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성령의 피조물 

 

 

   

 

고대 기독교의 한 축복의 기도문은 다음과 같이 기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이것은 그리스도에게 '은혜'를 돌리고 하나님에게 '사랑'을 돌리는 반면, 성령에게는 '사귐'의 은사를 돌리고 있다. 여기서 성령의 내적 본질은 분명히 사귐의 능력에 있음이 천명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영으로서의 하나님은 공동체적 신성(Fr. Hölderin), 서로의 사이에서 오가는 하나님(J. V. Taylor), 나와 너의 신적 통일성(L. Feuerbach)이라고 말할 수 있다(J. Moltmann, 김균진 역, 생명의 영, 대한기독교서회, 1993, 291쪽 이하).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게 개방시키고 그와 사귐을 나누게 하는 자이다. 성령은 하나님을 지향하는 삶, 생명과 봉사, 기쁨과 책임을 선사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은 육, 즉 인간의 갈망과 자기 신뢰와 투쟁하는 영이다(H. J. Kraus, Heiliger Geist, Kösel, 1986, 106ff).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롬 8:14ff, 갈 4:6-7), 특히 기도를 통해서 그와 사귐을 나누도록 활동한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우리의 삶 한가운데서 살고자 하며 우리를 무척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E. Schweizer, 김균진 역, 성령, 대한기독교서회, 1982, 145쪽). 

 

또한 성령은 공동체를 창조하는 영이다. 영광을 받은 주님에 의해 전달된 하나님의 영은 교회의 존립 기초요 생명 원리이며 활동 능력이다. 교회의 모든 원천, 존재, 존속은 영의 덕택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성령의 피조물'이다(H. Küng, 교회란 무엇인가? 128쪽 이하). 그래서 칼 바르트는 "성령이 각성시키는 활동 속에서 교회는 소집되고, 성령의 생동시키는 활동 속에서 교회는 성장하고 보존되고 갱신되며, 성령의 조명하는 역사 속에서 교회는 세상으로 파송된다"고 말한다.(K. Barth, KD Ⅳ/1, 718ff, Ⅳ/2, 695ff, Ⅳ/3, 780ff). 몰트만에 의하면, 교회는 역사적 그리스도의 공동체로서 또한 종말적인 성령의 창조이기도 하다. 성령은 바로 이 사귐이다(J. Moltmann,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47쪽). 꽁가르에 의하면, 성령은 공동체의 원리로서 교회로 하여금 하나가 되게 한다. 또 성령은 성화의 원리로서 교회를 거룩하게 한다. 그리고 성령은 보편성의 원리로서 모든 시대를 통하여 교회로 하여금 전진하도록 한다. 또한 성령은 교회를 사도적 원리 안에서 보존한다(Y. Congar, Der Heiliger Geist, Herder, 1982, 167ff). 

성령은 교회에 풍성한 은사를 선사한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가 수여되는 목적은 모든 사람의 유익, 교회의 건덕(고전 12:7), 즉 사귐에 있다. 그러므로 만약 성령이 사귐으로 인도하지 않고 공동체를 전체로 형성하지 않는다면, 거기에 하나님의 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성령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여 은사를 가진 자기 자신을 과시하며, 교회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자기의 영역을 만드는 자는 성령을 받은 자가 아니라, 육의 사람(고전 3:1ff)이다(E. Schweizer, 성령, 152ff). 

 

고대교회는 성령에 의해 창조되는 이러한 사귐을 '코무니오 상토룸'(Communio Sanctorum)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소집되고 생동케 된 인간들의 활동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귐이다. 이것은 성도들, 즉 성령에 의해 거룩하게 된 인간들의 사귐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거룩한 것, 거룩한 관계, 거룩한 은사, 거룩한 임무, 거룩한 직분, 거룩한 역할 안의 사귐이기도 하다. 이것은 신앙의 인식과 고백, 감사와 찬양, 회개, 기쁨, 기도, 세상과의 관계에서 겪는 고난과 투쟁, 봉사, 희망, 예언, 예배 안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사귐은 교회 건립의 사건으로서 죄인들이 그들의 행동과 본성 안에서 이러한 거룩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확증하는 사건이다(K. Barth KD Ⅳ/2, 726). 

이런 사귐 안에서는 조건 없는 상호 인정과 연대성이 실현된다. '카리스마적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사귐은 구분 없는 획일성이나 계급적 억압을 배제한다. 은사의 다양성은 실로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포괄적 은총의 단일성의 표현이다. 구분 없는 평준화는 단일성보다는 오히려 황량한 공허를 가져다 준다(W. Huber, 이신건 역, 교회, 한국신학연구소, 71). 일치와 마찬가지로 다양성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이 다양성은 일치를 전제로 해서 교회나 인종이나 그밖의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일치는 다양성을 풍성하게 하여서, 획일성으로 전락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교회는 우주적인 교회가 된다(세계교회협의회의 제5회 '신앙과 직제' 세계대회의 토의문서 'Towards Koinonia in Faith, Life and Witness': 코이노니아와 교회일치운동, 박근원 역, 기독교사상, 1993, 8월호, 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