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간이해와 역사경험

 

 

1) 그리스적 시간이해 - 히브리적 시간이해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지배하던 사고 및 표상방식에서는 시간이 공간 속에 있는 운동으로서 생각되었다. 그것은 강물이나 선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이어서,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움직인다. 모든 사건들은 이 선 위에 그 특정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관찰자의 시각에서 볼 때 뒤로 향하면 과거가 되고, 관찰자의 좁은 영역이 현재가 되며, 앞으로 향하면 미래로 불린다. 시간은 텅빈 형식적 직선에 비교되는데, 이 직선은 특정한 사건들을 통해서 비로소 내용적으로 채워진다.(선적인 시간관)

그와 달리 고대 이스라엘에서 시간은 의미로 채워진 사건, '채워진 시간'으로 경험되었다. 시간은 항상 특별한 내용과 동일하다. 사건의 내용이 시간을 만들고, 특별한 사건이 없으면 전혀 시간체험이 없다(우리에게 시간은 추상적이어서, 시간을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구별한다.).

모든 것(오직 내용적으로 가능한 것)은 '자기의 시간'을 가지고 있고, 자기의 적합한 순간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에는 시간에 해당하는 본래적인 단어가 없다. ??는, 예를 들면, 태어나는 때(미 5:2) 혹은 가축을 모는 시간(창29:7) 등과 같은 특별한 행위나 사건을 위한 '시점', '시간적 찰나'를 의미한다. 이러한 시간이해의 전형적 표현은 전도서 3:1-8이다. 완전한 의미에서 '채워진 시간'은 무엇보다 백성의 '축제'였다. 축제는 '절대적인 거룩함'의 시간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것은 야웨에 의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축제는 참여자들에게 하나님의 생명과 구원에의 참여를 보장한다. 이 축제는 절대적으로 이미 주어진 것으로 경험되었다. 오로지 이 축제의 리듬 속에서 시간은 체험되었다.(M.Kehl, Eschatologie. G.v Rad, Theologie. des A.T. Boman,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

 

2) 그리스인의 역사경험 - 이스라엘인의 역사경험

고대 그리스에선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란 존재하지 않았다. 헬라적 사고는 두드러지게 언제나 존재하는 자, 불변하는 자, 언제나 참된 것, 언제나 선한 것, 언제나 아름다운 것을 묻는다.역사는 생성과 소멸의 단계, 상존하지 않는 유동적인 것으로서 결코 상존하고 영구적인 것을 제시하지 않는다. 삶은 역사를 지식으로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역사 내에는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지식에 해당한 가치가 없다.(Moltmann, 345)

고대 그리스인들은 역사를 본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생성과 소멸의 순환으로 보았다. 모든 일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순환 속에서 발생되어진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 안에는 아무런 의미나 목표가 없었다. 오히려 이 시간의 순환적 과정은 속박이나 감금상태로 인식되고, 이것으로부터 떠나는 것(즉 죽어서 자아가 세계를 떠나 하늘의 본향으로 올라가는 것) 속에 구원이 있음을 믿고, 이 해방을 구원의 목표로 삼았다.(특히 영지주의). (Bultmann, 13. Hoekema, 39f)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현실은 하나님의 약속의 별 아래서 '역사'로서 경험되었다. 하나님의 약속들이 역사의 지평을 드러내고, 이스라엘은 이 약속이 움직이는 지평 안에서 살았고, 그것들의 긴장의 전장 속에서 현실을 경험하였다. 약속은 아직 존재하지 않은 현실을 알리는 선언으로서, 인간을 미래로 매고, 그에게 역사에 대한 의미를 준다. 그러므로 역사는 동일한 것의 반복·순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약속되어 있으나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성취를 향해 있다. 그러므로 약속의 말씀은 항상 약속의 선언과 구원 사이의 긴장을 창조한다. 그래서 역사적 필연성에 대한 확고한 법적 체계화에 관한 관심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긴장의 영역 안에서 하나님과 그 백성은 만났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가는 한에만 역사가 있었다. 야훼가 그의 행동과 말씀으로써 자신을 나타낸 곳, 거기에만 역사가 있었다.(Moltmann, 137ff)

여기서 역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다. O.T에선 모든 사건 속에 하나님의 활동과 말씀이 다 함께 속해 있다. 하나님의 활동이 없는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M.Buber는 이를 '대화적 사건'(Dialogisches Geschehen)이라고 불렀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무엇이 일어난다.(C.Westermann, Theologie des AT in Grundzügen 8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