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올바른 종말론의 준거(결론적 평가)

 

 

지금까지 논의해 온 종말론들 중에서 성서적으로 가장 타당하고 오늘날까지 유효한 준거(표준)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C. Braaten은 종말론 진술의 몇 가지 유효한 기준을 지적했다.

① 실존적으로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② 성서에서 유래된 케리그마에 의해서 지배되어야 한다.

③ 기독론적이어야 한다.

④ 미래적인 것이어야 한다. (역사와 해석학. 233f.)

 

필자의 관점에서 다시 정리, 보충해 본다면,

① 올바른 종말론은 유성처럼 역사의 밖에서 돌발적으로 돌입해 들어오는 미래의 사건으로 이해되어서도 안되고(비묵시화), 그렇다고 역사 안에서 역사의 가능성의 미래, 역사적 잠재력의 개화て완성으로 이해되어서도 안된다(비세속화, 과정신학 ?). 종말은 하나님의 지배(주권) 아래서 그분의 약속의 별을 따라 미래로 동력화되어가는 희망으로 이해되고, 역사 앞의, 역사로 향해오는 하나님의 역사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종말은 미래적이어야 하지만, 다가오는(가까워 오는) 미래, 살을 파고 들어오는 바늘과 같이 역사를 준동하고 들어오는 미래의 힘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는 그야말로 미래(즉 나중)의 일이 되어 그것이 주는 비판적, 변혁적 기능을 상실할 것이다. 즉 종말의 미래는 현재의 미래로, 미래적 종말은 곧 오게 될 종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종말론은 기독교의 희망론이 되어야 한다.(Moltmann)

② 종말론은 실존적으로 관련된, 그리고 윤리적 충격을 주는 결단의 성격을 갖고 있다. 예수는 자기의 시간을 결단의 최후의 시간으로서 선포하면서 스스로 실존적 행동화를 위해 묵시문학적 하나님의 나라 표상을 비신화화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의 시간과 역사적 상황에 대한 묵시적 질문을 하나님 나라의 선포의 실존적 의미로 집중화시킴으로써 그것을 극복했다.

종말론적 선포는 윤리적 요구처럼 인간을 하나님 앞에 세워서, 지금의 시간을 하나님을 위한 결단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의 독특성이 실존적 윤리화에만 있어서 모든 우주적, 묵시적 표상이 빛을 바랜 것은 아니었다. 초대 기독교의 선포의 근거와 정당성은 부활의 사건에 있었고, 이 부활절 사건은 묵시적 기대의 지평 속에서 인지되고 선포되었다. 그러므로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선포의 종말론적 결단의 성격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한 주님의 복음의 결단적 성격으로 이전되어야 했다. 만약 부활한 이가 십자가에 죽은 이라면,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 아래 있는 덮개(tectum sub cruce)이다. 오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희망에 근거해서 세상과 타협할 수 없게 하고, 그리스도의 파송과 사랑을 통해 그를 뒤따르게 하여 그의 고난을 함께 당하도록 만드는 형태를 취한다.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을 주목하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는 정신화(영성화)되거나 피안적 실체로 변하지 않고, 현실적(차안적)인 것이 되어,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은 세상과 대립하고 갈등을 겪게 된다.(202)

③ 종말론은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기독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와 도래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새롭게 변형되고 새롭게 각인되며, 그 구체적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201f.). 그러므로 기독교의 종말론의 근거는 예수의 부활과 그 미래에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에 관해 말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파루시아' 혹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칭하는 것이다. 물론 파루시아는 본래 멀리 떠난 이의 다시 오심이 아니라 '임박해 있는 도래'를 뜻한다. 파루시아는 또한 현재라는 뜻도 있는데, 물론 내일이면 지나가 버릴 현재가 아니라, 우리가 오늘과 내일에 기다려야 하는 현재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자의 현재, 말하자면 도래하는 미래'이다."(207)

종말론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고 논의해야 한다. 비기독론적 역사해석은 어떤 것이든지 간에 다 시대착오적인 것이다(브라텐. 234).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미래는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또 다시 개인화되어선 안 될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신자와 예수 그리스도 간의 인격적 관계 안에서만 파악되어선 아니 되고, 우주의 끝에까지 사무치는 하나님의 지배, 만물에 미칠 하나님의 희망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