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의 지하세계

(타종교 및 구약성경)

김신일

서 론

선한 사람이나 악한사람들, 혹은 산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존재상태나 장소가 있다는 생각은 대부분의 세계 종교들에서 쁹아볼수 있다. 이들에게서는 다양한 형태의 표상들이 존재하지만 서로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과 동시에 특징들도 존재한다. 본 소고는 타종교들(고대인도, 이란, 이집트, 바벨론, 그리스-로마)과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후의 지하세계"에 대한 표상들을 개략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성서에 영향을 끼쳤을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고대근동지방의 종교들에 나타난 사후세계에 대한 표상들과 구약에 나타난 표상을 연구대상으로 삼았으며, 주로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이라는 책과 몇권의 단행서적, 사전류, 주석등을 참고하였다.


본 론

1. 고대인도

고대인도에서 베다시대(B.C. 1500-1200)말에 최초의 우파니샤드들이 나타났을때(B.C. 6세기) 죽은자들에게는 세갈래의 길이 주어졌다. 그 중에 어느 한길로 가게 되느냐는 그들의 공덕에 달려있지만 심판은 없었다. 첫번째 길은 불을 통과해서 가는 길이다. 의인들은 화염에서 낮으로, 낮에서 차는달(달이 차는 보름간)로, 차는 달에서 돋는 해(해가 돋는 일년중 여섯달)로, 돋는 해에서 신들의 세계로, 신들의 세계에서 태양으로, 태양에서 섬광의 세계로 나아가, 이 섬광의 세계에서 그곳으로 그들을 도우러 오는 영적인 존재에 의해 브라만의 세계로 인도되며, 이 브라만의 세계들로부터 측량할수 없이 먼곳에서 살게되며,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두번째 길을 가는 자들은 웬만한 공덕을 쌓은자들로써 연기속으로 들어가 연기의 길을 통과하게 된다. 연기속으로 들어가 연기에서 밤으로, 밤에서 이우는 달(달이 이우는 보름간)로, 이우는 달에서 저무는 해(해가 저무는 일년중 여섯달)로, 저무는 해에서 혼백들의 세계로, 이 세계에서 달 속으로 간다. 거기에서 그들은 신들에게 먹히며, 땅 위로 되돌아와 완성을 위한 환생과 재생의 윤회를 시작하는데, 그 하나하나가 낙원을 향한 단계이다.

마지막 세번째 길은 돌이킬수 없는 악한 자들이 가는 길로써 벌레나 곤충이나 짐승의 형태로 징벌적 재생을 겪다가 마침내 지옥으로 떨어진다. 「이샤 우파니샤드 Ishah Upanishad」는 이 지옥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태양이 없다고 하는 이 세계들은 암흑에 싸여 있다. 죽어서 거기에 들어오는 것은 그들의 영혼을 죽인 자들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헌들은 이 죽은 자들의 운명이 단번에 정해지지 않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죽은자들이 과연 두마리 개가 지키는 문간을 지날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만일 그들이 그 문을 지날수 있다면, 그들은 로마의 엘리시움(Elysium)이나 게르만의 발할라(Walhalla)에 가까운 좀더 나은곳, "빼앗기지 않을" 초장으로 가게 될것이다. 거기에서 그들은 지옥의 왕이 된 최초의 인간 야마(Yama) - 인도 유럽계의 아담에 해당함 - 의 축제에 참여하게 된다. 만일 그들이 그 문을 지나지 못한다면, 그들은 지옥의 암흑 속으로 가거나 지상으로 돌아와 유령의 형태로 떠돌며 비참하게 헤매게 될것이다.

이들의 사후관에는 구원의 중간길, 불을 통한 통과, 어둠과 빛, 죽음과 결정적 구원 사이의 점진적 향상, 유령으로 헤매게 될 영혼 들을 받아들이는 곳으로서의 저승들이 들어있다. 그러나 심판이 없다는것, 환생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것 등은 기독교의 사후세계와는 매우 다르다.

2. 이란

이란에서 저승에 관한 교리 및 이미지들 중 특히 인상적인 것은 불의 편재(偏在)이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심판이전에 죽은자들의 처소가 있는데 이것에 대하여 '낙원적' 해석과 '지옥적' 해석간의 주저가 있다. 이 처소는 때로는 빛의 낙원이기도 하고 때로는 음산한 지하세계,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는 심연으로 이해된다. 그들의 지하세계에는 땅과 하늘과 이어주는 다리나, 죽은자가 역시 일종의 도덕적 가치를 갖는 힘과 재주의 시련을 위해 건너가는 다리가 있다. 또한 그들이 행한 선과 악의 무게가 비슷한 영혼들을 위해 중간적 장소가 존재한다.

자라투스트라가 B.C. 6세기에 세운 조로아스터교는 영혼이 죽으면 심판을 받기 위해 3일 밤을 기다리다가 4일째 되는 날에 '보응(報應)의 다리'로 가서 생전의 행위들을 평가받는다. 선행이 악행보다 많은 영혼은 점점 넓어지는 보응의 다리를 건너 하늘로 가며, 반면에 선행보다 악행이 더 많은 영혼은 점점 좁아지는 다리를 건너다가 결국 모든것을 얼어붙게 하고 악취가 나는 지옥에 떨어져 부활의 날까지 고통과 징벌을 겪는다. 또한 선행과 악행이 균형을 이루는 사람들에게는 하메스타간(잡다한 사람들의 장소)이 준비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그 영혼들은 더위와 추위를 번갈아가며 고통받는다.

3. 이집트

고대 이집트의 긴 역사는 죽은자들의 세계에 대하여 간단하게 요약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그러한 신앙은 수세기에 걸쳐 변천을 겪었고 사회계층에 따라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죽은자들의 심판이라는 관념은 이집트에서 매우 오랜것이다. 그들의 지하세계에는 성벽과 문들이 있는 광대한 지역이다. 거기에는 진흙 수렁이나 불못들에 둘러싸인 신비한 방들이 있다. 이러한 이집트 저승의 상상적 지리는 점점 발전하여 석관(石棺)위에 새겨진 저승지도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곳에는 혹독한 형벌들이 있었으며 이 벌들은 영혼과 육체에 모두 미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물리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것으로, 신들로부터 유리됨이 그 특징이었다. 본질적인 감각은 폐쇄와 영어(囹圄)의 그것이었다. 그곳에서 받게되는 형벌들은 유혈낭자한 것이었고 불에의한 무서운 벌들도 많았다.

이집트인들은 저승관에서 지형학적인 상상을 매우 발전시켰다. 집, 방, 둥지, 기타장소등 수용처(收容處)들은 거기에서 복잡한 주거 체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중간적 상태나 단계, 정화의 과정들은 없다. 단지 "복된자들과 저주받은자들"이라는 엄격히 대비되는 두가지 범주로 나뉘어진다. 이것이 B.C. 1-2세기 사이에 씌여진 "시-오시르(Si-Osire)의 저승여행"이라는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죽은자들중 중간적 존재의 이야기가 나타난다. 즉, 죽은자들이 악을 많이 행한자, 선을 많이 행한자, 그리고 선과 악을 비등하게 행한자의 세부류로 나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도 정화의 과정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이집트의 사상적 배경은 중요하다 아니할수 없다. 왜냐하면 이후 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한 이집트 문화권의 기독교 수도원들에서 저승, 특히 지옥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큰 역활을 한 많은 유대, 그리스, 콥트 문헌들이 씌여졌기 때문이다.

4. 바벨론

바벨론인들에게 있어 저승의 풍경은 한층 더 생생하고 인상적이다. 특별히 길가메시(Gilgamesh)의 서사시에는 지옥에 대한 이야기가 두번나오는데, 하나는 주인공 길가메시의 지옥방문이요 또하나는 그의 친구 엔키두(Enkidou)의 지옥방문이다. 전자에서는 지옥이 상세히 묘사되지는 않았기에 후자 엔키두의 방문을 살펴보자. 엔키두는 죽기 전에 지옥을 방문하여 그곳을 상세히 묘사한다. 그곳은 먼지와 어둠의 왕국, "광활한 땅" "돌아오지 못하는 땅"으로, 죽은자들이 내려가는 곳, 산자들의 부름을 받은 어떤 영혼들만이 다시 올라올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신들의 "그물"에, 감옥에 잡힌 자들이 가게되는 땅이다. 이러한 저승관에서 아마도 가장 불안한 것은 산 자들과 죽은 자들 모두가 "화가 난" 죽은자들로부터 괴로움을 당한다는 것이다. 산자들로부터의 보살핌도 무덤도 얻지못한 이들은 에킴무(ekimmu)라고 하는데, 이들의 그림자는 땅의 거민들을 사로잡는 유령이 되어 돌아오거나 지옥에서 다른 죽은자들을 괴롭힌다.

5. 그리스-로마

고대 그리스, 로마문화가 기독교적 저승 이미지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계(下界)방문의 주제를 통해서이다. 이 주제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친숙한 것으로 오르페우스, 풀룩스,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등이 모두 그림자들의 처소인 지옥으로 내려간다. 가장 유명한 지옥하강중의 하나가 오디세이아 제 11권에 나오는 율리시스의 지옥하강이다. 그러나 원본에는 죽은자들의 심판이나 도덕적 재제및 징계적 고문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수많은 첨작이 가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A. 플라톤

우리는 먼저 이에대한 플라톤의 사고를 접해보자. 영혼들의 사후 운명에 관한 플라톤의 사상을 요약하려 한다는 것은 쉽지않다. 쟈크 르 고프는 빅토르 골드슈미트(Victor Goldschmidt)를 길잡이로 삼아 그의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죽은자들의 운명은 대개 죽은자가 다소간에 자유롭게 선택하는 환생의 형태를 취하나, 이 환생형태는 신들의 중재에 의해 변화나 좌절을 겪을수 있다.

악한자들은 비천한 사회적 신분의 인간이나 혐오스러운 짐승들의 몸으로 격하되는 변형을 겪거나 또는 신들로부터 지옥의 벌들을 받는다. 이 징벌들은 「국가」제10권에서 거론된다. 거기서 우리는 불로된 인간들이 폭군들의 손발과 머리를 묶으며 그들을 땅에 던지고 가죽을 벗겨 끌고가는 것을 발견한다.

이에반해 플라톤적 이상, 즉 철학에 도달하여 "순수하고 정의롭게" 철학을 실천한 자들은 완전한 명상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은 대개 "복된 자들의 섬"에서이다. 저승에서의 운명은 항상 장소화, 공간화될 필요가 있다. 여러가지 고찰의 결과 플라톤은 사후의 중간적 도정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령 「국가」가 강하게표현하듯이(X, 615 a-b) 벌이 죄에 비례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중간 정도로 유덕한 자들의 사후 운명에 관한 개념같은 것들이 그러했다. 플라톤에 의하면, 그들은 환생의 과정을 계속 통과하나 그러는 사이사이 "순수하고 땅의 높은곳들에 위치한 처소에서"(「파이돈」 114c, 1-2) 모종의 보상을 맛본다.

구약성서와 마찬가지로 저승에 관한 플라톤 사상도 여전히 근본적으로 이원적이다. 윤회에서 영혼들을 때로는 더 악한 영혼들로 때로는 더 나은 영혼들로 돌아온다. 신들의 심판은 어떤 인간도 간과치 않는다. 「국가」 제 10권에 나오는 에르(Er)의 유명한 신화를 보면 죽은자들은 경이로운 초장으로 돌아올때 하늘에서 오든지 아니면 땅속에서 오게된다.

그러나 그의 철학뿐 아니라 아테네의 법 체계와도 분명 연관되는(죽은 자들의 심판이 존재하는 모든 종교들에서는 지상적 정의와 저승에서의 신적 정의 사이에 상호 관계가 있다) 형벌의 비레성이라는 관념을 발전시켜, 플라톤은 인간 영혼들에게 닥칠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상상한다. "영혼의 품성 변화가 별로 없거나 미미한 자들은 수평적으로만 이동한다. 좀더 자주 그리고 더 깊이 불의에 빠지는 자들은 깊은 곳으로, 하데스라든가 하는 이름으로 그들의 공포와 악몽을 지배하는 낮은 처소들로 옮겨진다. 영혼이 악한 쪽 혹은 선한 쪽으로 깊은 변화를 겪을때, 만일 신적인 미덕에 물들어 거의 신적이 된다면 그것은 신성한 길을 통해 새롭고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된다. 만일 그 반대라면, 영혼이 자기 삶의 자리를 옮겨가는 것은 반대의 처소들을 향해서이다"(「법률」, 904-05a).

B. 베르길시우스(Vergilie)의 「아이네이스 Aeneis」

로마시대에 이르러 베르길시우스(Vergilie)의 「아이네이스 Aeneis」에 나오는 아이네아스(Aeneas)의 지옥하강을 살펴보자. 이 일화에는 저승의 지형학적 묘사가 드러있는데, 이것은 고대의 지옥에 대한 대부분의 묘사들보다 훨씬 더 자세하다. 우선 거기에 내려갈때는 전정(前庭, vestibulum)을 거치게 되는데, 이 전정은 우물과 함께 지옥-연옥의 입구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무덤없이 죽은자들의 벌판, 스틱스(styx)강, 눈물의 벌판, 그리고 그 너머의 초장이 나오고 거기서 길이 갈라져 왼쪽 길은 타르타로스(지옥)로, 오른쪽 길은 디스(지옥의 왕플루토)의 성벽을 지나 아늑한 낙원적 처소 엘리시움에 이른다. 그 뒤편에 신비한 숲과 망각의 강 레테가 있다.

아이네이스 제 6 권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이렇다. "그리하여 영혼들은 두려워하고 욕망하고 괴로워하고 기뻐하며, 어둠과 눈먼 감옥에 갇혀 더 이상 빛을 분간치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생명이 그들을 떠날 때에도, 모든 악과 육체의 질역(疾疫)들이 이 가련한 자들에게서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질겨진 많은 악이 놀랄만큼 깊이 뿌리박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징벌에 처해져 해묵은 악을 고통으로써 속죄해야 한다. 어떤 자들은 힘없이 공중에 매달려 바람을 맞으며, 어떤 자들에게서는 죄의 더러움이 거대한 소용돌이 아래서 씻어지거나 또는 불속에서 태워 없애진다." 여기에는 고통과 기쁨의 혼합, 가려진 듯이 밖에 보이지 않는 천상의 빛, 영어(囹圄)의 분위기, 형벌에의 노출, 속죄와 정화의 결합, 불에 의한 정화 등 후에 연옥의 형성에서 나타나게 될 모든 주제들이 들어있다.

6. 유대교

지금까지 살펴본 고대근동의 지하세계개념은 유대신앙에 있어서 여러가지 영향을 끼친것으로 보여진다. 이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기 시대를 염두에 두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구약성경에서 지하세계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단어는 쉐올이다. 쉐올은 본질적으로 하늘과 땅을 강하게 대립시키는 이원적 체계속에서 나타난다.(시 139:8)

성경에 이 쉐올이 자주 나오기는 하지만 거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별로 거론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산자들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전 9:5) 관심은 다분히 산자들에게 있다. 또한 여호와는 쉐올에 대한 전권(全權)을 갖고있지만, 죽은자를 꺼내어 준다거나 일단 쉐올로 내려간 자들을 용서하거나 그 기간을 단축시키려는 의도를 보인적은 결코 없다. 또한 그 쉐올내에서의 자리를 구별하거나 하나님의 힘으로 거기서 건져질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은 단지 두군데밖에는 없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계속해서 부활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있다.

고대로부터 인류는 죽음이 실존의 끝, 즉 완전한 무(無)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어왔다. 이는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히브리인들은 죽은 후 사자가 가서 거하는 곳이 반드시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곳을 쉐올이라고 보았다. 엘돈 래드(George Eldon Ladd)는 "스올은 죽음이 인간존재의 종국이 아님을 보여주는 구약적 표현방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구약성서내에 나타나는 쉐올의 의미를 간단하게 언급할수는 없다. 그만큼 그 의미는 방대하고 다양하다. 흠정역(KJV)은 히브리 단어인 쉐올을 grave(무덤:31회), hell(지옥:31회), pit(구덩이:3회)로 다양하게 번역했다. ASV나 RSV에서는 번역하지 않은채 쉐올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히브리어 '쉐올'(????)은 헬라어로 '하데스'(????)라고 번역된다. 일반적으로 '쉐올'의 의미는 먼저 사자(死者)의 영역을 의미하는데 상징적으로 죽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때때로는 무덤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불경건한 자들에 대한 형벌의 장소나 지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쉐올이 단순히 영원한 형벌의 장소만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명백하게 입증되지는 않는다.

구약시대 히브리인의 쉐올 개념은 다분히 고대 근동인들의 개념과 엇비슷하였다. 즉 그들은 의인과 악인 간에 약간의 구별이 있긴 하지만 두 종류의 사람이 함께 기거하는 어두침침한 지하 세계가 곧 음부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거하는 자들은 일명 '르바임'(Rephaim)이라고 하는 망령(亡靈)들로서 살아 있을때의 인간 형체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림자적 존재'라고 이해하였다. 결국, 구약 성경에서 묘사하는 쉐올의 다양한 개념을 정리하면 이와 같다.

a. 의인과 악인,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거하는 장소이다(창37:35;시9:17).

b. 어둡고 그늘진 장소이다(욥10:21,22;시143:3).

c.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장소이다(욥10:21).

d. 침묵의 장소이다(시94:17;115:17).

e. 하나님을 찬양할수도 없는 장소이다(시6:5;88:10-12)

f. 아무것도 알수 없는 세계이며 일도, 계획도 없는 장소이다(욥14:21;전9:5-10).

한편 여러가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인들은 다른 고대 이방 민족과는 달리 나름대로의 독특한 음부개념을 지니고 있었다. 즉 그들은 음부가 결코 멸절(滅絶)의 상태가 아니라 계속되는 실존의 장소로서 하나님의 힘과 용기가 여전히 미치는 곳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시139:8;욥26:6).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 백성을 음부에서 구해 내실날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시편기자(시16:10)와 욥의 간구(욥19:25f)는 바로 이런 소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음은 그 쉐올의 위치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성경에서 '문이 달린 도시'(욥38:17;사38:10) 또는 '모든 생물들이 필연적으로 들어갈 집'(욥30:23)으로 묘사되고 있는 음부는 대개 땅 아래, 즉 지하세계의 어느 지점에 위치한 것으로 이해되었다(민16:30). 그러나 대양(大洋)아래, 즉 지하의 굴 속에 위치하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상과 같이 구약시대 히브리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모두들 쉐올에 간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사후 개념은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고 계시는 내세관과는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의인은 죽은뒤 낙원, 즉 천국으로(눅 23:43). 악인은 지옥으로 간다고 증거하고 계시기 때문이다(마 5:22,29; 막 9:43).

그러면 성경에서 언급하는 쉐올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것인가 ? 앞서 언급했듯이 '쉐올'이라는 단어는 성경상에서 여러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주목하자. 즉, 성경에서는 이 쉐올이 a.사후세계(지옥, 삼하 22:6; 욥 11:8; 시 9:17). b.인간의 무덤(시 16:10; 사 5:14; 겔 31:15; 암 9:2). c.구덩이(민 16:30,33) 등을 각각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쉐올을 무조건하고 죽은자가 가는 사후세계만의 의미로 한정시켜 이해할수는 없다. 대신 쉐올이란 인간의 죽음과 그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로 이해되어져야만 할것이다. 즉 죽음은 침묵의 세계요 어두움의 세계이다. 따라서 성경은 이런 죽음의 상태를 가르켜 쉐올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였다.

가장 오래된 증언에 의하면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과 맺는 교제 안에서 죽음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죽음은 하나님과의 교제안에서 오래 산 삶의 자연스럽고도 취소할 수 없는 종말로 간주되었다. 젊을때의 죽음과 타지에서의 죽음은 형벌로 간주되었으나, 노년기의 '자연적인 죽음'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죽은 이후의 운명에 대해서는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은듯 하다. 그래서 죽음은 '모든 세상길의 덧없음', '자기 선조들 옆에 누워 휴식함', '곡식이 영글어 타작 마당에 이름'(욥 5:26)과 같이 성숙한 상태로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다가 점차 죽음을 불행한 것으로 여기는 단계가 나타났다. 죽음은 비통한것, 허무한 것으로 음울하게 묘사되었다(시 90:3-12; 전 9:1-6). 후기에 이르러 이스라엘 주변세계로부터 '쉐올'(지하세계)의 표상이 이스라엘안으로 스며들었다. 인간은 죽은후 지하세계인 쉐올로 내려가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이 무상한 실존을 영위한다. 여기는 망각의 땅이며(시 88:6), 지상의 비통한 삶보다도 더 가련한 것이고(전 9:3-6), 사람의 운명은 짐승의 운명과 다를바 없다. 모두 다 티끌에서 왔다가 티끌로 돌아간다(전 3:18-21). 이런 생각은 헬라적 '영혼불멸'의 관념과는 대립된다. 전 인간이 완전한 단절을 겪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의 쉐올표상은 메소포타미아의 지하세계의 신화(이스타르가 어둡고 먼지로 가득찬 지하세계로 내려간 이야기)의 영향을 입었다.

지혜문학에서는 쉐올표상이 헬라적 영혼표상과 결합되었다. 그래서 죽고 난 뒤에도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영광속에서 계속 살고 있다는 확신이 표현되고 있다(지혜 3:1-9). 그러나 전적으로 헬라적 영향만은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특히 포수기 후의 문서들, 즉 시편과 제 2 이사야에서) 죽음에 맞선 희망이 질문되기 시작한다. 죽음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점차 문제시 되었고 그리하여 하나님은 목숨을 지하에 버려두지 않으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몸을 썩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확신(시 16:9-11)과 하나님은 인간을 영광안으로 받아들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확신(시 73:23-26)이 생겨났다. 결국 구약성서의 영생에 대한 희망은 영혼불멸의 표상이 아니라 야훼의 생명력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신정론(神正論)의 문제가 대두되어 묵시문학에서 죽은자의 부활이 대두될때 이 희망은 몸과 영혼의 재결합의 형태로 표상되지 않고 쉐올의 육체없는 존재를 일으키는 것, 전 인간의 새창조로 표상되었고 이 새 창조는 자궁속의 몸의 첫 출생과 유사한 것으로 간주되었다.(마카비후서 7,22) 그런데 죽은 순교자들의 부활이 늦어지는 경험은 부활이 일어날 ?까지 머무는 장소에 대한 다양한 표상들을 산출했다. 에디오피아 에녹서에서 쉐올은 서쪽에, 즉 해지는 곳에 있다. 그곳에는 네개의 동굴이 있는 산이 있는데, 죄인들은 죄의 중함에 따라 어두운 방에 가고 의인들은 밝은 방에서 산다. 랍비의 유대교에서는 죽음 후에 바로 심판이 일어나고 인간들은 두 종류의 장소, 즉 에덴낙원(눅 23:43)이나 게힌놈(저주의 장소)로 간다고 생각되었다.

결 론

이상으로 구약성서와 고대근동종교에 나타난 사후세계에 대한 표상들을 살펴보았다. 각각의 종교에서는 나름대로의 특징들이 있으나 성서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이는 불, 고통, 길, 어둠, 중간적 상태, 윤회를 통한 되살아남의 가능성, 등으로 볼수있다. 쟈크 르 고프가 "역사적 현상들은 아이가 모태에서 나오듯 그렇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와 시대는 각기 자신의 유산들 가운데에서 선택을 한다"고 말하듯이 성서또한 같은 산고를 치른것처럼 보인다. 성서는 다른 종교들에게서 사후 지하세계에 대한 다양한 표상들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들중에서도 수용과 거부의 과정을 거쳐 선택을 한다. 그리하여 윤회나 그속에서의 장소적 구별, 정화의 단계같은 표상들은 거부하며 동시에 불, 고통, 어둠 등의 표상은 수용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조는 잊지 않으며 또한 다분히 산자들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