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교회의 임무와 봉사

 


이 세상 속에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임무는 무엇인가? 세 가지 관점, 아니 세 가지 관계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1. 하나님과의 관계

(1) 예배: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을 향하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을 향하는 것은 인간다운 본질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신과 사귐을 나누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을 창조하였기 때문이며, 인간도 하나님과의 사귐 안에서 참 기쁨과 평화, 소망과 영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臨在)를 경험하기 위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 인간은 비단 거룩한 날 동안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아니다. 매일의 삶은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예배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일상적 삶의 한복판에서 영광을 받기를 기뻐하기 때문이다.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은 또 한 자신의 영을 통하여 항상 세계 안에 임재하기 때문에 예배의 시간과 공간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한 주간 중의 한 날을 특별히 거룩한 날로 여기고 하나님의 더 깊은 임재 안으로 들어간다. 안식일은 창조의 마지막 날로서 만물이 하나님과 더불어 안식하고 교제하고 기쁨을 누리도록 약속된 날이다. 그리스도인들 에게서 이 날은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한 날(주일)로 이전되었지만, 안식일의 근본정신이 퇴색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일은 안식의 날이면서도 동시에 생명의 재탄생을 축하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축제일, 희망의 날이다.

(2) 찬양: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는 주된 통로는 바로 찬양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면서 즐거이 노래한다. 비록 그리스도인들도 여느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늘 갖가지 무거운 짐을 지고 살지만, 그들과는 달리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무리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짐을 지기 때문이요, 만사를 통하여 그의 거룩한 뜻을 이루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은 통회하는 마음과 기쁜 찬양을 통해서만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들이 무한히 열린다. 상한 마음과 몸이 치유된다. 아울러 찬양을 통하여 모든 피조물들은 다 함께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때문에 인간들 간의 깨어진 관계만이 아니라 자연과의 어긋난 관계도 회복된다. 그리고 찬양 속에서는 천국의 비밀이 크게 열린다. 왜냐하면 천국이야말로 사랑과 예배와 찬양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찬양 속에서 우리는 장차 올 천국을 미리 맛보고, 널리 전파한다.

(3) 기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행해야 할 또 하나는 중요한 일은 기도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믿음의 최상의 실천이고,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때문이다(칼빈). 하나님은 자기에게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기 때문에(시편 145:18),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은 졸거나 자지 않기 때문에(시편 121:4) 우리의 간구를 듣고 응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확신을 갖고 기도 해야 한다. 기도의 모범은 그리스도가 가르쳐 준 주기도문이다. 이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가끔 참조할 수 있는 여러 기도 중의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늘 따라야 할 기도의 표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중에 우리의 소원을 아뢰기 전에 하나님의 거룩함,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먼저 구해야 한다.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성취하는 방법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현하는 통로이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물질적인 것(일용할 양식)과 사죄, 그리고 시험과 악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빌 수 있다. 그리고 기도는 그리스도들인이 자신만을 위하여 비는 이기적인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제사장적인 백성이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의 안녕을 위하여, 인류와 만물의 고통을 대변하여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가 그리스도인들이 늘 실천해야 할 행동이듯이, 실천적인 행동도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여야 한다. 바울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한 것도 이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고, 생활로 기도를 드려야 한다. 이럴 때에만 우리의 기도는 공허한 주문이 되지 않고 생활의 능력이 될 것이다. 이럴 때에만 기도는 악한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 맞선 효과적인 공격이 될 것이다. 기도는 두 손을 맞잡고 세상에 대해 봉기하는 것이다(바르트).


2. 세상과의 관계

(1) 선교: 이 세상과의 관계에서 교회가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선교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지상명령인 선교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9-20). 선교의 근거는 바로 바로 하나님의 의지 자체 안에 있다. 즉 하나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듯이, 아들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낸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한복음 17:23). 하나님이 성령을 보내듯이,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에 보낸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 이처럼 선교는 언제나 삼위일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다.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이다. 교회는 선교의 도구일 따름이다. 만약 교회가 이 사명을 외면하면, 교회가 세상에서 존재해야 할 가치는 사라진다.

(2) 사회비판: 악한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하나님과 화해된 교회는 악한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다. "하나님과의 평화는 악한 세상과의 불화를 의미한다" (몰트만). 교회는 세상 위에서 둥둥 떠다니며 세상 밖의 나라로 도피하는 방주 가 아니라,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누룩이요, 어둠을 밝히는 빛이요,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내는 소금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불가피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끝까지 거부하는 이 세상의 어둠의 세력을 지적하고 비판할 사명을 갖는다. 구약성서의 예언자들과 예수 그리스도, 그의 제자들은 고난을 무릅쓰고라도 악한 세상을 향하여 회개를 촉구했다. 사회비판이 많은 고난을 초래한다고 해서, 사회비판이 교회의 양적 성장에 해롭다고 해서, 만약 교회가 악한 사회를 비판하기를 주저한다면, 맛을 잃은 소금처럼 아무 소용도 없게 될 것이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좁은 길을 가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고난도 참 교회를 나타내는 표지이다(루터). 그러므로 고난을 회피하기 위하여 악한 세력에 대해 침묵하고 이를 방조하고 이와 타협하는 교회는, 아무리 크게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참다운 교회는 아니다. 이 런 교회는 역사의 심판과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견디지 못할 것이다.

(3) 사회봉사: 교회가 사회비판을 감행하는 것은 영웅주의나 비관주의에 빠져서가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 나라의 희망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비판이 무차별적인 공격이나 무조건적인 파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교회는 세상 안에서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발견하고 양육함으로써, 이들과 함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는 선한 사회, 아니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진지하고도 열성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나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있다" 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정의와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곳이라면, 이 땅에서도 정의가 가능하다. 평화가 가능하다. 사랑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땅에 가까이 온 하나님의 나라를 지시하고 앞당기기 위하여, 불의가 있는 곳에 정의를, 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성. 프랜 시스) 퍼뜨리고 세우도록 힘써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교회는 가난하고 갇히고 헐벗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을 섬겨야 한다. 교회는 세상에 맞서서 싸우는 대안적(對岸的) 공동체(로핑크)만이 아니라, 세상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대안적(代案的)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3. 그리스도인들 간의 관계

(1) 신학: 교회는 자신이 선포하고 가르치고 행해야 할 내용을 그 스스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신앙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았다. 이 유산은 성서와 성서 주석, 신앙고백과 신앙변증, 교리적-실천적 해석 등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교회는 과거의 신앙유산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그리고 적합하게 전달해 줄 사명을 갖고 있다. 여기에 신학의 필요성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신학은 교회는 한 기능 중의 하나다. 물론 이 일은 신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의 일이지만, 신학자들의 전뮤물만은 아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신학자이다(만인 신학자직). 그렇지만 신학연구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교회는 전문적인 신학자들을 지원하고 양육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교회는 신학을 통하여 자신을 올바로 세우고 보존하며, 또 잘못된 모습을 개혁할 수가 있다.

(2) 교육: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할 사명을 갖고 있다(마 28:19-20). 선교는 제자양육을 낳고, 또 제자양육은 선교를 가능하게 한다. 신앙과 신학은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는 교육적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 교육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 중의 하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 교육적 효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교회는 모범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3) 친교: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사귐이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을 통해서 그때그때 마다 일어나는 '신앙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신앙과 생활의 유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형태'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모범적인 사회로 드러나야 한다. 교회의 사귐은 세례로부터 시작되고, 성찬을 통하여 보존되고 강화되고 갱신된다. 그러나 교회로부터 시작되는 이 사귐은 폐쇄적인 교회 안에만 제한되지 않고, 온 우주에까지 미친다. 즉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온 피조물의 사귐을 대변하고 실현한다.

(4) 설교: 그리스도인들은 예배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왜냐하면 예배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의미에서만 예배는 또한 인간의 사건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 성서에 증언되어 있고,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살아 있는 말씀이 되지만, 인간의 증언에 의존되어 있다. 그래서 교회는 말씀의 선포자를 세운다. 물론 누구나 성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거룩하고 사도적인 교회 안에서, 훈련된 설교자의 해석을 통해서 우리는 권위 있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

(5) 상담: 교회는 곤궁에 처한 그리스도인들과 이웃들을 돌보아야 할 사명이 있다. 이것도 주로 부름을 받은 목회자들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기도 하다. 인간과 인간의 공동체는 허약하여 깨어지고 상처를 입기 쉽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 안팎의 약한 지체들을 감싸주고, 격려하며, 지원해 주어야 한다.

(6) 봉사: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가 있지만 우리의 손을 통해서 일을 하듯이, 우리도 이웃의 손이 되고 발이 되어 주어야 한다. 세상의 주님이지만 비천한 종으로 온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우리도 서로 섬기고 나누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는 성큼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지배자나 주인이 아니라 종과 청지기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직책은 오로지 섬김으로부터 생겨나고, 섬김을 목표로 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지배하기 위해서 섬기지 않으며, 섬기기 위해서 지배하지도 않는다. 교회의 모든 직책과 활동은 오직 하나님 섬김(예배)과 인간 섬김(봉사) 안에서만 거룩한 진가를 발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