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석학적 사고유형

 



해석학적 사고유형은 이해(理解)를 추구한다. 여기서 "이해"란 이해하는 사람에게 의미있는 것을 열어준다는 것을 말한다. 이해의 운동에서 해석학적 사고유형은 단순한 해석활동을 넘어선다. 그것은 본질적인 것을 말하길 원한다. 본질적인 것은 언제나 전승(傳承) 속에서, 그리고 전승으로서 이미 존재해 왔다. 해석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 비록 대체로 불분명하지만 - 만약 전승 속에서 본질적인 것이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다면, 전승이 결코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본질적인 것이 이미 전승으로 통용되고 있을 경우에만 비로소 본질적인 것이 인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하는 자는 전승으로 인하여 이미 벌써 하나의 살아있는 역사의 맥락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해석학적 사고유형은 역사지향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역사적 관찰로만 끝나지 않고, 역사 속에서 불변하는 것(영속적인 것), 그리고 서로 다른 역사적 변형에도 불구하고 통용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실로 해석학적 사고유형은 통용(通用: Geltung)의 문제에 큰 관심을 갖는다. 물론 역사적인 규범을 확정하고 이를 역사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본질적인 것을 언어로 재현(再現)함으로써 의미있는 것을 다시 통용시킨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이와 동시에 해석학적 사고과정과 언어과정은 동의(同意)를 목표로 삼는 담론(談論)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그것은 비본질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것, 본질적인 시각을 왜곡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제하는 일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므로 현상의 다양성 때문에 그것은 공리적(公理的)인(더 이상 추론될 수 없는) 근본 질문을 제기하여, 이 근본 질문으로부터 현상의 복잡성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또한 해석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그가 이해하며 대변하는 것에 헌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인식하고 말하는 것과 괴리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해석학적 사고유형의 특징은 늘 이미 통용되고 있는 것에 대한 질문에 있다. 이러한 "늘 이미"는 이해하는 자가 벌써 들어와 있는, 그리고 그가 한걸음씩 열어가고 있는 공간과 흡사하다. 이 공간은 모든 생활 영역, 특히 본질적인 것에 대한 암시를 품고 있는 일상적인 경험과 일상적인 언어를 포괄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일상의 언어들이 본질적인 내용을 알려주려면, 그것들은 자세히 설명되어야 한다.

이처럼 해석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 혹은 해석학적으로 표현된 텍스트를 의미있게 깨달고 싶어하는 사람은 언어적 뉘앙스와 언어적 맥락을 정확하게 관찰해야 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해석학적 텍스트에 관해서는 전혀 말하거나 논의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해석학적 사고과정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정교한 언어사용과 근본 질문의 부정을 통해서만 반박 논리를 펼 수 있다. 그러므로 해석학적 사고유형은 아주 명확한 대화 기법, 모두에게 의미있는 것에 대한 동의와 합의를 추구하는 의사소통(Kommunikation)을 요구한다.