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중세기의 종말론

(Joachim von Fiore/ 1130-1202)


 

(천년왕국적) 종말론이 그 의의를 상실한 중세기에 기독교적 희망(유토피아)의 전개를 촉진한 역사적 조건들이 마련되었다. 교회는 너무 깊이 세상 정치적 상황 속으로 빠져 들어갔기 때문에,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 - 땅의 도성 간의 구별은 점차 더 경험할 수 없게 되었다. 중세기의 가장 알려진 종말론적 희망의 대변자는 J.v. Fiore였다.

당대 사람들에 의해 예언자와 성자로 추앙 받았던 그는 이태리의 Kalalbrien에 수도원을 창설했다. 그 수도원의 원장인 그는 일종의 개혁운동을 일으켰고 다른 수도원을 계속 창설했다. 1215년의 제 4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그의 삼위일체론은 Petrus Lombardus와는 대립되는 삼신론(三神論)적 경향 때문에 정죄되었다.

※ J. v. Fiore의 사고 유형 : 피오레의 결정적인 사고유형은 O.T와 N.T, 구속사의 과거와 현재 간의 상응(concordia)의 사상에 있다. 그는 구속사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구성했다 : 그는 (7일간의 창조일자에 맞춰) 7000년간의 세계연대론을 예수의 족보와 그 42(6×7)세대(마 1:1-17)의 도움으로 재해석했다. 우선 구약시대가 7부분으로 나누어졌다 : 6시기는 각기 7세대를 지니고(42세대) 그리스도 앞에 있다. 그리스도는 바로 7째 시기에 해당된다. 그와 똑같이 신약시대도 7부분으로 나뉘어졌다. 그리스도에 이어 다시 7세대를 가진 6시기가 따라온다(각 세대는 예수의 일대에 맞춰 약 30년 가량으로 계산됨). 그래서 신약시대는 정확히 1260년이 된다. 그 이후 7째 시기가 따르는데, 이 시기는 삼위일체적 구분도식에 따라서 '성령의 시대'라고 불리었다. O.T은 성부시대, N.T는 성자시대이고 제 3의 새 시대는 '성령의 시대'이다. 피오레는 이 통찰을 1190-1195 간의 성령강림절에 계시로서 받았다고 했다. 그에게 전 역사의 의미가 이렇게 이해되었다는 것이다. 그 시대가 철저히 타락했고, 이 타락은 묵시적 종말의 고통 속에서 이미 예언되어 있으며, 그것이 새 전환을 향해 아우성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제 곧 제3의 시대가 임박해 있다고 그는 확신했다.

< 3 시대 구분>

1시대(성부 시대)

2시대(성자 시대)

3시대(성령 시대)

 

율법 아래 있음

학문(지식 안에 있음)

종살이 안에 있음

고생 〃

두려움 〃

종의 상태〃

별빛 〃

겨울 〃

쐐기풀을 생산함

풀을 생산함

 

은혜 아래 있음

지혜의 능력 안에 있음

아들의 섬김 〃

행위 안에 있음

신앙 〃

자유인의 상태 안에 있음

아침 여명 안에 있음

봄의 시작 〃

장미를 생산함

지푸라기 〃

포도주

 

더 큰 은혜 아래 있음

인식의 완전함 안에 있음

자유 안에 있음

명상 〃

사랑 〃

친구의 상태 안에 있음

대낮의 광채 〃

여름 안에 있음

백합을 생산함

밀(알곡) 〃

기름

 


역사의 근본 원리 : 피오레는 역사발전의 내재적 원리를 문자에서부터 영으로 계속 나아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모든 O.T의 사건들은 N.T와 성령의 제 3시대에서 더 영성화되고 정화되는 방법으로 반복된다(엘리야의 불 세례 → 요한의 물세례 → 예수 제자들의 성령세례). 그렇기 때문에 교회도 제 3시대에는 외적て형식적 제도나 직무를 전혀 필요하지 않는다. 물론 성직제도, 성례전, 다른 제도들도 있을 것이나 완전히 변화된, 영에 일치된 형태 속에서 존재한다. 교회는 완전히 '영적인 교회'(ecclesaia spiritualis)가 되어, 거기에는 신도들의 교제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영교 속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성령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자유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 교회에서는 산상설교도 완전히 실행되기에 교회는 철저히 가난한 교회가 될 것이다. 모든 전쟁이 끝나고 적그리스도는 정복되며 '영원한 복음'이 선포된다(계 14:6). 이 모든 것이 1260년에 임박해 있다. 피오레는 자신의 수도원 창설을 이 새 전환의 직접적인 선구자로 간주했다.

피오레는 반(反)어거스틴적이지도 않았고, 고대 교회시대와 새 시대 간의 혁명적 단절을 예언하지도 않았으며, 종말론적 희망을 물질화하지도 않았으며(그것의 철저한 영성화), 반(反)교회적, 반(反)제도적 경향도 갖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어거스틴을 넘어섰다. 그는 역사 내재적인 진보의 역동성, 갱신된 교회와 사회를 기대했다. 그는 외적인 지배와 제도로부터 해방되고 영으로 투명한 신도들의 공동체를 추구했으며, 역사 내재적인 질적 갱신과 영성화를 기원했다.

※ 부정적 요소 : 잘못된 구속사 연대의 구분(같은 성령의 역사가 창조, 역사와 완성에서 역사함). 잘못된 교회의 영성화, 탈역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