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의 교회론

김동수[성산 효도대학원 대학교 교수]

 

I. 들어가는 말

 

본 소고는 신약 성서 요한 복음에 나타난 교회론에 관한 연구이다. 이 주제는 20세기 후반 요한 신학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이슈였다. 그 논쟁의 이슈는 크게 세 부분으로 대별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요한 복음에 교회론적 개념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 다음으로는 그것이 존재한다면 그 특징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 마지막으로는 그러한 특징이 소위 요한 복음이 생성되고 읽힌 요한 공동체와는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위의 세 이슈를 포괄적으로 다룬 전문 서적이 없었고, 또한 학자들이 요한 교회론을 다룰 때 교회론에 관한 본문을 다 고려하면서 다루기보다는 일부분만을 이용해서 요한 교회론의 특징을 제한적으로 기술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한 복음에 나타난 교회상에 관한 모든 본문을 다루면서 요한 복음의 교회론에 관한 가장 중요한,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려 하는 것은 의의가 있을 것이다.

본인은 본인의 박사 학위 논문에서 위의 세 질문에 답하려 했다.

 

2. 요한 복음에 공동체적 사상이 존재하는가?

 

요한 복음 기자에게 교회론이 과연 존재하는가? 이 질문이 나오게 된 것은 요한 복음서에는 교회(εκκλησια)라는 단어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혹은 새 이스라엘 같은 초대 교회의 전통적인 교회론적 용어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의 학위 논문은 요한 복음 교회론의 유무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그 이유는 요한은 다른 신약 성서 기자들과 그 교회론적 용어를 공유해야 될 이유가 없으며, 요한은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용어와 사상으로 그의 교회론을 전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은 구약 성서의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목자와 양'(10:1-18), '포도나무와 가지'(15:1-17) 등의 이미지를 신약의 교회의 표상으로 그리고 있으며, 제자들의 공동체(8:31; 13:35; 14:12; 15:5; 20:19-23), 제자들의 하나됨(17:20-23),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임(1:12; 11:52), 성령 공동체의 모임(14:6-7, 25-26; 15:26-27; 16:7-11, 12-15) 등으로 교회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신부로서의 교회(3:29), 교회의 씨로서의 밀알(12:14)등의 신약 동시대의 전통적인 교회 용어도 요한 기자에게 전혀 낯설지는 않다.

요한 복음서에서 교회론적 이미지와 사상의 유무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요한 복음에서 교회론이 존재한다면, 요한 복음 기자의 사상 안에서 교회론의 중요성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1) 본인의 연구 결과는 요한 교회론은 요한 신학의 주요 주제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물론 요한 신학에 있어서 핵심 주제는 예수의 그리스도이심, 하나님 아들되심에 관한 것, 즉 기독론이다.

요한 복음서의 소위 '실현된'(현재적) 종말론도 요한 복음서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자들은 요한 복음의 교회론이 요한 복음의 다른 신학적 주제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종합적으로 밝혀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본 연구는 요한 복음의 교회론은 먼저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서 기독론과 교회론을 떼어 내기가 때로 불가능할 정도이며, 요한 복음의 교회론은 요한 복음의 현재적 종말론과 연관되어 있어 교회는 현재의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된 장소임이 강조되고, 요한의 교회는 성령론적이서 교회의 시작이 보혜사의 오심으로 시작되고 교회의 모든 교회의 사역은 성령의 사역과 연관되어 있음을 밝혔다.

 

3. 요한 교회론의 특징은 무엇인가?

 

요한 교회론의 특징은 무엇인가? 요한 교회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교회론이 철저하고, 예외없이 그리스도 중심적이라는 데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다.2) 모든 교회론적 이미지가 일관성 있고 철저하게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목자와 양'과 '포도나무와 가지'의 이미지를 예로 들면, 이 두 이미지는 모두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상징하던 것으로서 요한 복음에서는 목자와 포도나무가 각각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공관 복음서에도 이러한 이미지가 나오지만(마 18:12-14; 눅 15:3-7; 막 12:1-11 병행 구절) 요한 복음에서처럼 이 구절들이 예수의 메시야성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구약과 공관 복음서에서 포도원이 이스라엘을 상징한다면 요한 복음서에는 예수 자신이 참 이스라엘이고, 이런 의미로 보면 예수가 곧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교회를 형성하는 주 구성원이 신자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이고 신자는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목자의 양으로서 교회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물론 신약에서 그리스도 중심적 교회상이 요한에게만 독특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바울의 몸 교회론(고전 12:12-27)에서도 전형적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중심성의 정도에 있어서 바울은 요한 만큼 철저하지 못하다. 요한의 이미지에 있어서는 예수 자신이 교회인데 반해, 바울은 그리스도가 머리로서 몸의 지체와 함께 교회를 형성한다.

이와 관계되어 요한 복음 교회론의 두 번째 특징은 요한 교회론은 그리스도와 신자 간의 개인적 관계를 교회 형성의 또 하나의 축으로 중시되고 있다는 데 있다. '목자와 양'에서는 상호 앎의 관계로, 목소리를 인식하는 관계로 그리스도와 신자 각자의 밀접한 관계를 묘사한다. 양으로서의 신자가 목자로서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은 양이 목자의 음성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목자도 양 한 마리 한 마리의 독특한 목소리를 인식하며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부른다. 이들의 관계는 '알다'(γινωσκω)라는 동사로 표현되는 아주 친밀한 관계이다. 목자가 양을 알고 양이 목자를 아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까지 그 관계의 친밀성을 표현한다(10:14-15). 그리스도와 신자와의 개인적 연합에 대한 강조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이미지에서는 더욱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어떤 가지도 포도나무와의 생명적 접촉 없이 생명을 유지한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자도 그리스도와의 계속적, 개인적, 생명적 관계 없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생명성을 유지할 수 없다. 신자는 그리스도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신자와의 관계를 표현한 동사는 '거하다'(μενω εν)라는 동사인데 이것은 '알다 '(γινωσκω)가 앞에서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에 상호적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와 신자 개인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요한의 교회론적 이미지는 그리스도와 신자의 수직적 관계를 강조한다. 이것 또한 바울의 몸 교회상과 비교하면 그 특징이 분명해진다. 여기서 바울의 관심은 신자 상호 간의 관계, 즉 수평적 관계를 다룬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요한 교회론 이미지는 그 수직적 관계에 집중되어 있어 교회 안에서 신자들 간의 수평적, 공동체적 개념을 잃어버렸다고 한다.3) 부정하지 못할 것은 요한 복음서의 교회론적 이미지에는 수평적 관계보다 수직적 관계가 더욱 더 강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직적 관계를 강조한다고 반드시 수평적 관계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예컨데, 포도나무와 가지(15:1-8)의 이미지의 주위 문맥(15:1-7)에서 그리스도인 상호 간의 사랑의 관계, 친구의 관계가 또한 강조되어 나타난다. 특히 포도나무 비유의 핵심구인 '거하다'(μενω εν)는 이 넓은 문맥에 걸쳐 계속 나타나서 포도나무 비유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알기 어려울 정도이다. 즉 여기에서 수직적 관계는 수평적 관계와 서로 관계되어 있고 이런 의미에서 포도나무의 이미지는 그 수평적 관계, 그리스도인 상호 간의 공동체적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요한 교회론의 세 번째 두드러진 특징은 요한의 '민주적 교회 직제론'일 것이다. 물론 요한 복음서에는 요한 복음 원저자의 것인지 논란이 되는 21장을 제외하고는 어떤 교직제도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공관 복음서 특히 누가에 있어서는 새 이스라엘을 형성하는 주요 직책으로서 나타나는 '사도'(αποστολο?)라는 전문 용어도 요한 복음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4)

요한 복음서에 '십이'(제자) 라는 말은 언급되어 있지만(6:67, 70, 71; 20:24), 이들을 지칭 할 때도 '십이 제자'라는 말보다 '제자'라는 말이 선호된다. 요한 복음서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동등하게 제자로 묘사된다. 여자가 제자라고 명시적으로 기록된 경우는 없지만 요한 복음에 나타나는 사마리아 여인(4:7-42), 막달라 마리아(19:25; 20:1-2,

11-18), 마르다(11:1-44), 베다니의 마리아(12:1-8), 예수의 어머니(2:1-11; 19:25-27) 등의 여인들은 남자들과 대등한 신앙 고백을 하고 선교활동을 한다. 한 마디로 말해 요한 복음이 이해하는 직제는 근본적으로 기독교 공동체 안에 그 어떤 지배 그룹이나 특권층이 없는 민주적 교직제라 하겠다. 이러한 직제 이해에 의하면 그 신분으로서 구별되는 어떠한 제 2급의 신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교회 직제 이해는 요한 복음과 동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여겨지는 목회 서신서들이나 2세기 초 문서인 이그나시우스의 편지들에 나타난 교직 이해와 상당히 대조되는 것이다. 목회 서신서에 나타난 교직은 감독, 장로, 집사 등이 어느 정도 위계 질서의 관계로 나타나며(딤전 3:1-13 참조), 목회 서신서에 나타난 교회 안에서의 여자들의 위치는 그리 높은 것이 아니다(딤전 2:8-11 참조).

이러한 위계 질서적 교직 이해는 이그나시우스의 편지에 극단화되어 나타나는데, 요한 복음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와 동일시된다면, 이그나시우스의 편지에서는 감독이 곧 교회와 동일시된다( "감독이 있는 곳에만 교회가 존재하고"<Ignatius, Letter to the Smyrnaeans 8:1>, 감독이 없으면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Ignatius, Letter to the Trallians 3:1>).

 

4. 요한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였나?

 

1) 요한 공동체는 섹트였는가?

 

위에서 고찰했듯이 요한 교회론의 특징은 신약에서 유일하지는 않을지라도 독특하다.5) 이러한 요한 교회론은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전통적으로는 요한 신학의 독특성은 요한 복음 저자의 개인적, 문학적, 신학적 특이성에 기원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요한 신학의 특징을 요한 복음서 기자 개인의 신학적 특징을 넘어서 요한 공동체의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연관된 것으로 널리 이해되면서6) 많은 요한 신학자들은 요한 복음의 독특한 교회론은 요한 공동체의 섹트적인(sectarian) 특징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먼저 섹트라는 말의 정의가 요구된다. 왜냐하면 요한 공동체가 섹트였는가? 아니였는가?는 그 말의 정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섹트는 일반적으로 동일 종교 집단 내의 다른 교파에 대해서 혹은 일반 사회에 대해서 상당한 정도의 대립 상태에 있는 집단을 말한다. 주로 사회에 대한 것이라면 요한 공동체뿐만 아니라 1세기 교회 모두가 어느 정도 섹트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다.7) 여기서 본인이 질문하려고 하는 것은 요한 공동체가 동시대의 다른 기독교 공동체와 관계해서도 섹트였는가?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요한 공동체가 그 신학적 특성 때문에 동시대의 다른 기독교 공동체와는 완전히 대립 혹은 소외되어 서로 대화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학자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발터 레벨(Walter Rebell)은 요한 공동체가 동시대의 주류 교단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다는 것은 허구라고 말한다.8) 반면 데이비드 렌스베르거(David Rensberger)는 요한 공동체가 동시대의 유대교와 관계해서는 섹트였을지라도 동시대의 주류 기독교 교단과 관계해서는 섹트가 아니었다고 한다.9)

우리가 초대 교회에서 한 기독교 공동체가 섹트였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공동체가 다른 기독교 공동체와 구별되는 자인식이 있음이 확인되어야 한다.10) 둘째, 그 공동체의 신학과 이념이 다른 공동체의 그것들과는 상당한 정도로 다른 것이 확인되어야 한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러한 독특한 자인식으로 인해 그 공동체가 주류 교단과 적대 관계에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요한 복음 본문에서 위의 사실을 확인하고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 복음은 초대 교회 안에서의 여러 상이한 기독교 공동체 사이의 상호작용을 기록하기 위한 문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교훈을 통해서 독자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은 요한 복음 저자가 예수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도 자신의 공동체 내부의 문제와 무관하게는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한 공동체 문서인 요한 삼서에서 장로와 디오드레베 간의 기독교 공동체 내부의 논쟁이 있었음을 볼 때,11) 어떤 형태로든 요한 공동체의 내부 문제가 요한 복음서에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12) 특히 요한 복음에만 베드로와 그 사랑하는 제자가 같이 등장하여 상호 작용을 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한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상징성이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베드로와 그 사랑하는 제자가 요한 복음에만 자주 같이 등장하는데 이 두 인물은 각각 자기 공동체의 대표로 나타난다. 그 사랑하는 제자가 요한 공동체를 대표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사랑하는 제자는 요한 공동체의 설립자이며, 요한 복음서의 저자이다

(21:24). 그는 예수와 친밀한 관계를 향유하는데(요 13:23-24), 이것은 요한 공동체와 예수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10:14; 15:5; 17:23 참조). 베드로는 공관복음(마 16:16-19; 막 8:27-29)과 요한 복음에서(1:42; 6:68; 13:6; 20:2; 21:2) 공히 12사도의 대표로 등장한다.그러므로 요한 복음서에서 베드로는 사도적 공동체의 상징 혹은 대표로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은 요한 복음에만 이 두 제자가 예수의 중요한 사역 현장에 계속해서 나타나면서 상호 미묘한 경쟁 관계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13:21-30; 18:15-18; 20:1-10; 21:1-25).

혹자는 요한 복음에서 베드로와 그 사랑하는 제자의 관계를 악의적 혹은 적대 관계로 해석하고13) 혹자는 우정의 관계로 보는데14), 진실은 양극단의 중간 어디엔가 있는 것 같다. 요한 복음서에서 베드로는 제자 무리의 대표성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베드로는 부정적인 묘사든지 긍정적인 묘사든지 제자의 대표이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제자는 그의 통찰력에 있어서 베드로보다도 앞서는 것으로 요한 복음서에는 묘사되어 있다(20:8; 21:7). 이러한 통찰력은 그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와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13:23-25; 19:26-27; 21:20). 즉 요한 공동체는 그 사랑하는 제자를 통하여 자기 공동체가 예수와의 친밀성에서 사도적 공동체보다 뛰어남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한 공동체의 자인식은 사도적 공동체를 부인한다거나 적대적인 관계로 귀결되지 않는다. 베드로를 대표로 한 사도적 공동체는 여전히 주류 교단이며 그 신학과 이상은 다를지라도 계속해서 교재(κοινωνια)의 악수를 나누어야 할 형제로 인식된다.

이와 같은 고찰로 볼 때 요한 공동체가 신약 시대의 다른 기독교 공동체와 연관하여 섹트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스카 쿨만(O. Cullmann)의 말을 빌리면 요한 공동체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독립성을 의식적으로 주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공동체와 상호 공동 이익을 위하여 같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또한 인식하고 있다.15) 요한 공동체를 섹트로 보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요한 신학이 신약에서 독특한 것이긴 하지만 신약의 다른 부분과 전혀 조화를 이룰 수 없을 정도의 독특성은 아니라는 데 있다.16) 요한 복음의 신학과 신학의 다른 부분과의 신학을 비교 연구한 최근의 논문들은 요한의 신학이 신약 신약의 다양성 속에서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신학이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바레트(C. K. Barrett)는 최근에 사도 행전과 요한 복음을 종말론, 성령론, 교회론, 기독론의 주제로 비교한 결과 두 문서는 상당한 정도의 유사성이 있음을 발견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요한을 기독교 전통의 일반 흐름 내부에 포함시켜 이해하는 것이 정당하고 중요하다. 아마도 요한 복음서 기자는 종종 주장되어왔던 것처럼 그렇게 외로운 존재는 아니었을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요한 공동체가 비협조적이고 유리된 공동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비협조자 라고 해서 모두가 다 주류 교단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요한 공동체를 1, 2세기 기독교 역사와 흐름 속에 넣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17)

무디 스미스(D. Moody Smith)도 요한 복음서와 공관 복음서를 비교하면서 요한 복음서가 매우 독특해서 어떤 측면으로 외경 복음서(apocryphal gospels)와 연결점이 있지만, 그 신학의 일관성의 유지 등 외경 복음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오히려 정경의 복음서들과 접촉점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18)

 

2) 초대 교회 갱신의 신학으로서의 요한 교회론

 

(1) 신약 시대 기독교 공동체의 다양성

 

초대 교회에는 다양한 성격의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했었다. 즉 신약 시대에는 하나의 정통적인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서로 다른 입장의 기독교 공동체가 다양성 속에 서로 공존, 협조, 때로는 긴장 관계에 있었다.

사도 행전에 기록되어 있는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도 이미 헬라어를 말하는 신자들과 히브리어를 말하는 유대인의 분파가 발생한다(행 6:1). 처음에 기독교 공동체가 출발한 것은 예수를 따르는 무리인 제자 무리에서였다.

지미 던(James D. G. Dunn)은 이 공동체의 특징은 종말론적이며, 따름의 원리가 강조되었고(막 1:17; 2:14; 10:21; 눅 9:57-62),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었고, 예수 자신에게 그 중심이 있었다고 잘 요약한다.19) 제자들의 무리는 오순절 이후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이룬다. 이 예루살렘 교회의 특징은 열정적인 특징으로 출발하여, 교회 안에 직제와 기구를 갖추게 된다. 예루살렘 교회가 핍박을 받아 교인들이 흩어지면서 각 지역과 지도자에 따른 다양한 공동체가 출현한다. 요한 공동체도 그 다양한 공동체 중 하나였으며 1세기 말 교회 내외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 신학을 전개해 나갔다.

 

(2) 요한 교회론: 교회 갱신의 신학

 

앞에서 요한 공동체는 1 세기말 다른 기독교 공동체와의 교류 속에 자기의 신학을 전개하였음을 논증하였다. 그러면 요한 공동체가 요한 복음서를 통해서 동시대의 다른 기독교 공동체들에게 들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것인가?

우선 베드로와 그 사랑하는 제자가 같이 등장시켜 상호 미묘한 관계로 계속해서 나타나게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의도가 숨어있는 것 같다. 첫째, 베드로와 그 사랑하는 제자가 나란히 등장하는 모습을 통해서 요한 공동체도 사도적 공동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공동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려 한 것 같다.

둘째, 더 중요한 것은 요한 공동체는 요한 복음서를 통해서 사도적 공동체에게 갱신의 목소리를 내려 한 것 같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무리라는 개념에서 멀어지는 것을, 또 그와의 개인적 친교에서 멀어져 가는 것을 요한 공동체는 경계한 것처럼 보인다. 비록 요한 공동체는 베드로로 대표되는 사도적, 주류 기독교 공동체와 동반자임을 주장하지만 예수와의 친밀한 관계, 그의 뜻을 깨닫는 것에는 항상 우위성을 주장하는 데서 이러한 입장을 암시받을 수 있다. 이것은 1세기 내의 기독교가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교제를 통해서 그 생명성을 회복하자는 교회 갱신의 운동이었다.

이러한 교회 갱신의 신학은 요한 복음서가 기록된 1세기말의 교회적 상황을 관찰해 보면 분명해 진다. 1세기 말의 교회는 점점 더 기구화(institutionalization), 보수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미 고찰한대로 교회는 예수를 따르는 무리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주교, 장로, 집사 등이 직제의 서열로 존재하는 양상을 띤다(딤전 3:1-13 참조). 이러한 경향성은 2세기 초 중반 이그나스우스에 의해 극단화되어 나타나는데, 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연합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독이 곧 교회와 동일시된다.20)

비록 암시적이기는 하나 요한 복음서는 위와 같은 교회적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다. 첫째, 요한 복음에 의하면 교회는 예수와의 생명적 관계 없이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 그것도 누구의 중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 신자의 예수와의 직접적인 생명적 관계를 통해서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양의 목자이신 예수는 양 하나 하나의 이름을 부르며 양도 이에 호응하여 따라 간다(요 10:3-4). 요한 교회의 표상인 포도나무와 가지(요 15:1-8)의 관계도 바울의 교회상인 머리와 몸(고전 12:12-27)의 관계보다도 밀접하다. 바울의 교회상이 교회 안에서의 은사의 다양성에 있다면, 요한의 강조점은 교회 안에서 각 신자의 예수와의 생명적 관계에 있다. 요한에 의하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고 결국 말라 불에 살라져 버리게 된다. 요한은 더 나아가 이러한 신자와 예수와의 생명적 관계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의 관계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요 17:20-23 참조) 교회의 구성 요소 중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요한 공동체가 우려했던 바는 교회가 예수와의 생명적 결합에서 멀어져 점점 더 기구화, 직제화 된다는 데 있었다. 이러한 것은 요한의 교회 직제 이해에서도 볼 수 있다. 요한에 의하면 교회 안에서 가장 중요한 명칭은 '제자'였다. 그래서 요한 복음서에만 사도라는 명칭이 나오지 않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한 복음에서는 사도 혹은 12제자가 많은 무리의 제자와 구별되어 나타나긴 하지만(요 6:66), 12 제자도 '사도' 혹은 '12제자'라는 말보다 제자라는 말이 더 선호되어 불린다. 여자가 제자로 명명된 적은 없지만 요한 복음서에서 여자는 남성 제자와 거의 동일한 신앙 고백과 선교의 역할을 담당한다(4:7-11; 11:1-44; 19:25; 20:1-2, 11-18). 또한 교회에서도 어떤 직책이나 교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신도 각자에게 임하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가장 중요하다(요일 2:20, 27). 즉 요한 공동체에게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교회 안에는 직제에 따른 신앙 등급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만약 구별이 있다면 신자 각자와 예수와 얼마나 친밀한 관계인지 또는 신자 각자가 얼마나 예수를 사랑하는 지에 의해서 구별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한 신학은 동시대 교회의 흐름에 도전하는 것으로 이것은 당시에 일종의 개혁 운동, 교회 갱신 운동의 하나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단 사상이나 쿰란 공동체와는 다르게 요한 공동체는 다른 기독교 공동체의 사도성을 인정하면서 자기의 개혁적 목소리를 낸, 일종의 내부의 개혁운동으로서 1세기 말 다양한 기독교 공동체 중의 하나였다.

 

5. 결론

 

본 소고에서는 요한 교회론의 유무와 그 특징, 그 생성된 공동체적 배경을 다루었다. 요한복음 기자는 그 나름대로의 용어와 방법으로 교회 공동체적 사상을 그의 다른 신학 사상과 함께 전개했다. 요한 교회론은 그의 사상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아니었을지라도 결코 부수적 주제는 아니었다. 요한 복음의 교회론은 신자 개인과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교제를 강조하는 특징이 있고, 교회는 기구라기 보다는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관계를 갖고 있는 신도들의 모임으로 이해된다.

본 소고는 요한 복음 교회론이 생성된 배경을 요한 공동체의 상황에서 설명했다. 이와 연관하여 요한 공동체가 섹트였는가를 고찰했는데, 본 소고는 현대 사회학적 용어로서 요한 복음의 섹트적 성격을 인정할 수 있지만, 신학적으로 요한 신학이 일세기 말 다른 기독교 공동체와 유리된 이단적 성격의 공동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반박하였다. 요한 공동체는 1세기 말 다양한 성격의 기독교 공동체의 하나로서 기존의 다른 공동체에 대하여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는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은 요한 복음서에만 나타나는 베드로와 그 사랑하는 제자와의 미묘한 관계의 묘사에서 추론된 것이다.

신약 시대에는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 공동체가 그 역사적 배경에 따라 적절한 신학화 작업을 하면서 존재했다. 그래서 신약 공동체는 그 신학과 이념에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가 존재했으며 일치된 특징으로서의 하나의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다.21) 다양한 신약 공동체의 모델을 정형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스타일에 따라 크게 바울의 은사적 모델, 목회 서신서의 초기 공교회주의(Early Catholicism)22) 모델, 그리고 요한의 갱신 모델 등으로 대별해 볼 수 있겠다. 바울의 은사적 모델은 그의 몸 교회론(고전 12:12-27; 롬 12:3-8; 엡 4:11-12)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는 성령을 체험한 모든 신자의 은사의 다양성이 강조되고 은사로서 서로 섬기는 삶이 요청된다. 그런데 목회 서신의 교회를 보면 은사의 다양성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감독, 장로, 집사 등의 서열에 따른 교회 직제가 전면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그 교회 직제가 계층적인 상하 관계를 이룬다. 이에 반해 요한의 갱신 모델은 이미 우리가 고찰한 대로 초기의 제자 공동체에서처럼 공동체 개념의 초점이 예수에게 향해져 있고 그 교회의 직제에서도 남녀와 직책을 구별하지 않는 직제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모델이다.23)

이러한 신약 공동체의 다양성은 후대 기독교 역사상 교회의 신학의 다양성과 교회의 직제의 다양성에 그 신약 성서 신학적 근거를 제공해 준다 하겠다.24) 중요한 것은 어떤 신약 교회론의 정당성과 유용성은 예수의 말씀을 기독교 공동체 내외의 역사적 상황에 적절히 응답한 것이었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요한의 교회론 신학은 본 소고에서 고찰한대로 1세기 말 교회론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친밀한 관계에서보다 교회 직제 안에서 혹은 교회 구성원의 다양성 안에서 이해되어지는 데 대해서 형제애적 입장에서 다른 기독교 공동체에게 충고의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서 초대 교회의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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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ongsoo Kim, "The Church in the Gospel of John," unpublished Ph.D. thesis at the University of Cambridge, 1999.

1) 불트만(R. Bultmann)이 요한 복음의 무교회론을 주장한 대표자라면, 에두아르트 쉬바이쳐(E. Schweizer)는 최소주의자의 대표자이고, 래이몬드 브라운(Raymond E. Brown)과 쉬바켄부르크(R. Schnackenburg) 등 가톨릭 학자들은 아마도 최대주의자의 대표자들일 것이다. 이것에 관한 자세한 논의와 참고 문헌은 본인의 학위 논문 제 1장을 참조하라.

2) 카이자(R. Kysar)는 요한의 교회론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요한 기자의 확신을 논리적으로 교회론과 연관되게 확장시켜 놓은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The Fourth Evangelist and His Gospel: An Examination of Contemporary Scholarship(Minneapolis, MN: Augsburg Publishing House, 1975), 248. 3) 이러한 대표적인 견해로는 John F. O' Grady, "Johannine Ecclesiology: A Critical Evaluation," BTB 7(1977), 36-44; John Austin Baker, "The Myth of the Church: A Case Study in the Use of Scripture for Christian Doctrine," What About the New Testament: Essays in Honour of Christopher Evans M. Hooker and C. Hickling(eds.)(London: SCM, 1975), 173-75를 보라.

4) 요한 복음에는 αποστολο?라는 단어가 한번 나온다(13:16). 그러나 여기에서 αποστολο?는 전문적 용어로서의 '사도'가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쓰였다.

5) 신약 성서 각 책의 교회 이해 가운데 요한 복음에 나타난 교회 이해와 가장 유사한 것으로는 히브리서의 교회론을 들 수 있다. 두 문서 모두 기독론 중심적인 교회론을 발전시켰으며 교회론의 주제들이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으로 다루어져있다. 히브리서의 교회론에 관해서는 Markus Bockmuehl, "The Church in Hebrews," A Vision for the Church: Studies in Early Christian Ecclesiology in Honour of J. P. M. Sweet M. Bockmuehl and M. B. Thompson(eds.)(Edinburgh: T & T Clark, 1997), 133-51.

6) 요한 교회론을 요한 공동체적 컨텍스트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는 D. Moody Smith 등에 의해 주창되어 Raymond E. Brown 등에 의해 요한 교회론을 이해하는 방법론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D. Moody Smith, "Johannine Christianity: Some Reflections on its Character and Delineation," NTS 21(1974-75), 222-48; Raymond E. Brown, The Community of the Beloved Disciple: The Life, Loves, and Hates of an Individual Church in New Testament Times(NY: Paulist Press, 1979).

7) Robin Scroggs, "The Earliest Christian Communities as Sectarian Movement," Christianity, Judaism and Other Greco-Roman Cults: Studies for Morton Smith at Sixty. Part Two. Early Christianity. J. Neusner(ed.)(4 vols.; Leiden: E. J. Brill, 1975), 1-23을 참조하라. Scroggs에 의하면 신약 시대 여러 기독교 공동체는 섹트의 전형적인 특징을 모두 다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세상과 관계되어 요한 공동체가 섹트였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요한 문헌의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요 14:17, 19, 27; 15:18, 19; 16:8, 11, 20, 33; 17:9, 14, 16, 25; 요일 2:15, 16; 3:1, 13; 4:5; 5:4, 5, 19)는 요한 공동체가 세상과 심한 대치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비록 이러한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신약 성서에서 요한의 특징만은 아닐지라도(고전 1:20-21; 3:19 참조), 신약 성서 중 요한 문서에 이것이 가장 극명한 형태로 나타난 것은 사실이다.

8) W. Rebell, Gemeinde als Gegenwelt: Zur sozialischen und didaktischen Funktion des Johannesevangeliums(Frankfurt am Main: Peter Lang, 1987), 113; J. H. Neyrey, An Ideology of Revolt: John's Christology in Social-Science Perspective(Philadelphia, PA: Fortress, 1988), 115; John Bogart, Orthodox and Heretical Perfectionism in the Johannine Community as Evident in the First Epistle of John(Missoula, MT: Scholars Press, 1977), 140을 참조하라.

9) 이러한 견해로는 D. Rensberger, Johannine Faith and Liberating Community(Philadelphia, PA: Westminster, 1988), 113; Johannes Beutler, "Kirche als Sekte?: Zum Kirchenbild der johanneischen Abschiedsreden," Studien zu den johanneischen Schriften(Stuttgart: Katholisches Biblelwerk, 1998), 21-32; John W. Pryor, "Covenant and Community in John's Gospel," The Reformed Theological Review 47(1988), 44-51을 참조하라.

10) 신약 성경에 나오는 요한 문헌(Johannine corpus) 배후에 이 문헌이 기록되고, 유포되고, 읽혔던 특정한 공동체가 존재했는데 이 공동체를 학자들은 요한 공동체라 부른다. 요한 공동체의 존재에 관해서는 요한 문헌 본문 내증과 상황적인 증거가 있다. 첫째, 요한 복음 21:24에 보면 본문의 저자와 구별되는 '우리'라는 일단의 무리가 나온다. 그들은 "그의 증거가 참이라"고 말함으로써 저자의 증언을 인증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우리'는 편집적 '우리'가 아니라 일인칭 복수 '우리'이다(U. Schnelle, Antidocetic Christology in the Gospel of John: An Investigation of the Place of the Fourth Gospel in the Johannine School [Minneapolis, MN: Fortress, 1992], 42 참조). 둘째, 요한 서신서들은 요한 복음서와 문학적, 신학적, 언어적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는 그 문서 배후에 특정한 신학과 용어를 가진 공동체의 존재를 암시해 준다. 셋째, 복음서와 서신서 사이의 동일한 윤리적 교훈(cf. 요 13:34-35; 요일 2:7-11)과 동일한 교회론적 표상(cf. 요 15:13-15; 요3 15) 등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 문헌이 최소한 같은 공동체 안에서 태동되었음을 보여준다. 요한 공동체는 신약 시대의 다른 기독교 공동체와는 구별된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 신약 학자들은 요한 공동체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요한 본문 내에서 추적할 수 있다고 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요한 공동체가 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여러 발전 과정을 거쳤을 것이라는 것에는 충분한 개연성은 있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요한 공동체는 신약 성서 시대의 다른 공동체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여러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특징이 어떤 것이었는가 하는 것은 요한 문헌과 다른 신약 문서를 비교함으로써 또한 요한 문서 내의 다른 기독교 공동체와의 관계를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밝혀 낼 수 있다.

11) 장로와 디오드리베간의 갈등을 기독교 내부의 대화와 논쟁으로 보는 견해로는 H.-J. Klauck, "Gemeinde ohne Amt?: Erfahrungen mit Kirche in den johanneischen Schriften," BZ 29(1985), 215-18을 보라.

12) 필자와 같은 견해로는 Terrence V. Smith, Petrine Controversies in Early Christianity: Attitudes towards Peter in Christian Writings of the First Two Centuries(Tubingen: J. C. B. Mohr, 1985), 143-44를 보라.

13) 이러한 해석으로는 Eric L. Titus, The Message of the Fourth Gospel(NY: Abingdon, 1957), 220; Graydon F. Snyder, "John 13:16 and Anti-Petrinism of the Johannine Tradition," BR 16(1971), 5-15; A. H. Maynard, "The Role of Peter in the Fourth Gospel," NTS 30(1984), 531-48을 보라.

14) 이러한 견해로는 Kevin Quast, Peter and the Beloved Disciple: Figures for a Community in Crisis(Sheffield: JSOT Press, 1989)를 보라.

15) O. Cullmann, The Johannine Circle(London: SCM, 1976), 55.

16) 케제만은 요한 복음의 가현적 기독론과 열광주의적 신학이 신약의 다른 책의 신학과는 독특성이 너무 지나쳐 요한 복음이 신약 성서에 포함된 것은 "인간의 실수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E. K semann, The Testament of Jesus: A Study of the Gospel of John in the Light of Chapter 17(London: SCM, 1968), 75. 이것은 요한 복음의 신학을 극단화시켜 잘못 이해한 것이다.

17) C. K. Barrett, "The Parallels between Acts and John," Exploring the Gospel of John: In Honor of D. Moody Smith(Louisville, KY: Westminster, 1996), 175-76.

18) D. Moody Smith, "The Problem of John and the Synoptics in Light of the Relation between Apocryphal and Canonical Gospels," John and the Synoptics A. Denaux(ed.)(BETL 101; Leuven: Leuven University Press, 1992), 147-62.

19) James D. G. Dunn, "Models of Christian Community in the New Testament," Strange Gifts: A Guide to Charismatic Renewal David Martin and Peter Mullen(eds.)(Oxford: Basil Blackwell, 1984), 2-3.

20) 1세기말에 발생한 교회의 기구화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교회의 기구화는 이단 사상을 방어하고 교회가 효과적으로 관리되기 위해서 필연적인 현상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부정적인 현상 또한 발생했다는 것이다.

21) "There is clearly no single model of Christian community which emerges which emerges from as the New Testament church. We see different churches in different situation(inevitably?) reflecting something of the dominant characteristics of their Circle(London: SCM, 1976), 39; K asemann, "Unity and Multiplicity in the New

Testament Doctrine of the Church," New Testament Question of Today, 252을 참조하라.

22) 초기 공교회주의에 대해서는 James D. G. Dunn, Unity and Diversity in the New Testament: An Inquiry into the Character of Earliest Christianity(2nd ed.; London: SCM, 1990) 제 14장을 보라. 이것의 특징으로는 재림에 대한 희망의 쇠퇴, 교회의 기구화, 신앙의 신조화 등을 들 수 있다.

23) Kysar, The Fourth Evangelist and His Gospel: An Examination of Contemporary Scholarship, 247을 참조하라.

24) 기독교 역사상 위의 세 공동체 모델이 공존해왔다. 대체적으로 말해서 가톨릭 교회가 목회서신 모델인 공교회주의를 따랐다면, 개신교 주류 교단들은 바울의 은사적 모델을 교회의 이상형으로 보았다. 반면 요한의 교회 갱신 모델은 경건주의(Pietism), 19세기 미국의 부흥 운동, 20세기 오순절 운동 등 예수와의 친밀한 인격적인 교제를 강조함으로 교회 내에서 교회를 갱신해 보려는 운동 등에서 이상적인 교회의 모델로 설정한 것이다. Dunn, Unity and Diversity in the New Testament: An Inquiry into the Character of Earliest Christianity, 199을 참조하라. 던은 요한 공동체 교회론 모델의 역사적인 예를 비교권적 입장, 체험적 신앙, 완전주의 등의 특징을 가진 19세기 미국의 부흥 운동에서 찾는다.

25) 본인은 요한이 1세기 말 처해있던 기독교 공동체적 상황이 어느 면으로 한국 교회의 현재적 상황과 비슷한 면이 없지 않음을 발견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관계에서보다 어느 교단, 어느 교회, 어느 목사에게 속했나를 통해서 자신의 정통성을 찾으려 하는 것은 교회가 보수화, 화석화된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