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9세기의 종말론

 

 

1. Kant

칸트는 하나님의 나라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사상가였다. 그 사상은 비판적인 이성 위에 세워졌고 하나님의 나라를 형이상학적으로 실증하려고 했다. 이러한 시도를 칸트는 '철학적 천년왕국'이라고 표현했다. 칸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윤리적으로 완성된 인간 사회와 같은 것을 의미했다. 하나님의 나라의 관념은 더 높은 도덕적 존재인 하나님을 지시한다. 하나님만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수 있다. 인간의 노력은 세상에서 악을 극복하는 목적을 가진 윤리적 공동체를 설립하는 것을 지향한다. 그러나 그 공동체는 그 자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고 그것의 실현을 위한 시도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나라의 완전한 실현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기대할 수 있다.

예수는 하나님을 기뻐하게 하는 인간의 원형이다. 왜냐하면 그 속에 있는 이성이 윤리적으로 완전한 인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칸트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의 근거가 되는 인간성 이해는 결국 세속화된 기독론으로 나타났다).

예수가 시작한 것은 제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들은 유대적인 신앙을 새로운 도덕적 신앙을 위한 매개체로 삼았고, 옛 제의 대신에 순수한 도덕적 종교를 도입했다. 그러나 교회사 속에서 순수히 도덕적인 종교는 완전히 퇴조하고 말았다. 교회사는 순수한 이성적 종교의 약화를 실증한다.

칸트는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에 대한 표상을 윤리적 완전성을 향한 인간의 노력에 한정시켰다. 윤리적 사회의 완성에 관한 칸트의 견해는 인간 속에 도덕적으로 선한 심정을 회복시키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나 기본사고는 영원한 전진을 통하여 주관적인 인간의 의지가 점차 더 강하게 보편적 도덕률과 일치된다는 것이다. 오직 이성으로부터만 인식할 수 있는 완성은 도덕적으로 선한 심정, 즉 이 일치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는 눅 17:21f을 인용했다("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 너희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속에서 도덕적 완전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서만 실현된다. 그래서 칸트는 교리적 종교이해 대신에 윤리적 행위에 대한 요구를 내세웠으며, 이런 윤리적 요구 속에서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목표를 설정했다.(실천이성비판, 이성의 한계 안에 있는 종교)

 

2. Hegel

헤겔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는 그의 역사이해와 관련되어 있다. 역사는 정신이 시간화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발전단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모든 단계의 총체만이 절대정신의 전체성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정신은 역사 속에서 점진적인 변증법적 발전을 통하여 항상 더 완전한 명료성으로 고양된다. 헤겔은 정신의 시간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에로의 발전을 보았다. 그는 이 나라의 완전한 실현을 - 인류를 포함하는 국가(윤리적 이상의 실현)의 의미에서 - 인간의 주관적인 완전성의 내적인 실현과 나란히 진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기독교 종말론의 세속화. K. Löwith : "헤겔의 기독교는 하나님의 뜻을 세계의 정신, 국민정신으로 변화시켰다.)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역사의 시기를 성부의 나라, 성자의 나라, 성령의 나라로 구분했다. 성부의 나라는 단순히 변화되고 있는 집합적 대중이고, 성자의 나라는 하나님이 세상실존과 관련되어 나타난 것이고, 성령의 나라는 화해다. 이 나라는 자유의 나라로 정의된다. 이 나라는 절대주의적 국가와 분명히 대립되어 있는 '절대국가'이다. 헤겔에 의하면 자유,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은 하나님 안에 있는 인간의 조화를 의미하므로,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결합을 전제한다.(인간 속의 정신의 의식화 과정)

헤겔은 기독교를 절대적인 계시종교로 보았다. 예수의 인물 속에서 하나님의 자의식과 인간의 신의식이 일치되었다. 인간 속의 하나님의 자의식과 하나님에 관한 인간의 지식 간에는 분리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 인간이 되심으로 하나님은 이 분리를 극복했다. 인간에게도 자신의 내면 속에서 이 대립을 지양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다. 인간이 하나님이 되기 위해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 인간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영적으로 형성되고, 이로 인해 점차 더 인간 사회 속에서도 그러한 것이 일어나므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그 형태를 취한다. 이러한 역사를 통해 인간에게 화해의식이 주어지고 심겨진다. 그런데 이 목적에 이르는 수단은 국가와 교회다.

그러므로 헤겔에게서 이 역사가 곧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재림은 정신이 외면성으로부터 내면성으로 전환되는 것이고, 그것은 시간적 사건이 아니라 발전(진보)이다. 하나님 자신이 그의 나라를 세우길 원하시지만, 이 실현은 인간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절대 정신의 수단이다.

국가는 개인적인 전체성, 지상 위의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이고 신적인 이념이다. 그러나 국가에 의해 촉진된 도덕성의 성취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은 완성된 정신의 자기실현, 세계의 궁극목적의 절대적 실현이 아니다. 국가의 정신적 토대인 인간되심(성육신)의 이념은 보편과 개별의 화해로서 종교적인 것 안에서 계시되었다. 도덕성이 하나님의 나라의 이념의 완성인데, 종교는 본질적으로 파악된 도덕성이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신적 의지가 세계의 보편적 목적을 위한 인간의 활동과 일치되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겔은 세계사 속의 기독교사에 특별한 의미를 부가했다. 교회사는 정신의 이념이 현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기독교의 원리는 정신이 단순한 순결성으로 끝없이 고양되는 것이다(헤겔은 기독교 이해를 산상수훈에서부터 근거삼았다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 ? 청결한 마음은 헤겔에게서 하나님의 나라 실현의 근본 전제이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인간 속에 현존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겔에게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렇지만 헤겔은 교회가 나중에 국가 안으로 용해될 것임을 내다보았다. 교회는 정신의 발전에서 필수불가결한 과정일 뿐이다(교육적 과제, 교회의 중재적 특징). 헤겔에 의하면 교회가 국가의 구조형태로 넘어감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실현된다(국가의 절대화). 교회가 '절대국가' 안으로 들어간다(세속화된 하나님의 나라 이해의 사고구조로서의 철학적 천년왕국론).

 

3. Schleiermacher

슐라이에르마허의 하나님의 나라 개념(해석)은 윤리적 발전사고의 영향을 받은 관념주의의 해석형태를 띄고 있다. 그에게서 경건성(Frömmigkeit)과 윤리성(Sittlichkeit)은 인간본성에 속한 본질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성의 상태를 실현하는 한에서, 그것은 신학적 경건성, 혹은 윤리적 과정과 분리될 수 없다. 윤리적 발전과정은 지상의 인간의 전 존재를 동반하면서 그 역사를 형성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진보하는 인류의 마지막 상태로 이해되었다.

슐라이에르마허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는 두 가지 본질적 요소를 가진다. 하나는 성육신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자연화(Naturwerdung)로 이해되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를 통한 하나님의 나라의 설립을 에비하기 위한 창조는 하나님의 세계통치의 수단에 의해 일어났고, 하나님의 세계통치는 진보적으로 실현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통치와 그 원인성의 종국목표다. 하나님의 원인성은 신의식이 된 직접적 자의식, 절대적 의존감정 속에서 표현된다. 하나님의 세계통치 안에서 하나님의 원인성은 사랑과 지혜의 형태로 나타난다. 세계통치의 회전축은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설립과 구원을 의미하며, 신적 본질과 인간적 본성이 결합된 것이다. 그런데 신적 본질과 인간성의 결합은 완성된 '신의식'의 형태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신의식의 활성화로서 예수의 출현 이후로 진보적으로 실현되는 실체이다. 성육신은 여기서 차후의 모든 진보과정의 원형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더 높은 발전의 시초이다. 이러한 신적 본질과 인간본성의 결합이 전 인류에게 위임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형성되어지는 것이다.

③ 그리스도는 완성된 인류의 원형(모범)이다. 그와 더불어 인간 속에서 끊임없는 진보 속에서야 비로소 발전될 것이 완전한 형태로 나타났다. 즉 그리스도 안의 계시는 신의식과 하나님의 나라 활동의 영원한 신적인 결합과정의 원형으로서 전 창조의 중심점이다. 예수의 역사적 출현은 개별인격 속에서 신적인 이념이 시간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발전은 예수 이래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인간의 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전제(조건)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창조, 새로운 공생(Gesamtleben)은 여기서 더 높은 발전의 시초로서 지금까지 이루어진 전 발전의 속행이다. 그리스도의 구속행위는 창조와 더불어 주어진 원초적인 자연과 이성의 일치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은 축복의 상태로 옮기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발전의 장애물인 죄가 극복て폐지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진보적 형성을 위한 인간의 자발성의 자유로운 전개가 비로소 가능하다.(교회 = 하나님의 나라)

 

4. Ritschl

리츨은 칸트와 슐라이에르마허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슐라이에르마허 로부터 성육신을 하나님의 나라 실현의 중심사건으로 이해하는 사고를 물려받았다. 그렇지만 그는 슐라이에르마허를 비판하길, 그에게서 기독교의 윤리적 이해가 하나님의 나라 관념에서 적절히 표현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공동체의 윤리적 목적을 인식했다는 사고를 슐라이에르마허가 적극적으로 전개하지 못했음을 리츨은 애석히 여겼다. 리츨은 구원을 '절대적 의존감정'의 회복을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윤리적 욕구와 구원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구원과 칭의에 대한 올바른 영적인 이해가 하나님의 나라의 목적의 보존과 유지를 가능케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리츨에게서 하나님의 지배에 관한 종교적 이념이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실현하길 원하시는 '최상의 선(善)'으로 이해되었다. 그것은 절대적て신적인 세계의 종국목표이다. 그와 동시에 리츨은 하나님의 나라를 원하는 윤리적 행동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종교적 태도의 요소도 보았다. 그러기에 인간의 윤리성은 하나님의 지배의 외형적 반영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윤리가 실행되는 그곳에 하나님은 통치하신다(여기서 하나님을 도덕적 세계지배자로 생각하는 칸트의 입장이 드러난다. 왜냐하면 칸트도 하나님을 도덕률의 창시자, 세계의 궁극목적 실현을 위한 보증자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 도덕적 세계지배자의 의지에 대한 순종 가운데서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응답이 이루어지는 곳에, 인간이 하나님의 지배를 윤리 속에서 실현하려고 하는 곳에, 하나님의 자기목적은 인간의 자기목적이 된다. 그런데 리츨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기목적이 하나님의 자기목적 안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이웃사랑의 형태를 취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류의 일치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것이 된다. 보편적 이웃사랑의 동기에서 이루어진 행동을 통한 인류의 윤리적 일치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그것은 세계의 궁극목적이며 최상의 선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이 도덕률을 완성함으로써, 그리고 자신의 특정목적을 만족시키기를 추구하지 않고 전 인류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인간들의 공동체이다.

리츨에 의하면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의 나라 실현의 시간적 시초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윤리적 행위를 위한 불가결한 전제이다. 그것은 윤리성에 절대적 타당성을 부여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리고 세상 속의 하나님의 궁극목적의 실현은 메시야 의식을 요청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교육의 성과는 윤리성 속에서 실현되어져야 할 하나님의 지배가 이미 예수의 인격 속에서 원형적으로 실현되었다는 사실에 의존되어 있다.

리츨에 의하면 국가와 예수에 의해 창설된 종교적 공동체인 교회는 윤리성의 발전과 준비를 위한 수단으로서 그 매개적 기능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교회는 예배적 기능의 관점 하에서 각자가 이웃사랑을 확증하도록 자극을 받는 장소로 나타난다. 국가질서도 윤리성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인정된다.

또 하나의 리츨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의 특징은 하나님의 나라의 발전 이해에 있다. 예수와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 내적인 현실이 되었지만 그 실현은 항상 존재하는 인간의 죄성 때문에 오직 점진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은 먼 미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