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기독교 신앙과 희망

 

 

1) 종말론의 재발견

K.Barth가 말했듯이 "전적으로, 정말 그리고 남김없이(철저히) 종말론이 아닌 기독교는 전적으로, 정말 그리고 남김없이(철저히)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로마서 주석 제2판, 298)

예수의 인격과 선포, 사역도 온통 가까이 온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되어 있었고, 그의 죽음, 부활, 승천을 목격하고 성령강림을 체험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온통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까이 온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앙과 임박히 도래할 그 나라의 완성에 대한 희망 가운데서 살았다.

J.Moltmann 말대로 "기독교는 다만 하나의 부록으로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종말론이며, 희망이고, 앞을 향한 전망과 성취이다.… 종말론적인 것은 기독교에 관한 어떤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매체이며, 신앙에서 모든 것이 모든 것을 조화시키는 원음이며,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기대된 새로운 날의 서광의 빛이다."(희망의 신학, 14)

그러나 19C의 신학은 이러한 기독교신학이 종말론적 신학을 거의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고, 그리하여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다른데서 찾아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F.Schleiermacher(1768-1834)의 감정의 신학(종교적 감정은 절대적 의존감정이고, 인간의 신의식 속에 기독교신학가 기초가 있다.)에서는 종말론은 전혀 아무런 의미와 가치를 차지하지 못했고, I.Kant의 도덕적 종교(이성의 한계 내의 종교-기적이나 초자연적인 것을 배제하고, 인간의 절대적 도덕률에서 영혼불멸, 도덕적 응보의 신을 요청함, 도덕신학?)의 영향을 받은A.Ritschl(1822-1889)은 역시 도덕법 위에서 신학체계를 수립했고(신국도 보편적, 윤리적 공동사회이고, 인간의 의무는 도덕법·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웃 사랑은 신국의 표시이고 도덕법의 최고의 완성이다.) 리츨학파 W.Herrmann(1846-1922)은 주관적 체험에서 신학의 확실성의 근원을 찾았고(하나님의 계시는 객관적으로 증명될 수 없고, 객관화할 수 없는 주관성 속에서, 종교적 경험의 저항할 수 없는 표현으로서 경험·인식된다.), 역시 Ritschl학파이며 그의 제자인 A.v Harnnack(1851-1930)도 윤리적으로 이해된 복음과 문화를 종합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복음은 모든 윤리적 문화의 기초이고, 기독교는 문화능력으로 이해되었다.

E.Troeltsch(1865-1923)도 Ritschl의 학도로서 Ritschl과 Schleiermacher 양자를 종합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했지만(기독교는 모든 고등종교 중에서 가장 완전한 인격주의적 종교의 표현이다.), 기독교의 우월성은 강조했다.(종교사학파의 조직신학자­종교는 모든 인간에게 필연적이다. 모든 종교의 상대성, 기독교의 우월성을 강조→ 모든 종교들이 귀일할 수 있는 정점으로서의 기독교)

그러나 Ristchl의 사위인 J.Weiss와 A.Schweitzer는 19C말에 기독교에 대한 종말론의 중심적 의미를 재발견함으로써, 개신교 신학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그들은 기독교와 문화의 종합을 시도하던 신개신교주의 신학을 거짓말이라고 폭로함으로써, 종말론적·묵시적 신학을 재탈환하고자 시도했다. 양자는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대해 전적인 대조 속에 있는 초세계적 능력으로 이해했고, 그것을 본래의 종말론적, 묵시문학적 의미에서 철저히 이해했다(철저적 종말론). 그러나 양자는 예수를 묵시문학적 열광자로 이해함으로써, 종말론주의를 결정적으로 극복(폐지)했다.

그 이후 신학적 기상은 소위 변증법적 신학(K.Barth, E.Brunner, P.Tillich, R.Bultmann)에 의해 지배되었고, 이들은 차츰 제 갈 길로 나아갔다(K.Barth­말씀의 신학: 종말론의 약화, E.Brunner­인격주의적 신학, 논쟁술, P.Tillich­존재론적 신학, 상관관계 추구, 문화신학, R.Bultmann­실존적 신학, 비신화화, 탈종말화). 변증법적 신학 속에서 종말론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때때로 매우 강조되긴 했으나 여전히 제 위치와 의의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변증법적 신학을 뒤이어, 그 약점을 극복하고 다시금 기독교신학을 본래적 근거인 종말론에 올려놓으려고 시도한 이가 J.Moltmann인데, 그는 그의 명저 "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nung, "기독교 종말론의 근거설정과 그 귀결에 대한 연구"라는 부제)에서 다시금 기독교 신학을 종말론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W.Pannenberg도 "Offenbarung als Geschichte"(역사로서의 계시)를 통해 보편사적 종말론의 신학을 주창했다. 다시금 종말론은 재발견되고 활성화되었는데, 사실 그들은 독자적으로 진공에서 튀어나온 자들이 아니라 무수한 성서신학자들의 논의의 힘을 입은 바 크다고 하겠다.

20C의 종말론을 형성한 중요한 신학저서들로는 : O.Cullmann:Christus und die Zeit(구속사 신학) J.Jeremias:Die Gleichnisse Jesu, W.G.Kümmel:Verheissung und Erfüllung,

R.Bultmann:Geschichte und Eschatologie, P.Althaus:Die letzten Dingen, W.Kreck:Die Zukunft des Gekommenen, G.Sauter:Zukunft und Verheissung, P.Schütz:Parusie, Hoffnung und Prophetie등이 있다.

 

2) 종말신앙의 의미

Moltmann의 말대로, 종말론은 기독교 신학의 부록이나 맨 나중에 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신앙의 핵심적 매개체, 원음(原音)이다.

그리고 종말도 마지막 날에 가서 별안간 나타날 사건, 역사의 저쪽으로부터 이 쪽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지탱하는 것, 기독교의 선교, 기독교의 실존, 아니 전 교회의 성격을 지배하는 것이다.(13ff)

이러한 기독교와 기독교신학의 종말론적 특성이 재발견됨으로써, 오늘날까지 종말론은 신학논쟁의 도화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신학, 해방신학, 혁명신학(민중신학) 등은 다 종말론의 '새로운 해석'이다. 그러므로 종말론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이는 기독교 신학과 특히 현대신학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으며, 신교와 실천적 삶에 대한 근거를 올바로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삶과 역사의 의미, 목표, 동력을 얻을 수 없다.

 

3) 신앙과 희망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동일한 신뢰를 신앙이라 표현할 수도 있고, 희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래서 두 개념은 교환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신앙은 실로 항상 '하나님을 기다림'이고, 희망은 항상 신앙의 행위이다. NT에선 물론 신앙과 희망이 구분되어 나타나지만, 흔히 희망은 신앙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신뢰한다, 신앙한다, 기다린다, 기대한다는 서로 중첩된다.

벧전 3:5 -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

벧전 3:15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의 내용으로서 희망(소망)이 나타나고 있다.(P.Althaus, 44)

Luther : 루터는 신앙과 희망을 구별했지만(신앙은 지성에 근거하고, 희망은 의지에 근거한 다. 신앙은 진리와 관계하고 희망은 하나님의 자비와 관계한다. 신앙은 순수한 진리를 위해 거짓교리에 대항하고, 희망은 시련과 그 결과인 조급한, 슬픔, 절망과 싸운다. 신앙은 하나님 의 말씀에로 향하고 희망은 하나님의 말씀의 일, 즉 약속된 은혜에로 향한다. 신앙 속에서 우 리는 하나님을 그의 약속 가운데서 참되다고 인정하고, 희망 속에서 우리는 그 약속을 우리의 것으로 삼는다.), 양자는 하나의 동일한 행위의 불가분리한 측면들이다. 신앙은 구원에의 신뢰를 포함한 전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이다.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에의 생생한 신뢰다. 신앙을 fiducia(신뢰)의 신앙(fides)으로 이해하면 결국 신앙은 희망과 일치된다."(상게서)

Calvin : 그에게서도 신앙과 소망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신앙은 소망이 의존하고 있 는 기초이다. 신앙은 하나님이 진실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소망은 하나님께서 그의 진리를 적 절한 순간에 나타내실 것을 기대한다.… 신앙은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는다. 소망은 영생이 언젠가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한다."(칼빈의 종말론, 20)

Moltmann : "신앙의 그리스도 인식이 없으면, 희망은 허공에 떠 있는 유토피아가 된다. 그 러나 희망이 없으면, 신앙은 무너지고 약한 신앙이 되고 마침내는 죽는 신앙이 된다. 그러나 희망만이 신앙을 이 길에 머물러 있게 한다. …신앙은 기대적인 희망 속에서 십자가에서 죽 으신 자의 부활로 인하여 무너진 한계들을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은 세상도피, 체 념, 기피와는 아무런 관계를 가질 수 없다.(희망의 신학, 19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