괄한다. 즉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도 그리스도에 의한 만물의 갱신에 참여하고 있다. 만물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해되었다(골 1:15 이하).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새로운 창조의 공동체로서 만물 갱신과 화해(그리스도의 충만)를 대변하며, 자신을 넘어서서 하늘과 땅을 충만케 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 교회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사귐을 형성해야 할 임무도 부여받게 된다. 

 

 

2) 윤리적 의미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사건은 오직 세례와 성찬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은 신앙 가운데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Gabe)이지만, 그것은 매일의 윤리적 삶 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임무(Aufgabe)로 주어진다(롬 12:1-2). 바울에게서 그리스도의 몸 표상은 무엇보다도 교회를 향한 윤리적 교훈 속에 자리잡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열광주의자들과 싸워야 했다. 그들은 이미 지금 여기에서 구원을 받았고 신령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장차 없어질 무가치한 몸으로 무엇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 속에서 음란, 우상 숭배, 간음, 남창, 동성연애에 몰두하였다. 이들에 대해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절대로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6:10 이하). 몸은 개인의 것이고 그러므로 몸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 열광주의자들에 대해 바울은 하나님이 값을 치르고 그들을 사셨기 때문에 몸의 주인이 그들이 아니라고 단호히 선언하였다. 그리스도인의 몸은 소유하고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요, 성령의 전이다.  

 

3) 정치적 의미

 

몸은 그리스와 로마 사회에서 종종 사회와 국가, 우주의 일치를 강조하는 데 유용한 비유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몸의 비유는 종종 평민의 불만을 무마하려던 귀족들의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사용되었다. 즉 그것은 전체 속에서 개개인의 일탈을 막고 현상을 유지하려는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에 반해 바울은 개개 지체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약한 지체들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강한 지체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기 위하여 몸의 비유를 사용하였다(고전 12:14-26 참조). 고린도 교회 안에서 일어난 차별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하여 바울은 지체들 간의 일치(동고동락)를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약한 지체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강한 지체들보다 더 귀하게 여길(요긴하게 여기고 귀한 것으로 입히고 아름답게 꾸며줄) 것을 역설하였다. 이처럼 바울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악용되던 몸의 비유를 새로운 대안 공동체의 이념으로 역전시켰다(김재성, 제국적 지배 이데올로기와 바울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공동체 해석, 신학사상, 2000/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