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불멸성(Immortality) 연구

배덕만

들어가며

불멸성의 개념은 세 가지 차원에서 이해되고 확장될 수 있다. 그 첫 번째 의미에서, 불멸성은 그 자신의 본질에 의해 죽음에 굴복할 수 없는 신화적 천상적인 신적 존재에게 주어지는 자질이다. 두 번째 의미는 신들과 공유하는 신적 위치를 획득한 그런 영웅들과 관계된다. 그 세 번째의 의미에서는 사후에 영원하고 부패할 수 없는 존재의 새로운 형태로 들어간 인간과 관계를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불멸성은 인간존재와 죽음을 넘어선 인간성의 무한한 연장이다. 이 논문은 죽음의 현상 너머에 있는 인간의 영원성을 취급하면서, 단지 이 세 번째 의미만을 다룰 것이다.

한편 대중적 신앙에서 발견되는 불멸성 개념의 고찰에 대한 두 개의 근본적 접근들은 (1)이생으로의 전이인 죽음의 기념 및 (2)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전통들과 문헌(text)을 고려해야만 한다. 첫 번째의 것은 적절한 활동, 행위, 제의들, 기도들, 시체처리-간략히 말하면 거대한 상징적 연결망을 포함하여, 죽음과 죽은 자들의 현존 속에서의 삶의 태도와 관계를 갖는다. 그래서 고고학과 역사학은 죽은 자의 육체를 다루는 다양한 방법들을 보여준다. 즉 매장, 향료나 방부제로 미이라 만들기, 말려서 미이라 만들기, 노출 그리고 화장(火葬). 이런 활동들에 덧붙여, 죽은 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환경이 있다.

기록된 자료들과 구전들에 대한 연구는 우리들이 이런 신앙들을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며, 그 제의들의 상징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한다. 문헌들과 구전들을 경유한 이런 접근에 있어서, 우리는 정보의 세 유형을 이용한다. 먼저 세계의 다양한 종교들의 기록문헌들이고, 다음으로 문화적 전통에 의해 첨가된 자료들과 함께 신화와 민담이 오며, 끝으로 우리는 장례제의들의 문헌(text)들을 갖고 있다.

. 선사시대의 사람들

이백만년전부터 BC 9000년까지 살았던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파괴된 메세지들과 무언의 증언들만을 남겼다. 즉 뼈, 두개골, 돌 기구, 무덤의 물품, 벽조각 그리고 동굴과 바위의 그림들이 그것이다. 이런 기록들에 대한 분석은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는 또한 호모 레리기우수스(Homo Religiusus, 종교적 인간)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살아있는 자들에 의한 죽은 자들의 재구현인 식인주의에 대한 상징적 해석과는 별도로, 우리는 장례물품들, 시체의 방향, 받듯하게 눕히기와 태아형 매장위치들 그리고 붉은 황토와 함께 초기 네안데르탈인의 무덤(BC 80,000)을 소유하고 있다. 구석기 층은 사려 깊은 계획에 따라 조작되고 정돈되어 온 뼈와 두개골층을 계속해서 생산한다. 상구석기시대의 벽미술에서 무지개와 육지의 다리와 같은 상징들은 그 세계 너머와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 중석기와 신석기 시대

장례의 기록들은 중석기와 신석기 시대에 들어선 더욱 풍부해 진다. 5800부터 이백만년동안 거석무덤이 지중해에까지 확대되어 북부와 서부 유럽을 뒤덮었다. 이런 집단적 무덤들 속에서 무덤용품과 장식된 물건들, 그리고 제물, 제의 용품 그리고 벽에 있는 부조들이 발견된다. 세 번째의 천년기를 거치면서, 죽은 자들의 보호자 여신의 이미지가 나타났다.

Ⅲ. 역사시대의 여명

청동시대는 프랑스의 카르낙, 영국의 스톤헨지 그리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영혼숭배의 탄생을 지켜본다. 후기 청동기 시대에는 집단적 뼈단지와 개별적 고분이 항아리밭(urnfields)에게 길을 비켜준다. 화장이 불을 통해 영을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 시체를 파괴한다. 그 불은 영혼의 운반도구가 된다. 화장은 우라니안 종교와 천상제의(astral ritual)에서 자신의 익숙한 자리를 차지한다. 신석기 시대 이래로 이생에 대한 신앙이 우주적 종교와 모신 숭배의 맥락에서 분명하게 표현되어 지고 있다.

Ⅳ.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불멸성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신앙들 중의 한 요소는 종말론적 관심에서 발생한다. 아프리카인들에게는 두 종류의 시간이 있다. 즉 신화적 시간 즉, 영원히 가치 있는 집단과 그것의 연속성의 시간, 그리고 현실적 시간, 그것에서는 개인의 삶과 죽음의 불연속성이 발생한다. 이러한 두 시간들 사이에 장례의식의 상징적 중재가 놓여 있다. 이것을 통하여 죽은 자는 우연의 시간을 떠나고 신화적 시간 즉, 존재의 피라미드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장례제의는 개인의 죽음에 대한 집단적 반응이다. 그 집단들은 그 제의를 통해 견딜 수 있는 것이다. 부족의 불멸성에 대한 이런 개념은 시간의 이중적 실재와 섞여서 대부분의 아프리카의 우주창생신화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런 불멸의 부족에 대한 환상과 더불어, 그 집단의 연속성을 위해 꼭 필요한 개인의 불멸에 대한 신앙도 함께 존재한다. 죽음 이후에 죽은 자들은 조상이 되거나 토탬적 동물들로 재생하기 위해서 영들의 세계로 간다. 루바 그리고 다른 반투어를 사용하는 자이레의 사람들 중에는 각 사람의 핵심인 문투(muntu)가 죽음 이후에 조상들의 세계나 혹은 망령(shades)들의 세계로 간다. 한 생명이 태어날 때마다 그 조상은 그 어린 아이에게 조상 자신의 생명력을 부여한다. 요루바신앙에서 "emi(호흡)" 생명력은 육체를 떠나 축복 받은 조상들의 거주지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것은 자신의 수호영인 ori(머리)와 하나가 된다. 그러나 모든 아프리카 문화에서 악한 죽은 자들은 그들의 생명력이 그 사회에서 추방되었고, 공중에서 방황하며 악의 세력들에 의해 감금된다. 아프리카에서 불멸성은 과거와의 관련성 속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즉 과거를 통해서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의 사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상징적으로 재생은 죽은 자들을 산 자들의 틀 속으로 돌려보낸다. 그래서 불가시적 존재들이 가시적 존재들과 나란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불멸성의 두 번째의 기초적 측면은 조상들에 대한 신앙이다. 두 계급의 조상들이 있다. 신화적이고 원초적인 조상들과 이 땅 위에서의 그들의 삶 이후에 이런 상태에 들어간 조상들이 있다. 조상숭배는 아프리카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조상이란 개념은 두 개의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에선 사회적 종교적 이상의 순수성 그리고 다른 편에선 그 공동체의 순수성과 동일성에 대한 관심. 그 두 요소가 함께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불멸성의 개념을 형성한다. 조상이란 계속적으로 산 자들의 삶의 일부분이면서 신비한 국면으로의 인간적 상황의 상징적인 전이를 대표한다. 사후 인간의 운명의 가장 중요한 단계가 실현되는 것은 바로 조상들의 역할이다. 진실한 연대성이 이미 조상의 지위를 획득한 죽은 자들과 삶의 지고의 이상 즉, 모범적인 과거에 맞추어 살기 위해 조상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산 자들을 하나로 묶어 준다. 조상 세계의 조직은 혈통과 기능에 기초를 둔 사회적이고 가족적인 복잡한 위계질서에 의해 다스려 진다. 긴밀하고 가까운 조상들이 있다. 죽은 자들 가운데 더욱 두드러진 것은 집단적인 무명의 대중들을 결코 떠나지 않는 매우 일반적인 죽은 자들이 있는 반면에 매우 주의 깊은 조상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정신에 있어 그 조상들은 그 자신들의 생명력의 강도에 따라 등급이 정해진다.

그러나 조상들은 어떤 개인과 부족의 불멸성 그 이상의 것을 제공한다. 위계적인 조상들의 공동체는 계승된 세대들에 대한 축적된 지식의 보고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그것은 부족의 기억이며, 그들의 기원과 과거의 산물이다. 그것은 조상들의 법을 나타내며, 그것은 그 집단의 삶에 대한 영구한 법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것이 아프리카 사회에서 제의와 의례의 중요성을 설명해 준다.

그들이 최종적이고 영구한 휴식을 얻기 전에, 죽은 자들은 심오한 변화를 경험한다. 이 휴식은 부분적으로는 살아 있는 자들의 기억과 먼저 간 자들에 대한 기억을 생생하게 유지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에 의존한다. 그들의 후손들이 그들을 기리고 기도하는 한, 그들은 "살아있는 죽은 자(living dead) 가운데 남아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망각의 상태에 빠지자마자 그들은 집단적인 저승의 삶으로 들어 가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조상들의 세계는 공동체에게 하나의 모델, 규범의 전통 그리고 그것의 연속성의 보장을 제공한다. 조상성과 불멸성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조상들의 불멸성에 대한 다른 측면이 재생신앙에서 발견된다. 민속학자들은 개인이 다중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 그런 관념의 복합성을 강조해 왔다. 사람들은 재생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생명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재생의 실제 상황은 죽은 자들의 성(性), 때, 의지 혹은 조건 그리고 그 집단의 것을 포함한 많은 변수와 선택들에 의존한다. 재생은 조상을 돌려보내는 것이 산 자들의 기억 속에서 인지되고 현존하고 있으며, 그것은 오직 동일한 가계와 성(性)의 어린이에게서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그러나 재생한 조상들은 초월 속에서 계속해서 산다. "재생에 대한 신앙은 산 자들의 삶 속으로 죽은 자들을 적어도 상징적으로나마 되돌려 주는 기여를 한다. 아프리카의 장례절차는 사회를 구성하는 두 요소들 즉 산 자들과 죽은 자들 간의 균형을 유지해준다.

시간, 조상숭배 그리고 장례제의는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의 종교와 문화의 세 가지 핵심적 특징이다. 시간은 세대들의 축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의 세 단계는 오직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될 수 있으나, 그것들은 산 자들의 이상적 세계인 조상들의 세계와의 관련성 속에서 보여져야만 한다. 그러므로 불멸성은 과거 및 조상들의 전통들과 관계을 맺는다. 이 전통들은 계승된 세대들의 성취이다. 즉 이것은 이해의 총합이며 생의 근본적 가치이다. 죽은 자들과 점증하는 조상들의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그들의 영적인 부를 늘려준다. 단선적 시간과 순환적인 시간이 서로 교차하면서 불멸의 축을 형성한다. 저 세상은 전통에 일치하여 사는 한 산 자들의 사회가 추구하는 안식과 고요 그리고 평안의 개념 즉 낙원과 관계가 있다. 아프리카인들이 불멸에 도달하는 것은 바로 조상들의 공동체와 조상숭배에 의해서 이다.

Ⅴ. 오스트렐리아

죽음은 부족에게 충격이며 그 집단생활의 붕괴로 여겨진다. 그래서 절규, 오열, 흐느낌의 의식들, 운율적 영창, 그리고 이런 죽음을 야기시키는 악한 영들을 발견하려는 노력들이 있게 된다. 그러나 오스트렐리아인들은 죽음이란 사람을 속된 세상으로부터 거룩한 우주로 인도하는 최종적 통과의례라고 믿는다. 사람은 두 개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 원초적이고 전존재적(preexistent) 영인 그 참 자아는 토템의 중심인 하늘로부터 온다. 죽음에 이르러 그 참 영혼은 그 육체를 떠나서 자신의 개인적 탄생 이전에 있었던 "영원한 꿈" 으로 돌아가서 그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된다. 반면 다른 영혼은 육체에 남아, 다른 사람 속에서 거처를 잡고 살아 있는 자들 사이에서 옮겨 다니게 된다. 오스트렐리아인들은 "그 꿈"에서 기원한 영적 실재인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믿는다.

장례의식의 내용들은 그 영이 문화적 영웅들 사이에 있는 자신의 원초적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런 분리를 일으켜야만 한다. 장례의식들을 통하여 전존재적 영은 때때로 토템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자신의 영적 영역을 다시 얻게 된다. 전체적인 제의의 상징은 이런 여행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경우에 따라서 토템의 관 내에 뼈들을 두는 것. 그러나 재생에 대한 신앙은 드물고 또 뒤섞여져 있다. 인간에게 있어, 삶의 순환 과정은 단순하다. 즉 전존재의 영으로부터, 육체적 탄생과 속된 세상으로의 진입, 성년식을 통한 "그 꿈" 속으로의 재통합의 첫 단계, 그리고 장례제의를 통해 원초적 단계로의 최종적 회귀.

Ⅵ. 아메리카,

무덤 너머의 삶에 대한 신앙은 세계에 대한 그들의 개념과 조상들의 전통 그리고 예언자들의 증언으로 판단해 볼 때, 일찌기 인디안들의 사고 내에서 확고하게 확립된 듯하다. 북아메리카에서 이중적 영혼에 대한 관념은 매우 폭넓게 퍼져있다. 육체적 영혼은 육체에게 생명과 의식 그리고 운동력을 부여한다. 반면 꿈의 영혼은 육체로부터 분리되며 공간에서 움직일 수 있고, 먼 곳에도 갈 수 있다. 죽음은 그 분리된 영혼이 죽은 자들의 영역에서 사로잡혔을 때 일어난다. 그 때에 육체적 영혼 또한 육체로부터 분리된다.

남아메리카에서, 마나키카(Manacica)는 죽은 자들이 장례식이 끝나자 마자 죽은 자들의 영역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고 믿는다. 그 주술사들이 그를 처녀숲(virgin forests),,바다, 늪지 그리고 산들을 통과하여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을 가르는 강까지 인도한다.

불멸에 대한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생각에서 세계의 축(axis mundi) 중요한 상징적 기능을 한다. 세계의 축, 우주 목(the world tree),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길, 그리고 샤머니즘은 황홀경과 불멸의 신화적 맥락의 특징들이다. 인디안들은 영혼이 신화와 사후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통해 알려지는 죽은 자들의 지역으로 간다고 믿는다.

인디안들은 고대의 이원론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즉 악한 자들과 "나쁘게(badly)" 죽은 자들은 유령들로서의 방황하는 삶을 살도록 운명지워져 있다. 왜냐하면 죽은 자들의 영역은 오직 정상적인 죽음 이후에 장례제의를 치른 자들에게만 열려져 있기 때문이다.

장례제의들은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의 지역으로의 여행을 용이하게 하고, 그들의 회귀를 막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다. 죽은 자들의 재생에 대한 신앙은 남북아메리카 모두에 현존하고 있다. 그러나 조상숭배의 정도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Ⅶ. 내륙아시아와 핀란드-우랄지역 사람들

옵강(Ob river)에서 온 우랄인들은 호흡 혹은 육체적 영혼과 자유롭고 매우 비육체적이지만 죽음 이후에는 죽은 사람의 육체에 메여 있는 그림자 혹은 꿈의 영혼으로 구성된 이중적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그래서 사람의 죽음 이후에 자유롭고 비물질적인 그 영혼은 그 시체에 매여있기 때문에 육체적 형태를 띤다. 시체와 영혼은 함께 그 죽은 자의 완전한 인격적 정체성을 나타낸다. 그래서 그 육체가 무덤에 있는 동안, 그것은 또한 그 영혼 덕택에 다른 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핀란드인들의 영물학(pneumatology)는 북유라시아 세계의 그것과 동일하다. 자유로운 영혼(이미지영혼, 그림자영혼)은 인격의 초육체적 현현인데, 그것은 심지어 살아 있는 동안에도 꿈과 활홀경, 무아지경을 통해 육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이원론은 기독교의 영향하에 사라지고 있지만, 종교적 제의 안에서 수많은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 핀란드인들은 사후에 ört라는 자유로운 영혼이 시체 근처에 머물고 무덤까지 쫓아간다고 믿는다. 그 육체적 영혼은 존재하기를 멈춘다. 반면 자유로운 영혼은 계속해서 인간적 존재를 표현한다.그래서 북유라시아 전역에서 죽음을 양면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즉 육체적 영혼에 의해 버려진 육체가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인격적 삶을 연장하는 죽은 자의 영혼이 있다. 가족들은 조심스럽게 시체를 다룬다. 그들은 시체를 닦고 옷을 입히고 장례용품과 가족의 다른 죽은 자들을 위한 선물을 넣어 준다. 핀란드인들은 산 자와 죽은 자가 장례식과 제사들 통해 돈독해지는 한 가족을 형성한다고 믿는다. 무덤은 성스럽고 그것은 즐겁고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왜냐하면 그 곳이 죽은 자들의 집이기 때문이다. 즉 공동묘지는 죽은 자들의 마을인 셈이다. 핀란드의 종말론은 북유라시아문화의 그것들처럼 현재에 초점을 둔다. 핀란드인들은 축제와 제사들을 통해 죽은 자들의 현존을 계속해서 인식한다.

Ⅷ. 중앙아메리카의 종교

A. 아즈택 종교

아즈택 종교는 세 명의 신이 있는 혼합주의적 특성을 갖고 있다. 즉 태양신인 Huitzilopochtli, 원래는 Teotihuacan에서 온 비의 신 Tlaloc, 그리고 문화적 영웅이며 지혜의 우주적 구현인 Quetzalcoatl이다.

죽음 이후, 사람들은 신들의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운명에 처한다. 사산한 아이들은 열세번째의 하늘로 가고, 거기서 "우유의 나무"가 그들의 영원한 유아성(infancy)을 위한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 전투에서 살해된 전사들과 제단에서 희생된 자들 그리고 그들의 여행 중 죽은 상인들은 그들을 우주적 구원에 참여하도록 선택한 태양신의 친구가 된다. 화장은 이런 태양화(solarization)를 위해 그들을 준비시킨다. 그리고 출산 중에 죽은 여인은 전사들과 동등한 대접을 받는다. 그리고 이런 선택된 그룹에게는 불멸성이 주어지고, 전사들은 4년후 다시 태어난다.

죽은 자들의 두 번째 범주는 Tlaloc에 의해 선택된 자들 즉 번개로 죽거나 익사한 자들이다. 이들은 매장되고 그 신의 정원인 동쪽의 거처로 간다. 틀라록의 농업강령은 그들에게 사후 풍부한 채소들 속에서의 행복한 삶- 틀라록의 낙원에서의 불멸-을 예시해 준다.

다른 모든 죽은 자들은 밤의 땅인 북쪽의 지역으로 간다. 그들의 몸은 위험이 도처에 깔린 죽은 자들의 여행 길에서 길동무가 되어줄 개의 시체와 함께 묻힌다. 4년의 여행 끝에, 그들의 가족들 장례제의를 치르는 동안, 그들은 그들을 멸절시킬 Mictlan신의 지하세계에 도달한다.

B. 마야종교

장례의식에서 우리는 죽은 자들의 세 범주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특권그룹은 전쟁에서 죽은 전사들과 출산 중에 죽은 여인들, 사제들, 그리고 목매어 자살한 자들이다. 이들은 불멸하고 천상을 가로지르는 나무인 거룩한 seiba 아래의 낙원 마야(Maya)에서 영원한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이것은 "Yache"라는 태초의 나무이다. 이것은 하늘과 땅을 연결한다.

한편 죽은 자들은 지는 해의 입으로 떨어지고, 불멸의 상징인 새 Mohan으로 변형되고, 떠오르는 해와 함께 다시 위로 올라간다. 십자형의 우주목은 그 뿌리를 지하로 내리고 그 가지들은 하늘로 펼친다.

C. 잉카종교

스페인정복에 대한 다양한 증거들이 잉카종교에 대한 설명들을 남겨 두었다 그 모두는 잉카인들은 불멸을 믿었고, 내세를 현재 삶의 연속으로 상상했다. 페루에서 발견된 증거가 시체의 보존, 죽은 조상의 이름을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주기, 무덤이나 혹은 장례용 단지에 시신을 태아형 자세로 놓기 등과 같은 장례관습에 대해 증언해 준다. 내세에 대한 신앙이 무덤의 배열, 왕족의 육체를 미이라로 만들기, 무덤규칙 위반에 대한 엄격한 처벌 등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정성에 대해 설명해준다. 통치자의 장례식 경우, 그 제의는 미이라 제작, 얼굴과 눈에 대한 특별한 손질, 그의 아내들과 노예들의 희생과 미이라화, 그리고 그 무덤 안에 그의 가구와 소유물 넣어 주기 등을 규정하고 있다.

Ⅸ. 중국의 종교

상왕조(1751-1028 BC) 하에서, 청동기시대의 역의 합일(the coincidentia oppositorum)과 시간의 갱신에 대한 개념 그리고 영적 재생을 보여주는 굴 껍질과 뼈들에 각인된 신탁의 비문들-이것들은 도교의 교리들을 예시하고 있다,-의 수가 점증하고 있다. 지고 신 Ti와 조상들에게 받쳐진 희생물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왕족의 무덤들은 내세에서 그 통치자를 수행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동물과 인간희생물들을 보여준다.

주왕조(1028-256 BC) 하에서, 그 종교는 신성화된 가족을 구성하는 조상들의 두 기초들과 땅의 신, 주권의 신성화에 근거하고 있다. 모든 가정에는 그들의 보호자로 활동하는 그들의 조상들이 있으며, 왕의 조상들은 그 국가 전체의 수호자들이다. 그 장례제의들은 영혼의 내세에 대한 한 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신앙은 죽은 자들의 운명에 관하여는 다소 일관성이 부족하다. 우선 모든 사람들은 다중적 영혼(multiple soul)을 지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이 인정되어야 한다. 죽은 자의 거처는 무덤, "노란 우물(Yellow Spring)"-지고 신인 상제의 천상세계-이거나 조상의 성소이다. 장례절차에 대한 올바른 준수는 내세를 위한 핵심적 조건이다.

중국은 죽은 자들의 운명에 대한 신앙의 위계적 구분을 행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노란 우물의 왕국으로 운명 지워졌다. 반면 왕과 왕자들은 지고신(the Lord on high)의 곁으로 올라갔다. 그 주인들은 그들의 무덤 근처에 있는 그 가족 조상들의 성전에서 그들의 내세의 삶을 살았다. 이 고대의 농경종교는 206 BC에 시작된 한왕조가 권력을 잡으면서 초기의 사회구조와 더불어 해체되고 말았다. 그 후에 도교가 눈부신 발전을 거두었다. 구원의 종교로서 도교는 내세를 제공해야만 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은 여럿이나 그들은 오직 한 육체에만 거해야 함으로, 사상가들은 오직 불멸을 이런 방식으로 추구했다.

대부분은 살아있는 육체가 불멸적인 것이 되어 보존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목적에 따라 육체적인 것을 대신할 어떤 기관을 발전시켜야만 했다. 이것이 숙련가(tao-shih)들로 하여금 살아있는 육체의 불멸을 보증하게 하고자 하는 바램 속에 스스로 몰두케 한 다양한 방법들을 야기시켰다. 즉 마귀를 죽이고 정력을 보존하는 식이요법 그리고 황홀경을 경험하도록 유도하는 원시적인 순환적 호흡법, 뇌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호흡과 정액의 혼합을 포함한 성교기술 등. 직관력, 명상 그리고 신비적 합일과 같은 영적 기술들이 이러한 육체적 기술들에 더해 졌다. 2세기와 6세기 사이에 이런 기술들은 죽은 자들을 위한 의식들과 제의들-그들을 불멸의 존재(hsien)로 변형시키기 위해 불로 그 영혼들을 녹이려는 의도를 지닌 제의-에 의해 보충되었다.

Ⅹ. 고대 이집트

고(古)왕조시대부터 이집트인들은 신적 삶에서 따오고 삶이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세 요소로 구성된 복잡한 영적 유형을 보여주었다. Akk는 신적 기운이다. Ba는 운동력이며 인간의 의식(意識)이고,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신의 호흡이며 모든 피조물의 지원자인 Ka는 영생을 부여하는 신적 기원의 특성들의 집합체이다. 즉 그것은 Ptah와 Re에 연결된 생명력이며, 인간의 신적이고 살아있는 부분이다. Ka가 육체에서 분리될 때, 그것은 해체되고 사람은 내세의 삶이 가능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미이라와 장례제의를 통해 재창조되어야만 한다.

고왕조에서 나온 피라미드 문서들은 파라오의 운명에 대해서 철저히 다루고 있다. 그것들은 죽은 왕이 하늘로 올라가서 별이 되거나 태양신 Re의 일상의 여행의 동반자가 된다. 사실 우리는 죽은 파라오가 이중적 운명을 지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시리스와 하나가 되면서 그는 미이라를 통해 삶으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그것은 그에게 제물들을 통해 먹여지고 입혀져야만 하는 영원한 육체를 준다. 그 후에 그는 천상에서 살기 위해 Re의 영역으로 되돌아간다. 오시리스와 레에게의 파라오의 이중적 동화에 대한 이중적 교리의 종합이 불멸에 대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신앙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헬레니즘과 로마시대에 이시스(Isis)종교는 커다란 확장을 경험했다. 물이 또한 중요한 상징적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생명을 부여하고, 정화하며, 회춘(回春)의 한 상징인 물은 나일강과 오시리스의 동일화이다. 이것은 여신들인 Isis, Nephthys 혹은 Nut이 죽은 자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다. 오시리스의 생명력을 부여하는 물을 마신 죽은 자들은 불멸을 획득하게 된다. 그것은 그가 물을 마심으로써 그 신의 힘을 흡입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통과의례는 구원론이며 불멸에로의 한 통로로서 기능 한다.

?. 인도

A. 베다 인도

베다문헌에서, 특별히 희생적 맥락에서 amrta가 soma와 함께 나타난다. Amrta는 soma가 사제들에 의해 신들에게 받쳐지는 헌물적 제주(祭酒)인 것처럼, 하늘에서 온 불로장생약이다. Amrta는 인간과 신들의 불멸의 음료이다. 반면 soma는 불멸성을 부여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약물이다. 이 두 단어 모두 젊음과 생명의 영구적 갱신으로 여겨지는 불멸성의 획득관념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을 통해 불멸성에 대한 신앙이 긍정되는 베다의 희생의 상징은 태양, soma 그리고 agni(불)의 주위를 순환한다. 태양의 운동과 오직 다시 회복되기 위해서 파괴되는 우주적 드라마는 베다 인도 속에 깊이 배어 있다. 태양은 회춘의 본질이며 희생적 불의 원형으로서 나타난다. 그 불은 항상 갱신되고 그래서 영원히 젊은 Agni 신이다. 따라서 Agni, 신적 불, 소마, 생명의 음료에 의해 상징되는 불멸성은 영원한 재생이다. 리그베다에는, "한계없이 태어난다는 것은 죽음 없음이며, 그리고 태양과 불처럼 태어났던 자들 또한 블멸의 존재이고,그들이 인간을 위해 획득한 불멸성의 수호자들이다.

B. 브라만 인도

영원한 갱신에 대한 강조를 통해, 브라만은 우주적 질서의 무한한 확장의 관념을 심화했고 확장시켰다. 그들의 기초는 세 가지 면에 있다. 즉 불, 희생제단, 프라자파티(Prajapati)이다. 프라자파티는 브라마나의 중심적 인물이다. 34번째 신인 그는 창조적 힘이며, 창조를 이끄는 집중적인 활동이고 그 모든 다중성 속에서 세계를 창조할 때 흩어진 에너지이며, 태초의 통일성을 닮고 또 그것으로 인도해야만 하는 에너지이다. 프라자파티는 희생이며, 위대한 우주적 드라마의 지상적 모사이다.우주의 순환적 운율은 희생제의를 통해 반복된다. 그 제의는 상실된 통일성을 회복해야만 하며, 그것은 그것을 닮아야 하고 또 구조와 연속성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서 그 제의는 죽음의 초월이 된다.

브라마나 속의 불멸성의 상징은 베다의 상징을 넘어선다. 그 희생은 우주력-낮과 밤은 인간의 삶, 죽음, 일시적 시간의 상징이다.-에 의해 상징화된 장수와 불멸을 부여한다. 계절은 무한한 재생이란 실제적 의미에서 일년을 구성한다. 즉 일년은 신적인 삶과 불멸의 상징이다. 그리고 프라자파티는 그 일년이다. 희생제단은 그 각각이 한 시간을 나타내는 10,800개의 벽돌로 일년동안에 만들어진다. garhapatya불은 특별한 주문이 그 안으로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는 자궁을 나타낸다. ahavaniya불을 통해서 희생자들은 하늘로 올라가고, 두번재로 태어나며, 불멸성을 획득한다. 그래서 희생은 제의를 통해 죽음의 초월성을 구성한다.

우파니사드적 사고가 인도를 브라마나의 이원론으로부터 벗어나게 했고, 인간의 행위에 새로운 중요성을 부여했다. 재생을 통한 인과응보의 교리와 더불어 업(karman)의 영향 하에, 아트만(atman)은 죽음을 넘어선 존재의 지속적 개방을 경험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론에 더욱 깊이 빠지게 된다. 첫 번째는 육체로의 회귀, 곧 재생이며, 둘째는 신들의 통로, 즉 왕들의 길, 아트만의 발견을 위해 필요한 형이상학적 신비적 의식의 발전, brahman, 범아일여(梵我一如)이다. 절대자에 대한 이러한 탐구가 불멸성에 대한 추구이다. the tat tvam asi(당신이 바로 그것이다.) 불멸성이란 브라만 내에 개인의 흡수이다. 이것은 사물의 통일성을 직시함으로써 얻어진다. 베다와 브라만의 이원론에 반대하여, 우파니샤드는 한번에 모두를 위해 브라만과 더불어 인간을 통일시키는 지식으로, 재생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한다.

C. 박티(Bhakti)

BC 1세기 경에 "Bhakti"로 알려진 종교적 운동이 인도 전역에 걸쳐 일어났다. 그것은 은총에 근거하여 피조물과 조물주 간의 관계와 그 피조물 편에서 조물주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내포하는 힌두교의 한 형태이다. Bhakti란 신도들에게 주(主)에 대한 위대한 지식을 주는 일종의 사랑의 헌신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태도로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자에게 주는 신의 선물이기도 하다. 헌신은 지식과 병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나 헌신은 지식보다 우월하다. 바가바드기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나는 알려져야만 하는 것과 그것을 앎으로써 영생을 얻는 다는 사실을 보여 줄 것이다. 시작도 없고, 존재라고도 혹은 비존재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최고의 브라만이다,"(13.12), 이런 지식과 더불어 그 주(主)에 대한 깊은 내적 헌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이 육체를 포기하고 떠나서 오직 나만을 생각하는 자는 나의 지위에 오를 것이다." 박티는 Krsna와 함께 영생을 줌으로써 생명의 불사약을 대체하였다.

불교

내세와 불멸에 대한 신앙이 부처에 의해서 무시되지 않는다. 브라만, 요가수행자, 참선자들과 같이 그도 "견디는 것", "구원", "죽지 않는 것"들을 추구한다. 부처가 되자 "석가모니"의 첫 번째 말씀들은 그가 불멸을 얻었다는 것과 그가 불멸에의 문을 열었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표현할 수 없는 불멸이 거룩한 자의 목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탄생과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목적은 니르바나(nirvana)라고 불리운다. 부처는 니르바나를 정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그 속성에 의하여 알게 된다. 즉, 흔들릴 수 없는 행복과 축복, 탄생되지도, 만들어지지도, 행해지지도, 조건지워지지도, 건설되지도 않는, 완전한 즐거움. 니르바나는 구원이요, 불멸이며, 결코 그 아래 세계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니르바나 곧 불멸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부다의 방법과 길을 따라야만 한다.

역사상 불교의 다양하고 위대한 운동들 가운데서 니르바나와 관련된 논의들이 전개되어 왔다. 특히 티벳의 불교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독특한 종합을 이루어 냈다. 티벳의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는 영혼의 여행에 대한 우리의 지식의 보고(寶庫)이다. 죽은 자의 침대 옆에서 그 경전을 암송해 줌으로써, 라마는 죽음과 재생의 중간 과정들을 통과하는 49일의 여행을 위해 그 시체에게 생명력인 bla를 회복시켜 준다고 여겨진다. 티벳인들은 이 땅과 하늘 사이의 직접적 연결에 대한 신앙을 유지해 왔다. 또한 그들은 죽은 자들이 살았들 때 지니고 있던 외모를 영원성 속에서 계속하여 지닌다고 믿는다. 그의 선행에 대한 상징인 밧줄로 운구되면서, 그는 내륙 아시아의 샤마니즘의 영향으로 보여지는 "승천제의" 속에서 천상지역으로 올라갈 수 있게 된다.

켈트, 게르만, 스칸디나비아, 트라키이 그리고 게테

내세에 대한 확고한 신앙이 켈트, 게르만, 그리고 스칸디나비아의 장례제의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켈트족과 고울지역 내에서 영혼의 불멸에 대한 신앙은 수많은 초기의 증거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케사르는 [갈리아 전쟁기]에서 연혼이 불멸하고, 사후(死後)에 다른 육체로 옮겨 가며, 그리고 이런 신앙이 그들의 전사들의 앞뒤를 가리지 않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맹성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고 드루이드(고대 켈트와 고울의 사제, 예언자)들이주장했다고 말한다. 게르만인들에게 있어서 그 영혼은 Sippe(부족)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다양한 켈트족의 전승들도 때로는 대양 속의 한 섬으로 보이기도 하는 개방된 세계, "죽은 자들의 낙원"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무덤에서 발견된 달걀껍질들은 특별히 중요한 상징이다. 즉 부서진 달걀은 새롭게 태어난 삶의 표식이다.

게르만 세계의 또다른 상징이 Yggdrasill 나무이다. 그것은 세계의 중심에 서있으면서 한 뿌리는 죽은 자들의 땅으로, 다른 것은 거인들의 땅으로, 그리고 세번째는 인간들의 세계로 보낸다. 그것은 운명을 상징한다. 즉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연결, 그리고 삶의 지속적 재생.

고대 이란의 종교

나가면서

불멸에 대한 신앙을 탐구한 본 연구는 종교적 인간(Homo Religiosus)의 성격에 있어서 몇몇 핵심적인 특징들을 발견하였다. 그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향을 찾으면서 어떤 질서를 부여하도록 시도하는 그런 우주 속에 던져졌기 때문에, 인간은 그의 지상의 삶을 초월하는 한 차원을 발견했다. 그의 일상의 경험을 통해서 그의 모든 행위와 활동들이 뿌리를 둔 신비한 현상들 즉, 생명의 현상에 대해 숙고하였다. 그러한 반성이 성현(hierophany)으로 드러나는 자연과 삶의 운명에 대한 부단한 탐구의 시작을 특징짓는다. 그 자신의 경험에서 한 거룩한 차원에 대한 인식이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의 기원에 대한 탐구와 그것으로의 회귀를 강요하였다. 그의 주변에서 죽음과의 끊임없는 만남이 그의 의혹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리고 불멸에 대한 갈망과 인간적 조건을 초월하고자 하는 다함이 없는 노력이 뿌리를 내리는 것은 바로 이런 "태초에 대한 향수" 안에서이다.

본 연구는 또한 "상징적 인간(Homo symbolicus)"를 보여주었다. 인간이 삶-그가 절대적인 것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삶-의 신비에 대한 자신의 지각을 표현하려는 것은 바로 상징적 언어를 통해서 이다. 삶의 신비와 그 신비를 풀려고 하는 노력의 결합이 미술과 문학, 제의의 형태로 표현된 문화적 종교적 부의 인상적인 원천이다. 영은 일련의 우주적 상징을 통하여 삶의 신비와 내세에 도달하려고 시도한다.

제의상징 역시 자신의 내세를 이해하고 실현하려는 호모 레리기우수스의 노력의 중요한 측면을 나타내준다. 죽음이란 새로운 삶으로의 탄생이며, 내세로의 통과의례이기에, 호모 레리기우수스는 자신의 삶이 끝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결국 거룩함, 상징, 제의는 불멸성에 대한 인간들의 신앙에서 하나로 수렴되며, 이러한 신앙을 뒷받침해주는 신화는 무궁무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