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본론

 

1. 종말론의 기원

 

1) 종말론의 예비표상(미래화의 동력과 근거)

(1) 약속신앙

이스라엘의 종교의 특수한 위치는 가나안의 종교와의 팽팽한 투쟁과 긴장 속에서 구체적으로 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Victor Maag(Malkut Jhwh 1960)과 M.Buber(Königtum Gottes)는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적 특징을 가나안 농민의 종교의 정적인 요소와 대립되는 활동적, 역동적인 요소에서 찾았다. "유목민 이스라엘의 종교는 약속의 종교이다. 유목민은 파종과 추수의 사이클에서 사는 것이 아니고, 철따라 움직여 다니는 이민의 세계에서 산다. 영감을 주고 안내하고 보호하는 이 유목민의 하나님은 여러 점에서 농경민들의 신들로부터 완전히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농경민들의 신은 지방적으로 매여있다. 그러나 유목민의 이주의 하나님은 지역과 지방에 매여있지 않다. 그는 그들과 같이 가고, 그 자신이 움직인다."(Maag, 139f)

"여기서 실존은 역사로서 인식된다. 이 하나님은 현재의 단순한 반복이나 확증이 아니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목표인 미래로 인도한다. 목적은 유랑과 그 고통에 의미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신뢰에 대한 오늘의 결단은 미래가 가득찬 결단이다."(상게서 140)

이스라엘의 무리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그 땅과 정착된 삶의 새로운 경험을 약속의 성취로서 받아들였다. 그들은 가나안 종교의 연례적 축제를 '역사화'하였고 그들은 가나안 종교의 신화적, 마술적 의식을 '미래화'하였다.

이러한 제의, 땅의 재해석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는 미래를 향해 계속 추진되는 약속의 동력을 보존했다. 우리는 이 약속의 신앙 속에서 종말론의 최초의 동력(primum movens), 약속의 미래로서의 약속의 내용의 미래화의 근거를 발견한다. 약속은 모든 경험과 역사를 초월하는 '아직 현재하지 않는 것'을 희망하고, 이 희망의 의식 속에서 약속은 미래화되었다.

이스라엘은 역사경험 속에서 약속을 항상 새롭게 넓게 해석해왔다. 하나님은 모든 경험할 수 있는 성취를 넘어서 계속 미래를 지시하는 분으로서 경험되었고, 약속의 성취는 계속 재해석되고 확장되었다. 이러한 더 큰 희망의 확증, 희망의 재해석과 확장 속에서 역사는 '확장하고 넓히는 약속의 역사'로서 이해되었고, 약속의 하나님의 무진장성 안에 기초해 있는 약속의 불변하는 잉여가치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어떠한 역사적 현실에도 만족하거나 피곤해하지 않도록 긴장과 개방성을 유지시켜 주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새롭고 역사적이며 종말론적인 미래의 지평을 드러내 주었다.(희망의 신학 130-148)

(2) 야웨왕권 신앙

NT의 예수의 종말론을 푸는 중심열쇠인 하나님 나라에 상응하는 O.T의 개념은 '야웨는 王이시다'(Melek Yahwe)라는 개념이다.

① 어원과 의미

Melek의 원래 의미는 M.Buber에 의하면 아카디아어에서 나온 것으로서 '고문관'(Ratspender : molik)을 의미하고, V.Rad는 이를 '소유자' 혹은 '결정자'라고 이해한다. W.Genesius, F.Buhl, L.Köhler, W.Baumgärtner에 의하면, 어원학적으로 아랍어나 에디오피아의 말과 상관되어 있는데, '소유한다' 또는 '한 사물의 주인됨'을 의미한다.(김철현 : 하나님의 나라 上, 9ff)

② 유래(기원)

M.Buber는 야웨 왕 칭호를 유목시대까지 소급시킨다. 야곱에게 계시하여 그에게 땅을 약속하고, 종족의 번성, 그리고 야곱과의 동행을 약속하는 야웨 하나님은 일정한 장소에 구속받지 않는 움직이는 신이다. 이같이 앞에서 인도하는 신이야말로 인도자이며 王이라고 부버는 말한다. 부버는 왕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은 없으나 부족의 인도자를 서부 셈계통의 용어인  Mashall로 나타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또 야웨보좌인 법궤, 언약체결 속의 왕개념 함축). 또 부버는 사사기의 기드온 구절에서 하나님의 왕권개념을 읽었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을 격파시키고 돌아온 다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당신과 당신의 자자손손이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삿 8:22)라고 간청했다. 거기서 기드온은 "내가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니요 내 자손이 그대들을 다스릴 것도 아니다. 야웨께서 그대들을 다스릴 것이다."(삿 8:23)라고 말했다. 이 답변 속에 하나님이 王으로서 직접 다스린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또 기드온이 죽은 다음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에게 물은 질문, "여룹바알의 아들 70명의 지배를 받는 것과 한 사람의 지배를 받는 것과 어느 것이 나으냐고 물어봐 주십시오"(삿 9:2)라는 말 속에서 부버는 하나님의 왕권이 존재했음을 본다. 부버는 이 구절 속에서 "왕이 되다"라는 동사(말락)는 사용되지 않았어도, 그 대신 '다스린다'라는 동사(먀살)가 왕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Königtum Gottes, 장일선, 구약신학의 주제, 181)

Maag도 야웨의 왕권개념을 유목전승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왕권사상에는 유목시대의 사상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즉 야웨를 길의 동행자로 여기고, 동행하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했다.(W.Zimmerli, 구약신학 49)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王칭호는 유목시대의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유목시대의 이스라엘, 모세도 하나님을 王으로 부르지 않았다. 비록 유목시대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하나님을 인도자, 지배자로서 경험했다 해도, 이스라엘은 아직 하나님을 王의 칭호로써 부른 적은 결코 없었다.(J.Jeremias, W.H.Schmidt, H.J.Kraus) 그리고 이스라엘에게서 야웨가 王으로 등극되는 축제가 실제로 거행되었는지도 실로 의심스럽다.

S.Mowinckel(vgl. 창조신화<Enuma elish>)은 야웨 王칭호, 특히 야웨 왕의 등극축제를 이스라엘이 바벨론 왕 등극축제로부터 빌려왔다고 주장했다. 바벨론에서는 12일 간 계속되는 신년축제에서 신들의 王인 마르둑(Marduk)의 즉위식을 반복했다. 마르둑은 바다의 괴물 티아마트(Tiamat)로 인격화된 혼돈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둠으로써 신들의 왕이 되었다. 해마다 신년이 되면, 신화의 낭송과 그 제의적 표현을 통하여 마르둑의 승리가 재연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도 매년 신년축제 때에 야웨의 등극을 축하했다는 것이다.(Jerusalem 성소의 제의, 대관시편들에 보존됨), (S.Mowinckel, The Psalms in Israels worship)

Ugarit의 신화(Ras Schamra-Text)의 발견, 해독 이후 차츰 많은 학자들은 야웨 王 표상이 가나안에서부터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Text에는 날씨, 풍산의 신인 Baal이 바다의 신인 Jom과 죽음의 신 Mot와 투쟁한 후 죽고 다시 살아나는 신화가 기록되어 있고, 여기서 Baal은 제왕이 되어 왕좌에 앉았다는 환호의 외침에 의해 다시 왕으로 등극한다. 그러므로 야웨를 왕으로 부르는 것은 땅 점유 이후의 시대로 소급된다. 이 칭호는 여부스 족속에서 나온 전승을 반영하고 있고 Jerusalem제의와 결합되어 있었다. 그 시기가 이스라엘 국가 형성 이전(Alt, Buber)이냐 혹은 그 후냐(V.Rad, Rost)에 관해서는 여전히 논쟁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칭호가 이스라엘에게서 외래적이라는 것이다. 王이라는 야웨술어는 인간이 복잡하나마 신들의 王權(28)에 의해 유지, 보존되는 질서잡힌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이스라엘은 이 술어를 지나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술어에는 '세계보존'이라는 술어와 '하나님의 통치의 보편성'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 술어를 받아들이되 '변형시켜' 받아들였다. 이스라엘은 야웨가 혼돈을 무력화한 것을 결코 신들의 투쟁 속의 승리로 볼 수 없었으며(다신론 배격) 이스라엘의 경험의 다양성을 이와 유사한 신들의 세계로부터 설명할 순 없었다. 오히려 신화적인 신의 왕권을 그들 자신의 구원경험으로써 기초했다. 즉 특수한 역사경험(전쟁에서의 승리, 땅점유 등)으로써 야웨의 보편적 통치의 근거를 설정했다.(비신화화, 역사화)(J.Jeremias, W.H.Schmidt)

J.Jeremias (Das Königtum Gottes in den Psalmen), W.H.Schmidt (Königtum Gottes in Ugarit und Israel)

③ 종말론적인 야웨의 왕권

야웨왕권 시편들(24, 29, 47, 93, 96, 97, 98, 99)에서는 야웨의 왕권이 그의 창조행위에 기초해 있는 것으로 고백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처음부터, 창조 때부터 왕이다.(24:1-2, 93:1-2, 96:10). 하나님은 창조행위를 통해 모든 혼돈과 무질서(Chaos)의 세력(신화적 표현을 빌림)을 물리치시고 땅을 견고히 세우셨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스스로 창조의 主, 세계의 王임을 입증하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왕권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때때로 실증되었다. 영원한 왕권이 역사 속에서 거듭거듭 사건화되는 것으로 고백된 것이다. 그러므로 야웨왕권은 처음부터 종말론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권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원한 하나님의 왕권이 역사 속에서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권세들에 의해 위협받게 됨으로써, 그것은 미래에도 거듭 실증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왕권표상이 종말화되는 시작이 되었다. 종말론적인 야웨의 임재를 기대하고 찬양하는 시편들(특히 96, 97, 98)은 특히 제 2 이사야의 종말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볼 수 있다.

96:13 →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97: 1 →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98: 9 → 저가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로다.

(하나님의 종말론적·보편적 현현을 찬양한 포수기 후의 축제)

제 2 이사야(Dt-jes)는 이스라엘 백성의 제2의 Exodus를 보편적인 하나님의 왕등극과 관련시켜 선포했다 :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 52:7-9). 그는 모든 땅의 끝이 하나님의 오심을 볼 것을 약속했다.(제2이사야)

하나님의 왕권, 통치와 관련된(종말론적) 본문들 : 사 6:5,(사 24:23, 33:22), 41:21, 43:15, 44:6, (52:7), 렘 8:19, 10:7-10, 46:18, 48:15, 51:57, (겔 20:33), (오바댜 21장), (습 3:15), (미 2:12-13, 4:6-7), 4:9, (슥 14:9, 16f), 말 1:14, (말 2:44, 4:3,34,37, 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